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흘러가는 것이고 사람도 그렇다. 새로운 인연이 생기면 떠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일이 익숙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유독 마음이 아픈 순간이 있다. 같은 신념을 공유했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함께 행동했던 사람의 경우다. 그나마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떠나간 사람은 응원이라도 하게 된다. 지쳐서, 상처를 받아서, 아파서, 실망해서 함께하던 활동을 포기하는 경우는 그렇게도 못한다.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자기 의사가 아니라 등이 떠밀린 사람들. 어떤 사람은 이따금 연락이 닿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간간이 다른 사람을 통해서 근황을 전달받곤 한다. 하지만 아예 세상을 등져서 그럴 가능성조차 단념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가장 마음 쓰린 일이다.

그런 삶들을 생각한다. 참으로 선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런 이들이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좋은 가치를 실현하겠다고 나설 때 두려움에 빠진다. 선한 사람들은 상처 받기 쉽다. 현실은 계속해서 깊게 바라볼수록 암담하기 그지없다. 착하고 여린 마음에 계속해서 생채기가 난다. 새살이 돋을 여유도 없이 그런 일이 반복된다. 감정이 허약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게 된다. 가장 최악의 경우는 거기에 자괴감까지 덮치는 때다. 누구나 그릇된 판단을 내리고 옳지 못한 결정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선한 사람들은 그 속에서 자신이 그토록 대항했고 그래서 절대 닮고 싶어 하지 않았던, 부조리한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아무리 티끌만한 흠결이라도 예외 없다. 그저 실수였다고 지나가지 못한다. 부고를 접하면 늘 생각한다.

'왜 그렇게 착해서 대책 없이 선해서, 나는 뻔뻔하게 잘 살고 있는데, 너무 잘 살고 있는데'

죽은 이를 향한 편지

이효리, 제주의 영감받은 소길댁 가수 이효리가 4일 오후 서울 화양동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열린 정규 6집 앨범 < BLACK > 발매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앨범을 소개하고 있다. 2013년 5집 이후 4년만에 선보이는 6집 < BLACK >은 제주 생활을 통해 얻은 영감들을 담아 이효리 본인이 10개의 트랙 중 9곡의 작사와 8곡의 작곡에 참여해 팝과 발라드, 힙합, 소울, 일렉트로니카를 넘나드는 곡들을 수록한 앨범이다.

가수 이효리ⓒ 이정민


그렇게 사라져간 사람들을 위해 편지를 쓴 일이 몇 번 있다. 하지만 진짜 수신인은 대부분 망자가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이었다. 생과 사의 경계는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얕지 않다. 나는 나의 말이 그들에게 닿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래서 내게 중요한 일은 남은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혹은 상실로 인한 상처를 다독이기 위해,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 동기를 전달하기 위해. 하지만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미안함이 들었다. 이미 늦었지만 정말로 떠나간 사람을 위해, 오직 그들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을까? 어쩌면 나는 너무 쉽고 편하게 작별을 한 것은 아닐까?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떠난 사람은 위로를 받을까. 지금 그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고민이 절박해지던 찰나에 우연히 머릿속에 떠오른 노래가 있다. 바로 가수 이효리의 '다이아몬드'다. 이 노래는 그녀의 여섯 번째 앨범 < BLACK >이 정식으로 발매되기 전에 JTBC <뉴스룸>에서 먼저 공개되었고 소소한 화제를 불러 모았다. 당시 인터뷰에 따르면 이효리는 위안부 할머니가 돌아가신 소식을 접하고 이 노래의 가사를 썼다고 한다. 또한 비단 죽음이 아니더라도 권력이나 기업에 맞서 싸우다 힘없이 돌아선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노래는 온전히 떠나가는 사람을 향한다. 작별을 고하는 동시에 위안을 전달한다.

오직 떠나가는 사람을 위한 말

'그대여 잘 가시오/ 그동안 고생 많았다오/ 그대여 편히 가시오/ 뒤돌아보지 말고 가시오'
'지나온 서러웠던 나날들/ 눈물로 모두 씻어 보내고/ 꽃 같던 그때 얼굴 그대로/ 웃으며 떠나가시오'

'다이아몬드'의 가사를 곱씹으며 나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이효리가 참 부러웠다. 아니 그저 한 명의 사람으로서도 그랬다. 그녀가 쓴 가사들은 모두 자신이 아니라 떠나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느끼는 슬픔과 만들어 낸 이별이 단순히 남겨진 사람의 고통이라면 떠나는 사람의 발길이 가벼울 리가 없다. 그래서 이효리는 노래에서 상대방이 충분히 고생했고 서러운 시간을 보냈기에 편히 떠나고 울어도 된다고 말한다. 또한 그녀는 부러 자신의 슬픔과 아쉬움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자리와 감정을 비우고, 모든 말을 상대방을 보듬기 위해 사용한다. 떠나는 사람을 온전히 배려한다. 명석하고 또한 겸손하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 쓸 수 없었을 것이다.

 JTBC 뉴스룸에 출연했던 이효리

JTBC 뉴스룸에 출연했던 이효리ⓒ JTBC


그런데 왜 '다이아몬드'였을까. 앞서 언급한 인터뷰에서 이효리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실은 누가 깰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남이 아무리 깨려고 해도 (당신은) 이미 너무 단단한 다이아몬드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 또한 마찬가지로 떠나는 이들에게 필요한 말이다. 누군가 스스로의 생을 끝내는 이유가 자기 자신에게 실망해서라면, 스스로가 망가지고 부서졌다고 느껴서라면 우리가 해야 하는 말은 그것을 부정하는 게 아닐까. 당신은 결코 타락하거나 실패한 존재가 아니라고 우리는 말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보아온 선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했지만 곁에 존재하는 이들을 신뢰하는 데는 관대했다. 그래서 그들은 상처받기 쉽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회복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게 된다. 나는 믿는다. 선량했던 그 사람들은 결코 우리의 이야기를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를 믿기에 우리의 말도 믿을 것이다. 자신이 실패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대는 이미 다이아몬드

물론 누군가는 볼멘소리로 말할지 모른다. 이게 모두 무슨 소용이냐고. 어차피 죽은 사람은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리의 말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나 또한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해보자. 단지 우리의 말 몇 마디로 상대방이 괜찮아지길 바라는 것은,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은 어쩌면 다소 이기적인 바람이 아닐까. 특히나 그들이 받았던 상처의 깊이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이것은 상대방이 살아있든 죽었든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나는 위로가 불확실함과 불가능함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필요하면 끊임없이 행해져야 하는 의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것은 위로하는 사람이 지켜야할 윤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위로의 성격은 사과와도 비슷하다. 때문에 나는 죽은 이를 향한 위로는 속죄와 비슷하지 않나 생각한다. 전달되든 되지 않든, 받아들여지든 말든 망자가 살아생전 필요로 했던 말과 따스함과 보살핌을 표하는 것. 비록 그들이 없을지라도 그 일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 그 과정에서 우리가 상대방을 충분히 아끼지 않았음에 미안해하는 것. 그래서 지금은 곁에 없는 선하고 아름다웠던 사람들에게 나는 끊임없이 말을 걸고 싶다. 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들이 그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 고결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다이아몬드'의 가사를 인용하고 싶다. 내가 위로를 전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말을 들을 자격이 있다.

'그대는 이미 다이아몬드/ 맑고 영롱한 다이아몬드/ 깨뜨릴 수 없는 다이아몬드/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그댄 다이아몬드'

영정 속 노회찬은 웃고 있었다  고 노회찬 의원 영결식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현관 앞에서 국회장으로 엄수됐다. 영정 속 노 의원이 밝게 웃고 있다.

고 노회찬 의원ⓒ 남소연



덧붙이는 글 다시 한 번, 노회찬 의원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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