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의 두번째 내한 공연

밥 딜런의 두번째 내한 공연 ⓒ A.I.M


햇볕이 심술을 부리던 7월 27일, 서울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밥 딜런(Bob Dylan)의 두번째 내한 공연이 펼쳐졌다. 2010년 첫 내한 이후 8년 만이다. 그 8년 사이 딜런은 '뮤지션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는 타이틀을 추가했다.

사실 딜런에게 노벨상은 부수적인 타이틀인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대중음악과 문학의 경계를 허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의 반열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딜런을 잘 모르는 관객들이 공연장을 찾은 데에도 이러한 배경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비오듯 흐르는 땀을 닦으며 공연장에 도착했다. 어두운 조명이 켜진 가운데 밥 딜런이 그의 밴드와 함께 천천히 걸어 나왔다. 50년이 넘도록 활동을 하고 앨범을 발표해 온 그인만큼, 다양한 시대의 음악들이 연주되었다. 2010년대에 발표한 < Tempest >부터, 대표적 명반인 < Highway 61 Revisited >와 < The Freewheelin' Bob Dylan >, < Blood On The Track >의 수록곡들이 고루 섞여 있었다.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Highway 61 Revisited' 등, 밥 딜런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명곡들도 들을 수 있었다. 아델(Adele)의 리메이크로 국내에서도 많이 알려진 'Make You Feel My Love' 역시 흘러나왔다. 예상하지 못 한 반가운 선곡이었다.

이브 몽탕(Yves Montand)의 명곡을 리메이크한 'Autumn Leaves'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딜런은 'Autumn Leaves'를 부를 때 공연 내내 잡고 있던 피아노를 잠시 놓고, 마이크 스탠드를 쥐어 보았다. 목소리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긴 딜런의 공연은 명곡 'Blowin' In The Wind'와 'Ballad Of A Thin Man'으로 마무리되었다. 두 곡 모두 1960년대 청년들의 반문화를 상징하는 곡이다. 수많은 청년들이 시위 현장에서 이 노래들을 부르고, 시위 구호에 이 노래 가사들을 썼으리라. 물론 평소에 듣던 버전과는 아주 달랐다, 그것은 세월의 풍파를 맞아 온 노인의 노래였다. 그러나 "How many..."로 시작하는 첫 소절만으로도 수많은 사람이 박수를 쳤다.

내가 가장 큰 박수를 보낸 것 역시 앵콜 때였다. 딜런의 음악 중 평소에 가장 즐겨 들었던 곡이 공연의 엔딩곡 'Ballad Of A Thin Man'이었기 때문이다. '미스터 존스'에게 말을 거는 이 곡이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 곡을 주류 기성 세대에 대한 조소, 혹은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였다. 지나간 시대를 증언하는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가사를 곱씹으며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시대를 마주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something is happening here
지금 여기서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어.

But you dont know what it is
하지만 당신은 그게 무엇인지 모르지.

Do you, mister jones?
그렇지 않아, 존스 씨?

- 'Ballad Of A Thin Man' 중


그저 묵묵히 노래할 뿐

밥 딜런 밥 딜런이 2018 아시아 투어를 기념해, 1962년부터 1966년 사이에 녹음된 곡들을 수록한 라이브 앨범을 발매했다.

▲ 밥 딜런 밥 딜런이 2018 아시아 투어를 기념해, 1962년부터 1966년 사이에 녹음된 곡들을 수록한 라이브 앨범을 발매했다. ⓒ 소니뮤직


밥 딜런의 공연에 화려한 연출은 존재하지 않는다. 멀리 있는 관객들에게 딜런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던 공연기획사 측에서는 대형 스크린을 설치했다. 그러나 결국 대형 스크린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꺼져 있었다. 딜런의 의사였다. 관객과의 소통 역시 부재했다. 공연 중에는 흔한 'Thank You. Korea' 같은 멘트도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마저도 그답다고 생각하니 아쉽지 않았다.

딜런은 원곡의 감동을 그대로 전달하는 데에 관심이 없다. 그는 원곡을 크게 변주해서 부르는데, 메인 멜로디 자체를 변형해서 부르는 경우가 잦다. 딜런의 난해한 목소리 역시 이 공연의 진입 장벽일 수 있다. 팔순을 바라보는 그의 목소리는 사포처럼 거칠다. 비슷한 연배의 폴 매카트니와 달리 달콤함이란 찾아볼 수 없다. 가사를 또박또박 부르지 않고 흘려 부르는 특유의 창법 때문인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 알지 못 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도 있다.

그의 역사적 위상만을 보고 공연장에 온 사람, 혹은 딜런의 팬이 아닌 사람에게 이 공연은 몹시 불친절할 것이다. 딜런의 공연은 세상에서 말하는 '재미'와는 거리와 멀다. 그는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노래할 뿐이다. 아예 관객을 염두에 두지 않고 노래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딜런은 수 십 년 동안 자유 의지에 충실했던 뮤지션이었다). 딜런이 내한 공연에서 보여준 이 불친절함 속에는 '멋'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었다. 그의 공연은 모호함, 그리고 불예측성으로 일관했던 자신의 삶을 닮았다. 어쩌면, 이 불친절함이 밥 딜런을 위대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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