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잉, 동점 스리런 지난 7월 31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KT의 경기. 한화 호잉이 6회말 2사 1,2루에서 동점 3점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돌고 있다.

▲ 호잉, 동점 스리런 지난 7월 31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KT의 경기. 한화 호잉이 6회말 2사 1,2루에서 동점 3점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돌고 있다. ⓒ 연합뉴스


2018년 8월, 각 팀당 삼십 경기가량 남은 이 시점에서 몇 년간 순위표 상단에 보이지 않던 팀이 보인다. 한화 이글스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장장 10년을 순위표 하위권에서 머무르던 한화 이글스가 드디어 가을야구를 할 수 있는 순위인 3위로 올라선 것이다. 이 '반전쇼'에는 국내 선수들만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용병 선수들도 큰 역할을 했다. 그중에서도 타율 .325, 홈런 26개, 안타 133개, 타점 95개, 도루 19개를 기록하며 각종 지표에서 상위권에 있는 '만능 타자' 호잉의 역할을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호잉을 보며 한화 팬들은 예전의 전설적인 선수가 기억날 것이다. 바로 제이 데이비스이다. 제이 데이비스, 한화 이글스의 팬뿐만 아니라 야구를 오래 즐기던 팬들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이름이다. 7년이나 한화 이글스에서 뛰며 30홈런-30도루, 골든글러브, 한국시리즈 우승 등을 경험하고 현재 외국인 타자로서는 유일하게 KBO 기록실의 타자 부분 통산 기록 집계에 들어가는 선수 데이비스에 대해 알아보자.

한화 이글스의 팬이라면 기억할 외국인 선수 데이비스

'홈런 신고' 지난 2006년 10월 23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한화가 4-2로 삼성에 앞선 상황에서 한화 데이비스가 7회초 1사후 승부에 쐐기를 박는 2점짜리 우월홈런을 친 뒤 3루를 돌며 유지훤 코치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 '홈런 신고' 지난 2006년 10월 23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한화가 4-2로 삼성에 앞선 상황에서 한화 데이비스가 7회초 1사후 승부에 쐐기를 박는 2점짜리 우월홈런을 친 뒤 3루를 돌며 유지훤 코치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제이 데이비스는 1989년 뉴욕 메츠의 12라운드 지명을 받으며 선수생활을 시작하였다. 데이비스는 뉴욕 메츠에서 1989년부터 1995년까지 뛰었고 1996년에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뛰었다. 데이비스의 마이너리그 시절의 타격 수준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좋지도 않았다. 1994년 메츠의 더블 A 팀에서 타율 .329를 기록했지만, 홈런은 단지 5개뿐이었고 도루도 9개였다. 1996년 휴스턴의 트리플 A 팀에서는 타율 .337을 기록했지만 33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하였다. 데이비스는 1997년부터 1998년까지는 현재 센트럴 리그로 바뀐 텍사스 루이지애나 리그에 소속되어 있는 리오 그란데 벨리 화이트윙스에 소속되어 있었고 한국에 오기 직전인 1998년에는 리오 그란데 벨리 화이트윙스에서 타율 .405, 홈런 26개, 도루 25개 등을 단 82경기 동안 기록했다. 그해 1998년, 데이비스는 한국 프로야구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 참가했고 한국 프로야구의 용병 역사를 써 나아가게 되었다.

1999년 외국인 드래프트에서 데이비스는 한화가 지명했지만 원래 삼성이 데이비스를 지명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빠른 발에 내야 수비까지 볼 수 있는 빌리 홀이 삼성 서정환 감독에 눈에 걸렸고 결국 삼성은 데이비스 대신에 빌리 홀을 지명, 한화가 삼성 대신 데이비스를 지명했다. 이 두 구단의 선택은 한화의 승리로 끝이 났다. 한화 선수가 된 데이비스는 1999년 시즌 무려 타율 .328에 홈런 30개와 도루 35개를 하며 리그 최고의 외야수 중 하나로 자리잡으며 한화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겨주었다.

그 반면에 삼성이 지명한 빌리 홀은 도루 2위를 하긴 했지만 다른 분야가 좋지 않아 시즌 종료 후 삼성과 재계약을 하지 못하며 한국을 떠나야만 했다. 1999년 이후로도 데이비스는 2000년 홈런과 도루 기록은 떨어졌지만, 타율 .334를 기록하며 정교함에서 한층 더 진화된 모습을 보였고, 그다음 시즌에는 홈런도 30개로 복귀, 완전체 5툴 타자의 모습을 어김없이 보여주었다. 그러나 2002년에는 타율이 .287로 급감하고 홈런과 도루도 기대보다 못 미치는 성적이 나와 한화는 데이비스와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데이비스와 계약을 하지 않은 2003년, 한화의 용병 농사가 생각보다 좋지 않자 한화는 데이비스를 다시 불러들였다. 35살로 이제 실력이 점점 감퇴할 나이였지만 데이비스는 기대에 맞는 활약을 펼쳤다. 2004년 119경기에 출장해 타율 0.291과 홈런 19개로 준수한 활약을 펼쳤고 2005년에는 득점 1위, 타율 2위, 안타 3위, 홈런, 타점 4위로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수상, 리그 최고의 외야수 중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2006년, 타율이 2할 후반대로 떨어졌지만, 홈런 4위, 타점 5위 등 여전히 강력한 타자의 면모를 보여준 데이비스는 재계약을 하지 않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제이 데이비스는 뛰어난 성적으로 유명하기도 했지만 다른 면으로도 유명했다. 데이비스는 '악동'으로 유명했다. 경기 중 판정에 화를 내거나 불성실하다는 소리도 있었으며, 코치에게 조언한다는 뉴스까지 나면서 데이비스의 '악동' 이미지는 굳혀져 갔다. 그런데 멕시코 리그에서 2004년 한화에 돌아온 데이비스는 이전의 '악동' 이미지와는 달랐다. 훈련에서도 성실했고 2005년 김인식 감독이 부임한 이후에는 존경을 표하며 '악동' 이미지를 완전히 없앴다. 또 데이비스는 '신라면'을 좋아해 '신남연'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또 특유의 거수경례는 피에, 로사리오 등 한화의 다른 선수들이 따라하기도 하는 등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여기에 더해 헐렁한 힙합 스타일을 고수하며 쉬는 날에는 다림질 또한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외국인 선수로서는 특이하게 직접 미니 홈페이지까지 운영하기도 하였다.

현재 KBO 기록실에 집계되는 타자 중 타율 역대 9위를 기록하는 '전설' 제이 데이비스를 넘어선 외국인 타자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단일 시즌의 기록만으로는 넘어섰을지 몰라도 꾸준함이라는 면에서 다른 타자들은 아직까지 부족하다. 과연 호잉이 데이비스를 넘어서는 외국인 타자가 될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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