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의 한 장면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의 한 장면 ⓒ JTBC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JTBC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은 못생긴 외모로 괴로운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강미래(임수향)가 성형수술을 통해 미인이 된 뒤 대학생활을 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드라마는 대학생활의 여러 모습들을 담고 있지만, 중심이 되는 사건들은 늘 '외모'를 두고 벌어진다. 물론, 드라마답게 예쁜 여자와 잘생긴 남자에게 쏠리는 시선,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등은 때론 과장되고 극적일 때가 많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외모, 여성의 몸에 대한 시선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몸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성형수술을 통해 행복하고 자유로워질 줄 알았던 강미래가 또 다른 시선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설정은, 여성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드라마 속 강미래를 통해 여성의 신체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대상화' 되는 여성의 신체

주인공 강미래는 어린 시절부터 뚱뚱하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으며 자란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미래는 이런 남자아이들의 놀림에 당당히 대응한다. 1회 미래는 "나는 당하지만은 않던 사람"이었다고 독백한다. 자신을 놀려대는 남자 아이들을 끝까지 쫓아가 혼내주던 자신감 있던 아이였다. 미래는 이어서 말한다. "하지만, 그 후엔 더 큰 공격이 뒤따랐다"고. 미래의 단호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남자아이들은 공격을 그만두지 않는다. 이 짓궂은 남자 아이들에게 미래는 목표와 욕망을 지닌, 주체적인 한 사람이 아니라 장난의 '대상'일 뿐이다. 때문에 미래가 강력하게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표현해도 남자아이들은 '더 큰 공격'으로 미래를 괴롭힌다.

여성을 주체적인 사람으로 보지 않고, 신체적인 이미지만으로 평가하고 수단으로 대하는 현상. 심리학자 바버라 프레드릭슨과 토미앤 로버츠는 이를 '대상화'라고 명명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주로 대상화의 대상이 되는 것은 여성이며, 대상화 된 여성은 생각과 느낌, 의지를 지닌 한 인간으로 존중받기 보다는 남성을 만족시키는 신체이미지로 소비된다.

드라마 6회, 축제 중 예쁜 여자 후배들이 모두 서빙을 거부하자 한 남자선배는 다른 여자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럴 때 대비해서 평소에 내가 하라는 대로 했으면 됐잖아. 넌 머리 좀 기르고, 넌 살 좀 빼라니까." 몸의 주체인 여성의 뜻은 배제한 채, 자신의 소유물처럼 대하는 '대상화'의 태도가 잘 드러나는 장면이다.

이런 여성에 대한 대상화는 일상생활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특히, 미디어가 보여주는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날씬한 여성의 이미지는 그렇지 못한 여성은 '비정상적'이거나 '자기 관리를 못하는 것'으로 여겨지게끔 한다. 아마 미래를 놀려댔던 어린 시절의 남자아이들 역시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미디어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남자인 자신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지 않는 미래의 외모는 이들에겐 놀림감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를 대상화하는 '자기 대상화'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의 한 장면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의 한 장면 ⓒ JTBC


미래는 초등학교 시절 남자아이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점차 자신의 신체가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때문에 '최선의 성형은 다이어트'라는 신념으로 살을 뺀다. 불굴의 의지로 다이어트에 성공한 미래는 한동안 평탄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청소년기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외모로는 남자들의 사랑을 받기 불가능함을 깨닫는다. 미래는 점점 더 의기소침해져 간다. 늘 머리카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다니고,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기 싫어 졸업사진 조차 찍지 않는다. 심지어 자살시도까지 감행한다.

어린 시절에는 더 통통한 몸으로도 당당했던 미래가 청소년기엔 좋은 성적을 내는 우등생이면서도 더욱 주눅 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앞서 이야기한 '대상화'를 스스로 했기 때문이다. 꽤 오랫동안 반복되고 지속되어 온 외모에 대한 타인의 평가는 이제 미래 안에 내면화되고 만다. 즉, 나 자신이 나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남들이 평가하듯 스스로를 대상화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대상화'라고 한다. 스스로를 '자기대상화'한 사람은 남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타인의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그리고 점점 자신에게 그렇듯, 타인을 평가하는 것이 습관화된다. 때문에 미래는 자신도 모르게 처음 만나는 사람, 심지어 그냥 지하철에 함께 탄 사람의 얼굴에도 점수를 매기며 평가한다. 이런 미래가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택한 건 결국 성형수술이다.

성형수술의 결과는 또 다른 구속

성형수술을 하고 모두의 주목을 받는 미인이 되어 대학생활을 시작한 미래. 하지만 "그저 평범하게 사랑받고 싶었다"는 미래의 바람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날부터 같은 과 남자들은 미래에게 관심을 두지만, 미래는 그 시선이 오히려 불편하기만 하다. 이는 이들의 시선이 한 사람으로서의 미래의 매력을 보려하기 보다는 늘씬한 몸과 예쁜 얼굴, 즉 성적 대상으로서만 미래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전처럼 놀림거리가 되지는 않지만, 예뻐진 후에도 미래의 몸은 여전히 남성들에게 눈요깃거리가 되고 만 것이다.

미래가 자신에게 접근하는 남자 선배에게 불편함을 느꼈던 것, 예쁘다는 칭찬이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 등은 바로 여전히 미래의 신체가 대상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평범하게 사랑받고 싶은'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나로 존중받고 인정받고 싶은' 미래의 소망은 너무 예쁜 외모 때문에 또 다시 좌절되고 만다.

게다가 주변에선 '예뻐지면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회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수술 받는 고통까지 감수한 미래에게 '성형수술은 좋지 못한 것'이라는 상반된 메시지를 전한다. '예뻐지면 사랑받을 수 있다'고 해서 예뻐졌는데 성형수술을 얼마나 했는지가 또 다시 논란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 세상. 미래는 이에 "또 이렇게 됐어 또"라고 한탄한다. 가부장 사회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이에 순응했는데 결국엔 이로 인해 더욱 차별받는 여성에 대한 이중구속과 다르지 않다.

사회적 편견에서 비롯된 심리적 문제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의 한 장면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의 한 장면 ⓒ JTBC


아마도 미래가 겪은 갈등의 심리적인 원인은 자신 스스로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타인의 인정만 구하려 성형수술을 감행했기에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다. 하지만 드라마 속 미래가 경험하는 대상화되는 불쾌함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정도는 다르지만 일상에서 수시로 겪는 느낌이다.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의 저자 러네이 엥겔른이 이야기하듯 대부분의 문화권에 널리 퍼져 있는 여성의 몸에 대한 대상화는 미래처럼 자신의 외모 때문에-예쁘든, 예쁘지 않든 상관없이-고통 받는 여성들을 만들어 낸다. '예쁘다'고 평가받는 여성들은 성적 대상으로 여겨지는 불쾌감을 감수하며 자신의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못생겼다'고 평가받는 여성들은 자존감을 잃거나,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거나 성형수술을 감행하는 고통을 겪는다. 이렇게 대상화는 여성들을 자기표현이나 자기만족, 건강을 위한 목적으로 스스로를 가꾸는 것을 넘어서는 과도한 외모 가꾸기에 몰두하게 한다. 미래의 심리적 고통의 원인은 이런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됐다 할 수 있다.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의 한 장면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의 한 장면 ⓒ JTBC


물론, 드라마는 여성의 외모만 다루고 있지는 않다. 드라마에서 잘생긴 남자 주인공 도경석(차은우)은 여성들에게 대상화되고, 선망의 대상이 된다. 외모가 출중하지 않는 남학생들 역시 경석과 비교해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드라마 속 남성들은 미래가 외모로 평가받는 것만큼 강렬한 평가를 받지도, 외모로만 주목받지도 않는다. 이는 실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드라마 속 미래는 못생겼던 자신을 "귀여웠다"고 이야기 해주는 경석을 만났다.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이 드라마에서 미래는 아마도 경석을 통해 심리적인 힘을 얻을 듯싶다. 이미 경석은 미래에게 "그럼 원래대로 살아"라는 뼈있는 말을 던진 바 있다. 5회와 6회에서 미래는 타인의 얼굴을 평가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로부터 벗어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과연 미래가 경석과의 관계를 통해, '자기 대상화'의 굴레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미래의 노력이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는 다른 인물들에게 그리고 이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내아이디는강남미인 여성의몸 페미니즘 대상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