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린왕자> 메인포스터 영화 <어린왕자> 메인포스터

▲ 영화 <어린왕자> 메인포스터영화 <어린왕자> 메인포스터ⓒ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각종 영화제를 포함해 일반 영화 관람까지 1년에 수백 번도 더 드나드는 영화관이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엔딩 크레디트가 끝나고 난 뒤에도 가슴을 부여잡게 만드는 작품의 완성도와 여운 때문인 경우가 많다. 최근 2~3년 중에 가장 좋아했던 영화 <라라랜드>의 경우에는 아직까지도 마음에 남아 스코어만 듣더라도 귀를 쫑긋 세우게 될 정도. 그래, 매년 수십, 수백 편의 영화를 본 지도 벌써 10여 년, 처음과 달리 이제는 어쩌면 취향과 어울리지 않는 영화들을 피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수많은 영화들 가운데 단 하나, 내게 꼭 맞는 영화를 찾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작품을 만나 행복한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서며 그 기억을 간직하게 되는 순간은 그래도 긍정적인 편에 속한다. 아무래도 영화관이라는 공간은 불특정 다수의 다양한 이들이 함께 시간을 나누는 곳이다 보니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종종 발생하며, 대개의 경우 그런 상황은 불쾌함을 남길 때가 많다. 더구나 영화관은 기본적으로 밀폐된 좁은 공간인 경우가 많으며, 암전과 동시에 시력과 청력에만 의지해야 하는 까닭에 평소보다 감각이 예민해지곤 하기 때문이다.

사실, 케이스를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등받이를 발로 차는 사람, 코를 골며 자는 사람, 짙은 애정행각을 벌이는 커플, 상영관 내에서 통화를 하는 사람, 심지어는 팝콘이 얼마 남지 않은 바닥을 휘휘 저어 소리를 내거나, 얼음이 든 음료 컵을 소리 내어 흔드는 사람들도 있다. 스크린에서 중요한 장면을 놓치거나, 결정적인 대사를 듣지 못할 정도로 방해를 받게 되면 아무래도 그 날의 기억은 부정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영화관에 울려 퍼진 욕설

그런 점에서, 2년 전 극장에서의 경험은 오랫동안 부정적인 경험으로 남아 있다. 앞서 언급한 상황들과는 스케일부터가 달라서 아직도 정확히 날짜를 기억할 정도다.

다른 일정 때문에 대구를 방문했다가 부모님을 뵙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기 전 남는 시간을 활용해 영화관을 찾았다. 당시 개봉했던 애니메이션 영화 <어린 왕자>가 상당히 짜임새 있게 잘 만들어졌다는 소문을 영화 쪽 관계자로부터 들었던 차였고,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인 <어린 왕자>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놀랐던 건, 그 날이 평일인 화요일 점심때쯤이었음에도 정말 많은 관객들이 영화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대충 둘러보니, 대부분이 자녀와 함게 온 관객들이었다. 이 말인즉슨, 해당 영화관 내에는 어린이들도 많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 <어린왕자> 스틸컷 영화 <어린왕자> 스틸컷

▲ 영화 <어린왕자> 스틸컷영화 <어린왕자> 스틸컷ⓒ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생각보다 좋았다. 물론 연출을 맡은 마크 오스본 감독은 이미 <스폰지 밥>과 <쿵푸 팬더>를 연출하면서 애니메이션계의 차기 주자로 손꼽히는 인물이었으며, 그는 자신을 향한 그 평가가 무색하지 않게 원작의 <어린 왕자>를 스크린에 그대로 잘 옮겨냈다. 특히 3D 애니메이션과 스톱모션을 적절히 활용하며 원작의 정서를 표현해낸 부분이 참 좋았다. 지금의 기억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작품이었을 정도로. 지금부터 이야기할 이 날의 사건, 영화 외적인 부분의 한바탕 난리만 제외하면 말이다.

영화관의 사전 광고들이 모두 끝나고 암전이 시작된 영화관의 스크린 위로 원작인 <어린 왕자>의 소설 가운데 가장 유명한 부분인 '보아 구렁이와 코끼리'의 이야기가 영화의 인트로 장면으로 상영되기 시작했다. 시작과 함께 영화는 관객들의 집중력을 고취시키고 있었고, 광고가 끝났음에도 조용히 할 줄 모르던 아이들의 목소리까지 모두 잠재워버릴 정도로 흡인력이 있었다. 특히 전반부의 내용은 원작 소설의 이야기와 영화 속 창작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잘 어우러져 더욱 흥미로웠다. 그렇게 영화가 3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뒤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핸드폰 좀 꺼 주세요."

그는 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이미 얼마간의 인내력을 시험 받았던 모양인지 상당히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까지는 가끔 있는 일이니 그러려니 싶었다. 보통 한 관객이 시간을 확인하거나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반딧불이(상영 중 영화관 내 핸드폰 사용 관객을 일컫는 말)를 자처하는 경우들이 있지 않나. 실제로 옆에 앉아 있던 관객들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굳이 뒤로 돌리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1분 정도가 지났다. 방금 영화관을 울렸던 그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전과 사뭇 다른 목소리였다. 이전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말을 전달하기 위한 용도였다면, 이번 목소리에는 형식적으로 혼잣말인 듯 하지만 기필코 내 마음을 꼭 전달하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들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표현은 거칠어지고 말았다.

"아 XX. 끄라면 좀 끄지.."

내심 불안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보고 계시는 분께서 늦게라도 사과를 하시거나, 조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빨리 핸드폰을 꺼주시길 간절히 바랐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핸드폰을 켜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사람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귓가에 꽂혀 들어왔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준 피해보다는 상대의 자신에 대한 욕설, 인격적 모욕과 같은 것이 더 큰 자극으로 받아들여진 모양이었다.

"뭐라고? XX? 야 너 뭐야?"
"뭐긴 뭐야 핸드폰 좀 끄라고 XXX아"
"야 너 잠깐 나와. 어디서 말을 그 따위로 하고"
(생략)

어른들이 미안하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영화관을 참 많이도 다녔고, 그 공간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했지만 이런 적은 정말로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순간적으로 이 상황이 조금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언뜻 이해도 잘 되지 않았다. 스크린 위에서 계속되는 어린 왕자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무색할 정도로.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기운을 세운 채 끊임없는 소리와 비속어를 내뱉는 두 사람과, 그 두 사람을 향해 이제 그만하고 조용해 달라며 눈치를 보내는 관객들의 말이 섞이기 시작하면서 영화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물론 두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결국 제일 앞좌석에 있던 관객 하나가 영화관 밖으로 뛰쳐나가 담당 직원을 불러왔다.

 영화가 3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뒤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핸드폰 좀 꺼 주세요."

영화가 3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뒤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핸드폰 좀 꺼 주세요."ⓒ 오마이뉴스


상영 도중 들어온 직원들에 의해 두 사람은 격리되어 퇴장을 당했지만, 이미 영화는 많은 부분 혼자 흘러가버렸고, 관객들도 더 이상 몰입하기 힘든 상황이 되어 버렸다. 물론 그 두 사람은 영화관 통로를 나서면서도 서로를 향한 화가 해소되지 않았는지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곧, 영화관 측에서 부른 경찰이 도착했고, 그들과 함께 영화관을 빠져 나갔다. 영화 상영 중간에 구급대원이 극장 내로 진입하고 상영이 공식적으로 중단된 적은 있었는데, 영화관 내에서 경찰관이라니, 정말 상상조차 해 본 일이 없는 상황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건, 당시 영화관 내에는 이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 수많은 아이들이 함께 앉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그 곳에 있던 모든 이들의 소중한 순간을 앗아 간 두 사람이 영화관을 떠날 때쯤, 스크린 위에 영사되고 있던 장면에는 이런 대사가 비춰지고 있었다.

'어른이 되는 건 문제가 아냐. 어린 시절을 잊는 게 문제지.'

그 날의 어린 왕자가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에게 준 가장 중요한 메시지였다.

덧붙이는 글 <극장에서 생긴 일>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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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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