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타니 코키 대공항 2013> 드라마 포스터

<미타니 코키 대공항 2013> 드라마 포스터 ⓒ 일본 제작국 WOWOW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 성격이 변하는 데 계기가 있다. 그러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게 마련이지만, 그 중에서 '가까운 이의 죽음' 특히 '가족의 죽음'은 가장 강력하면서도 결정적이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을지언정, 그 여파는 소리 없이 강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세상을 등지며 남겨놓은 파장 하나가, 남겨진 많은 이들에게 마치 해일처럼 변화와 각성을 선사하는 셈이다.

일본 SP 드라마 <미타니 코키 대공항 2013>은 할머니의 죽음 이후 남편과 자녀들, 그리고 이들과 이해관계에 놓인 사람들이 어느 시골의 작은 공항에서 중대한 발표를 한다는 내용이다(여기서 '미타니 코키'는 각본 및 연출을 맡은 사람의 이름이다). 그런 면에서 이 드라마의 제목에서 '대공항'이라는 말은 반어다. '작은(小)' 공항에서 예상 외로 '큰(大)' 소동이 일어난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공항의 적막을 깨는 수상한 가족들

 드라마 <미타니 코키 대공항 2013>의 한 장면.

드라마 <미타니 코키 대공항 2013>의 한 장면. ⓒ 일본 제작국 WOWOW


일본의 '사가 현(佐賀縣)'에서 도쿄(東京)의 하네다 공항으로 도착해야 할 비행기가 있다. 하지만 하네다 지역의 기상이 악화된 탓에 이 비행기는 중간에 '마츠모토 시(松本市)'의 공항에 불시착한다. 마츠모토 공항은 지방의 공항으로서 규모도 무척 작고, 이착륙하는 비행기도 하루에 한 편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평상시에는 무척 한산하다.

비행기에서 한 무리의 가족이 내린다. 할아버지, 부부, 부인의 오빠, 21살의 딸과 20살의 아들, 총 5명으로 구성된 가족이다. 이들은 사가 현에서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도쿄로 돌아오는 길이다. 그리고 그들을 남몰래 따르는 한 명의 40대 남자와 또 한 명의 20대 여자도 있다.

일본의 유명 여배우 '다케우치 유코'가 연기한 오코치는 이 공항의 지상직 근무원이다. 그녀는 불시착하는 비행기 덕분에 한창 들떠있다. 오랜 만에 일거리가 생겨서 권태롭지 않게 하루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몰랐다. 이제껏 고요하고 잔잔했던 본인의 근무지가 뜬금없이 불시착한 비행기 한 대 덕분에 일대 소동을 겪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드라마의 핵심 스토리는 이처럼 일군의 가족으로 인해 지상직 근무원 1명이 105분 가량을 무척 다사다난하게 보내는 과정 그 자체다.

구제불능의 소재를 유머로 승화시킨 '웃음의 천재 작가'

가족들은 모두 각자 비밀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 성 소수자이지만 평생을 이성애자인 척 연기했던 자, 불륜에 빠진 자, 공항에서 처음 만난 사기꾼에게 부의금을 몽땅 사기당한 자, 허황된 사업을 꿈꾸느라 잔뜩 빚만 늘린 자, 원조교제인지 사랑인지 여하튼 통념에 따르면 쉽게 허락받지 못할 연애를 하는 자, 가족 몰래 학업을 등진 채 연기자가 되고 싶어 하는 자 등. 등장인물 중 누구도 범상치 않다. 만약 그 비밀을 발설한다면,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하나같이 놀랄 만한 일이다. 자칫하면 가족의 결속력을 와해시킬 정도로 정도가 심한 것도 있다.

그러나 불시착한 비행기가 결국 다시 도쿄로 이륙하지 못해 결항이 확정되고, 등장인물들이 공항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진다. 그러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은밀한 사정'이 한꺼풀씩 밝혀진다. 발단은 할머니의 죽음이다. 할머니의 죽음을 거론하며 가족 중 한 명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치부를 커밍아웃한다.

그리고 이것이 도화선이 된다. 그의 용기에 누군가는 감명 받고, 또 다른 사람은 자극을 받아서 나름대로 자신의 사연을 공개한다. 또 누군가는 고발을 받기도 하고, 끝까지 함구하는 사람도 있다. 선포를 하는 행위 자체보다, 선포에 이르는 과정에서 등장인물들끼리 좌충우돌 하는 모습이 그야말로 촌극이다. 이 드라마 줄거리 중 가장 재미있는 대목이다.

어찌 보면 '문제 있는 가족들'이 소재인 데다 배경도 장례식 직후라, 자칫 드라마의 분위기가 무거울 법도 한데, '웃음의 천재 작가'라고 불리는 미타니 코키가 연출한 작품답게 심각함 속에도 유머가 녹아든 느낌이다.

조금 어이없지만 이 또한 가족애

 드라마 <미타니 코키 대공항 2013>의 한 장면.

드라마 <미타니 코키 대공항 2013>의 한 장면. ⓒ 일본 제작국 WOWOW


그렇지만 마냥 웃기는 것만도 아니다. 가족들은 서로의 사연들에 놀라기도 하도 비난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고민을 진솔하게 인정하고 제법 건설적인 조언을 건네는 이들도 있다. 과감하게 고백한 사람과 그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방금 전까지만 해도 깔깔대며 웃던 자신이 민망해지면서 짐짓 숙연해지고는 한다.

공항의 근무원 오코치는 이들 가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에 때로는 본의 아니게 때로는 의도적으로 관여하게 된다. 따라서 비행기가 도착할 때만 해도 즐거운 하루가 될 것이라는 당초 기대와는 사뭇 다르게 사건들이 전개될수록 정신적으로 '대공황'을 겪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마도 제목의 '대공항'은 '대공황'을 염두에 두고 쓴 표현이 아닐까 한다. 한편으로는 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본인도 자신의 삶과 가치관에 대해, 그리고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각성하기도 한다.

아마 시청자들도 오코치처럼 이 드라마를 통해 비록 평범하고 평균적인 가족애와는 상당히 다르지만, 무엇인가 묘하게 진정성 있고 설득력 있는 가족애를 또 하나 배운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사실 구성원들이 모두 속칭 내로라할만한 '엄친아, 엄친딸'로만 이뤄진 가족이 과연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보통 가족이라면 구성원들 중에 으레 말썽쟁이나 문제아 한 두사람 정도는 섞여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가족 중 나머지는 이를 끌어안고 산다.

"'인형의 집'처럼 문젯거리 하나 없는 가족만이 가족은 아니다. 좌충우돌 티격태격 우왕좌왕 '잡음 많은 집'도 엄연히 가족이고 혈연 공동체다. 중요한 것은 가족들끼리의 진솔한 소통, 이해, 존중이다."

말썽쟁이가 죽일 듯이 미워도 그를 추방하지 않고 품어주는 쪽을 택하는 것이 세상 대부분의 가족들이 그들의 울타리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오코치가 깨달은 바도, 드라마가 말하려는 바도,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휴머니즘이 아니었을까 싶다.

NG내면 역적 되는 '원테이크' 촬영기법

이 드라마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제작방식도 꽤 독특하다. 원테이크(one take) 촬영기법을 쓰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 NG를 내는 순간 등장인물들을 포함한 관계자들 모두 그야말로 '대공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 카메라는 약 1시간 45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등장인물들을 옮겨 찍는다. 등장인물들은 중심도 되었다가 주변도 되고, 또 카메라 밖으로 빠졌다가 어느새 자연스레 다시 들어온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한 편의 기괴한 실험 연극을 보는 기분도 든다. 완벽하게 배우들의 동선을 짜느라 연출진들이 얼마나 고심했을지, 그리고 자기 차례가 되면 얼른 다시 들어가기 위해 줄곧 카메라를 쫓아다니며 주변에서 배우들이 얼마나 긴장했을 지를 생각하면, 시청자가 스크린을 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놓인 연극 무대를 접하고 있는 착각까지 일 정도다. 일개 단편 드라마에도 이처럼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 즉 장인정신을 발휘한 일본 드라마계의 실험정신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가끔 멀끔한 콘텐츠보다 괴상한 콘텐츠가 구미를 당기는 날이 있다. 또 반듯한 인물들의 교과서 같은 스토리보다 괴짜들의 '탈' 교과서 같은 스토리에 흠뻑 취하고 싶은 날도 있다. 여기 그 둘을 만족시키는 'B급 인물들의 훈훈한 실험극'이 한편 있다. 드라마를 고를 때 평소와 달리 이상할 정도로 개성 있는 영상물을 보고 싶은 날, <미타니 코키 대공항 2013>이 당신의 도전정신에 짧지만 강렬한 만족감을 선사해주리라 믿는다. 부디 당신 안의 무료함이 '뱅크 런(Bank Run)'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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