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출신', '행정고시 패스한 개그맨'. 데뷔 때부터 개그맨 노정렬씨 앞에 따라붙는 수식어이다. 그 앞에 'MB 국정원 블랙리스트 연예인'이란 수식어가 하나 더 붙었다. 노정렬씨는 광화문 촛불 집회 등 그동안 첨예한 시국 집회의 사회를 자주 맡기도 했다.

사회를 보면서도 무대에서 신랄하게 현실을 풍자한 노정렬씨는 '좌파 성향 연예인'으로 낙인 찍혀 많은 불이익을 감내해야 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현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들 성대모사 개그를 통해 답답한 사회 현실을 통쾌하게 풀어내는 시사 풍자 개그맨 노정렬씨를 지난 2일 tbs 교통방송 로비 카페에서 만났다.

최근 영화 <공작>에도 출연했다고?

 tbs 교통방송 <노정렬의 주말이 좋다>

tbs 교통방송 <노정렬의 주말이 좋다>ⓒ tbs


- 반갑습니다. 최근 영화에 출연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요.
영화 제작진들이 그러는데 김대중 대통령 성대모사 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수십 명이 넘는데 그 중 싱크로율이 가장 높다고 해서 맡게 되었어요. 감사드릴 일이에요."

- 노정렬씨 하면 역대 대통령들 성대모사로 유명하잖아요.
"많은 분이 각자 잘하고 있죠. 저는 시사 풍자 속에 성대모사를 녹이는 것을 주로 하고 있어요. 1996년 MBC 7기 공채 개그맨 시험 때도 대통령 성대모사로 시사 풍자 개그를 해서 붙었고요. 연예인이나 유명인들 성대모사도 합니다. 현재 tbs 라디오 <노정렬의 주말이 좋다>를 진행하고 있는데 코너마다 필요하면 대통령과 유명인들 성대모사를 하고 있어요. (라디오 DJ 톤으로) 토요일, 일요일 저녁 6시, 많이 들어주세요~"

- TV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것 같은데요.
"KBS 춘천에서 <강냉이>, '강원도를 냉철하게 이야기하자'라는 50분짜리 TV 시사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 전국으로 나가는 공중파에 복귀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어요. 전국 공중파 프로그램은 10년 전 2008년 KBS '폭소클럽 2'가 마지막이었네요. '뉴스야 놀자'라고 시사 풍자를 하는 단독 스탠딩 코미디 코너였죠. 제가 역대 대통령 패널을 두고 성대모사를 해 토론하는 원맨쇼였는데 반응도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쑥스러운 웃음)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2월 25일 취임하고 바로 다음 달 3월 19일에 막을 내렸어요. 당분간 공중파방송에서 시사 개그를 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당분간이 10년이나 갈 줄이야. 돌이켜 보니 이때부터 국정원 블랙리스트에 오른 거였네요."

- 사실 노정렬씨는 그 이전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무효 집회 때부터 세월호, 광화문 촛불집회까지 민감한 시국 집회에서 사회를 많이 맡아왔잖아요. 연예인으로서 사회적 참여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시사 개그를 하는 사람이니까 현실에 관심을 두는 것은 당연한 것 같아요. 아버지와 세상사를 토론하면서 중고등학생 때도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기자나 시사 다큐멘터리 PD가 되고 싶어 신문학과에 진학했는데 대학에서는 풍물패, 마당극을 열심히 했죠. 사회적 모순이나 부조리를 풍자로 담는 것이 좋았어요. 어느 시대건 잘못된 권력에 대한 풍자와 해학은 있었어요. 권력자들이 얼마나 받아주느냐가 문제인 거죠. 모욕죄로 고소할 것이 아니라."

- 모욕죄라면 2010년 당시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에게 고소당한 것 말인가요?
"네. 조 의원이 법원의 비공개 판결을 무시하고 자신의 홈페이지에 전교조 명단을 공개해서 파문이 일었죠. 며칠 뒤, 전국교사대회 무대에서 제가 '조전혁 의원의 별명이 '초저녁', '애저녁'이라는데 애저녁에 글러 먹었기 때문이라고 한다'라고 했어요. 사회자가 명예훼손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하길래 '명예훼손이란 건 훼손될 명예가 있는 사람한테나 해당하지, 훼손될 명예가 없으면 물건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명예훼손이 안 된다'라고 했어요. 이걸 조 의원 쪽에서 촬영해서 고발했고 상고심까지 가서 벌금 50만 원의 선고유예로 끝났어요."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하차... 10년 이상 방송 못할 줄이야"

'갑오년 - 온라인 대첩 누리꾼의 역습' 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대한민국 온라인 커뮤니티 연합' 주최 열린 '갑오년 온라인대첩-누리꾼의 역습'에 참석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조성대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노정렬 개그맨,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의 주인공인 주현우 학생, 응답 대자보를 붙인 강훈구 학생이 토크콘서트를 하고 있다.

▲ '갑오년 - 온라인 대첩 누리꾼의 역습'지난 2014일 1월 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대한민국 온라인 커뮤니티 연합' 주최 열린 '갑오년 온라인대첩-누리꾼의 역습'에 참석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조성대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노정렬 개그맨,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의 주인공인 주현우 학생, 응답 대자보를 붙인 강훈구 학생이 토크콘서트를 하고 있다.ⓒ 유성호


- 이런 정치적 의사 표현 때문에 방송 출연 제재가 있었는데,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았나요?
"아무래도 그랬어요. 노량진에서 행정학 강사도 1년 8개월 했어요.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미래의 행정공무원들에게 꼭 가르치고 싶은 것이 있었어요. 국회의원은 300명이지만 행정공무원은 100만 명이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예산을 잘 쓰고, 국민들에게 공정하게 잘하느냐가 중요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예비 공무원들에게 선배로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국민 우선주의·국민 주권주의를 실천할 수 있도록 봉사하겠다는 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어요."

- 그런 좋은 뜻도 있고, 노량진 학원 강사 수입도 높았을 텐데 왜 그만두었나요?
"2013년 8월에 서울광장에 4만 명 모인 국정원 개혁 집회에서 사회를 봤어요. 고 김대중 대통령 목소리로 '박수를 치려면 치고 말려면 말아요. 박수를 쥐죽은 듯이 치니까 쥐새끼들이 득세하는 거 아녜요'라고 했는데, 다음날 보수 신문과 종편 TV에서 "노정렬 막말, '쥐 XX'"라고 보도가 되고 그 이후에 학원으로 압력 전화가 많이 와서 어쩔 수 없이 계약을 해지하게 됐어요. 나름 인기 강사였는데(웃음)... 그래도 제 덕분에 시험에 붙었다고 고마워하는 제자들 때문에 보람 있었어요."

- 행정학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노정렬씨 하면 행정고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어요.
"아까 말한 대로 피디나 기자가 되고 싶었고요. 언론사 시험 준비를 하는데 당시에 시험과목이 행정고시 시험과목과 아주 비슷했어요. 시험 삼아 쳐봤는데 1차에 덜컥 붙었네요. 이왕 붙은 거 열심히 해보자 했는데 운 좋게 바로 3차까지 붙어서 1년 연수까지 마치게 됐어요. 김영삼 정부와 이후에 한 5년 일하면서 정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었어요. 나중에 언론인이 돼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고."

- 그런데 왜 개그맨 시험은 봤나요?
"연수원에 있다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공무원 조직문화가 저와 잘 안 맞더라고요. 원래부터 유머와 웃음을 좋아했는데 MBC 개그맨 선배인 서경석씨의 사례도 있고 해서 '개그맨이 되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피디보다는 내가 직접 마이크가 돼서 답답한 현실을 시원하게 풍자해보자는 심산이었죠."

"자기검열 심해지면 풍자의 맛 없어져"

'심폐소생술' 홍보 나선 개그맨 노정렬 세계 심장의 날을 맞아 29일 오후 라이나전성기재단 관계자, 국민안전문화협회(회장 개그맨 서승만) 회원, 마포소방서 의용소방대 수호천사팀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네거리 일대에서 시민들이 심폐소생술을 쉽게 익힐 수 있도록 상황극과 체험행사를 진행했다. 국민안전문화협회 사무총장인 개그맨 노정렬씨가 체험에 참가한 시민들에게 심폐소생술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 '심폐소생술' 홍보 나선 개그맨 노정렬세계 심장의 날을 맞아 지난 2017년 9월 29일 오후 라이나전성기재단 관계자, 국민안전문화협회(회장 개그맨 서승만) 회원, 마포소방서 의용소방대 수호천사팀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네거리 일대에서 시민들이 심폐소생술을 쉽게 익힐 수 있도록 상황극과 체험행사를 진행했다. 국민안전문화협회 사무총장인 개그맨 노정렬씨가 체험에 참가한 시민들에게 심폐소생술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권우성


- 요즘은 초등학생 장래희망도 공무원일 정도로 인기인데, 임용 포기한 것 후회하지 않나요?
"후회까지는 아니고 지난 9년 반 동안 국정원 블랙리스트에 있었다는 것이 정말 분통 터지고 억울해요. 하긴 저는 공무원을 계속 못 했을 거예요. 행시 동기들이 지금 과장, 국장급인데 지난 10년간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하는 동기들이 많아요. 그들도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특히 환경부·건교부는 4대강과 연관되어서, 문광부는 블랙리스트로 괴로웠다는 거죠.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지만, 역사적으로는 적폐와 같은 일들이 됐잖아요. 그래서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합니다."

- 정권이 바뀐 지금은 블랙리스트가 훈장과 명예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최근의 행보를 화이트리스트처럼 느끼시는 분들도 있어서 조심스러워요. 김미화씨가 평창올림픽 개막식 중계방송 MC를 맡았을 때 입방아에 올랐었죠. 나꼼수 4인방의 공중파 진출도 항상 편향성 문제가 따라 다니고. 최근엔 KBS에서 김제동씨에게 시사 프로그램을 맡기려고 했다가 공영노조가 제동씨의 '편향성'을 문제 삼아 반발한 일도 있고요. (주: KBS에는 3개 이상의 복수노조가 있는데 공영노조는 우파 성향에 가깝다) 저도 하루 빨리 전국공중파에서 시사 개그로 더 많은 분과 쉽게 만나고 싶은 마음이 큰데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에요. 저는 좌파 우파도 아닌 국민파입니다."

- '시사 풍자 개그맨', '소셜테이너'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나요?
"저에겐 부담이라는 개념이 사회적 책무와 같아요. 사회참여는 제가 하는 언어 개그, 시사 개그의 기본이기 때문이에요. 가끔 너무 세게 보일까 봐 주춤한 적도 있죠. 하지만 자기검열이 심해지면 재미가 떨어지고 풍자의 맛이 없어져요. 제 트위터 소개 글이 '바르고 따뜻한 세상에서 실컷 함께 웃고 싶은 개그맨 노정렬입니다'예여. 제가 생각하는 바른 세상은 입이 자유롭고 밥이 공정한 사회입니다. 촛불혁명을 치르고 난 지금 우리 사회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간단하게 말해 주세요.
"2016년 팩트TV에서 <훈수대통>, 훈수 두는 대통령이란 프로그램을 했었어요. 역대 대통령들이 나와서, 물론 저를 통해서 목소리로 출연한 것이지만(웃음), 현 사안에 대해 훈수를 두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좋아들 해주셨어요. (트럼프 목소리로) "You're fired!"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추가했어요. 김정은 위원장도 준비 중인데 좀 어려워요(웃음). 미디어 환경이 바뀐 만큼 유튜브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시사 풍자 개그를 선보이려고 준비 중입니다. 기대해주세요. 모두 건강 행복하시고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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