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일까지 공연하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이미지 및 포스터.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올해 10주년을 맞이해 서울 공연 종료 후 지방 공연 순회 예정 중에 있다.

오는 5일까지 공연하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이미지 및 포스터.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올해 10주년을 맞이해 서울 공연 종료 후 지방 공연 순회 예정 중에 있다.ⓒ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최근 공연계에는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각색한 뮤지컬 두 편이 절찬리에 무대에 오르고 있다. 하나는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노트르담 드 파리> 다른 하나는 올해 초연하는 뮤지컬 <웃는 남자>다. 그리고 현재 공연 중인 것은 아니지만 뮤지컬 <레 미제라블>도 빅토르 위고 작품이다.

공연계가 유독 빅토르 위고의 작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그 해답은 아마도 '프랑스의 대문호'라는 명성에 걸맞게 200년 넘도록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그의 작품에 있지 않을까. 머나먼 프랑스 땅의 작가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작품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테니 말이다.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은 오늘날 각색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재탄생해 여전히 사랑 받고있다. 그 중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노트르담 드 파리>는 1998년 우리나라에 정식 수입돼 뮤지컬계에서도 명실상부 스테디 셀러로 자리매김한 공연이다. 공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라는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테니 그 명성은 알 만하다.

뮤지컬을 보고 난 뒤 드는 생각은 '10년 동안 사랑받은 데엔 다 이유가 있구나'였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노래와 춤을 철저하게 분리해 서사를 이끌어가는 프랑스 뮤지컬의 '정수'를 보여줬다. '대성당들의 시대', '아름답다(Belle)',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 등 작품을 대표하는 곡에서 잇따르는 고음도 청각을 즐겁게 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현대무용, 아크로바틱, 발레, 브레이크 댄스 등 무용의 여러 분야가 혼합된 안무는 '정녕 이것이 뮤지컬이 맞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오감이 짜릿했달까.

'불쌍한' 꼽추 콰지모도? 사실은 납치 미수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한 장면.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한 장면.ⓒ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인간세계를 깊이 탐구한 이야기에 수려한 은유로 표현한 가사, 원작의 권위에 걸맞은 시청각적 자극이 있었다. 그럼에도 <노트르담 드 파리>를 관람하는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여자 주인공 에스메랄다 시점에서 명백하게 '안타고니스트'(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인 페뷔스와 프롤로 때문만은 아니었다. 각 개인이 놓인 사회적 계층을 막론하고 극중 남성들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기에 여념 없어 보였다.

페뷔스와 프롤로의 사랑이 검은 욕망으로 표현되는 한편, 꼽추(척추 장애인) 콰지모도의 사랑은 새하얀 순수함으로 표현된다. 페뷔스와 프롤로가 에스메랄다를 소유하려는 것과 달리, 콰지모도는 위기에 처한 그녀를 돕고 보호하려 한다. 또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들 중 유일하게 그녀의 죽음을 곁에서 슬퍼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돌이켜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의 첫 만남을 생각해보자. 이들은 프롤로의 명으로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를 납치하려 들었을 때 처음 만난다. 콰지모도 심성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납치를 시도했으리라는 것쯤은 우리 모두 알고있다. 그렇다면 콰지모도의 선량한 본심으로 그의 행위를 정당화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에스메랄다 입장에서 그는 '납치 미수범'일 뿐이다.

그럼에도 관객이 콰지모도의 죄목을 눈 감아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뮤지컬은 관객이 콰지모도에게 동정심을 갖도록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콰지모도가 사랑에 빠진 순간, 그의 심리는 아름다운 가사로, 선율로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추한 자신이 아름다운 그녀를 사랑하고, 때문에 그녀는 나와 어울리지 않고, 그녀는 한 곳(페뷔스)만을 바라본다'며 말이다.

에스메랄다는 어떨까? 그녀는 납치당할 뻔 한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준 페뷔스에게 반한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설렘을 노래한다. 그게 끝이다. 콰지모도와 첫 만남에서 에스메랄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두려워하면서도 아버지 클로팽의 명령으로 에스메랄다는 콰지모도에게 물을 건넨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이어지는 곡 '내 집은 그대의 집' 중 에스메랄다는 "아직 무섭지만 당신이 좋아요"라고 말한다. 에스메랄다가 납치 미수범에게 호의를 느끼기까지 심리적 진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관객이 인물에게 공감하기 위해서는 유기적인 흐름이 있어야 가능하다. 우리가 콰지모도를 이해하는 순간 에스메랄다의 입장은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콰지모도를 관객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는 반면, 에스메랄다의 심정은 설명해주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콰지모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다.

해설자인가 편향적 변론자인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한 장면.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한 장면.ⓒ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에스메랄다를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로 전락시킨 게 누군가? 이 작품의 해설자 그랭구아르다. "1482년의 욕망과 사랑의 이야기"는 기실 그랭구아르의 입을 통하여 오늘날 객석에 닿는다. 그는 원작자 빅토르 위고 만큼이나 휴머니즘적이다. 페뷔스에게 두 여자를 사랑하는 괴로움을 말하도록 하고, 프롤로에게 신부 신분으로 사랑을 꿈꾸는 고통을 발언하도록 허했으니 말이다.

헌데, 이것을 에스메랄다가 발언권이 없는 점과 엮어서 생각한다면 참으로 아이러니다. 그의 휴머니즘은 남성 캐릭터에게만 적용된다. '에스메랄다를 가지고 싶다' 혹은 '에스메랄다와 잠자리를 하고싶다'라는 노골적인 욕망을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로 노래하는 남성들의 모습은 불편하게 느껴진다.

"Belle. 너를 사로잡고 있는 악마가 신을 향한 내 눈을 가리는가. 너로 인해 눈을 뜬 욕망에 갇혀 저 하늘을 더 바라볼 수 없도록. (중략) 그녀를 향한 욕망은 죄악인가, 이 천하고 더러운 한 여자의 등에 인류의 십자가가 놓여 있는 그 오 Notre dame 오 단 한번만 그녀를 나의 것이 되게 해주오 에스메랄다." - 아름답다(Belle) 가사 중에서.

그랭구아르는 해설자 역할을 하면서도 극중에서 캐릭터로 등장하기도 한다. 에스메랄다는 클로팽에게 죽을 뻔한 위기에 처한 그랭구아르를 구하기 위해 애정 없는 결혼도 마다하지 않았다(집시들에게는 침입자가 들어왔을 때 누군가와 결혼하지 않으면 그 침입자는 처형을 당한다는 룰이 있다).

그렇다면 그랭구아르는 에스메랄다에게 목숨을 빚진 셈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그랭구아르는 에스메랄다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남편으로서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는다. 해설자로서 그저 방관할 뿐이다. 에스메랄다는 프롤로의 모략 그리고 그랭구아르의 방관 속에서 싸늘하게 주검이 되었다.

굳건한 '대성당들의 시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한 장면.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한 장면.ⓒ 마스트엔터테인먼트


<노트르담 드 파리>는 인간 세계를 깊이 탐구하며 인간의 본질을 잘 담아낸 명작으로 평가 받는다. 필자 역시 동의한다. <노트르담 드 파리>만큼 인간 군상을 잘 표현한 뮤지컬이 또 어디 있으랴. 그러나 <노트르담 드 파리>가 그리는 인간 군상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물론 19세기에 발표된 소설을 오늘날의 잣대로 평가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2018년 무대에 다시 올랐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각색에 좀 더 세심했어야 하는 이유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과거에 칭송받았던 작품들은 어느 한 순간 자취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점차 빛을 바래가며 쇠퇴한다. 다시 말해 고전 명작도 변화를 위해서는 비판의 장을 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전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너무 무비판적으로관람하지 않았나 싶다. 빅토르 위고가 살던 시대와 지금은 얼마나 다를까. '대성당들의 시대'는 오늘도 굳건한 것은 아닐까.

덧붙이는 글 김상률 (2013). 우리 시대의 '레미제라블'. 문학과영상, 14(3) 참조, 극장MD샵 (https://theatremdshop.wixsite.com/mdshop) 중복 게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제 아무리 대단한 가치를 이야기하더라도 '재미'가 없는 극은 그 가치를 다 하기 힘듭니다. 그것을 소비해줄 관객이 없으니까요. 재미있게 쓰여진, 그러나 그 끝에는 오래도록 되새겨질 여운을 남기는 극을 찾기 위해 오늘도 객석에 존재합니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