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2년 잉글리시 풋볼리그 디비전1을 계승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2018-2019 시즌이  오는 11일(이하 한국시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레스터시티의 공식 개막전을 시작으로 대단원의 막을 올린다. 역대 최다 승점 기록(100점)을 세우며 최고의 시즌을 보낸 맨체스터 시티가 여전히 막강한 전력으로 2시즌 연속 우승을 노리는 가운데 전통의 강호들도 빼앗긴 왕좌를 되찾기 위해 알찬 이적시장을 보냈다.

지난 시즌을 2위로 마친 맨유는 조제 모리뉴 감독의 야망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기존의 강한 전력에 브라질 대표팀의 미드필더 프레드를 영입해 중원을 보강했다. 첼시 FC 역시 맨시티와의 경쟁 끝에 SSC 나폴리의 수비형 미드필더 조르지뉴를 영입했다. 이번 이적시장에서 가장 바쁘게 움직이며 파비뉴, 나비 케이타, 제르단 샤키리, 알리송 베케르 등을 영입한 리버풀FC는 여름 이적시장의 승자로 꼽힌다.

하지만 모두가 분주했던 여름 이적시장에서 유난히 조용했던 상위권 구단이 있다. 대한민국 에이스 손흥민과 월드컵 득점왕 해리 케인의 소속팀으로 국내 축구팬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토트넘 핫스퍼FC다. 2017-2018 시즌 승점77점으로 챔피언스리그 직행 순위인 3위에 올랐던 토트넘은 월드컵이 끝난 후에도 전혀 전력 보강을 하지 않고 이적 시장을 마쳤다. EPL 역대 최초로 여름 이적시장 '제로 사이닝 클럽'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포체티노 감독 부임 이후 세 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직행한 토트넘

 22일 오전 1시(한국시각) 영국 사우스햄튼 세인트 메리즈 스타디움에서 열린 사우스햄튼과의 2017~2018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4라운드 경기에서 해리 케인의 득점에 토트넘 선수들이 자축하고 있다. 왼쪽부터 차례로 토트넘의 손흥민, 무사 시소코, 해리 케인 선수.

왼쪽부터 차례로 토트넘의 손흥민, 무사 시소코, 해리 케인 선수. ⓒ EPA/연합뉴스


토트넘은 손흥민이 이적하기 전부터 한국 축구팬들에게 꽤나 익숙한 구단이었다. 2002 한일월드컵 이후 나란히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PSV아인트로벤에 진출했던 '초롱이' 이영표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네 시즌 동안 활약했던 팀이기 때문이다. 마틴 욜 감독 시대에 토트넘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이영표는 후안데 라모스 감독이 부임한 후 입지가 좁아져 독일 분데스리가의 도르트문트로 팀을 옮겼다.

2007-2008 시즌 11위까지 떨어지며 유럽대항전 출전은커녕 강등권을 걱정하는 처지가 된 토트넘은 해리 레드냅 감독을 선임한 후 빠르게 전력을 재정비했다. 루카 모드리치(레알 마드리드), 라파엘 판 더 바르트(레알 베티스) 같은 선수들을 영입해 약점으로 지적되던 중원을 강화했고 윙어로 변신한 가레스 베일(레알 마드리드)의 잠재력도 폭발했다. 토트넘은 2009-2010 시즌과 2011-2012 시즌 리그4위에 오르며 빅4를 위협하는 팀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토트넘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물'이 된 베일을 떠나 보낸 이후 토트넘은 다시 5~6위권을 맴돌며 힘들게 찾았던 빅4 자리를 내려 놓았다. 그러던 2014년 토트넘의 감독으로 부임해 토트넘을 다시 지금의 강호로 만들어낸 인물이 바로 아르헨티나 출신의 포체티노 감독이었다. 토트넘은 포체티노 감독이 부임하자마자 파울리뉴, 로베르토 솔다도, 아론 레넌 등을 이적시키며 선수단을 정리하는 과감한 행보를 단행했다.

포체티노 감독 부임 첫 시즌 미완의 스트라이커였던 케인이 EPL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성장한 토트넘은 손흥민과 토비 알데르베이럴트 같은 또 다른 주축 선수들을 영입한 2015-2016시즌 맨시티와 맨유를 제치고 리그 3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케인이 리그에서만 25골을 퍼부으며 생애 첫 득점왕에 올랐고 경기를 조립는 크리스티안 에릭센(13개)과 델리 알리, 에릭 라멜라(이상 9개)는 도움 부문에서 각각 2위와 공동 8위에 올랐다.

토트넘, 역전승... 챔스 대신 유로파 토너먼트 진출 지난 2016년 12월 7일 런던 웸블리에서 열린 토트넘 홋스퍼와 CSKA 모스코의 UEFA 챔피언스 리그 E조 경기, 토트넘의 손흥민과 델레 알리 그리고 해리 케인이 경기에서 득점한 후 함께 기뻐하고 있다.

토트넘의 손흥민과 델레 알리 그리고 해리 케인이 경기에서 득점한 후 함께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EPA


손흥민이 리그에서 14골을 넣으며 주전선수로 도약한 2016-2017 시즌 토트넘은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았다. 케인과 알리, 손흥민으로 이어지는 공격 삼각편대가 리그에서만 무려 61골을 합작하는 엄청난 폭발력을 보인 토트넘은 첼시에 이어 리그 2위를 차지했다. 토트넘은 맨시티가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며 독주체제를 구축한 2017-2018 시즌에도 꾸준한 경기력을 유지하며 리버풀을 제치고 챔피언스리그 직행 티켓이 걸려 있는 3위 자리에 올랐다.

영입도 방출도 없이 전력 유지를 선택한 토트넘의 2018-2019 시즌

경쟁이 치열한 프리미어 리그에서 세 시즌 연속 3위 안에 포함되며 강팀으로 도약한 토트넘의 선수들은 지난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각 나라를 대표해 좋은 활약을 이어갔다. 주장 위고 요리스 골키퍼는 프랑스의 골문을 지키며 우승을 이끌었고 수비의 두 중추 알데르베이럴트와 얀 베르통언은 역대 최고 성적(3위)을 기록한 벨기에의 후방을 책임졌다. 32년 만에 잉글랜드에 월드컵 득점왕 타이틀을 가져온 케인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주력 선수들의 주가가 대폭 상승하면서 토트넘은 이적시장에서 다른 구단들의 주요 표적이 됐다. 중앙수비수 영입에 열을 올린 맨유는 알데르베이럴트를 영입하기 위해 높은 이적료와 함께 마르코스 로호 또는 크리스 스몰링을 제시했고 레프트백과 윙어를 겸할 수 있는 대니 로즈는 분데스리가의 샬케04 이적설이 흘러 나왔다. 여기에 노쇠화 조짐을 보이는 베테랑 미드필더 무사 뎀벨레도 꾸준히 중국리그로부터 이적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포체티노의 선택은 변화가 아닌 '지키기'였다. 토트넘은 혼탁한 이적시장에 뛰어 들어 전력을 흐트리기보다는 세 시즌 연속 3위 안에 포함됐던 기존의 전력을 갈고 닦는 쪽을 선택했다. 선수와 감독에게 충분히 익숙하고 충분히 좋은 성과를 올렸던 스쿼드를 굳이 억지로 바꿀 필요는 없다는 게 포체티노 감독의 계산이었다.

 4월 15일 오전 3시 45분(한국시간)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토트넘 핫스퍼와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 토트넘의 에릭 라멜라(가운데)가 맨시티의 빈센트 콤파니(오른쪽)의 수비를 피하며 슛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4월 15일 오전 3시 45분(한국시간)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토트넘 핫스퍼와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 토트넘의 에릭 라멜라(가운데)가 맨시티의 빈센트 콤파니(오른쪽)의 수비를 피하며 슛을 시도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실제로 토트넘의 전력은 프리미어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케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유럽 최고 수준의 스트라이커이고 알리, 손흥민 등 2선 공격수들의 위력도 EPL 정상급이다. 국내에서는 손흥민의 경쟁자로 이미지가 썩 좋지 않지만 에릭 라멜라도 로테이션 플레이어로 머물기엔 아까운 기량을 갖췄다. 상대적으로 중원이 다소 약해 보이긴 하지만 에릭센을 중심으로 뎀벨레, 에릭 다이어 등 뛰어난 선수들이 즐비하다.

비록 1960-1961 시즌 이후 50년 넘게 우승이 없지만 토트넘은 이미 리그에서 충분히 그 실력을 증명하고 있다. 이제 토트넘의 다음 목표는 베일과 모드리치가 뛰던 2010-2011 시즌 이후 7년 동안 나가보지 못했던 챔피언스리그 8강 이상의 성적이다. 과연 과감한 '제로 사이닝'을 선택한 토트넘은 분주한 이적시장을 보낸 다른 클럽들 사이에서 기대했던 성과를 올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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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축구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핫스퍼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손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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