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마미아!2> 개봉을 앞두고 잠시 고민했다. 대개의 후속편이 그랬듯, '내 인생 뮤지컬 <맘마미아!>의 진한 감동과 끝없는 여운을 훼손하면 어떻게 하지?'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마치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에 등장하는 첫사랑, 아사코와의 재회가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을 훼손했듯, <맘마미아!2>가 먼 훗날 다시 만난 아사코가 될 수도 있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뮤지컬 영화는 음악 교사인 나에게 좋은 수업 소재이기에 핫한 새 작품을 안 보고 참아내는 것은 지나친 낭만주의라는 생각이 들어 개봉 첫날 심야 영화관을 찾았다.

지방의 작은 소도시를 여행 중이었고 평일 심야 상영시간대였기에 관람객이 적을 수도 있으리라는 각오는 했지만 영화가 시작될 때까지 관람객은 오로지 나 혼자였다. 그래도 개봉 첫 날인데... '혹시 '망작'(망한 작품의 줄임말)인가?' 하는 불안한 마음과 불 꺼진 넓은 상영관에 홀로 앉은 두려움에 관람을 포기하고 싶기까지 했다.

 영화 <맘마미아! 2>의 한 장면

영화 <맘마미아! 2>의 한 장면 ⓒ UPI 코리아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니 내 소중한 인생 뮤지컬 <맘마미아!>를 온전히 집중하여 추억할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뮤지컬 공연이나 뮤지컬 영화를 썩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저 학습 소재 개발을 위해 주요작만큼은 몇 편 봐두자는 마음으로 간간이 한 편씩 보곤 했다. 그나마 뮤지컬 공연은 생생한 현장감으로 인해 보는 동안이라도 나름 즐거웠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여운이 남을 만한 작품을 만나지는 못했다. 게다가 평소 리얼리즘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뮤지컬 영화에 대해 더더욱 인색한 평가를 하곤 했다.

영화 속 배우의 연기에 몰입되어 그 상황을 함께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있다가도 노래가 툭 튀어나오면 현실 속으로 퉁겨져 나와 '아 참, 극을 보고 있었지?' 하고 자각하게 만드는 듯한 구조가 영 어색했기 때문이다. 뮤지컬 영화에서는 극인지 현실인지 모를 흡인력 같은 걸 기대하기가 도무지 어려웠던 것이다.

작년 여름, 뮤지컬의 본고장, 런던을 여행하던 중 노벨로 극장(Novello Theatre)에서 맘마미아 공연을 직접 관람하게 됨으로써 그야말로 뮤지컬의 진수를 처음으로 맛보게 되었다. 영화나 연극에서 느낄 수 없는 완벽한 음악과 극의 시너지 넘치는 무대의 흥분을 그대로 느껴버린 것이다. 게다가 아바(ABBA)의 음악이 아닌가!

아바의 명곡 속 <맘마미아!>와 달라진 <맘마미아!2>

그제야 뒤늦게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를 보게 되었다. 처음 볼 때는 주요 배역들의 노래나 춤 실력이 무대공연과는 차이가 있다 보니 실망감이 있었다.

그러나 아름답고 눈부신 영상미,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력, 흥미진진하고 빠른 스토리 진행, 세대를 아우르는 전방위적 사랑의 메시지, 무엇보다도 한 곡 한 곡 놓칠 수 없는 아바의 명곡들이 짜릿한 행복과 전율을 선사했다.

<맘마미아!2>는 원작에서 맛 볼 수 있는 참신하고 흥미진진한 스토리 구성의 묘미를 충족해주기엔 다소 부족했다. 원작 대비 20년 전 도나와 세 남자의 과거 이야기와 다시 10여 년 후 현재의 이야기 사이를 왔다 갔다 교차하며 보여주는 구성인데, 이야기의 시점이 바뀌는 계기가 되는 장치가 없이 바로 전환되곤 하니 다소 산만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과거 신의 탄탄한 음악성으로 무장한 새로운 인물들에게 집중하다가, 10년 만에 돌아온 추억의 스타들의 부드럽고 따뜻한 친숙함에 집중하다가를 반복하는 가운데 한 쪽에도 몰입하기 어려운 낭패감을 겪게 되기도 했다.

 영화 <맘마미아! 2>의 한 장면

영화 <맘마미아! 2>의 한 장면 ⓒ UPI 코리아


한편, 원작에서 엄마의 삶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떠나간 소피가 다시 섬으로 돌아와 죽은 엄마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반려자, 스카이와의 이별까지도 감수하려 드는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이 원작이 주는 주요 메시지의 여운을 훼손하기도 한다.

또한 소피가 다시 섬으로 돌아온 시점을 도나의 죽음 뒤로 설정해야만 하는 이유를 알기도 어렵다. 처음에는 '메릴 스트립이 출연할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그런 설정을 했나 보다' 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적은 분량이지만 메릴 스트립은 후반부에 출연하여 변함없이 열정적인 노래와 연기력을 발휘한다. 그 장면을 보고 나니 굳이 '그녀의 부재를 전제로 구성해야 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한 마디로 개연성이 부족해 보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실망스러웠던 점은 도나의 일기장을 통해 밝혀졌던 세 남자와의 만남을 굳이 하나하나 파헤치며 재현해 나간다는 점이다. 엄마의 일기장이라는 그 비밀스러운 상상의 여백이 주는 짜릿함은 그 어떤 구성과 연기로도 커버할 수 없는 완성도 있는 요소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이런 여러 가지 측면에서 스토리 구성력이 매우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맘마미아!2> 여러 번 보고 싶은 이유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흥분에 잠들지 못하고 바로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러 번 보고 싶었다.

일단, 탄탄한 음악성으로 무장한 도나와 세 남자, 그리고 친구, 타냐와 로지의 젊은 시절을 만나는 즐거움이 컸다. 원작의 배우들과 닮은 듯하면서도 각자의 개성과 매력이 넘쳤다. 특히, 도나(릴리 제임스 분)의 원숙한 가창력은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 분)의 밝은 미성 대비 담백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더해주었다.

원작에서 음악적 묘미를 발산하는 사명이 아만다 사이프리드에게 주로 실려 있었다면 후속작에서는 릴리 제임스에게 그 배턴이 넘겨진 듯했다. 그럼에도 소피의 노래 비중이 결코 작지 않았다.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색채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동시에 영화가 릴리 제임스로 한층 더 풍부해짐을 느꼈다.

 영화 <맘마미아! 2>의 한 장면

영화 <맘마미아! 2>의 한 장면 ⓒ UPI 코리아


두 번째, 주요 인물들의 십 년 후 모습을 빠짐없이 다시 만나게 됨으로써 원작을 사랑한 팬들과 정겨운 재회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들의 머리 색깔과 피부톤이 달라졌지만 "와인처럼 치즈처럼" 익어가는 아름다운 원숙미를 다시 만나는 것은 마치 십 년 전에 여행했던 한 아름다운 외딴 섬을 다시 찾아 친숙했던 이웃들과 따뜻한 포옹을 나누는 것처럼 푸근하고 정겨웠다.

세 번째, 원작에서 다뤄지지 않은 아바의 명곡들이 더 활용되어 음악적인 다채로움을 더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하고 싶은 곡은 젊은 도나가 노래한 '안단테 안단테(Andante Andante)'와 소피의 할머니, 즉 도나의 엄마, 루비(쉐어 분)가 노래한 '페르난도(Fernando)'이다.

이 두 곡은 깊은 새벽까지 잠 못 들고 무한 반복 다시 듣기를 청하게 만들었다. 릴리 제임스는 다소 앳된 인상에 비해 깊고 풍부한 음색을 지녔고 클래식과 팝 발성의 장점을 모두 살린 탄탄한 가창력이 눈에 띈다. 게다가 표현이 담백하면서도 노랫말의 엑센트를 적절히 구사하여 임펙트 있는 대사 전달력과 음악적 풍성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하지만 극의 마무리 단계에 전세기를 타고 파티에 참석한 쉐어의 등장은 무척 당혹스러울 만큼 생뚱맞았다. 극의 초반에 등장해 타냐와 로지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누가 봐도 멋진 노년 페르난도의 엉성한 존재감과 연결지어지는 순간, 할리우드 코믹터치 영화 특유의 짓궂은 작위성에 당혹스러움을 달래기 어려웠다. 처음부터 페르난도의 등장과 아바의 히트곡 페르난도를 연결 지어 생각한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귀여운 재치 코드로 해석될 수도 있으련만 미처 연결 짓지 못한 처지에서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당혹스러움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러나 쉐어의 노래로 이어지는 '페르난도'는 스토리의 매끄러운 구성미를 포기해도 좋을 만큼 황홀했다. 72세의 노장의 음성은 부드럽게 힘차고 안정감 있고 화려했다. 아, 그 한 곡 만으로도 두 시간여 함께한 시간이 절대 아깝지 않았다. 그녀의 '페르난도'는 원작의 커튼콜에서 "왜들 안가지? 앵콜이라구요? 다시 불러주자"라는 도나의 대사 뒤에 이어진 '워털루(Waterloo)'와 같이 제작진이 관객에게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10년의 시간을 거쳐 다시 돌아온 <맘마미아!2>는 모든 면에서 전편보다 향상된 완성도를 보여준다.

<맘마미아!2>의 한 장면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다시 보고 싶은 영화는 많았다. 그러나 여러 번 보고 싶다고 느낀 영화는 흔치 않다. 내겐 런던에서 본 <맘마미아!> 공연이 그랬고, 영화로 본 <맘마미아!2>가 그런 영화였다.

맘마미아!2 맘마미아! 아바 안단테 안단테 페르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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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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