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대표팀 신임 감독 발표 기자회견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대표팀 신임 감독 발표 기자회견에서 선임 과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 축구대표팀을 이끌 새 사령탑으로는 파울루 벤투 전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이 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됐다.

▲ 축구대표팀 신임 감독 발표 기자회견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대표팀 신임 감독 발표 기자회견에서 선임 과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 축구대표팀을 이끌 새 사령탑으로는 파울루 벤투 전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이 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됐다. ⓒ 연합뉴스


"현실의 벽은 높았다."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감독 선임위원장이 지난 한달여간의 신임감독 협상 과정에서 느낀 한국축구의 위상에 대한 냉정하고도 솔직한 소감이다. 김판곤 위원장은 17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르투갈 출신의 파울로 벤투 감독의 영입을 발표했다.

선수와 감독으로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던 벤투 감독이지만 최근 몇 년간은 맡은 팀마다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단명하며 이렇다 할 성과를 남기지 못한 인물이다. 자국인 포르투갈을 떠나서는 해외무대에서 성공했다고 할 만한 경력이 전무하다. 내심 거물급 외국인 명장의 영입을 기대했던 국내 팬들로서는 그동안 한국 감독직 후보로 물망에 오른 다른 인물들에 비해서도 무게감이 떨어지는 벤투 감독의 영입에 만족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SNS나 포털 댓글에는 벤투 감독의 영입이 발표되자마자 엇갈린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외국인 감독에게 한국대표팀 감독은 어떤 자리일까

축구대표팀 새 사령탑에 벤투 전 포르투갈 감독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은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파울루 벤투 전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을 새로운 대표팀 사령탑으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벤투 감독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 4년간 대표팀을 지휘한다. 사진은 벤투 감독이 지난 2012년 포르투갈 대표팀의 훈련을 지켜보는 모습.

▲ 축구대표팀 새 사령탑에 벤투 전 포르투갈 감독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은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파울루 벤투 전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을 새로운 대표팀 사령탑으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벤투 감독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 4년간 대표팀을 지휘한다. 사진은 벤투 감독이 지난 2012년 포르투갈 대표팀의 훈련을 지켜보는 모습. ⓒ EPA/연합뉴스


감독 영입을 주도한 김판곤 위원장도 이런 여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기자회견에서 유럽 출장과 감독 후보군들과의 면담을 통하여 겪어야 했던 현실적인 고충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김 위원장은 유력한 감독 후보들을 만나 가능한 최대한의 조건을 제시하며 한국행을 간곡하게 설득했음에도 협상 과정에서 이견차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절감했음을 밝혔다. 약 한달 전 "우리가 원하는 감독을 직접 모셔오겠다"며 여유롭고 자신만만하던 모습과는 또 달랐다.

축구팬들 사이에서 그동안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던 인물은 바로 스페인 출신의 키케 플로레스 감독이었다. 김판곤 위원장은 실명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키케 플로레스로 추정되는 인물을 영입하기 위하여 자택까지 찾아갔던 과정을 공개했다. 하지만 플로레스의 한국행이 끝내 성사되지 못한 이유는, 한창 젊은 나이의 감독인 그가 축구의 중심인 유럽을 떠나 변방에 불과한 아시아의 한국으로 와야 할 만큼 '매력적인 동기부여'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판곤 위원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플로레스는 가족과 떨어져 한국에서 4년 이상을 지내야하는데 부담을 보였고 한국축구에 대해서도 손흥민-기성용 등 일부 유명 선수를 제외하면 이해가 거의 전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감독의 대리인은 몸값으로 축구협회가 책정된 예산을 뛰어넘는 거액을 요구하기도 했다. 다른 감독 후보들과의 협상도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 김판곤 위원장의 고백이다.

사실 이런 상황은 축구협회와 김판곤 위원장이 처음부터 자초한 면이 크다. 축구협회는 지난 러시아월드컵이 끝난 직후부터 사실상 일찌감치 유명 외국인 감독 선임에 무게를 뒀다. 김판곤 위원장은 클럽이나 대표팀에서의 성공 경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축구스타일 등 듣기에 근사한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며 신임 감독에 대한 '눈높이'를 크게 올려놨다.

하지만 해외축구시장에 대한 정보나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말부터 앞세운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라고 예상했던 감독 영입을 위한 예산, 월드컵 단골손님으로서 한국축구의 국제적 위상과 인지도 등은 모두 유럽 현지에서는 크게 통하지 않는 조건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신태용 감독이나 다른 국내파 지도자로 다시 유턴하기에도 명분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나마 조건이 맞았고 한국축구에 관심을 보인 벤투 감독을 차선책으로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한국형 명장을 육성하는 일이 시급하다

축구대표팀 '차기 감독' 유력 후보에 플로레스 급부상 대한축구협회 고위 관계자가 10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판곤 위원장이 지난 8일 유럽으로 출국했다"며 차기 감독 계약을 위한 출장임을 시사했다.

이러한 가운데 스페인 언론은 대한축구협회가 스페인의 키케 산체스 플로레스(53)에 국가대표 감독직을 제안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2015년 1월 5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구단 프리메라리가 헤타페의 기자회견장에서 플로레스 감독 모습. 2018.8.10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스페인의 키케 산체스 플로레스(53) ⓒ EPA/연합뉴스


일부 축구팬들도 막연히 감독의 '이름값'에만 현혹되어 무조건 'OOO를 데려오라'며 꿈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기보다 한국축구의 현재 위상에 대한 냉정한 현실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안방에서도 언제든 손쉽게 수준 높은 해외축구를 접할수 있는 시대가 되며 축구팬들의 눈높이는 한없이 올라갔지만 한국축구의 위상은 팬들이 기대하는 것과 염연히 차이가 있음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한국축구가 외국인 감독에 투자할 수 있는 비용은 같은 아시아권인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서도 크게 떨어진다.

'2002년의 히딩크'의 영향으로 '유능한 외국인 명장 하나만 데려오면 혼자서 한국축구를 구원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지니고 있는 것도 문제다. 당시는 '월드컵 개최국'이라는 특수성이 있었고 히딩크 이전과 이후로 그와 같은 전폭적인 지원과 권한을 누린 감독은 한국축구사에 전무하다. 그나마 유명한 외국인 감독이 몸값을 낮춰가며 한국행을 원할 가능성이 생기는 경우는 히딩크나 아드보카트의 사례처럼 월드컵을 약 1년 정도 앞두고 본선행을 확정짓고 새로운 감독을 구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정도다.

근본적으로는 '왜 한국축구는 히딩크 같은 명장을 다시 데려오지 못하나'라는 한탄보다 '언제까지 외국인 감독에게 매달려야 하나'는 문제를 더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벤투 감독의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앞으로도 대표팀 감독을 선임할때마다 이런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한국축구가 3~4년 사이에서 갑자기 위상이 급상승하여 해외의 유명한 명장들이 선호하는 팀이 될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고 슈틸리케나 본프레레처럼 2~3류 수준의 감독을 영입하기 위하여 적지 않은 비용은 비용대로 들이고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은 한국축구 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축구가 지금 가장 절실한 부분은 제2의 박지성이나 손흥민 같은 선수를 발굴하는 이상으로 유능한 국내 지도자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차범근-최강희-홍명보-신태용 등 한국축구는 월드컵을 한번씩 치를 때마다 가능성 있는 자국 인재들이 대표팀에서 망가지고 희생되는 악순환을 되풀이했다. 이들이 대표팀과 월드컵을 치르면서 축적된 경험치와 노하우는 연속성 있게 이어지지 못했고 감독이 바뀔 때마다 원점으로 돌아가거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했다.

유럽에서 활약 중인 1류 감독을 조건상 데려오기 어렵다면 매번 어설픈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느니 우리가 유럽에서도 통할 만한 지도자를 키워내는게 가장 좋은 차선책이다. 유럽파 출신으로 국가대표 감독까지 거친 차범근이나 허정무 전 감독에 이어 한국축구도 이제 유럽무대에서 풍부한 경력을 쌓은 축구인들을 다수 배출하고 있다. 설기현이나 차두리, 김남일 같이 이미 지도자의 길을 시작한 인물들도 있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이영표나 안정환, 박지성 같이 축구의 본고장에서 선진축구의 시스템과 지도방식을 체험해본 인물들이 은퇴 이후 지도자가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물론 행정가나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것도 한국축구에 기여하는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자질과 능력을 갖춘 이들이라면 한국축구 발전을 위하여 현장 지도자의 길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용기도 필요하다. 4년 뒤에도 또다시 고만고만한 외국인 감독을 찾느라 시간과 비용을 허비할 시간에 당당히 세계 무대에서 내놓을 수 있는 '한국형 명장'을 육성하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한국축구가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숙제다. 제2의 히딩크는 결코 알아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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