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독립선언 33인 중의 한분인 옥파 이종일 생가지를 찾은 배우 기주봉  배우 기주봉은 “비워두고 채우는 것이 연극입니다. 비워야 어떤 인물이 채워집니다.”며 "연기자는 왕이 비가 오지 않아 기우제를 지낼 때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연기를 해야 된다"고 자신의 연기철학을 설명했다.

▲ 3.1 독립선언 33인 중의 한분인 옥파 이종일 생가지를 찾은 배우 기주봉 배우 기주봉은 “비워두고 채우는 것이 연극입니다. 비워야 어떤 인물이 채워집니다.”며 "연기자는 왕이 비가 오지 않아 기우제를 지낼 때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연기를 해야 된다"고 자신의 연기철학을 설명했다.ⓒ 조우성


배우 기주봉이 11일 제71회 스위스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강변호텔>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홍상수 감독의 23번째 작품인 <강변호텔>은 한 중년남성이 젊은 두 명의 여성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내용으로, 기주봉은 연기 인생 50여 년 만에 해외영화제에서 처음으로 큰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는 올해 4월에는 독립영화의 가치를 재평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들꽃영화상 시상식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8월초에 개봉한 실화첩보영화 <공작>에서 김정일로 분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7월 27일 휴가차 충남 태안으로 내려 온 기주봉을 태안 출신 독립운동가 옥파 이종일 선생의 생가지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이성민, 기주봉 카리스마에 "어쩔 줄 모르겠다"

 배우 기주봉은 영화 ‘공작’에서 김정일로 분장해 나오는데, 그는 “김정일에 대한 공개된 자료가 적어 캐릭터 분석이 어려웠지만 그의 카리스마를 표현하는데 중심을 두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배우 기주봉은 영화 ‘공작’에서 김정일로 분장해 나오는데, 그는 “김정일에 대한 공개된 자료가 적어 캐릭터 분석이 어려웠지만 그의 카리스마를 표현하는데 중심을 두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조우성


영화 <공작>은 1990년대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활동하던 안기부 스파이의 활약상을 그린 첩보극으로, 기주봉은 여기에서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일을 연기했다.

"저는 몰랐는데 윤종빈 감독이 우리나라 배우 중에 세 명을 골라 가지고 김정일 역할로 누가 좋을지 미국 분장팀에 보냈더니 저를 선택했다고 그래요. 한국에서 촬영할 때 그 분장팀들이 왔었는데, 그 친구들이 저를 '베스트!'라고 응원해 줬어요. 제가 김정일로 분장해 등장하자 출연진들과 스태프들이 모두 술렁거리고, 진짜 김정일 같다고 박수를 쳤어요. 하지만 분장을 하는데 제가 많이 힘들었던가 봐요. 쓰러지다시피 해서 한두 시간 누워 있다가 촬영을 하기도 했는데,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긴장을 많이 했어요."

그는 영화 <공작>에서 "김정일의 카리스마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제가 북한에서 김정일을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는데, 다들 김정일을 만나면 자기도 모르게 몸을 막 떨고 그냥 흥분이 된다고 그래요. 그게 '자신들도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없는 부분이다'라고 이야기해요. 사실 김정일에 대한 공개된 자료가 적어 캐릭터 분석이 참 어려웠어요. 김정일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그의 카리스마에 무게를 두게 되었죠. 만약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김정일의 그런 카리스마적인 부분을 느낀다면 저는 성공이겠죠."

평소 연극이나 영화 등의 대본을 받으면 어떻게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지 그 방법을 물어 보았다.

"저는 '나 같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서부터 시작을 합니다. 보통은 사람이 살아온 과정, 누구를 만났고,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고, 취향 등을 분석하겠지만 저는 '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이런 경우라면 어떻게 할 것이냐' 이런 걸 가장 중요시 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변화무쌍하지만 결국은 나예요. 모든 것을 내 안에서 수용할 뿐이지 내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결국 나는 나에서 못 벗어나요. 그러니까 내가 김정일 역할을 맡아도 단순히 김정일을 흉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역할은 김정일이지만 김정일 흉내를 통해 나를 표현한다고 생각하죠. 나를 통한 김정일인 거죠.

배우 이성민은 이번에 <공작>을 촬영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디다. '선배님 앞에 서면 제가 어쩔 줄 모르겠다'고 그러는데, 제가 이런 말을 들으면서 김정일에 대한 역할, 느낌을 내가 제대로 소화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어요."
 
연극판에서 50년간 함께한 기국서&기주봉 형제

옥파 이종일 선생 기념관 앞에서 배우 기주봉은 캐릭터를 분석할 적에 “보통은 사람이 살아온 과정, 누구를 만났고,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고, 취향 등을 분석 하겠지만 저는 ‘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이런 경우라면 어떻게 할 것이냐’ 이런 걸 가장 중요시 합니다.”고 말했다.

▲ 옥파 이종일 선생 기념관 앞에서배우 기주봉은 캐릭터를 분석할 적에 “보통은 사람이 살아온 과정, 누구를 만났고,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고, 취향 등을 분석 하겠지만 저는 ‘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이런 경우라면 어떻게 할 것이냐’ 이런 걸 가장 중요시 합니다.”고 말했다.ⓒ 조우성


기주봉은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5살에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그는 어릴 때 개구쟁이라 친구들과 장난치고 노는 것을 좋아했고, 사람 앞에서 사회도 종종 보았다. 그는 서라벌 중학교에 연극반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거기로 진학했다.

"제가 어릴 적에 서울 돈암동에 살았는데, 서라벌 중학교에 연극반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당시 중학교도 시험을 쳐서 들어갔는데, 거기에 합격을 했어요. 근데 학교에 들어가 보니 서라벌 중학교에는 연극반이 없고 같이 붙어있는 서라벌 고등학교에 연극반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중학교 때 고등학교 연극반을 기웃거리다 서라벌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연극반에 들어갔죠."

그는 재수를 해서 서라벌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현 중앙대학교)에 진학했는데, 어느 날 친구가 신촌의 조그만 소극장으로 자신을 데려갔다.

"친구가 거기서 나한테 작품을 주는데, 모노드라마예요. 내가 알았던 연극 세계랑 전혀 다른 거라 너무 어렵고 아무것도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같은 대학교 다녔던 친형인 국서 형에게 작품 분석을 의뢰했어요. 나는 그냥 운명처럼 연극을 한 것 같은데, 형은 나 때문에 그때부터 연극을 시작하게 된 거죠. 그래서 지금까지 형제가 연극을 같이 하고 있는데, 주위에서 '형제는 용감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죠."

연극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의 대부분의 삶이 고난과 어려움의 가시밭길 속인데, 그도 예외가 아니었다.

"40대 초반만 해도 전세 400~500만 원 정도는 있었는데, 그 전세돈을 빼서 연극을 하다가 다 날려버렸죠. 그러니 갈 데가 없잖아요. 당시 빈민운동 하던 후배가 강남 쪽에 없는 사람들이 텐트 치고 사는 곳을 소개시켜 주었어요. 거기서 마누라랑 아이들과 땅에 텐트를 치고 난민처럼 살았어요. 1980년대 후반에 2년 정도 그렇게 살았어요. 그때가 결혼한 지 한 5년 정도 됐을 거예요. 내 연극을 보고 팬이 된 여자랑 결혼을 했는데, 고생만 잔뜩 시킨 거죠."

 그는 전세돈을 빼서 연극을 하다가 다 날려버리고, 살 곳이 없어 가족들과 텐트를 치고 난민처럼 살기도 했었다.

그는 전세돈을 빼서 연극을 하다가 다 날려버리고, 살 곳이 없어 가족들과 텐트를 치고 난민처럼 살기도 했었다.ⓒ 조우성


그러다 그는 1990년 초에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12평 임대 아파트로 옮겨 3년 정도 살다가 생활이 어려워 모 정수기 회사 영업부에 들어갔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다 연극계에 있는데, 팔러 다녀봤자 뭐 하나도 팔아 줄 사람이 없는 거예요. 정수기 한 대에 150만 원, 200만 원 하는데 이걸 사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몇 개월 동안 하나도 못 팔고 음식점하는 친구에게 찾아갔더니, 그 친구가 넌 배우인데 왜 이런 일을 하냐며 매달 150만 원 줄테니까 식당에서 공연을 하라고 그래요. 그래서 6개월 정도 다니던 회사를 접고 친구 식당에서 공연을 했어요. 제가 여태동안 해 왔던 작품들의 정수를 뽑아서 15분 정도씩 공연을 했어요."

그러다 친구가 경영하던 식당이 어려워지고, 경기도 지역의 축제를 돌며 연극공연을 하기도 했었다. 그는 지금까지 120~30편의 연극에 출연하였는데, 그 중에서 '관객모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관객모독은 '연극은 이렇다'라는 관념을 깨버리고 연극의 다양성과 가능성, 창조성, 무한성을 깨닫게 해 준 작품이에요. 보통 '연극은 이래야 된다'라고 말들을 많이 하는데, 관객모독은 거기에 얽매이지 않게 만들어 주었고, 제가 여태까지 해왔던 습관적이고 답습적인 것들을 부서뜨렸죠."

그는 연극을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의 자유로움, 어떤 틀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움 때문에 계속 한다"고 설명했다.

"연극은 어떤 배역을 맡아도 내 색깔을 내어서 내가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이고, 또 나의 시각적 각도에서 다양하게 표현을 할 수 있죠. 연극은 연출자의 의해서 내가 만들어지는 부분이 있지만 연출자와 상의해서 내 캐릭터를 만들어갈 수 있는 그런 자유로움이 있는 것 같아요."

연기 가르쳐 달라는 후배에게 "모든 사람들이 네 스승이다"

 그는 연극을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의 자유로움, 어떤 틀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움 때문에 계속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극을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의 자유로움, 어떤 틀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움 때문에 계속 한다”고 설명했다.ⓒ 조우성


그는 캐릭터 분석을 하기 위해 사람을 관찰하다 보니 요즘은 뭔가 '도가 트이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뭘 오래 하면 흔히 도가 트인다고 말하잖아요. 가령 기자 역할을 한다면 기자들을 관찰하게 되고 거기서 기자들의 태도나 객관성, 본질적인 것, 함축적인 것을 찾아 내 나의 캐릭터로 만들어 가죠. 인간 분석을 통해서 기자 생활 10년 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금방 저를 기자라고 눈치 챌 것 같은 그런 느낌의 캐릭터로 만들어 낼 수 있죠. 그렇게 오래 사람을 분석하다 보니 요즘은 뭔가 도가 트이는지 사람을 만나면 어떤 느낌이 빨리 와요."

'극단 76'에서 활동했던 후배가 연기를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그는 "니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너의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배워라"고 조언해 주었다고 한다.

"지금 해미읍성 상설공연 예술총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승희 감독이 1990년대 초중반에 내가 연극 <리어왕>을 할 때 제 딸로 출연했어요. 같은 '극단 76' 후배니까 저에게 연기를 가르쳐 달라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너에게 가르쳐줄 게 뭐가 있겠느냐, 니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너의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배워라'고 그런 말을 했어요. 근데 승희가 '옛날에 선배가 그 때 그런 이야기를 해줘서 지금도 배우는 자세로 살고 있다'고, '고맙다'고 이야기를 해요. 후배들이 제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볼 적에 보람을 많이 느낍니다."

'극단 76' 후배 서승희 예술총감독과 함께 “지금 해미읍성 상설공연 예술총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승희 감독이 ‘극단 76’ 후배인데, 그녀가 극단시절에 연기를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선배인 기주봉은 ”니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너의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배워라’고 조언했었다고 한다.

▲ '극단 76' 후배 서승희 예술총감독과 함께“지금 해미읍성 상설공연 예술총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승희 감독이 ‘극단 76’ 후배인데, 그녀가 극단시절에 연기를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선배인 기주봉은 ”니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너의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배워라’고 조언했었다고 한다.ⓒ 조우성


그에게 '연기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연기란 인간 이상의 것에 도전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간 이상의 것이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도전해 어떤 세계를 구축하려는 것이 연기라고 생각해요. 연기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그 가능성의 표현을 좀 더 열어놓아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연기자는 왕이 비가 오지 않아 기우제를 지낼 때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연기를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는 요즘 후배들을 보면서 "자기 스타일을 너무 일찍 굳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것 저것 여러 경험을 해 보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면 좋은데, 미리 굳혀버리면 한 가닥밖에 안 되는 거예요. 가령 작은 소리만 계속 내면 작은 소리밖에 못 내요. 그런데 높은 소리, 중간 소리, 낮은 소리를 다 할 수 있다면 충분히 좋은 연기자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요즘 후배들을 보면 한 톤 밖에 없다는 느낌이 들어요. 다양한 경험을 하라고 조언해 주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인터뷰를 매듭지었다.

"비워두고 채우는 것이 연극입니다. 비워야 어떤 인물이 채워집니다."

 그는 후배들에게 “자기 스타일을 너무 일찍 굳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며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고 충고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자기 스타일을 너무 일찍 굳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며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고 충고했다.ⓒ 조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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