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40%를 넘기며 종영한 KBS2의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은 올 상반기 지상파 VOD 순위 1위를 차지하며 여전히 뜨거운 반응을 불러내고 있다. '따뜻한 주말 가족극'을 표방했지만 이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불러 모은 건 극 중 재벌 3세인 최도경(박시후 분)과 '흙수저' 서지안(신혜선 분)의 '러브 스토리'였다.

소현경 작가는 주체적인 서지안의 삶을 통해 '역 신데렐라 스토리'를 추구했다. 재벌 3세인 최도경은 서지안을 만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이후 당연히 계승 받을 듯하던 그룹의 회장 자리를 걷어찬다.

최도경은 서지안에게 영향을 받아 맨몸으로 '나무 사업'을 개척하고 자신은 물론 아버지·어머니 등 혈연 중심의 그룹 경영을 일소하여 '재벌 개혁'을 이뤄낸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황금빛 내 인생>이야말로 진짜 '신데렐라 판타지'일지도 모르겠다. 재벌 3세가 의식의 변화를 일으켜 재벌가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그 내용만으로도.

 '강유미의 재벌 3세 탐구기'를 다룬 < MBC 스페셜 > 중 한 장면

'강유미의 재벌 3세 탐구기'를 다룬 < MBC 스페셜 > 중 한 장면 ⓒ MBC


 '강유미의 재벌 3세 탐구기'를 다룬 < MBC 스페셜 > 중 한 장면

'강유미의 재벌 3세 탐구기'를 다룬 < MBC 스페셜 > 중 한 장면 ⓒ MBC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최근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물불 가리지 않고 발로 뛰는 모습으로 두각을 나타낸 강유미가 이번엔 재벌 3세를 탐구하기 위해 나섰다.

지난 30일 방송된 < MBC 스페셜 > '강유미의 재벌 3세 탐구기'는 재벌가의 민낯을 보여줬다. 방송에 나온 탐구의 시작은 언니에 이어 세상을 다시 한 번 떠들썩하게 만든 한진가 재벌 3세 조현민 대한항공 전 전무였다. 직원 등을 상대로 물컵을 던지고 고성의 폭언을 했다던 조 전무는 경찰 포토라인에 서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과연 정말 죄송한 마음인 걸까? < MBC 스페셜 >의 질문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재벌가의 갑질, 그 배경과 이유는 무엇일까?

재벌들의 심리, 특권 의식에서 폭언·폭행까지

 '강유미의 재벌 3세 탐구기'를 다룬 < MBC 스페셜 > 중 한 장면

'강유미의 재벌 3세 탐구기'를 다룬 < MBC 스페셜 > 중 한 장면 ⓒ MBC


방송에서 고급 승용차 뒷좌석에 타고, 물컵을 던지며 악을 써보던 강유미는 다른 세상을 경험한 듯하다고 소회를 밝힌다. 일찍이 개그맨이 되기 위해 손목에 무리가 올 정도로 커피 전문점에서 일하기도 했고, 다양한 알바를 전전하기도 했던 강유미는 8살 때부터 외제차를, 비행기 1등석을 탔다는 조현민의 삶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전문가를 찾아나선다.

심리 연구소 소장 황상민씨는 이런 재벌 3세들의 '폭언'의 근저에는 돈이나 가진 것을 통해 구축된 그들의 삶에서 비롯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즉 자신 외에는 가족도, 친지도 믿을 수 없는 삶을 살아온 그들에게는 타인에 대한 피해 의식이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그렇기에 자신에게 어떤 위해(?)를 가한 타인에 '복수'하고 싶은 욕망이 불타오른다는 것이다.

또한 < MBC 스페셜 >에서는 이런 재벌들의 '특별한 피해 의식'에 더하여, 가진 자들의 특권 의식과 무도덕성을 심리적으로 분석한다. 예로 나오는 실험에서 UCLA의 폴 피프 교수는 100쌍의 사람들에게 동전 던지기 시합을 하도록 한다. 시합에 앞서 이들은 부유한 사람들과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 두 부류로 나뉜다. 그런데 동전 던지기 시합 과정에서도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보다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무례한 태도를 보인다. 또한 이 실험에서는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에 무지하며, 심지어 동전 던지기 시합 과정에서도 물질적 성공을 과시하려 든다는 결과가 도출된다.

 '강유미의 재벌 3세 탐구기'를 다룬 < MBC 스페셜 > 중 한 장면

'강유미의 재벌 3세 탐구기'를 다룬 < MBC 스페셜 > 중 한 장면 ⓒ MBC


< MBC 스페셜 > 제작진은 폴 피프 교수의 실험 결과를 한국 상황에 적용해 보고자 한다. '값비싼 고급차가 불법을 자행하는 경향이 많다'는 보고서에 근거하여 강남 교차로에서 불법 유턴하는 차량의 가격대를 분석한 것이다. 불법 유턴은 벌칙금 6만 원에 벌점이 30점 적립되는 불법 행위이다. 방송에서 3시간 동안 강남 교차로에서 불법 유턴을 한 차량을 보면 4800만 원 이하 차량보다 5800만 원 이상대의 차량이 훨씬 많았다. 심지어 천만 원대 이하 가격의 차량은 대부분 법 질서를 충실히 지켰다. 반면, 5천만 원에서 7천만 원대 가격의 차량 70% 이상이 불법을 자행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부유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규범을 신경 쓰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경향성을 보였다. 이런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 공적인 영역에서 책임자의 자리를 맡는다면 어떻게 될까? 바로 현재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재벌 '갑질' 문제가 그 가정의 결과 아닐까.

이른바 '갑질'로 나타나는 재벌들의 행태는 그야말로 이중적이다. < MBC 스페셜 > 방송에 따르면, 경찰 포토라인에서 고개를 숙이며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던 재벌 3세들은 정작 카메라가 사라진 법정에서 전혀 다른 태도로 일관했다고 한다. 이들은 공적인 상황에서는 가장 품위 있는 듯하지만, 사적인 상황이 되는 순간 돌변하는 셈이다.

 '강유미의 재벌 3세 탐구기'를 다룬 < MBC 스페셜 > 중 한 장면

'강유미의 재벌 3세 탐구기'를 다룬 < MBC 스페셜 > 중 한 장면 ⓒ MBC


이와 같은 재벌들의 이상 심리를 알 수 있는 가장 적나라한 사례 중 하나가 바로 빈번하게 문제가 되는 '운전기사 폭행 사건'이다. 이른바 '리모컨질'이라 통칭되는 이러한 갑질 행태는 이름 대신 "야!", "개XX야"라고 운전기사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 '달려'라는 지시에 갓길 운행은 물론 빨간불 정지 신호에도 운전 기사들은 달려야 하고, 명령을 어겼을 때는 구타가 돌아온다. 영화 <베테랑>의 모티브가 된 재벌 회장의 '맷값 폭행'이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범사'인 셈이다.

재벌에 관대한 사회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의 최도경이 평범한 사람인 서지안과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을 걱정을 하는 장면에서 드러나듯이, 소위 '가진 자'들은 철저히 그들만의 리그에서 자라난다. < MBC 스페셜 >이 비추는 장면에서 외국인 학교를 나와 아버지가 후원하는 미국 남가주 대학을 다닌 이들은 자신과 비슷한 이들과만 관계를 맺고 자란다.

인간의 공동체 의식은 자신과 상호작용을 하는 이들을 통해 자라난다. 어려운 반 아이들을 보며 타인에 대한 이해심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차단당한다. 부유한 이들에게 돈이 없는 사람들은 이해불가의, 혹은 애초에 이해할 가치조차 없고 나와 다른 종류의 인간이나 돈을 주고 명령을 내리는 대상이 될 뿐이다. 더 나아가 부유한 이들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 주었던 돈은 그들에게서 '객관적 판단의 능력'을 앗아간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재벌가의 자제라는 이유만으로 국가적인 경제의 책임을 맡긴다는 건, '자살 행위와도 같다'고 박노자 교수는 단언한다.

 '강유미의 재벌 3세 탐구기'를 다룬 < MBC 스페셜 > 중 한 장면

'강유미의 재벌 3세 탐구기'를 다룬 < MBC 스페셜 > 중 한 장면 ⓒ MBC


 '강유미의 재벌 3세 탐구기'를 다룬 < MBC 스페셜 > 중 한 장면

'강유미의 재벌 3세 탐구기'를 다룬 < MBC 스페셜 > 중 한 장면 ⓒ MBC


그런데 우리 사회는 재벌의 범죄에 대해 어떤가? 안타깝게도 우리의 법은 그들에 대해 오랫동안 '솜방망이 처벌'의 관행을 이어왔다. 가벼운 처벌에 이런저런 법적 조항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사실상 면죄부를 쥐여주는 셈이다.

대통령도 감옥에 가지만 재벌들은 이른바 '징3집5'(징역 3년, 집행유예 5년)라는 속설 속의 법칙처럼 대부분 집행유예의 판정을 받아 교도소나 유치장에서 유유히 걸어나온다. 지난 2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 유예 4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보도를 통해 알려졌듯이 전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한진 일가 4명을 상대로 청구된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됐다.

야구 방망이를 휘두른 최철원 M&M 회장은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받고 2심에서 집행 유예로 풀려났다. 반면 야구 방망이로 폭행을 당했던 유홍준씨는 마치 앙갚음이라도 당하듯 업무 방해, 일반 교통 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조현아의 갑질 대상이 됐던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은 온갖 소문에 시달리고, 회사를 다니기 위해 오늘도 잠들기 전에 수면유도제를 입에 털어넣는다.

 '강유미의 재벌 3세 탐구기'를 다룬 < MBC 스페셜 > 중 한 장면

'강유미의 재벌 3세 탐구기'를 다룬 < MBC 스페셜 > 중 한 장면 ⓒ MBC


 '강유미의 재벌 3세 탐구기'를 다룬 < MBC 스페셜 > 중 한 장면

'강유미의 재벌 3세 탐구기'를 다룬 < MBC 스페셜 > 중 한 장면 ⓒ MBC


방송에 따르면, 재벌이 저지른 것과 같은 동종 범죄의 경제 사범 중 단 44%만이 집행 유예를 받는 반면, 재벌들 72%가 집행 유예로 풀려난다고 한다. 더구나 그들의 집행 유예 사유는 대부분 '사회 공헌'과 '경제 발전에 기여'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석방과 관련하여 해당 판결을 내린 판사에 대한 각종 의혹이 등장했지만, 다큐가 지적하는 건 판결을 내린 개인이 아니라 법조계 전반을 지배하는 '인지 포획'이다. 즉 '재벌이 살아야 한국 경제가 산다', '재벌이 곧 한국 경제'라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도그마가 법 앞에서 재벌들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큐에서 재벌들의 심리를 분석하고, 그들의 사고방식을 보며 '다른 별'의 사람들 같다는 걸 이해하면 뭐하는가. 소통이 아닌 일방적인 이해로는 '재벌은 외계인보다도 소통 불가한 존재들'이라는 먹먹한 현실에 도달할 뿐이다.

< MBC 스페셜 >은 묻는다. 과연 '땅콩 회항' 조현아에 대한 처벌이 강력했다면 연이어 동생 조현민과 그의 엄마 이명희의 갑질 논란이 되풀이 되었겠느냐고 말이다. 방송에서 재벌들을 알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강유미의 한마디는 의미심장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재벌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처벌'이라고.

 '강유미의 재벌 3세 탐구기'를 다룬 < MBC 스페셜 > 중 한 장면

'강유미의 재벌 3세 탐구기'를 다룬 < MBC 스페셜 > 중 한 장면 ⓒ MBC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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