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여름 중국을 뜨겁게 달궜던 제29회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 박성화 감독이 이끌던 한국 축구 올림픽 대표팀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었다. 베이징 올림픽은 2002년의 대성공 이후 처음으로 2002 한·일 월드컵 출전 선수가 참여하지 않는 첫 번째 국제대회였다. 23세 이하 선수가 참가하는 연령별 대회였지만,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었기에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한국은 이탈리아, 카메룬, 온두라스와 함께 D조 배정됐다. 8강행 티켓의 최대 분수령이었던 카메룬과 1차전에서 박주영의 선제 득점으로 앞서 갔지만, 후반 36분 통한의 동점골을 내주며 승점 1점에 만족했다. 한국 대표팀은 2차전 이탈리아와 승부에서 0-3의 완패를 당하며 무너졌다. 마지막 상대 온두라스를 상대로 1-0 신승을 거뒀지만 이탈리아와 카메룬에게 밀려 8강 진출이 좌절됐다.

박주영을 위시한 베이징 세대는 올림픽 이후 본격적으로 한국 축구의 중심에 올라섰다. 선수들의 커리어는 제각각이었다.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친 선수가 있는 반면 쓸쓸히 팬들의 기억 속에 잊혀진 선수도 있다. 10년 전 한국 축구 팬들의 관심을 한껏 받았던 그때의 스타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박주영(FC서울) - 롤러코스터 행보의 끝자락

 한국 축구대표팀의 박주영이 25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온드라스와의 친선경기에서 조니 팔라시오스의 태클에 걸려 넘어지고 있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박주영이 지난 2011년 3월 25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온드라스와의 친선경기에서 조니 팔라시오스의 태클에 걸려 넘어지고 있다.ⓒ 유성호


2004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를 통해 등장한 박주영은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기존의 한국 축구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기술과 스피드, 결정력을 두루 갖춘 공격수의 등장이었다. 박주영의 활약이 초미의 관심사였던 2005년 FIFA U-20 월드컵에서 박주영은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지만, 성인대표팀에 어린 나이에 발탁되어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친구들과의 마지막 도전이었던 베이징 올림픽도 실패로 귀결됐지만 박주영 개인은 승승장구했다. FC 서울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한 박주영은 2008년 프랑스의 AS 모나코로 이적해 선수 생활의 절정기를 맞이했다. 모나코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성장한 박주영은 국가대표팀에서도 부동의 주전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박지성의 위상을 물려받을 이는 박주영으로 여겨졌다.

허나 2011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널 이적부터 비극이 시작됐다. 박주영은 아스널에서 철저히 후보 선수로 분류됐다. 경기를 뛰기는커녕 벤치에 앉는 일도 쉽지 않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 획득을 통해 병역 문제를 해결했음에도 박주영의 유럽 도전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험난해졌다.

결국 박주영은 셀타비고, 왓포드, 알 샤바브을 거쳐 2015년 FC 서울로 복귀한다. 친정팀에 복귀한 박주영은 특유의 부드러운 플레이를 보여주며 금세 클래스를 증명했다. 2016년 전북 현대와 리그 최종전에서는 결승골을 터뜨리며 팀에 우승을 안기기도 했다.

나름 성공적이었던 복귀를 신고한 박주영은 지난 시즌부터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스피드와 탄력은 떨어진지 오래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부상의 빈도도 잦다. 이름값을 제외하고 보면 평범한 공격수에 가깝다.

올 시즌은 더욱 안타깝다. 리그 15경기에서 단 1골을 넣는 데 그쳤다. 황선홍 감독과 마찰도 있었다. 서서히 몸을 끌어올리며 후반기 대반전을 노리고 있지만 쉽지 않은 현실이다. '축구 천재'의 마지막 불꽃은 쉽게 타오르고 있지 않다.

김진규&강민수(은퇴, 울산 현대) - 클럽에서 족적을 남기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루니가 24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금호타이어컵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코리아투어 2009' FC서울과의 친선 경기에서 김진규와 볼을 다투고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루니가 지난 2009년 7월 24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금호타이어컵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코리아투어 2009' FC서울과의 친선 경기에서 김진규와 볼을 다투고 있다.ⓒ 유성호


김진규-강민수 중앙 수비수 조합은 한국 축구가 기대하던 수비 라인이었다. 먼저 어린 시절부터 홍명보의 뒤를 이을 대형 수비수라는 평가를 받던 김진규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성장했다. 2004년 약관의 나이로 성인대표팀에 합류한 김진규는 2006년 독일 월드컵 주전 수비수로 뛰었을 정도로 곧장 팀의 중심이 됐다.

2007년 강민수가 국가대표팀 데뷔를 하면서 젊은 센터백 듀오가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이미 성인대표팀의 1순위 조합으로 낙점받은 김진규-강민수 라인은 2008 베이징 올림픽에도 그대로 참가했다. 두 선수 모두 U-23세 이하 선수로 참가했다. 와일드 카드를 한 장도 소진하지 않고도 올림픽에서 국가대표 중앙 수비수 조합을 가동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한국 축구 수비의 미래는 밝아 보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007년 12월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의 수장이 된 후 김진규의 자리는 없었다. 허정무 감독은 김진규를 테스트했지만 만족하지 않았다. 강민수의 경우 허정무호에서 꾸준히 기회를 받으며 국가대표 경력을 이어갔다. 곽태휘의 부상 낙마로 인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참가하기도 했다.

2010년을 기점으로 두 선수 모두 성인대표팀에서 자취를 감췄다. 2012년에는 김진규가, 2014년에는 강민수가 국가대표팀 마지막 도전에 나섰지만 전부 실패로 끝났다. 그래도 각자의 소속팀에서는 나름의 족적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J리그와 전남 드래곤즈를 거쳐 FC 서울에 안착한 김진규는 서울에서 총 8시즌을 소화했다. 수비의 핵으로 2번의 리그 우승과 1번의 FA컵 우승 등을 일궈냈다. 서울의 황금기를 지켜낸 부정할 수 없는 서울의 전설로 남게 됐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고생하던 김진규는 지난 시즌 대전시티즌에서의 생활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끝마쳤다.

아쉬운 헤딩 13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AFC리그 예선 울산 현대와 중국 상하이 상강의 경기. 울산 강민수(오른쪽)가 중국 상하이 상강 GK 얀준링과 공중볼을 다투고 있다.

▲ 아쉬운 헤딩지난 3월 13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AFC리그 예선 울산 현대와 중국 상하이 상강의 경기. 울산 강민수(오른쪽)가 중국 상하이 상강 GK 얀준링과 공중볼을 다투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강민수는 2011년 울산 현대 이적을 통해 클럽 경력의 하이라이트를 맞이했다. 울산의 부동의 수비수로 자리잡은 강민수는 상주 상무를 거쳤던 시기를 제외하면 올 시즌까지 울산의 주전으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 이번 시즌 포함 울산에서 뛴 일곱 시즌 동안 AFC 챔피언스리그, FA컵 우승 등을 견인했다. 잦은 실수로 비판을 받았던 과거와 달리 노련미를 장착한 강민수는 무시 할 수 없는 K리그의 수비수로 선수 생황을 이어가고 있다.

백지훈(리만 FC) - 홍콩으로 간 '승리의 파랑새'

'베이징 세대'를 대표하는 공격수에는 박주영, 수비수에는 김진규가 있었다면 미드필더에는 백지훈이 있었다. 탁월한 기술과 호쾌한 슈팅력을 지닌 백지훈은 한국 축구의 10년을 책임질 재목으로 평가를 받았다.

백지훈은 2005년 일본과 경기를 통해 어린 나이에 성인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전남과 서울, 수원 삼성을 거쳐 경험을 쌓은 백지훈은 베이징에서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조별리그 3경기에 전부 출장했지만, 단 1경기도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했다. 백지훈의 공격력은 그의 어린 시절 팬들이 기대했던 만큼 국제대회에서 발현되지 않았다.

 아드보카트 감독을 비롯한 축구대표팀 코치진과 선수들은 19일 오후 경기도 파주NFC에서 독일월드컵 유니폼을 입은 채 기자들을 위한 포토데이 행사를 가졌다. 백지훈 선수.

백지훈 선수.ⓒ 오마이뉴스 권우성


상주 상무 시절과 2014년 울산 시절을 제외하면 백지훈은 2006년부터 총 일곱 시즌을 수원에서 보냈다. 아쉽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기민했던 움직임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백지훈의 자리는 서서히 사라졌다. 수원 시절 말미에는 기존의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는 등 변화를 꾀했지만 가능성을 타진하는 데 그쳤다.

지난 시즌 K리그2의 서울 이랜드로 이적하며 마지막 부활을 꿈꿨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15경기에 출장해 1골을 넣은 것이 그의 K리그 마지막 기록이었다. 무적 신분으로 2018년을 맞이한 백지훈은 지난 6월 홍콩의 리만 FC로 떠나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승리의 파랑새'의 축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근호(울산 현대) - K리그 최고의 '축구 도사'

과거 이근호는 2인자였다. 1985년생 친구 박주영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갔다. 나름 연령별 대표를 거친 유망주였지만 이근호를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이근호를 처음으로 발탁한 인천 유나이티드에서도 이근호의 자리는 2군이었다.

이근호는 2군 무대에서 맹활약을 바탕으로 대구 FC에 이적한 후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총알 축구'의 선봉장으로 대구의 공격 축구를 이끌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1골도 넣지 못하며 쓴맛을 봤지만,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을 통해 허정무호의 주전 공격수로 성장했다.

빠르게 상승하던 이근호의 경력은 J리그 주빌로 이와타 이적 이후 급격하게 추락했다.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근호의 최대 장점인 왕성한 활동량과 골 결정력이 떨어진 모습이었다. 결국 이근호는 승선이 확실시 됐던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 엔트리에 탈락하는 충격을 받아들이게 됐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2011년부터 이근호는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다. 감바 오사카에서 부활의 조짐을 보인 이근호는 2012년 울산으로 넘어와 대폭발한다. 절정의 스피드와 움직임으로 수비를 궤멸시켰다. 많은 골은 아니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이근호가 있었다.

울산 이적 첫 해에 이근호는 팀을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려놨다. 김신욱과 이룬 투톱은 알고도 막을 수 없었다. 이근호는 2012년 AFC 올해의 선수상까지 받으며 김주성 이후 21년 만에 아시아 최고의 별로 인정을 받았다.

2013년부터 행보는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다. 상주-전북-제주-강원을 거치면서 이근호는 K리그의 얼굴과 같은 공격수가 됐다. 잦은 이적 속에서도 성실하고 투지있는 모습으로 소속된 팀마다 사랑을 받았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러시아와 대결에서 골을 넣으며 한(恨)을 풀기도 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한국과 러시아의 경기가 열린 18일 오전(한국시간) 브라질 쿠이아바 판타나우 경기장에서 후반전 이근호가 선제골을 넣은 후 환호하고 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한국과 러시아의 경기가 열린 지난 2014년 6월 18일 오전(한국시간) 브라질 쿠이아바 판타나우 경기장에서 후반전 이근호가 선제골을 넣은 후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여름 강원 FC에서 울산으로 이적한 이근호는 리그 5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활약하고 있다. 투박한 이미지의 이근호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는 노련하게 경기의 흐름을 읽고 승부를 결정짓는 베테랑이다. 그는 염기훈과 함께 현존하는 K리그 최고의 '축구 도사'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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