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방송된 <도전! 골든벨> 안양 근명여자정보고등학교 편 최후의 1인 학생의 화이트보드. 왼쪽 상단의 메시지가 블러처리 되어 있다.

5일 방송된 <도전! 골든벨> 안양 근명여자정보고등학교 편 최후의 1인 학생의 화이트보드. 왼쪽 상단의 메시지가 블러처리 되어 있다. ⓒ KBS


KBS <도전! 골든벨>이 지난 6일 '동일 범죄, 동일 처벌', '낙태죄 폐지'를 적은 한 학생의 화이트보드를 흐릿하게 편집해서 방송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관련 기사: '도전! 골든벨' 최후의 1인 학생은 왜 KBS의 '검열' 받았나) 청소년의 의견을 무시한 '검열'이라는 것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골든벨> 측은 방송 다음날인 7일 "청소년들이 여러 분야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지만 "공영방송은 '첨예하게 주장이 엇갈리는 정치적·종교적·문화적 이슈의 경우, 한 쪽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방송할 수 없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KBS 내부에서조차 비판적인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KBS 내부 피디들과 구성원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KBS 내부에서도 <골든벨> 비판

한 피디는 <오마이뉴스>에 "청소년을 타깃으로 청소년들이 나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프로그램에서 청소년의 목소리를 지운 건 스스로를 부정한 거다, 많이 아쉽다"고 했다. <골든벨>이 청소년 당사자의 프로그램으로서 상징성을 갖고 있기에, 해당 프로그램에 나온 청소년의 목소리를 지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취재에 응한 다른 피디 역시 <골든벨>이 가진 상징성을 강조했다. 이 피디는 "<골든벨>은 한국에서 고등학생들만 나오는 유일한 프로그램인데, 프로그램에 논란이 될 만한 것들을 절대로 하면 안 되겠다는 오랫동안 쌓인 조심스러움 내지는 무책임이 보였다. 꼭 여성 이슈라 그랬던 것이 아니라 '논쟁에서 발을 빼야겠다, 우리는 감당할 수 없다'는 감정이 복합적으로 섞인 것처럼 보인다"고 밝혔다.

이 피디는 "관성적인 KBS의 프로그램의 제작 방식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을 사전에 차단해 아예 이야깃거리가 되는 걸 피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다른 피디도 "<골든벨> 같은 경우 어떤 식으로도 논란이 되고 싶지 않아 문구를 의도적으로 지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오히려 더 논란이 된 것이다. 누군가 불편해 할까봐 지웠는데, 이를 보여주고자 했던 당사자는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블러 처리를 하면서 '동일 범죄, 동일 처벌'이라는 문구가 더 정치적인 문제가 됐지 않나. 비정치적인 프로그램에서 논쟁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조직에 오래 몸담고 일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검열을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한 피디는 "많이 아쉽다"며 "나였으면 그 학생을 어떻게 방송에 담았을까를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 피디는 "화이트보드에 민감한 내용을 쓴 학생이 있다고 했을 때 그 학생을 인터뷰 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우리 학생 참 소신 있고 똑 부러지네' 하면서 캐릭터도 살려줄 수 있고, 정치 참여에 대한 구호를 들고 나오는 청소년이 많아지면 시사 골든벨 특집을 할 수도 있다"며 "제작 측면에서 풀 수 있는 요소도 많았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반면, "해당 문구를 삭제한 건 오히려 잘한 행동"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그는 "<골든벨>은 논쟁의 소지가 있는 메시지를 여과 없이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정치적인 입장을 내비치지 말자는 것과 똑같이 봐야한다"며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고 불편한 사람들도 있으면 문제를 만들지 않는 것이 더 맞지 않나"라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공영방송 정상화 하겠다는 KBS인데, 왜 아직도

 KBS <연예가중계> 중 한 장면

KBS <연예가중계> 중 한 장면 ⓒ KBS


 KBS <연예가중계> 중 한 장면

KBS <연예가중계> 중 한 장면 ⓒ KBS


KBS의 임의 편집은 얼마 전에도 논란이 된 바 있다. <연예가중계>가 지난달 27일, DJ DOC 멤버 이하늘의 페미니스트 관련 발언을 가리고 "화면 조정 시간을 갖겠다"며 편집 화면을 내보냈던 것. 해당 화면에는 '잠시 시청자 여러분들의 안녕과 평화를 위한 시간입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당시 <연예가중계> 책임 프로듀서는 <오마이뉴스>에 "DJ DOC가 논란을 몰고 다니는 분들이시기도 하고 인터뷰를 할 때 항상 높은 수위를 오가는 솔직한 말을 하신다. 다른 발언을 하지 못하게 사전에 차단한 것"이라고 밝혔으나 '페미니즘 지우기'라는 비판이 빗발쳤다.

최근의 이런 사건이 파업 이후 KBS가 정상화 수순을 밟고 있는 와중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KBS 피디는 "파업이 끝나고 시청률이 안정적으로 나오는 <골든벨> 같은 장수 프로그램을 어떻게 리뉴얼 할까에 대한 고민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연예가중계>에 대해서는 여러 명의 피디들이 공통적으로 "왜 KBS가 이 정도도 걸러내지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하는 분위기다. 한 피디는 "<연예가중계>는 명백하게 혐오 방송을 했다고 판단한다"며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2008년 12월 31일 밤 새해 보신각 타종식이 열리는 서울 종각 네거리에 모인 시민들이 '이명박 퇴진' '아듀 2008 아듀 MB!' '언론관계법 개악 철회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종이피켓과 '선생님을 돌려주세요'가 적힌 노란풍선을 들고 있다.

2008년 12월 31일 밤 새해 보신각 타종식이 열리는 서울 종각 네거리에 모인 시민들이 '이명박 퇴진' '아듀 2008 아듀 MB!' '언론관계법 개악 철회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종이피켓과 '선생님을 돌려주세요'가 적힌 노란풍선을 들고 있다. ⓒ 권우성


KBS는 2008년 12월 31일 <특별생방송 가는해 오는해>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행사 시위 음성 왜곡 조작, 2015년 <골든벨>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삼촌을 기린 한주연 학생의 방송분 편집 등으로 여러 차례 구설에 오른 바 있다. 또 세월호 참사에 대한 편파보도를 비롯해 여러 사안을 이른바 '정쟁'으로 삼고 '기계적 보도'에 매몰됐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파업 후 KBS를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 속에는 이러한 기계적 균형에 대한 비판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여러 피디들의 말을 종합해봤을 때, KBS 내부의 개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정권 차원의 '방송 탄압'은 끝났지만 논란을 꺼리는 보신주의 등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공영방송 KBS가 풀어가야 할 숙제다.

도전 골든벨 동일 범죄 동일 처벌 세월호 청소년 프로그램 보신각 제야의 종
댓글1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