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라디오 FM <김어준의 뉴스공장> 타이틀 화면.

tbs 라디오 FM <김어준의 뉴스공장> 타이틀 화면. ⓒ tbs


9일 오전 방송된 tbs 라디오 FM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사회연대노동포럼 공동대표이자 책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의 저자인 오세라비씨가 출연했다. 오씨는 자신을 "'여성운동가'이지만 '페미니스트'는 아니"라고 소개했다. 여성운동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페미니스트는 아니며,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SBS는 8일 경찰이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 운영진에 대해 음란물 유포 방조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이에 '왜 일베는 이렇게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냐'며 편파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뉴스공장>은 워마드로 대표되는 '극단적 남성혐오의 배경과 해법'을 주제로 오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러나 오씨는 워마드가 마치 페미니즘의 대표인 것처럼 주장했고,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편파수사와 임금차별에 대해서도 이상한 논리를 갖다대며 "없다"고 단언했다.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은 '남성혐오'?

"한국 사회를 휩쓰는 페미니즘은 남성혐오예요. 방송이나 사이트에 나온 글귀들을 보면 상상초월의 남성혐오인데."

오씨는 '워마드'의 남성혐오 문제를 지적하면서 현재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페미니즘이 남성혐오라고 규정했다. 정말 그럴까? 워마드는 앞서 천주교 성체를 훼손한 게시글을 올리거나 남성의 나체사진에 문재인 대통령을 합성하는 등 반사회적 게시물로 여러 번 논란에 휩싸였다. '워마드' 구성원들은 이미 자신들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워마드=페미니즘'의 논리로 페미니즘 운동 전체를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방송에서 오씨는 워마드 사이트가 만들어진 초창기부터 계속 모니터링 해왔다고 주장하면서도 워마드가 남성혐오적 게시물을 올리는 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워마드의 남성혐오는 사실상 극우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를 비롯한 우리 사회 팽배한 여성혐오에 대한 '미러링'으로 시작됐다고 보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지난 수년간 인터넷에서는 '김치녀' '맘충' 등 여성혐오적 단어들이 널리 이용돼왔다. 그러나 최근 '한남충' 등 남성혐오적 단어들이 생겨난 이후에야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게 대표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워마드의 비윤리적 행위들을 '미러링'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에 대한 설명과 이해 없이, '여성혐오'와 '남성혐오' 문제를 완전한 동일선상에서 볼 수만도 없는 게 사실이다.

'편파수사'는 명백한 왜곡이다?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인근에서 다음 카페 여성 단체 '불편한 용기' 주최로 열린 '불법촬영 편파 수사 2차 규탄 시위'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홍익대 누드모델 몰카(몰래카메라) 사건'에 대한 경찰의 성(性)차별 편파 수사를 비판하며 삭발식을 진행하고 있다.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인근에서 다음 카페 여성 단체 '불편한 용기' 주최로 열린 '불법촬영 편파 수사 2차 규탄 시위'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홍익대 누드모델 몰카(몰래카메라) 사건'에 대한 경찰의 성(性)차별 편파 수사를 비판하며 삭발식을 진행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피의자가 여성이어서 빨리 잡았다, 그건 아니죠. (중략) 그건 너무나 왜곡되고 억지주장이에요. 그거를 계속해서 지금 이슈화를 시켜서 광화문까지 끌고 온 것인데."

오씨는 '불법촬영 편파수사' 논란에 대해서도 명백한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통계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불법촬영 범죄로 검거된 인원은 약 1만9600여 명이며 이 중 남성은 97.5%로 절대 다수에 해당한다. 그러나 구속된 인원은 493명에 불과하다.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지난 5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접수된 범죄 5852건 중에서 기소된 범죄는 1846건으로 기소율은 31%였고, 처벌도 벌금형이 72%로 대부분이었다.

통계에서도 알 수 있듯, 그간 여성이 피해자였던 대다수의 불법촬영 범죄 수사는 미온적이었다. 반면 남성이 피해자였던 홍대 누드 크로키 사건의 경우 경찰은 유독 빠르고 적극적인 것으로 보였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는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게다가 현재 4차까지 진행된 시위의 주최 측은 여러 번 '워마드'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오씨가 워마드와 불법촬영 수사 문제를 교묘하게 연결하면서 '페미니즘' 전체의 문제인 양 호도한 것이다.

여성들이 도전하면 임금차별이 없어진다?

"아무래도 임금 차이가 많이나는 고소득 직종이 있어요. 흉부외과, 산부인과, 치과, 마취과, 건설, 기계, 플랜트, 뭐 이런 쪽은 (여성이) 안 가니까. 저는 페미니스트들이 그렇게 말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도전해라.' '거기 고소득이란다, 다 가자.' 그러면 임금차별이 없어지잖아요."

오씨는 성별 임금차별에 대해서도 "지금은 '고용평등법'이 있어 이제는 실제 임금차별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여성들이 노동시간이나 강도를 따져보고 고소득 직종에 '도전'하면 임금차별이 없어진다는 궤변을 펼쳤다.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2015년 말 기준 37.2%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심각하다. OECD 평균인 14.5%의 두 배를 훌쩍 뛰어 넘는다. 이는 여성 고용 질 저하, 출산 후 경력단절 등 다양한 사회적 요인이 영향을 미친 결과다. 관리직이나 임원 등 고위직으로 갈수록 여성 비율이 적은 것도 한 몫하고 있다. 임금격차를 여성 개개인의 '도전의식 부족'으로 여겨선 안 되는 이유다.

'페미니즘'이 아니라 '휴머니즘'?

언론도 공범이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서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기사 헤드라인이 적힌 종이 띠를 준비했다. 가해자에게 미약한 처벌이 이루어진 사건 기사 제목이거나,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부각한 제목들이었다. 이들은 이 종이 띠를 찢어서 버리며 항의의 뜻을 표했다.

▲ 언론도 공범이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서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기사 헤드라인이 적힌 종이 띠를 준비했다. 가해자에게 미약한 처벌이 이루어진 사건 기사 제목이거나,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부각한 제목들이었다. 이들은 이 종이 띠를 찢어서 버리며 항의의 뜻을 표했다. ⓒ 곽우신


"현재 페미니즘 운동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층민이라고 하는, 일반 여성, 일반 남성의 문제는 지금 빠져있어요. (중략) 정말 힘든 처지에 놓여있는 기층민들. 남성, 여성, 빈곤 노인, 이런 쪽으로 여성운동이 일대의 방향전환을 해야 돼요. 그래서 저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건 휴머니즘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오씨는 "현재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의 기층민을 포함하지 않는다며, 여성운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페미니즘'이 아니라 '휴머니즘'"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페미니즘이 여성의 권리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한다'는 잘못된 편견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논리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약자들의 부당한 억압과 차별에 저항하는 운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은 휴머니즘과 대치되는 개념이 아니라 이미 그 안에 휴머니즘을 내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일각에서는 지난 4차례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에서 소수가 과격한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편파수사 문제는 외면하고 시위의 편향성만을 지적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워마드=페미니즘', '과격한 페미니즘' 프레임을 부추기면서 '페미니즘 죽이기'를 하고 있는 쪽은 누구일까. 진짜 문제는 이렇게 갑론을박 하는 동안 정작 진짜 중요한 여성을 향한 혐오와 차별 문제는 지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오세라비 페미니즘 김어준의뉴스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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