대다수의 아나운서들은 퇴사 후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계약 후 프리랜서로 방송 활동을 이어간다. 간혹 입당해달라는 정당의 손짓에 응해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최근 이례적인 행보를 보인 아나운서가 있다. 방송국도 국회도 아닌, '유튜브'를 택한 그녀. 바로 김필원 전 CBS 아나운서다.

김 전 아나운서는 지난해까지 6년여 동안 CBS 음악 FM <김필원의 12시에 만납시다>를 진행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 그가 지난해 10월 31일자로 퇴사한 뒤 택한 건 공중파나 케이블 채널이 아니라 유튜브 방송 <김필원 잡화점>이다. 김필원 전 아나운서가 유튜브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 지난 16일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김 전 아나운서를 만났다. 다음은 김 전 아나운서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방송 경력 17년이지만, 유튜브서 긴장했다"

 김필원 전 CBS 아나운서

김필원 전 CBS 아나운서ⓒ 이영광


- 유튜브 방송 <김필원 잡화점>을 시작한 지 3개월 정도 되었어요. 최근 구독자 수가 700명을 넘었고 생방송은 약 50명 정도 시청하는 것 같은데 어떠세요?
"제가 5월 17일 처음 문을 열어서 딱 3개월 됐죠. 구독자가 100명 넘었을 땐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시작할 때는 욕심을 낼 수가 없었거든요. 700명이 넘으니 얼떨떨하고 그러면서 약간 욕심이 생기는 거예요. 곧 천 명이 되고 3천 명이 될 거라는 마음도 찾아와요. 오늘(16일) 현재 구독자가 738명 정도 되는 걸로 나오는데 기쁘고 감격스러워요. 믿어지지 않아요. 기분 좋아요."

- CBS 아나운서로 있다가 유튜브에서 인터넷 방송 하니까 느낌이 다를 것 같은데요.
"어떻게 보면 CBS에서는 나왔지만, 유튜브라는 더 큰 회사에 고용이 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리고 저는 제 외연을 확장시키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거지, CBS를 나와 훨씬 작아진 저를 발견하려던 건 아니었거든요. 더 큰 저를 발견하기 위해 회사를 사직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유튜브 하는 제가 예전보다 나아진 것 같아요. 'CBS를 나와 더 적은 (숫자의) 사람들에게 방송해'라는 생각보다는 '나는 가능성이 더 무한한 곳에 있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기대돼요."

- CBS에서 <12시에 만납시다>를 오랫동안 진행하셨잖아요, 그래서 팬이 많은 것으로 알아요. 퇴사 후 프리랜서로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고 방송 활동하실 수도 있을 텐데 유튜브를 택하셨어요. 이유가 있을까요?
"유튜브 하려고 회사를 나온 건 아니었죠. 저는 그 당시 공부를 하고 싶었고 아나운서 이외의 일도 활발히 하고 싶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한 5년 고민했어요. 회사를 그만두지 않아야 할 백 가지 이유를 상쇄할 정도로 강력한 마음의 목소리 때문에 회사를 그만둘 수 있었는데요. 막상 그만두니, 소속사가 있어서 저를 알려주는 게 아니잖아요. 생각해보니 기다리기보다 제가 방송국을 열면 된다 싶은 거예요. 그래서 방송을 하게 됐어요.

그러나 두려움도 많았어요. 사람들이 저에게 조언해주기를, '제 방송 들었던 많은 사람은 유튜브에 없다'는 거예요. 왜냐면 채널이 다르잖아요, 그리고 유튜브를 보시는 분들 기대치와 연령대가 다르다는 거예요. 선정적이거나 자극적 콘텐츠를 원할 수도 있는데 제 이미지가 안 좋아질 수 있다는 거예요. 망설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는 방송이 체질에 맞아요. 전 방송할 때 행복했어요. 평생 저는 방송을 할 거고 세상 어디에서든 방송하고 싶어요. 심지어 남극에서도 하고 싶어요(웃음). (방송을) 못할 곳이 없다고 생각해요. "

- 엔터테인먼트 생각은 안 하셨어요?
"왜 생각을 안 하겠어요. 불러주면 뭐든 가능하죠(웃음). 그러나 현실상 저의 상황이 그렇지 않아요. 연락이 올 수는 있겠지만 사직할 땐 공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맥을 활용하지 않았고 프리랜서로 조인할 기획사를 알아본 적이 없었어요. 지금도 세상 사람 중에는 저를 모르는 분이 많잖아요."

- 회사를 그만둔다는 게 두려웠을 것 같아요. 저만 해도 시민기자잖아요. 종종 사람들이 저에게 시민기자 하지 말고 블로그 운영해서 광고 받으면 그게 낫다는 거예요. 근데 두려워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는 게 제 이름 앞에 있으니 할 수 있지, 제 이름 앞에 아무것도 없다면 누가 봐줄까 하는데... 아나운서님은 더 그렇겠죠.
"맞아요. 저는 정말 기자님 마음 이해해요. 저도 그래서 5년이나 고민했어요. 5년이나 그랬던 것도 몰랐는데 일기장을 보고 알았어요. 우연히 방 청소하다가 발견된 5년 전 일기를 보니까 그때도 사직하고 싶었더라고요. 그러나 두려움을 이길 만한 근거와 현실적인 대안이 없잖아요. 소위 '잃을 게 많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런 생각하며 5년을 버텼던 거예요. 저는 지금도 두려워요.

그러나 그 일기장을 본 순간 5년 동안 그 마음을 참으라고 하며 자 자신을 괴롭혔으면 됐다고 생각했어요. 저 스스로에게 그만큼 참으라고 했음에도 계속 찾아오는 마음은 단순한 슬럼프가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이 고민을 해결해보려고 여러 가지 했었어요. 그럼에도 계속 우울감 같은 것이 느껴지니까 결단을 내리려고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걸었어요. 결론을 내려야 하는데 저 자신을 잘 모르는 것 같고 무서우니까요. 다 걷고 제가 어떤 생각을 했냐면 '그동안 머리로 17년간 회사생활 했으니 이젠 마음으로 살자'는 것이었어요. 마음은 머리로 해석 안 되잖아요. 해석해보려고 애쓰다 '에라 모르겠다. 그러면 해석 안 되는 채로 살자' 그랬죠.

그러나 그래도 끝까지 걱정되는 게 '돈 문제'예요. 길 위에서 순례자는 절반은 '노숙자'로 사는 거잖아요. 그렇게 살아보니 덜 먹고 덜 쓰면 되겠더라고요. 더 낮아져도 아름답고 좋더라고요. '여성 노숙자'로 사는 제 모습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저는 그때 '내가 아나운서가 아니고 돈 못 벌어도 아름다울 거야'라는 확신이 왔지만 휴직 기간을 마치고는 회사로 돌아가 보고 싶었어요. 놓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돌아갔는데 복귀하니 3일 만에 예전 우울함이 찾아오는 거예요, 너무 놀랐고 두려웠어요. 사람들이 궁금하게 생각했었어요. 청취율도 올라가고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회사를 그만두려고 하느냐고. 심지어 제가 아픈가 보다 하시는 분도 계셨어요. 하지만 전 아픈 게 아니라 정말 아프기 전에 마음의 목소리를 듣자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나올 수 있었어요. "

- 팟캐스트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유튜브인가요?
"유튜브는 레코딩된 영상이 남잖아요. 팟캐스트도 그렇긴 하지만 당사자가 편집을 해야 하죠. 인트로 들어가야 하고 중간 로고도 쳐 줘야죠. 만들 게 많은 데, 오늘 당장 아이폰 들고 시작할 수 있는 건 유튜브밖에 없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생방송을 하잖아요. 그것도 편집 안 하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제가 아나운서를 한 이유가 PD는 편집하는 등 후반 작업이 많잖아요. 기자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아나운서는 두 시간 떠들면 끝이에요. 그러다 보니 생방 아니면 못해요. 자막 절대 못 넣어요, 편집 못 해요. '편집이 없는 날 것의 느낌' 그게 제 채널의 매력이에요. 전 생방송 하는 걸로 끝이어야 해요(웃음). 제 성격에 잘 맞아요."

- 인터넷 방송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거잖아요. 처음 방송 시작하실 때 어떠셨어요?
"첫 방송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방송 중에 머리를 엄청 만져요. 긴장한 거죠. 라디오 방송 17년 했다고 해도 유튜브 방송은 처음이니 긴장한 티를 안 내려고 해도 다 나는 거죠. 그 상황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시간은 훌쩍 갔어요. 너무 당황했지만 제가 염원했던 순간이라 기뻤어요."

- 17년 동안 방송했는데도 긴장되나요?
"방송 오래 해도 처음 겪는 상황이면 긴장하게 되잖아요. 행사 진행할 때도 저에게 '베테랑이니까 (준비된) 멘트 없어도 알아서 잘해주세요'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그러면 전 '베테랑이고 뭐고 항상 처음 같고 떨리니까 잘 준비를 해주셔야 한다'고 말씀드려요. 항상 처음 같고 떨리고 어려운 거죠. 유튜브도 처음이라 떨린 거예요. 지금도 사람들에게 구독 버튼이나 좋아요 버튼 어딜 눌러야 하는지 설명을 잘 못 해요. 시청자들이 생방송 중에 댓글 참여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는데 저도 몰라서 헤매요. 그나마 라디오 생방송 17년 했으니 어영부영이라도 한 거였을 텐데 그래도 너무 떨렸어요."

"이젠 하루에 사연 2개 와도 행복해... '공감'과 '위로'가 방송 목적"

 김필원 전 CBS 아나운서가 운영 중인 <김필원 잡화점> 유튜브 페이지.

김필원 전 CBS 아나운서가 운영 중인 <김필원 잡화점> 유튜브 페이지.ⓒ 유튜브 갈무리


- 보통 방송 진행 시간이 30~40분 정도예요. 시간이 짧다는 의견도 많은 것 같은데, 이 정도로 진행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시간을 지켜주는 게 좋겠더라고요. 아무리 재밌더라도 아쉽게 헤어져야 또 만나고 싶은 거지, 늘어지게 실컷 만난다고 좋은 게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방송 시간이 매회 다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자유롭고 제한을 받고 싶지 않지만, 방송 시간만큼은 좀 아쉽게 일정하게 지키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그럼에도 잘 안 지켜져요. 정말 시간이 훌쩍 지나가거든요. 저에게도 정말 짧게 느껴져요."

- 아무래도 공중파에 계셔서 그런 거 같아요.
"그것 때문이라기보다는 지인들의 컨설팅을 받았어요. 나름 유튜브 안다는 분들이 시간을 지켜주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은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에요. 방송 30분 할 때와 36분 할 때, 40분 할 때 느낌이 달라요. 아쉽단 생각이 들 때 헤어져야 다시 만나요. 그래서 30분 정도로 정해놓고 지키려고요. 그리고 다들 바쁘시잖아요. 제 채널 말고도 볼 게 많은데 한 시간은 길죠. 30분으로 알람을 맞춰놓아서 방송 중 알람이 울려요. 그러면 그때 정리해도 36분까지 가요."

- 음악방송 DJ를 오랫동안 하셔서 음악도 같이 하고 싶으실 거 같은데 저작권 때문에 못 틀잖아요. 아쉬울 것 같아요.
"<김필원 잡화점>을 열 자신이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음악이 안 되어서였어요. 그래서 '아프리카 TV'도 생각했다가 일단 유보하고 유튜브 채널로 그냥 음악 없이 해보자고 한 거죠. 처음엔 20분만 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전 'less talk more music'이 기본인 채널에 있었어요. 그래서 실컷 떠들 시간이 없었어요. 음악이 우선적으로 나갔죠. 한 번도 실컷 말한 적이 없어서 무서웠는데 지금은 음악 없는 게 편해요, 실컷 떠들 수 있어요(웃음). 지금은 음악 나갈 시간이 없어요. 그러나 음악이 필요할 때 나갈 수 있음 좋겠죠. 아쉬운 거도 있지만 견딜 만 해요."

- 사연이 오면 기분이 어때요?
"예전에는 많은 사연 중 몇 개밖에 소개 못 해서 아쉬웠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항상 사연이 아쉽죠. 오늘 밤에 당장 생방송을 해야 하는데 현재까지 온 사연이 2개뿐이에요. 그것도 심지어 보낸 분이 또 보낸 거예요(웃음). 그러나 무게는 2건이 아니라 뒤에 0이 두 개 더 붙어 100배 더 무게감 있게 소중한 느낌이에요. 방송에서 개인 메일 주소 말하며 사연 달라고 하는데 누가 주겠어요? 그런데도 보내시는 분은 진짜 저를 사랑하는 분인 거예요. 예전에는 방송사에 있으니 보낼 마음이 났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저에게 보내준다는 게 너무 감사한 일이죠. 그래서 불만 없어요. 첫 사연 왔을 땐 울 뻔했어요.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하고 소개 못 할 사연 없고 눈물 나요."

- 유튜브로 방송하며 느끼는 게 있을 것 같아요.
"생방송을 할 때마다 느껴요. '시작하길 잘했고 너무 좋다'는 거죠. 현재 생방할 때 많이 보면 70명이고 보통 40~50명이에요. 어느 분이 보고 계신지 모르잖아요. 그런데 어떤 느낌이냐면, 마치 시청자와의 만남이 오래 전부터 예정됐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라디오에서 만났겠죠. 그러나 유튜브까지 와주시는 건 건 믿어지지 않아요. 생방송 시청하시는 40~70명이 저에겐 너무 중요한 고객인 거예요. 생방송이 아닌 다시 보기도 많이 해주시지만 생방송 중에 저희끼리는 정말 따뜻해요. 무슨 말을 해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 있잖아요. 어마어마한 고백을 해도 이해한다고 말해줄 것 같은 사람의 따뜻한 눈길이 느껴져요. 되게 따뜻해요. 링거 맞는 느낌이죠."

- 방송 중에 겪은 특별한 에피소드 있나요?
"독일 가서 생방송을 한 적이 있거든요. 근데 날아갔어요. 방송 끝나고 스트리밍하면 '동영상 생성 중'이 떠요. 두 개 뜰 때 놔둬야 하는데 하나를 지운 거예요. 그랬더니 업로딩이 안 되는 거예요. 근데 그 방송이 방송 중 제일 좋았어요. 추억 하나를 쌓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도 속이 쓰려요. 이런 식으로 방송 하나씩 날리며 배우는 것 같아요."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세요.
"때때로 인터뷰 요청이 와요. <김필원 잡화점> 방송을 하게 되면서 소통할 것이 생기는 게 기쁘고 감사하고 하나님 뜻이 맞는 것 같아요. 여전히 두려워요. 그러나 저는 요즘처럼 이렇게 한 번씩 사람들을 만나는 게 감사해요. 저에게 에너지가 돼요. 그리고 자꾸 욕심이 생겨서 큰일이죠. 조회 수나 구독자 수가 많아지면 광고 붙는다던데 콘텐츠 부담도 있지만 일단 질러봅니다(웃음). 구독자 15만이 목표예요.

요즘 '아빠 되어주는' 콘셉트의 유튜브 채널이 구독자가 많대요. 보시는 분들에게 힐링이 필요한 시대라는 뜻인 거죠. 제 방송의 목적은 '공감'과 '위로'예요. 일주일에 한번 '잘 살았다' 서로 칭찬해주고 응원하면서 다음 일주일을 살아갈 작은 힘을 얻는 것,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 - 기자 주)하자는 생각이에요. 일반 매체에서 못하는 걸 해보고 싶어요. <김필원 잡화점> 채널에 자주 찾아와 주시고 전파해주세요."

 김필원 전 CBS 아나운서

김필원 전 CBS 아나운서ⓒ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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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너뷰'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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