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이탈리아 세리에A의 명문팀 유벤투스FC는 골문을 강화하기 위해 AC파르마의 젊은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파리 생제르맹)을 무려 5420만 유로를 주고 영입했다. 이는 역대 유럽 축구 골키퍼 이적료 최고액 기록이었지만 유벤투스의 부폰 영입은 대성공이었다. 부폰은 유벤투스 유니폼을 입고 9번의 리그 우승과 세리에A 올해의 골키퍼 10회 선정 등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최고의 골키퍼로 명성을 떨쳤다.

2001년 부폰이 세웠던 골키퍼 최고 이적료 기록이 경신되기까지는 무려 17년이 걸렸다. 지난 시즌 골키퍼 문제로 머리가 아팠던 리버풀 FC에서 7월 19일 AS로마 소속의 브라질 대표팀 골키퍼 알리송 베케르를 668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주고 영입한 것이다. 리버풀은 이번 여름 이적 시장에서 파비뉴,나비 케이타, 제르단 샤리치 등을 영입했지만 다른 어떤 필드플레이어보다 알리송 골키퍼 영입에 가장 많은 돈을 투자했다.

부폰의 기록이 깨지기까지는 17년의 세월이 필요했지만 알리송의 기록은 단 20일 만에 경신됐다. 첼시FC에서 스페인 대표팀의 케파 아리사발라가를 무려 71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주고 영입한 것이다. 첼시가 이적 시장 마감 하루를 남기고 급하게 골키퍼를 영입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기존의 주전 골키퍼인 티보 쿠르투아를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로 보냈기 때문이다. 이로써 R.마드리드는 두 월드컵 스타 간의 치열한 주전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역대 최초 챔피언스 리그 3년 연속 우승팀의 결승전 주전 골키퍼
 나바스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3연속 주전으로 출전해 우승을 차지한 역대 최초의 골키퍼다.

나바스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3연속 주전으로 출전해 우승을 차지한 역대 최초의 골키퍼다. ⓒ 레알 마드리드 홈페이지 화면 캡처


지금이야 R.마드리드의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이끈 주전 골키퍼로 명성이 높지만 사실 나바스는 레반테 UD에서 활약하던 시절까지는 평범한 골키퍼에 불과했다. 그런 나바스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바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조국 코스타리카의 골문을 지킨 나바스는 5경기 중 3경기에서 클린시트(무실점 경기)를 기록하는 신들린 선방쇼를 펼치며 코스타리카를 8강으로 이끌었다.

월드컵에서의 대활약을 바탕으로 R.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은 나바스는 이적 첫 시즌 노장 이케르 카시야스 골키퍼(포르투FC)에 밀려 11경기 출전에 그쳤다. 하지만 2015년 카시야스가 포르투갈 리그로 떠난 후 R.마드리드의 등 번호 1번을 물려받은 나바스는 2015-2016 시즌 45경기에 출전해 22경기에서 클린시트를 기록하며 R.마드리드를 통산 11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나바스는 2016-2017 시즌 작은 슬럼프에 빠지며 동갑내기 키코 카시야와의 주전 경쟁에서 다소 밀리는 듯했지만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를 거듭하며 꾸준히 R.마드리드의 골문을 지켰다. 2017-2018 시즌에는 반대로 카시야의 경기력이 떨어지면서 나바스가 무난히 주전 자리를 되찾았고 리그 27경기, 챔피언스리그 11경기에 출전했다. 나바스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3연속 선발 출전해 우승을 차지한 역대 최초의 골키퍼에 등극했다.

나바스는 R.마드리드라는 면문팀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면서 1번의 라 리가 우승과 3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2번의 UEFA 슈퍼컵과 클럽 월드컵 우승 등을 차지하며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 하지만 호나우두(한일 월드컵), 파비오 칸나바로(독일 월드컵), 메수트 외질(남아공 월드컵), 하메스 로드리게스(브라질월드컵) 등 월드컵 스타를 영입하는 버릇(?)이 있는 R.마드리드에서는 이번 여름 이적 시장에서도 여지없이 러시아 월드컵 골든글러브 수상자 쿠르투아 골키퍼를 영입했다.

쿠르투아가 러시아월드컵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쳤고 나바스(1000만 유로)의 3배가 넘는 이적료(3500만 유로)를 받고 R.마드리드에 입성했지만 그렇다고 나바스가 위축될 필요는 전혀 없다. 나바스는 아직 만31세로 골키퍼로서 기량 하락을 걱정하기엔 이른 나이고 R.마드리드를 세 시즌 연속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이끈 풍부한 경험도 있기 때문이다. 계약 기간 동안 R.마드리드 잔류를 희망하고 있는 나바스가 쿠르투아와의 주전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러시아월드컵 골든글러브에 빛나는 공중볼 장악의 일인자
 러시아월드컵 최고의 골키퍼 쿠르투아의 가세로 레알 마드리드 주전 골키퍼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러시아월드컵 최고의 골키퍼 쿠르투아의 가세로 레알 마드리드 주전 골키퍼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 레알 마드리드 홈페이지 화면 캡처


199cm의 장신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공중볼 장악 능력을 갖춘 쿠르투아 골키퍼는 만17세의 나이에 벨기에 리그에서 프로에 데뷔했다가 2011년 프리미어 리그의 첼시로 이적했다. 하지만 당시 첼시에는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골키퍼 페트르 체흐(아스날FC)가 있었고 쿠르투아는 첼시로 이적하자마자 스페인 라 리가의 AT마드리드로 임대를 떠났다.

쿠르투아는 AT마드리드에서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성공적인 임대 생활을 이어갔고 라 리가의 대표적인 젊은 골키퍼로 떠올랐다. 흔하디흔한 골키퍼 유망주 중 한 명에서 체흐의 대체자로 가치가 상승한 쿠르투아는 2014-2015 시즌 첼시에 복귀해 체흐를 제치고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다. 하지만 정작 체흐가 아스날로 떠나며 본격적인 주전 골키퍼로 나선 2015-2016 시즌에는 무릎 부상에 시달리는 등 30경기 동안 38골을 실점하며 첼시의 10위 추락을 막지 못했다.

절치부심한 쿠르투아는 2016-2017 시즌 리그에서만 16경기에서 클린시트를 기록하는 대활약을 펼치며 첼시를 통산 6번째 우승으로 이끌고 프리미어리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17-2018 시즌에는 시즌 내내 R.마드리드 이적설이 나오는 와중에도 클린시트 19경기, 선방률 70.9%라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그리고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벨기에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대회 최고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월드컵 이후 주가가 더욱 치솟은 쿠르투아는 다시 R.마드리드와 이적 협상을 벌였고 급기야 첼시의 팀 훈련에 불참하기에 이른다. 이에 분노한 첼시 구단은 이번 시즌 쿠르투아를 1군 엔트리에서 제외하는 초강수까지도 고려했지만 케파 영입이 급물살을 타면서 쿠르투아를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결국 쿠르투아는 첼시 팬들에게 나쁜 기억을 남긴 채 자신이 세 시즌이나 뛰었던 AT마드리드의 지역라이벌 R.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게 됐다.

지난 월드컵만 놓고 보면 조별리그에서 5골을 허용하며 탈락한 나바스보다는 7경기6실점 81.8%의 선방률로 벨기에를 3위로 이끈 쿠르투아의 활약이 더 뛰어났다. R.마드리드 입장에서도 30대의 나바스보다는 1992년생 쿠르투아를 주전으로 키워야 한다. 하지만 이번 시즌 R.마드리드의 챔피언스리그 4연패 도전에 더 어울리는 골키퍼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과연 홀렌 로페테기 신임 감독의 선택은 이번 시즌 어떤 선수를 R.마드리드의 주전 골키퍼로 낙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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