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했던 여성 예능인들의 활약이 최근 들어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전지적 참견시점>을 통해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영자를 비롯해 <나혼자 산다> <짠내투어>의 박나래, <전지적 참견시점> <히든싱어>의 송은이, <랜선 라이프> <밥블레스유>의 김숙, 최근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해 큰 호평을 받은 장도연 등이 그 주인공이다.

아직도 남성 위주의 기획이 훨씬 더 많은 예능계에서 이들은 어떻게 새롭게 빛날 수 있었을까.

'줌마테이너'의 그림자, 너무 짙었다

 줌마테이너들의 주무대였던 MBC <세바퀴>

줌마테이너들의 주무대였던 MBC <세바퀴>ⓒ MBC


한 때 '줌마테이너' 열풍이 예능계를 강타한 시절이 있었다. MBC <세바퀴>로 시작된 줌마테이너들은 거침없는 입담, 성적인 농담을 걸쭉하게 풀어내는 뻔뻔함,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돌발행동 등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인기몰이를 했다. 이경실, 박미선, 조혜련, 김지선 등이 이 시기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줌마테이너들이다.

문제는 줌마테이너의 예능 스타일이 점점 자극적으로 변해갔다는 것이다. 주무대였던 <세바퀴>에서 그들은 "반갑다, 미친X 같다", "줄여서 개라고 그러지 뭐" 등의 발언으로 막말 논란에 휩싸였다. 2010년에는 줌마테이너의 리더격이었던 이경실이 MBC 방송연예대상 MC로 나섰다가 막말 진행 논란에 휩싸여 공개사과를 하는 일도 벌어졌다.

거듭된 막말 논란에 <세바퀴>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징계 조치를 3번이나 받을 정도였고, 논란이 가중되면서 줌마테이너로 인기를 모았던 여성 예능인들의 기세 역시 시들해졌다. 처음의 등장과는 달리 줌마테이너들의 예능 스타일이 점차 고착화 되며 식상함이 가중된 탓이 컸다. 보다 새로운 것을 원하는 시청자들의 욕구를 제 때에 만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세바퀴>의 하락세 이후, 줌마테이너들은 각자 도생에 나섰지만 현실의 벽은 녹록치 않았다. 이경실이 사생활 문제로 방송을 중단하는 등의 악재가 이어지는 와중에 줌마테이너들이 활약할 만한 프로그램이 더 이상 제작되지 않았고, 결국 그들은 예능의 '양념' 역할을 하는 수준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줌마테이너의 명맥을 유지한 것은 박미선 정도였다.

하지만 2015년 KBS <해피투게더>를 시작으로 줌마테이너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던 박미선까지 지상파 메인 MC 자리에서 물러나기 시작하면서 여성 예능인 전체의 위기의식은 더욱 팽배해졌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는 대명제가 여성 예능인들 뿐 아니라 전체 예능계에서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김숙의 등장'과 '이영자의 전성기'

 줌마테이너의 그림자를 완전히 걷어낸 개그우먼 김숙

줌마테이너의 그림자를 완전히 걷어낸 개그우먼 김숙ⓒ JTBC


이때 혜성처럼 등장하며 전혀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인 인물이 바로 김숙이다. 김숙은 기존 가정에 얽매이고 남편에게 무시받기 일쑤였던 아줌마들의 일상을 단호히 거부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JTBC <님과 함께 시즌2-최고의 사랑>에서 윤정수와 가상부부로 출연한 김숙은 "남자는 조신하게 살림이나 해라. 돈은 내가 번다", "남자 목소리가 담장 넘으면 패가망신한다", "여자가 하는 일에 너무 토를 단다", "남자는 그런 거 묻는 거 아니다. 하라면 빨리 해라" 등 기존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부수는 발언으로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이끌어 냈다.

남자 예능인들 곁에서 양념 정도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프로그램의 중심이 되어 분위기를 이끄는 김숙의 파격적 진행 스타일은 여성 예능인들이 가진 진가를 재확인 시켜 준 전환점이 됐다. 이후 그는 <언니들의 슬램덩크> <비디오 스타> <뜨거운 사이다> 등 여성 중심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줌마테이너의 그림자를 예능계에서 걷어내는 데 일조를 하게 된다.

김숙이 여성 예능인의 위상을 재정립했다면 박나래는 이를 더욱 '대중화'시킨 인물이다. 그는 특유의 넉살과 인간미, 나름의 여성미와 섹시미를 내세워 기존과 차별화된 여성 예능인으로서의 개성과 정체성을 확립했다. 특히 <나 혼자 산다>를 통해 기안84와의 '썸'이 부각되면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까지 더해졌다.

지난해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여성으로선 유일하게 대상 후보로 거론된 그는 올해도 <나 혼자 산다> <짠내투어> <비디오스타> <슈가맨2> 등으로 브라운관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특히 지금의 박나래를 만들다시피 한 <나 혼자 산다>의 인기가 꾸준히 유지 되고 있어 2018년 유력한 대상 후보로 다시 손꼽히는 상황이다.

화룡점정은 '제 2의 전성기'를 맞은 이영자의 부활이다. <안녕하세요> <택시> 등을 통해 대중과 꾸준히 호흡하며 안정적 연예 생활을 영위해 온 이영자는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먹방을 선보이며 1990년대 못지않은 파괴력을 선보이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의 먹방이 그저 먹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전문성과 표현력이 얹어져 풍부한 재미를 이끌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뚱뚱한 여자 연예인들이 자신의 몸매를 비하하거나, 혹은 놀림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자조적인 웃음을 줬던 것에 비해 이영자는 먹는 것 그 자체의 즐거움을 설파함으로써 다수 대중과 공감대를 자연스럽게 형성했다. "살아살아 내 살들아!"를 외치지 않아도,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모습'만으로 웃음을 줄 수 있다는 소중한 진리를 그는 데뷔 27년 만에 스스로 증명해 보인 것이다.

여성 예능인, '나'를 말하기 시작하다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개그우먼 이영자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개그우먼 이영자ⓒ MBC


김숙, 박나래, 이영자, 송은이 등 최근 예능계를 이끌어 가는 여성 예능인들의 공통점은 확고한 자기 정체성을 갖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남성 위주의 시각과 편견, 사회가 요구하는 고정적인 틀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개성, 끼와 재능을 단호하고 분명하게 드러내며 대중과 교감했다는 점은 매우 괄목할만한 성과다.

자신을 사랑하는 여성 예능인들이 대세가 된 지금, 이제 예능계에 남은 단 한 가지 과제는 '이들의 계보를 이을 새로운 인물을 어떻게 발굴해 낼 것이냐'다. 모쪼록 이들의 성공이 일시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생산적이고 확산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를 대한민국 예능을 사랑하는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바라고 또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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