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스트 씬> 스틸컷

영화 <라스트 씬> 스틸컷 ⓒ Digital Nega


일본 공포 영화 <링> <여우령>으로 유명한 나카타 히데오 감독은 할리우드로 진출하기 전에 <라스트 씬>(2005)이라는 드라마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다. 주로 장르물을 찍던 감독이 드라마를 택했던 시기는 묘하게 할리우드 진출과 맞물려 있다. 그리고 영화의 내용에는 일본 영화계 현실에 대한 비판이 깔려 있다.

나카타 히데오 감독은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감독이다. 그는 주류 영화계에서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일본 영화계의 문제점을 지켜봤을 것이다. <라스트 씬>은 1960년대 톱스타였던 배우 미하라 켄(니시지마 히데토시/요시나가 조니 분)이 2002년 엑스트라로 출연하며, 힘겹게 촬영을 끝마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인기 절정을 달렸던 일본 영화, 그때부터 시작된 문제

 영화 <라스트 씬> 스틸컷

영화 <라스트 씬> 스틸컷 ⓒ Digital Nega


영화가 과거로 다루는 1960년대는 대중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일본 영화계가 인기 절정을 달리던 시기였다. 1950년대 구로사와 아키라, 미조구치 겐지, 이마무라 쇼헤이 등 굵직한 감독들이 해외에서 극찬을 받았으며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침체했던 일본 영화계를 세계에 알렸다. 1960년대 TV의 보급에 맞춰 침체될 줄 알았던 영화계는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았고 야쿠자 영화의 유행으로 전성기를 달리기 시작한다(한국으로 따지자면 <친구>를 비롯한 조폭 영화의 흥행으로 극장가에 관객들이 몰렸던 시기와 엇비슷하다).

영화에서 1960년대 미하라 켄(니시지마 히데토시 분)은 스타 배우의 오만 방자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파트너였던 인기 여성 배우의 은퇴로 인한 자신의 인기 하락을 고민한다. 이런 그의 모습은 몇몇 스타 배우 중심으로 많은 영화가 제작되었던 당시 제작환경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황금기를 벗어난 2002년을 영화는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여성 주인공인 미오(아소 구미코 분)다. 영화는 영화계는 물론 일본 엔터 사업계의 가장 큰 문제인 스태프 처우 문제를 먼저 보여준다. 한국 역시 드라마나 영화의 제작환경 문제로 인해 스태프들은 적은 임금과 중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촬영 일정이 촉박한 드라마의 경우 스태프들이 무리하게 일정을 소화하다가 부상당하는 등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흥행에 실패한 경우 스태프들이 돈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 미오가 작품을 찍는 작업환경 역시 열악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작업 환경보다 그녀를 더 실망시키는 건 영화에 참여하는 주요 인물들의 마음가짐이다. 이에 대해 말하기 전에 일본의 엔터 문화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일본 배우들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영화배우인데 왜 이렇게 드라마에 열심히 출연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계로 진출한 배우들의 경우 드라마를 거의 찍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의 경우도 비슷하다. 영화와 드라마를 병행하는 배우들도 있지만 숫자는 많지 않다. 그러나 일본은 반대다. TV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으면 인기를 얻을 수 없다. 영화에만 출연해서 인기를 얻는 배우는 없으며, 꼭 드라마 출연이 동반되어야 한다.

<라스트 씬> 속 감독은 자신이 찍는 영화를 하나의 '작품'이 아닌 'TV 드라마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연출 면에서의 욕심보다는 대충 제작자의 요구사항에 맞춰 완성이나 시키자'라는 생각이 강하다.

일본 상업영화의 특징... 그러나 스태프와 감독의 바람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스틸컷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스틸컷 ⓒ (주)디오시네마 , (주)영화사 그램 배급


오는 23일 개봉 예정인 일본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찾을 수 있다. 극중에서 갑자기 생중계 좀비 영화를 찍게 된 감독 타카유키(하마츠 타카유키 분)는 '빠르고 싸고 퀄리티는 그럭저럭'인 영화를 만드는 것을 모토로 삼는다. 이는 감독이 욕심을 낼 수 없게 만드는 일본 영화계의 구조에 기인한다.

일본 영화를 보다 보면 상업영화의 경우 원작이 있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지 않고 남의 이야기를 기술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게 일본 상업영화의 현실이다. 게다가 제작사의 요구조건도 많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에서 타카유키는 편집 없이 '원 테이크' 생중계 좀비 영화를 찍어달라는 요청을 수락하게 된다. 제작자는 제작환경에 무관심하다. 이 조건이 얼마나 무모하고 어처구니 없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무조건 작품이 '완성'만 되면 그만이다.

다음으로 문제 삼고 있는 건 배우들이다. <라스트 씬>과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에서 주인공을 맡은 배우들의 모습은 비슷하다. 여자 주인공은 모두 아이돌이며 남자 주인공 역시 연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개똥철학'을 지니고 있다. 영화에서 아이돌 출신 배우들은 연기력이 부족한 데다 촬영에 적극적으로 임하지도 않는다. 특히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아이카(아키야마 유즈키 분)는 "자신은 원하는데 회사에서 허락 안 해줄 것"이라는 핑계로 하기 싫은 촬영은 다 빼버린다. 배우의 소속사가 제작사보다, 그리고 출연배우가 감독보다 힘이 강하기에 생기는 문제다. 일본은 연예인의 사생활이나 발언, 태도에 굉장히 민감하지만 힘이 강한 소속사의 경우 이를 막아낼 수 있을 만큼 막강한 파워를 자랑한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라스트 씬>과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감독과 스태프들이 영화판에 종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단 한 장면이라도 감정과 진심이 담긴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과 감동 때문이다.

두 일본 영화가 한국 엔터업계에 전하는 메시지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스틸컷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스틸컷 ⓒ (주)디오시네마 , (주)영화사 그램 배급


<라스트 씬>에서 노인이 된 왕년의 톱스타 미하라 켄(요시나가 조니 분)은 짧은 대사만 맡은 엑스트라로 영화에 출연한다. 미오는 왜 이런 싸구려 영화에 왕년의 톱스타가 출연해 대사도 못 외워서 욕을 들으면서도 연기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떻게든 내 몫을 해내겠다는 미하라의 의지에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은 집중한다. 영화에 관심이 없어 보였던 감독은 몇 번이고 NG를 내는 미하라가 대사를 마치길 기다린다. 이 순간 그는 주변의 목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고집을 부린다.

이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타카유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럭저럭 영화를 완성시켜가던 그는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생략하라는 제작자의 말에 처음으로 반대의견을 표한다. 가짜 눈물, 어설픈 연기를 모두 포용했던 그도 결말 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감독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인 것이다. 나카타 히데오는 <라스트 씬>을 통해 일본 영화계를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그 결말에는 꿈과 희망을 남겨둔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말처럼 영화계를 떠나지 말고 영화판에 종사하는 우리 모두가 바꿔보자고 말이다.

영화판을 견디지 못해 떠나려 마음먹었던 미오는 미하라의 연기에 마음을 고쳐먹는다. 영화에 관심이 없었던 감독은 한 장면을 잡아내기 위해 쉽게 넘어가지 않고 후배들에게 세트를 맡겼던 담당자는 직접 세심하게 세트를 체크한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에서는 영화의 완성을 위해 스태프와 배우들이 모두 하나로 합심한다. 문제에 대한 개선은 내부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영화계뿐만이 아니다. 웃음과 감동을 전하는 엔터 사업이 그 내부에는 문제점으로 가득하다면 어떻게 작품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을까. 두 일본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브런치, 블로그와 루나글로벌스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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