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혁아, 아니다... 내가 요새 좀 그렇네. 얻다 아들 뺏긴 것 같고.."

명절에도 잘 내려오지 않아 얼굴을 잊어버리겠다는 엄마의 한마디. 서운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아들의 마음이 편할 리 않다. 얼마 후 지인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서울에 들른 부모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들은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저희 집에서 하루 주무실 거죠?" 아들은 당연하다는 듯 말을 꺼낸다. 저거, 위험한데... 불안감이 엄습한다.

딱 보기에도 눈치가 없어 보이는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이를 말리는 엄마에게 "며느리한테 밥상받아 보는 게 소원이라며?"라고 쐐기를 박는다. 엄마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빛이 애잔하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은 부모님을 모시고, 당당하게 집안으로 들어간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눈앞에 선하다.

 <아는 와이프>의 한 장면

<아는 와이프>의 한 장면ⓒ tvN


시어머니는 아들네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부터 들여다본다. 못마땅한 표정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며느리가 집으로 돌아왔고, 눈앞에 시부모가 나타나자 그대로 얼음이 됐다. 긴장이 풀리기도 전에 잔소리가 쏟아진다. "내가 대충 저녁이라도 할까 하고 봤는데, 냉장고 청소 좀 해야겠더라." 시어머니의 간섭은 계속된다. "식재료들은 다 백화점에서 사다 먹냐. 꽤 비쌀 텐데."

이쯤되면 내가 보고 있는 프로그램이 tvN <아는 와이프>인지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인지 헷갈린다. 어느 쪽이든 간에 이럴 때는 남편이 나서야 한다. 그런데 차주혁(지성)은 엄마와 (두번째) 아내 이혜원(강한나) 사이에서 그 어떤 중재도 없이 방관만 하고 있다. 직장에서는 그리 오지랖을 떨던 남자가 왜 집안의 갈등 상황에선 저리도 소극적이 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는 와이프>의 한 장면

<아는 와이프>의 한 장면ⓒ tvN


품질이 차이가 나서 백화점 상품을 선호한다는 아내의 말에 차주혁은 왜 미간을 찌푸리는 걸까? 요리 잘하는 중국집에서 음식을 배달시켜 먹자는 며느리의 제안에 시부모들은 '뭐, 이런 애가 다 있어?'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숙소를 호텔 스위트룸으로 잡아드리겠다는 말에 "언제부터 우리가 시부모 대접을 받았다고~"라는 말을 남긴 채 떠났다. 도대체 '시부모 대접'이 무엇이며, 왜 그걸 받아야 하는 걸까?

<아는 와이프>는 '한번의 선택으로 달라진 현재를 살게 된 운명적인 러브스토리'를 그리겠다고 하지만,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그 진의가 헷갈린다. 드라마는 철저히 차주혁(=남편)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에게 서우진(한지만)과의 결혼 생활은 지옥과 같았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웃음은 점차 사라졌고, 아등바등 살아가기에 급급했다. 꽃다웠던 아내는 어디로 가고 억척스러운 아내만 곁에 남았다.

 <아는 와이프>의 한 장면

<아는 와이프>의 한 장면ⓒ tvN


다행히도(?) 그에게 과거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차우혁은 대학시절로 돌아가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음대 여신' 이혜원과의 미래를 선택한다.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차고까지 딸려있는 넓은 집에 아침까지 챙겨주는 아내라니, 게다가 이제 거실에서 마음껏 게임을 즐길 수도 있게 됐다. 그뿐인가. 재벌그룹의 딸을 아내로 둔 덕에 회사 사람들도 그를 달리 대한다. 차주혁은 만세를 불렀다.

그야말로 모든 걸 다 가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행복감이 오래 가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지만, <아는 와이프>는 주혁과 우진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려야 하므로 어떻게든 '갈등'을 이끌어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안이 이혜원을 나쁜 며느리로 만드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아들을 빼앗아버린 며느리, 살림에 꽝인 며느리, 시부모 대접을 제대로 하지 않는 못된 며느리 말이다.

혜원을 나쁜 며느리로 몰아가고자 했던 <아는 와이프>의 의도와 달리 시청자들은 좋은 것만 취하려 드는 차주혁에게 비난의 화살을 보내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 드라마는 차주혁이 얼마나 이기적인 남편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아무리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더라도 시댁에 싹싹하게 잘 하는 며느리가 아니면 낙제점을 주는 그의 구시대적 발상은 구려도 너무 구리다.

 <아는 와이프>의 한 장면

<아는 와이프>의 한 장면ⓒ tvN


또, 주혁은 우진과의 결혼생활이 불행했다고 말하지만, 반대로 우진의 입장은 어떠했을까. 직장 생활은 물론 살림과 육아를 모두 책임져야 했던 그의 고통이 차주혁의 푸념에 비할까. 그의 억척스러움은 결국 삶의 무게 때문이라는 걸 모르는 건 그의 남편뿐인 것 같다. 주혁과 결혼하지 않은 미래를 살아간 우진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여성이 되었는지 드라마가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결국 (어떤 방식이 됐든) 주혁은 우진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들은 달라진 미래에서도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사랑'이니 말이다. 그런데 주혁이 다시 우진을 선택(사랑)하게 되는 이유가 '다른 여자랑 살아보니 결국 시댁에 싹싹한 현모양처가 최고더라'라는 것이라면 정말 실망하게 될 것 같다. 그건 너무도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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