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스페인 축구협회는 다비드 실바의 스페인 대표팀 은퇴 소식을 알렸다. 2006년 '무적함대'의 일원으로 합류했던 실바는 이번 러시아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스페인 대표팀과 작별을 고했다. 2000년대 후반 혜성 같이 등장한 천재 미드필더는 이제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에 집중하게 됐다.

실바의 국가대표팀 은퇴로 사실상 스페인 축구의 '황금세대'가 종말을 고했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를 시작으로 헤라르드 피케와 실바까지 이번 러시아 월드컵을 전후로 스페인 대표팀의 주축들이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2008년부터 시작된 스페인의 황금세대는 무수한 영광을 일궈냈다. 마지막 도전이었던 이번 월드컵에서 16강에서 떨어지며 마무리가 좋지 못했지만, 스페인의 황금세대는 '역대급' 퍼포먼스를 보여준 팀으로 기억된다. 10년 만에 완전한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스페인의 황금세대는 세계 축구 역사에 무엇을 남겼을까.

스페인 다비드 실바 스페인 다비드 실바가 15일(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피시트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B조 1차전 포르투갈과 경기에서 드리블하고 있다.

▲ 스페인 다비드 실바 ⓒ 연합뉴스


전무후무한 메이저 대회 '3연패'

오랜 기간 국제 대회에서 스페인 대표팀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재능들이 넘쳐나는 자국 리그와 세계 최고의 클럽이라 칭송받는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라는 근간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월드컵과 유로에서 성적은 시원치 않았다. 2008년 전까지 월드컵에서는 1950년 4강, 유로에서는 1964년 자국에서 열린 대회에서의 우승이 최고 성적이었다. 모두 반 세기도 넘은 영광이었다.

스페인의 반전은 2006년부터 시작됐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은 라리가의 샛별들을 과감하게 기용했다. 당시에만 해도 스페인 공격수의 상징과 같은 라울 곤잘레스 대신 다비드 비야와 페르난도 토레스가 중용을 받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의 두뇌 사비도 팀의 중심이 됐다.

2006년 황금세대의 시작은 지네딘 지단의 기이한 플레이에 조기 조영됐지만, 유로 2008에서 스페인 대표팀은 강렬한 역사의 시작을 알린다. 2년 사이 사비는 완벽에 가까운 미드필더로 진화했고, 비야-토레스 조합은 간결하면서도 치명적이었다. 후방의 카를레스 푸욜과 중원의 마르코스 세나의 든든한 지원 아래 스페인의 기술자들은 마음껏 그라운드를 누볐다.

결승전에서 독일을 잡아내며 54년 만에 유럽 챔피언이 된 스페인은 2010년 남아공에서는 세계의 챔피언이 됐다. 아라고네스의 후임 감독 비센테 델 보스케는 보다 기술적인 축구로 월드컵 챔피언의 승자가 됐다. 사비-부스케츠-알론소가 중원을 휘어잡으면 이니에스타가 수비의 틈을 벌렸다. 벌어진 공간은 비야의 훌륭한 먹잇감이었다.

2010년의 우승으로 세계 축구의 왕이 된 스페인은 유로 2012에서도 정상에 오르면 절정을 맞이했다. 이니에스타가 '에이스'로 올라섰고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완숙미를 뽐냈다. 피케와 세르히오 라모스가 중심이 된 수비진은 단단했다. 이미 두 차례의 메이저 대회 우승으로 경험까지 완비한 스페인 대표팀은 큰 어려움 없이 유럽 챔피언의 자리를 이어갔다.

전무후무한 메이저 대회 3연패의 순간이었다. 아르헨티나와 이집트가 각자의 대륙 대회에서 3연패를 기록한 적은 있지만. 월드컵과 대륙별 대회를 합쳐서 3연패를 만들어 낸 팀은 스페인 대표팀이 유일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고 칭송받는 펠레의 브라질 대표팀도 이뤄내지 못한 성과다.

메이저 대회 3연패는 갈수록 상대팀의 전술과 전략이 쉽게 노출되는 현대 축구의 흐름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현 시대의 챔피언들은 분석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탓에 순식간에 상대팀에게 공략을 당한다.

스페인은 그것을 이겨내고 업적을 달성했다. 앞으로 쉽게 볼 수 없을 위대한 성적을 스페인의 홤금세대가 축구계에 남겼다.

'엘 도라도'에 도착한 스페인

2000년대 후반 전 세계를 강타한 스페인 축구가 대단했던 이유는 비단 성적이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축구계가 오랫동안 염원하던 방식으로 트로피를 수집했다. 그들은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이상향을 발견했다. 축구계의 '엘 도라도'는 스페인이 먼저 점령했다.

당시 스페인 축구는 화려함의 극치였다. 10명의 필드 플레이어는 탁월한 기술을 바탕으로 공을 다뤘다. 상대의 압박에 쫓긴 급급한 롱패스가 아닌 정밀하고 계획적인 짧은 패스로 주도권을 잡았다. 그라운드를 누비는 스페인 선수들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였다.

4-3-3 포메이션을 기본으로 플레이하되 선수들은 수시로 자리를 바꾸며 상대를 현혹했다. 모든 선수가 공격수이자 미드필더였으며 수비수였다. 아라고네스부터 시작된 무적함대의 무모한 항해는 델 보스케의 지휘 아래 기어코 '엘 도라도'를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유로 2012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비야가 소속팀에서 당한 부상으로 대회에 나서지 못하자 스페인은 파브레가스를 활용한 '제로톱(Zero Top)' 전술을 꺼내들었다. 이미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에 의해 대성공을 거둔 전략을 차용한 것이지만, 메시와 플레이 방식이 판이한 미드필더 파브레가스를 최전방 공격수로 활용하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파브레가스를 보좌하는 공격수도 이니에스타와 실바였다. 실질적인 공격수가 전무한 진정한 의미의 제로톱이었다. 4-6-0 포메이션이라는 기괴한 구조를 천재적인 스페인들은 완벽하게 이해했다. 파브레가스가 상대 수비진에 혼돈을 가하는 '미끼' 역할을 하면 이니에스타와 실바가 혼란 속에 등장해 마무리를 지었다.

포지션은 의미가 없었다. 파브레가스는 공격 지역 어디에든 나타났다. 왼쪽 풀백 호르디 알바는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패널티 박스 안으로 진입했다. 스페인 선수들은 매 순간마다 공을 만지길 원했고, 공을 완벽에 가깝게 콘트롤하며 상대를 유린했다. 공 자체를 만지는 게 대단히 어려웠던 상대팀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축구 역사책에 깊게 새겨진 위대한 팀들은 십중팔구 2012년의 스페인 축구와 비슷했다. 1930년대의 오스트리아, 1950년대의 헝가리, 1970년대의 네덜란드 등 많은 팀들이 포지션이 붕괴된 이상적인 축구로 우승을 노렸지만 끝내 실패로 귀결됐다.

스페인은 과거의 선배들이 추구했던 마치 꿈 같은 플레이를 다시 현실로 구현했다. 현실 구현에 그치지 않고 스페인은 우승을 통해 '엘 도라도'의 황금이 진짜임을 밝혀냈다. 이로써 스페인의 황금세대는 축구계의 오래된 숙원을 멋지게 해결했다. 축구계의 '엘 도라도'는 실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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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축구 다비드 실바 3연패 엘 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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