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그것이 알고 싶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 SBS


무더위를 고려한 편성이었을까? 지난 11일과 18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그 어느 때보다 무섭고 소름 돋는 내용이었다.

우선 11일에 방영된 '어둠 속의 목격자-인제대교 추락 사망 사건'을 보자. 이는 15년 전 인제 대교 밑에서 스무 살 김씨가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으로, 고인의 직접적인 사인은 추락에 의한 것이었지만, 시신에는 추락 전 누군가에 의해 폭행당한 흔적이 있었다. 방송은 성폭행을 당하던 김씨가 반항하자 목을 졸리고 기절한 상태에서 대교 밑으로 던져졌다고 추측됐지만 당시 경찰은 현장에 흰색 마티즈가 있었다는 목격담만 들었을 뿐, 범인을 찾지 못했다고 전했다.

18일에 방영된 '빨간 대문집의 비극-故 허은정 양 납치살인사건'은 허은정 양의 할아버지를 폭행하던 범인이 그를 말리던 6학년 허은정 양을 납치해 살인 방기한 사건이다. 할아버지는 죽기 직전까지 그 범인을 아는 듯한 진술을 남겼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았고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이 두 회 차를 보면서 내가 가지는 의문은 하나였다. 왜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의 다른 회 차보다 이 두 사건을 더 끔찍하게 여기는 것일까?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은 어디에서부터 기인할까?

두 사건의 공통점

 8월 11일에 방영된 ‘어둠 속의 목격자-인제대교 추락 사망 사건’

8월 11일에 방영된 ‘어둠 속의 목격자-인제대교 추락 사망 사건’ ⓒ SBS


두 살인 사건을 다룬 이번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내가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는 우선 그 범인이 일반인이라는 점 때문이다. 늦은 새벽에 귀가하는 여성을 성폭행하려다가 반항하니까 죽이고, 노인을 폭행하다가 어린 여학생에게 들키자 그녀를 납치해서 죽인 범인.

이 사실은 기존의 <그것이 알고 싶다>가 최근 방송한 권력형 비리 등과는 조금 결을 달리 한다. 권력기관의 부정부패나 권력 남용 사건은 프로그램의 특성상 그 결과도 중요하지만, 개선의 필요성에 방점이 맞춰진다. 사건이 권력과 관계된 구조적 문제인 이상 결론은 대부분 시민의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 민주주의의 강화로 귀결된다. 즉, 사건에 대해 개선의 여지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번 두 사건의 경우는 다르다. 개선 가능성이 없다. 이미 사건은 벌어졌고,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시대에 따라 범죄율은 달라지겠지만 이와 같은 강력범죄는 인간사에서 항상 있어 왔다. 따라서 결론은 범인 검거의 가능성에 모아질 수밖에 없는데, 위 두 사건은 아직까지 미궁에 빠져있다. 흉악한 범인이 우리 곁에서 10년, 15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소름이 돋을 수밖에.

게다가 더 가슴 아픈 것은 희생된 두 피해자가 모두 사회적인 약자, 즉 여성과 어린이라는 점이었다. 딸자식을 키우고 연세 드신 부모님을 둔 입장의 사람으로서 기가 막힐 노릇일 수밖에 없었다. 어찌 저런 일이. 내가 아무리 조심하려고 해도 범인이 작정하고 달려들면 어쩔 수 없는 것이 현실 아니던가. 비록 살인 사건이라고는 하지만 자연스럽게 감정이입 되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일이었다.

결국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내가 무서워했던 것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무력감 때문인 듯했다. 끔찍한 살인 사건을 보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와 같은 사건이 언제든지 나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이 날 소름 돋게 만들었다. 지금 이 프로그램을 나와 마찬가지로 범인도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지켜봤다


 18일에 방영된 빨간 대문집의 비극-故 허은정 양 납치살인사건’

18일에 방영된 빨간 대문집의 비극-故 허은정 양 납치살인사건’ ⓒ SBS


그렇다면 <그것이 알고 싶다>는 10년, 15년이나 지난 미제 사건을 왜 굳이 언급했을까? 범인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일까? 그것은 역시 두 사건의 공통점, 즉 새로운 목격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15년 전 인제 사건의 경우 <그것이 알고 싶다> 측으로 하나의 제보가 당도했다. 15년 전 새벽에 인제대교를 지나다가 어떤 남자가 마네킹을 다리 밑으로 버리는 것을 목격했는데 그것이 TV에서 방영되었던 인제 사건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비록 15년이 지난 일이지만 특이했던 만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또한 15년이나 지났으니 용기를 냈다고 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봤던 장면이 범죄 현장일 수 있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당시 목격자로 등장한 렉카차 기사는 경찰 조사에서 사건 현장에서 흰색 마티즈를 봤다고 했지만, 15년 만에 나타난 제보자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사건 현장에 흰색 탑차와 렉카차가 함께 서 있었고, 그 현장을 지나치자 반대편 차선에 서 있었던 렉카차가 헤드라이트도 켜지 않은 채 자신을 따라와 위협했다고 했다. 렉카차 기사가 범인 혹은 공범으로 당시 경찰 수사에 혼동을 주기 위해 흰색 탑차를 흰색 마티즈로 둔갑시켰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대목이었다. 현재 경찰은 그 렉카차 기사를 다시 찾고 있는 중이다.

10년 전 허은정 양 납치살인사건의 경우 새로운 목격자는 당시 사건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피해자의 동생이었다. 당시 겨우 10살이었던 목격자는 이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10년 간 그 날의 일을 메모하며 살았으며, 성인이 된 뒤 용기를 내어 범인을 찾겠다고 나섰다. 온전하게 살기 위해 10년 동안 안고 살았던 그 끔찍한 기억과 다시 대면한 것이다.

 피해자의 기억

피해자의 기억 ⓒ SBS


그녀의 진술이나 그동안 목격자들에 의하면 범인은 할아버지도, 허은정 양도 알고 있는 면식범이고 할아버지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 시킨 일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그것이 알고 싶다>는 프로그램 말미에 새로운 증거가 있음을 이야기했다. 피해자의 신체에서 피해자의 것이 아닌 머리카락을 같이 채취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범죄의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다.

10년, 15년이 지났음에도 끔찍한 사건을 잊지 못한 채 살아온 목격자들. 그들의 어렵사리 꺼내놓는 진술을 듣고 있자니 가슴이 저려왔다. 그 긴 시간 얼마나 자기 혼자 끙끙 거리며 사건을 잊으려고 노력해 왔을까. 범인이 나를 찾아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과연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었을까?

부디 경찰은 이번 방송을 계기로 적극적으로 위 두 사건을 재수사하기를 바란다. 신속하게 범인을 검거해서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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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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