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조 '바람처럼!' 17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반둥의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조별리그 E조 2차전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경기. 한국 황의조가 말레이시아 이르판을 피해 드리블 하고 있다.

▲ 황의조 '바람처럼!' 17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반둥의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조별리그 E조 2차전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경기. 한국 황의조가 말레이시아 이르판을 피해 드리블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6월 27일 '2018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에서 느꼈을 독일 축구 팬의 충격이 이랬을까. 17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말레이시아와의 조별리그 E조 두 번째 경기는 한국 축구 팬들에게 '반둥 쇼크'로 기억될 만큼 커다란 충격이었다.

아시안게임에서 말레이시아에게 마지막으로 패했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44년 전인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직 한국이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고 독일 사람들은 '차붐'이 누군지도 몰랐던 시절이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말레이시아전 패배가 단순히 '불운'이라고 하기엔 너무 졸전이었다는 점이다. 김학범 감독은 말레이시아전에서 6-0으로 대승을 거뒀던 15일 바레인전과 비교해 선발 명단을 무려 6명이나 교체했다. 결과적으로 갑작스런 출전 선수 변화로 인한 혼란은 이날 경기 패배의 커다란 원인이 되고 말았다. 한국은 이제 조별리그 한 경기 만을 남겨두고 있음에도 아직 주전 베스트11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천재 미드필더' 윤정환도 희생(?)될 수 있는 단기전

현재 일본 J리그 세레소 오사카의 감독을 역임하고 있는 윤정환은 1990년대 중·후반 한국은 물론 아시아 무대를 주름잡았던 '천재 미드필더'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경기장 전체를 아우르는 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스로 동료들에게 골 기회를 만들어 주는 능력은 단연 발군이었다. 1990년대 초반 한국 축구에 '노정윤-서정원 콤비'가 있었다면 중반 이후엔 '윤정환-최용수 콤비'가 축구 팬들을 열광시켰다.

하지만 윤정환은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플레이 메이커 중 한 명임과 동시에 한국 축구 영광의 순간에는 주역이 되지 못했던 '비운의 스타'이기도 하다. 윤정환은 거스 히딩크 감독 부임 이후 몸싸움과 피지컬, 활동량을 중시하는 '히딩크식 축구'에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윤정환은 4강 신화를 달성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최종 엔트리에 포함됐지만 단 1분도 그라운드를 누비지 못했다.

2002 월드컵에서 대표팀 엔트리에 선발되고도 정작 1경기도 나서지 못한 선수는 윤정환 말고 또 있었다. 한국 축구 부동의 주전 골키퍼였던 김병지는 2001년 1월 칼스버그컵에서 페널티박스 밖으로 공을 몰고 가다가 상대에게 공을 빼앗기는 실수를 저질러 이운재에게 주전 자리를 내줬다. 이 밖에도 제3의 골키퍼였던 최은성과 윙어 최성용, 현영민까지 총 5명의 선수가 월드컵에서 경기에 나가지 못한 채 벤치에서 동료들을 응원했다.

반면에 골키퍼 이운재와 라이트백 송종국은 조별리그 첫 경기 폴란드전부터 터키와의 3-4위전까지 한 번도 교체 없이 풀타임으로 경기에 나섰다. 이 밖에 박지성, 설기현, 김남일, 최진철, 유상철 등도 대회 내내 주전으로 꾸준히 중용됐다. 주로 체력이 좋고 몸싸움에 능하거나 멀티 포지션 소화가 가능해 전술적으로 쓰임새가 다양한, 한 마디로 히딩크 감독이 선호하는 유형의 선수들이었다.

리그와 대륙별 대회, 컵대회 등을 동시에 치러야 하는 클럽에서는 대회나 경기의 경중에 따라 로테이션이 불가피하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킬리안 음바페 같은 세계적인 선수라도 전 경기를 풀 타임으로 소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아야 6~7경기로 순위나 메달이 가려지는 단기전에서는 주전과 비주전의 경계가 나뉠 수밖에 없다. 불가피하게 윤정환 같은 피해자(?)가 나오는 이유다.

단 2경기 만에 로테이션 실험... 조별리그 자력 1위 놓칠까

안타까워하는 손흥민 17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반둥의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조별리그 E조 2차전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경기. 손흥민이 슛이 빗나가자 안타까워하고 있다.

▲ 안타까워하는 손흥민 17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반둥의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조별리그 E조 2차전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경기. 손흥민이 슛이 빗나가자 안타까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아시안게임 엔트리는 20명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 골키퍼는 2명을 선발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필드플레이어는 단 18명. 대표팀 선수들끼리는 두 팀으로 나눠서 연습경기를 할 수도 없는 소수 인원이다. 게다가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는 경기에 출전하지 않는 선수에게 메달을 주지 않는다. 한국은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일본과의 3-4위전에서 출전 기록을 만들기 위해 김기희가 후반 44분에 교체 선수로 들어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학범 감독은 이번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20명의 엔트리를 골고루 활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어차피 이번 대표팀에는 와일드카드로 선발된 3명의 선수와 센터백 김민재 정도를 제외하면 소속 클럽에서 확실한 주전이라 할 수 있는 선수가 많지 않다. 따라서 여러 선수를 골고루 기용하면서 보름이 갓 넘는 시간 동안 최대 7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을 돌파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바레인과의 첫 경기에서 6-0으로 대승을 거두며 자신감을 끌어 올린 김학범 감독은 말레이시아와의 두 번째 경기부터 본격적으로 '로테이션'을 가동했다. 조현우 골키퍼 대신 송범근 골키퍼가 골문을 지켰고 황의조의 공격 파트너를 나상호에서 황희찬으로 바꿨으며 미드필더에는 무려 4명이나 변화를 줬다. 바레인전과 비교하면 절반이 넘는 6명의 선수가 새로 투입되며 사실상 새로운 팀을 꾸린 것이다.

하지만 김학범 감독의 '로테이션'은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전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한국은 전반 두 차례의 역습에 당해 두 골을 실점하는 동안 슈팅을 단 2개 밖에 시도하지 못했다. 특히 상대적으로 많은 기회가 나왔던 오른쪽 측면에서는 의미 없는 짧은 패스를 돌리다가 말레이시아 수비에 막히기 일쑤였다. 스피드와 돌파력를 갖춘 김문환과 나상호, 존재 만으로도 상대에게 위협을 줄 수 있는 손흥민이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말레이시아에게 충격의 패배를 당하면서 한국은 이제 자력으로 조 1위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E조 2위로 밀려난다면 한국은 16강에서 F조 1위가 유력한 이란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토너먼트에서 만나게 될 팀들은 언제 한국을 꺾어도 이상하지 않을 강호들이다. 이대로라면 김학범호의 금메달 도전은 기대보다 일찍 막을 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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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김학범호 윤정환 로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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