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곤조곤'은 책과 영화, 드라마와 노래 속 인상적인 한 마디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무심코 스치는 구절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이야기로 풀거나, 그 말이 전하는 통찰과 질문들을 짚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한 중년 부부가 있다. 남편의 생일, 아내는 근사한 깜짝 파티를 준비하지만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는다. 다음날 아내는 남편의 휴대폰에서 그가 젊고 어린 제자와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하고,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후로 남편의 모든 행동은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된다. 그가 식당에서 젊고 아름다운 여성 종업원에게 친절하게 대해도, 자신의 서재에서 어린 여성 제자와 채팅을 주고받아도, 이른 시간에 집을 나가 밤늦게 돌아와도. 아내는 계속해서 불안에 휩싸이고 전전긍긍하기를 반복한다. 결국 그녀는 남편의 실체를 직접 확인하고자 한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고용해 남편에게 접근시킨 후 그가 어떤 반응을 하는지 보는 것으로.

 영화 '클로이'

영화 '클로이'ⓒ 시너지


이상의 이야기는 영화 <클로이>의 줄거리다. 아마 이를 밝히지 않았다면 실제 있었던 일을 옮겨 적은 것으로 착각했을지 모르겠다. 이 작품의 도입은 흔하고 흔한 '중년 부부의 위기'를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만큼 우리는 이런 식의 갈등에 이미 익숙하다. 만약 치정극의 외피를 둘러싼 작품으로서 <클로이>가 전형적인 전개를 선택했다면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캐서린은 남편인 데이비드의 바람기를 시험하기 위해 클로이를 고용하지만, 두 사람은 그녀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지나치게 가까워진다. 데이비드는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이 관계를 청산하고자 하나 클로이의 집착은 더욱 강해진다. 그리하여 결국 결말은 두 가지다. 클로이를 축출하고 위험에서 벗어난 부부가 다시 가정을 견고하게 만들거나 혹은 세 사람 모두 사이좋게 파멸의 길을 걷거나.

전형적이지 않은 치정극, <클로이>

이 작품의 결론은 사실 전자와 유사하다. '유사하다'는 표현을 쓴 것은 이 영화의 마지막과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 우리가 예상하는 범주에서 조금씩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영화에서 주인공 클로이는 데이비드가 아닌 캐서린과 사랑에 빠진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놀라겠지만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클로이는 돈을 받고 남성들을 접대하며 함께 데이트를 해주고 그들이 원하면 성관계도 맺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에게 데이비드는 그 동안 만나온 고객들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그러니 클로이에게 그가 무슨 매력이 있었겠는가.

 영화 '클로이'

영화 '클로이'ⓒ 시너지


클로이와 캐서린이 우연히 만나는 첫 장면. 화장실에 앉아 남자들은 다 멍청이라며 우는 클로이에게 캐서린은 동감한다며 휴지를 건넨다. 이 짧은 순간 클로이는 남성들에게 얻을 수 없었던 감정적 위안과 공감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클로이가 캐서린에게 애착을 형성하고 빠져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누차 강조하지만 부디 영화의 주인공이 당연히 이성애자이리라 전제하지 말자.

또한 캐서린이 클로이와 데이비드의 불륜 장면을 상상하며 성적인 흥분을 느낄 때, 쉽게 할 수 있는 생각은 그녀가 클로이에게 이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클로이는 그녀가 가지지 못한 젊음을 가지고 남편을 만족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캐서린은 남편의 마음이 자신보다 더 어린 여성에게 향했고, 그래서 스스로가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음을 확인하게 될까 불안해한다. 하지만 그녀의 상상 속에서 데이비드는 클로이의 무조건적인 접근과 관심, 애정을 받는다. 영화의 후반부 캐서린은 데이비드에게 자신은 그런 열정적인 애착을 원했다고 고백한다. 고정관념을 벗어난다면 캐서린이 클로이가 아니라 데이비드의 자리에 서고 싶어 했음을 생각하기 어렵지 않다. 그래서 영화 내내 캐서린은 데이비드와는 키스 정도만 나누지만, 가장 관능적으로 묘사되는 성관계는 클로이와 맺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클로이'

영화 '클로이'ⓒ 시너지


이렇게 영화가 전형적인 치정극 서사에서 조금씩 어긋나며 드러나는 것은 제도화된 이성애 결혼 모델이 지닌 한계와 맹점이다. <클로이>의 가장 큰 반전 중 하나는 사실 데이비드가 클로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클로이가 캐서린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단지 계속 자신을 찾도록 만들기 위해 꾸며낸 것이었다. 결국 캐서린은 이 모든 전말을 데이비드에게 밝힌다. 그리고 두 사람은 포옹과 키스를 나누고 갈등은 안전하게 봉합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장면에서 안도감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화가 났다.

어째서 데이비드는 그저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것만으로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을까. 왜 남자들은 '가만히'만 있어도 되는 걸까. 관계의 지속을 위해 그것이 의심이든 인내든, 배려든 돌봄이든 모든 감정적 노동은 여성이 짊어지게 되는 것일까. 왜 이 불공평한 이야기를 사람들은 당연하게 여기는가. 애초에 데이비드가 캐서린의 감정을 섬세하게 살피고 진솔한 대화를 시도했다면 이 모든 사달이 일어났을까?

클로이의 마지막 선택이 의미하는 것

"그 순간 나란 존재는 완전히 사라져요."

영화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클로이의 대사다. 그녀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설명하면서 상대방이 원하는 어떤 사람이든 되어줄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내용의 핵심만 추린다면 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우리가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거기에 걸맞은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말과 감정을 전달하는 것. 운이 좋다면 그게 그대로의 나 자신과 완벽히 일치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관계를 우선으로 둔다면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문제는 일의 성격이 아니라 그것이 누구에게 요구되는가이다. 여성들이 좋은 아내이자 엄마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가꾸고 행동과 성격을 교정하기를 요구받는다.(단지 그 요구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찬양하는 것으로 은근히 전달될 뿐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남편으로서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 인정받는다.

 영화 '클로이'

영화 '클로이'ⓒ 시너지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에 클로이가 자신이 이야기한 일, 사랑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 일을 다른 어떤 캐릭터가 아니라 그녀가 해낸 것이 <클로이>의 가장 급진적인 면이 아닐까 싶다. 결국 캐서린과의 관계를 유지할 모든 가능성이 사라지자 클로이는 그녀의 집을 찾는다. 그리고 캐서린이 아니라면 그녀의 아들이라도 갖겠다고 협박한다. 자신을 위협하는 클로이에게 캐서린은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클로이는 캐서린에게 키스할 것을 요구하고 두 사람은 입을 맞추지만, 캐서린은 유리창에 비친 아들의 모습을 보고 황급히 클로이를 밀어낸다.

나는 그 순간에 클로이가 깨달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녀와 캐서린이 느꼈던 감정은 거짓이 아니었음을, 하지만 캐서린에게는 보다 더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음을. 클로이를 곁에 두며 캐서린이 자신의 가족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클로이는 캐서린에 대한 애착을 거두지 않고 멀어지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녀의 바람대로 사라지고자 한다. 그녀가 캐서린의 눈앞에서 세상을 떠나는 길을 택한 이유다. 그렇지 않고서야, 영화가 그녀의 퇴장을 아름답게 묘사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녀는 사랑을 했다

<클로이>에 대한 글을 쓰기 전에, 영화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인터넷을 검색했다. 대부분의 관람객 평가들이 이런 식이었다. '애정 결핍이었던 여성의 잘못된 선택', '광기와 집착이 만든 비극적 최후'. 너무 화가 났다. 왜 클로이의 마음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과 광기인 것일까. 그녀의 '선택'은 왜 '애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되지 않는가. 클로이가 성매매 여성이기 때문에? 그녀가 이성애 결혼 관계 내부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성애 중심의 정상가족 규범은 체제 외부의 사랑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만든다. 아예 감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추행 혹은 광기로 치부될 뿐이다. 누가 더 성실했고, 더 많은 것을 포기했으며, 그 내용이 무엇이었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다른 모든 사랑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들은 보편이자 모범으로 남는다. '사랑이 광기와 집착으로 변한 여성들'이 등장하는 치정극이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이유다.

 영화 '클로이'

영화 '클로이'ⓒ 시너지


영화의 마지막, 카메라는 캐서린의 아들과 데이비드 그리고 캐서린의 모습을 차례로 비춘다. 그리고 끝에는 화면 위로 클로이가 캐서린에게 그토록 선물하고자 했던 머리핀이 등장한다. 나는 처음에 그것이 이성애 중심의 정상가족이 무엇을 외부로 두고 배제하면서 유지되는지 상징한다고 적으며 글을 마치려 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그보다 캐서린이 자신을 향한 클로이의 감정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기억하려 했다고 믿고 싶다. 응당 그래야만 한다. 내게 있어 클로이는 이 영화에서 누구보다 깊은 사랑을 한 캐릭터였다. 단지 그 마음이 제도와 규범을 벗어나있기에 편견과 오독에 휩싸일 여지가 많았을 뿐이다. 어느 누구도 그녀의 애정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나라도 그렇게 읽고 싶다. 그녀의 이름은 이 영화의 제목이 될 자격이 있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