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은 비싸지 않아?"

취미생활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뮤지컬 관람'이라고 답하면 높은 확률로 되받는 질문이다. 사실 말이 좋아 위 같이 표현했지, 각종 문화 콘텐츠에 견주어 아직도 대중 문화로 자리매김 하지 못 한 뮤지컬을 '사치'라고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뮤지컬 관람이 취미다"는 말은 "돈 많나봐?"라는 반응을 부른다.

그렇다. 뮤지컬은 비싸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창작 중소극장 뮤지컬도 분명 존재하긴 하지만, 대극장 라이선스 뮤지컬의 경우 그 값은 공연 마니아들조차 부담스럽다고 느낄 정도다. 대극장 뮤지컬 VIP 티켓은 시장 통상 가격 14만원 대에 형성되어 있으니 말이다. 필자가 좋은 공연을 보고 주변인들과 나누고 싶더라도 쉽게 '영업'을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이다.

 <지킬 앤 하이드> 예매 안내 화면 캡쳐

<지킬 앤 하이드> 예매 안내 화면 캡쳐 ⓒ 인터파크


대극장 뮤지컬 티켓이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크게는 제작비, 대관료, 인건비를 들 수 있다. 더불어 해당 공연이 라이선스인 경우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점으로 인해 제작사의 부담은 커진다. 이렇듯 높은 비용으로 제작되는 뮤지컬에서 실패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대부분 제작사가 의존하는 방법은 '스타 캐스팅'이다. 실제 '완판 배우'의 개런티는 회당 5천만원에 육박해 대형 뮤지컬이 많이 공연되는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1700석을 기준으로 할 경우 대략 매출액의 25%를 한 배우에게 지불하는 셈이지만, 적게는 1200석에서 많게는 2000석이 넘는 좌석을 매진시키기만 한다면 수익을 낼 수 있으니 말이다. (참고기사: 브로드웨이보다 높은 개런티 : <더 뮤지컬>)

조승우, 홍광호, 박은태와 같이 내로라하는 스타 배우를 캐스팅하여 화제가 되었던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지난 14일 오디뮤지컬컴퍼니의 SNS 계정을 통해 최고가인 VIP석 기준 화, 수, 목 140,000원, 금, 토, 일, 공휴일 150,000원의 티켓 가격을 공지하였다. 지난 시즌 대비 평일가는 통상 가격을 유지한 셈이지만, 주말가는 1만원 상승했다. 작은 돈일 수 있지만, 원체 뮤지컬 티켓 가격이 고가이다 보니 1만원 상승도 결코 가벼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지킬 앤 하이드>가 최초는 아니지만 평일가와 주말가를 다르게 책정한 이유도 모르겠다. 평일 공연과 주말 공연의 퀄리티가 다르기라도 하다는 걸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VIP석 보다 낮은 등급의, 비교적 시야가 확보되는, 일명 가성비가 좋은 좌석에서 관람하고자 하더라도 이것 또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물가 상승률에 비하여 뮤지컬 티켓 가격의 상승세는 지난 5년 간 1~3만원 선으로 얕은 폭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뮤지컬 티켓 가격은 몇 년 간 동결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뮤지컬 업계는 티켓 가격을 높이지 않고도 관람 여건이 크게 차이 나는 좌석들을 VIP석으로 묶어 판매하는 방식을 택했다. 실제 1층 앞쪽, 1층 사이드와 뒤쪽, 2층 앞쪽이 같은 등급으로 책정되어있는 좌석 배치도는 어느 샌가 익숙한 그림이 되어있다. 즉, 뮤지컬 업계는 눈에 띄게 티켓 가격을 올리지 않고도 더욱 수익을 낼 수 있는 '얄팍한 상술'을 보인 셈이다.

 <지킬 앤 하이드> 등급별 좌석배치도 (위 2010-11시즌, 아래 2014-15시즌)

<지킬 앤 하이드> 등급별 좌석배치도 (위 2010-11시즌, 아래 2014-15시즌) ⓒ 오디뮤지컬컴퍼니


이것은 비단 한두 뮤지컬만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뮤지컬 티켓 가격은 이른바 제작사들 간 '눈치 보기 작전'에 따라 정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즉, 뮤지컬 업계는 공연 마다 제작비가 다르더라도 경쟁작의 티켓 가격과 같은 금액에 티켓 가격을 책정한다. 이는 어떤 작품도 쉽게 티켓 가격을 올릴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생각한다면 경쟁작이 한 번 티켓 가격을 높여 책정한다면 다른 제작사도 쉽게 티켓 가격을 올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만약 높은 티켓 가격을 내걸었음에도 경쟁작이 흥행에 성공을 한다면 티켓 가격이 치솟는다.

그럼에도 뮤지컬 업계는 적자를 면치 못 한다. 아직도 열정페이가 존재하는 공연계가 아니던가. 때문에 티켓 가격을 올리거나 VIP 좌석을 더 많이 배치함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뮤지컬 티켓 가격 상승은 대중들에게 높은 진입 장벽이 된다. 일부 뮤지컬은 판매 실적이 좋지 않을 경우 특가 이벤트를 진행하지만, 할인 정책이 복잡할 뿐더러 인터파크의 '굿모닝 티켓', '시크릿 티켓'과 예스24의 '엔젤 티켓' 등은 게릴라성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뮤지컬 소식을 관심 있게 지켜보지 않는 대중의 경우 사실상 없는 혜택이나 마찬가지다.

아이러니 한 점은 이렇듯 관객의 진입 장벽은 높은 데도 뮤지컬 제작 시장은 진입 장벽이 낮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새로운 제작사들이 너도 나도 뮤지컬 산업에 마구 뛰어들어 공급 과잉이 되다보니 제작사는 또 다시 티켓 가격을 상승시켜 소수 회전문 관객의 주머니를 쥐어 짤 수밖에 없어진다. 결론적으로 현재도 '회전문 관객'이 이끄는 뮤지컬 업계는 대중화에서 멀어지는 모양새다. 그런데 회전문 관객의 주머니는 영영 마르지 않는 샘일까? 있는 힘껏 비틀다 보면 언젠가 바싹 말라버리기 마련이다.

7월 18일자 <더 뮤지컬> 기사 '한국 뮤지컬 시장, 어느 규모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에 따르면, 10여 년 간 한국 뮤지컬 시장은 20배가 넘게 성장했지만, 최근 2~3년은 그 성장세가 정체되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점은 뮤지컬 업계는 대중화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타 캐스팅에 연연하기를 멈추고 티켓 가격을 탄력적으로 운용해 경쟁력을 높이거나, 더욱 다양한 콘텐츠 개발과 마케팅, 무엇보다도 '제 값을 하는' 양질의 공연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도 친구들에게 자신 있게 뮤지컬을 '영업'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으려나. 그 날이 멀지 않기만을 바란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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