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 감독의 신작 <인랑>에서 한효주는 임중경의 마음을 흔들면서 동시에 자신 역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이윤희 역을 맡았다.

김지운 감독의 신작 <인랑>에서 한효주는 임중경의 마음을 흔들면서 동시에 자신 역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이윤희 역을 맡았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일본 원작 만화를 '통일 한국'이라는 배경에 녹여낸 영화 <인랑>은 한효주 스스로 분기점이라 표현할 정도로 특별했다. 2012년 기획돼 장장 6년의 고민의 담겨 있는 이 작품에서 그는 이윤희라는 정체불명의 여성을 연기했다.

"쉽지 않은 캐릭터였다"고 그가 운을 뗐다. 2029년 경제 위기 등으로 혼란에 빠진 한국 사회에서 정부를 배척하는 무장시위단체 섹트, 그리고 그 단체를 섬멸해야 하는 특기대 간의 싸움에 이윤희가 설 자리는 없어 보였다. 영화에서 설명되는 이윤희에 대한 정보는 아픈 동생이 있고, 섹트 활동을 했던 부모를 여읜 존재라는 것뿐이다.

막중했던 무게감

그럼에도 이윤희는 극에서 특기대원 임중경(강동원)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고, 동시에 그 몰래 특기대를 견제하는 또 다른 정부 기관인 공안부에 매수된 채 자신의 임무를 해내는 등 복잡다단 관계에 놓인 캐릭터다. 친절하게 영화에서 모든 정보가 공개되는 인물이 아니기에 배우 입장에선 그만큼 표현하기 어려운 캐릭터기도 하다.

"쉽지 않았다. 그가 처한 상황도 일반적이지 않다. 처연하달까. 동생을 위해 선택한 일이지 않나. 그러다 임중경을 만나서 내면적으로 흔들리고, 작은 장면에서조차 수없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첫 촬영이 누군가를 암살하고 화장실에서 우는 신이었다. 그때 직감했지. '아, 촬영이 쉽지 않겠구나'(웃음) 호된 신고식이었다.

영화에서 이윤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집단에 속해있다. 특기대, 공안부, 섹트 등 말이다. 이윤희는 집단에서 떨어져 나온 뒤 기댈 곳이 없는 인물이다. 언제부터 그가 흔들리게 됐을까 생각했다. 사실 이윤희는 처음부터 혼돈의 시대가 만들어낸 희생자 아닐까. 그런 시대에선 신념을 갖고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윤희처럼 흔들리며 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배우 한효주.

배우 한효주.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한효주가 해석한 이윤희는 곧 시대의 희생자였다. 그러니까 정치, 사회적인 어떤 제도도 그를 보호하고 지켜줄 수 없다. 그런 배경에서 그는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여야 하는 일종의 이중 스파이가 돼야 했다.

"그 이중성을 표현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관객 분들로 하여금 재미를 느끼게끔 해야 해서 이 여자의 표정과 말이 진심일까 아닐까 의심할 수 있게끔 표현하려 했다. 이윤희가 변해가는 과정을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연기하려 했다. 제가 막힐 때, 힘들어 할 때 김지운 감독님께서 원작 애니메이션에 쓰인 음악 등 여러 노래를 들려주시며 도움을 주셨다. 결국 시나리오가 답이었다. 다른 인물들이 이윤희에 대해 말하는 대사들이 전부 힌트더라. 그걸 참고했다."

틀을 깨다

이윤희를 통해 한효주는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했다. "실제로 그런 혼돈의 시대에 산다면, 과연 어떤 신념을 갖고 서 있을까 생각했다"며 "개인적으로 <인랑>을 통해 저의 틀을 깨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배우 입장에서 <인랑>은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이 작품 이후로 저의 성숙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해왔던 캐릭터들과 다른, 다양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생겼다. 제가 겁이 많아서 그런지 뭔가 안정된 걸 하려는 성향이 있더라. 김지운 감독님도 그리 말씀하셨다. 이번 영화에서 그 틀을 벗고 좋은 평을 듣든 비판을 받든 오롯이 감독님께 맡겨보자 생각하고 임했다.

딴에는 늘 새로운 모습을 보이려 했는데 지금부터가 진짜 새로운 시작인 것 같다. 아직 보이지 않은 모습이 많다고 생각한다. 액션도 스릴러도 안 해봤다. 개인적으로 제가 맡을 캐릭터보다는 시나리오가 주는 전체적인 느낌을 보고 작품을 결정했던 것 같다. 이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줄 첫인상을 떠올리거든. 동시에 의미가 있는 이야기면 좋다."

 배우 한효주.

배우 한효주.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이 대목에서 한효주는 성장통을 언급했다. 영화 출연이 잠시 소원해졌을 즈음 그는 배우가 아닌 일상의 자신으로 살면서 하나의 질문을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배우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데 사람 한효주로서는 최선을 다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며 그는 말을 이었다.

"최근까지의 기간이 저를 성숙하게 하는 시간인 것 같다. 좀 더 담대하게 지금의 시간을 잘 보내야 배우로서 단단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람 한효주로선 좀 부끄럽다. 탄탄하게 스스로를 잘 다지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지금부터 차곡차곡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깊게 좋아하고 싶고, 깊게 알고 싶다. 가족 간의 일이든 친구 간 일이든 제가 눈을 마주치며 직접 만나는 사람들과 깊게 연을 맞고 싶다. 그리고 관심이 생기는 분야도 있다. 그 분야에도 깊게 들어가고 싶다. 깊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 계획 없이 그날그날 하자는 주의였는데 요즘 제 삶에 대해 계획을 세우려는 중이다."


고민한 만큼 성숙하는 법. 그런 고민들이 이미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방증 아닐까. <인랑>을 통해 그의 변화점을 미리 살펴보는 것도 올 여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배우 한효주.

배우 한효주.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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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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