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영화 <햄스테드> 메인 포스터 영화 <햄스테드> 메인 포스터

▲ 영화 <햄스테드> 메인 포스터 영화 <햄스테드> 메인 포스터 ⓒ 팝엔터테인먼트


01.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남녀가 만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래된 작품 속에서도 현대의 작품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모두 행복한 결말로 끝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비록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하더라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처음 설명하면서 다른 상황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상황'은 계급적 차이에서 시작된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계급이 형성되지만, 신분제 사회가 배경이 되는 역사극의 경우에는 신분이 그 계급적 차이가 된다. 당시 상황에서 신분적 차이보다 더 극적인 상황은 없었을 것이며, 누군가는 그런 상황의 전복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제도적인 신분제가 사라지면서 계급은 자연스럽게 부의 정도에 따라 다시 형성되기 시작한다. 과거와 같이 제도적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한 부의 정도에 따른 계급의 탄생은 구분의 대상만 달라졌을 뿐, 거의 유사한 모습이다. 때문에 위의 플롯은 현대에서도 그대로 통용되기 시작하는데, 19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미디어 산업이 크게 발달하면서 더욱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02.

영화 <햄스테드>에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런던의 교외 아파트지만, 중산층 이상의 삶을 누리며 나름대로 모자랄 것 없는 삶을 살아온 에밀리(다이앤 키튼 분)와 자신의 땅은 아니지만 에밀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건너편의 숲에서 판잣집을 짓고 살아가는 도널드(브랜던 글리슨 분). 조금도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고 진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이 이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이다. 위에서 설명한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남녀가 만난다'는 설정에 정확히 부합한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이 남기고 간 빚으로 인해 에밀리는 현재 부유한 상황이 전혀 아니지만, 그녀가 살고 있는 환경은 사실 중산층 이상의 느낌을 준다. 거액의 돈을 들여 건물 외관을 수리하거나 파티를 즐기려고 하는 부유한 이웃들은 모두 남편이 살아있을 적부터 오랜 시간 그들과 함께 인연을 맺어온 이들이기에 쉽게 연을 끊기 어렵다. 그 중에서도 아래층의 피오나(레슬리 맨빌 분)는 친하다는 이유로 그녀가 원하지도 않는 일들을 은근슬쩍 강요해 점점 불편해진 상태다.

반면, 도널드는 주변에 교류하며 지내는 이들이 아무도 없지만 나름대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생활 반경이 넓은 것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익숙해진 자신만의 리듬대로 17년이 넘는 삶을 살아왔다. 최근에 주변 마을 사람들이 개발을 이유로 지금 그가 살고 있는 집을 헐어버리려고 하는 것이 유일한 걱정. 그것만 제외하면, 그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았고 원하는 것도 없는 독립적인 삶을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러하길 바란다. 두 사람은 이처럼 완전히 다른 삶에 놓여있다.

영화 <햄스테드> 스틸컷 영화 <햄스테드> 스틸컷

▲ 영화 <햄스테드> 스틸컷 영화 <햄스테드> 스틸컷 ⓒ 팝엔터테인먼트


03.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남긴 짐을 처분하기 위해 정리하던 중 발견한 망원경으로 아파트 건너 숲을 들여다보다가 에밀리는 위험에 처한 도널드를 구해주게 된다. 개발을 진행 중인 건설사의 용역들이 도널드를 내쫓기 위해 찾아왔던 것. 이로 인해, 두 사람의 서로의 삶에 조금씩 관여하게 된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에밀리의 기존 삶에 관여하고 있던 이들의 눈에 도널드는 거리의 낭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고, 평생을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도널드에게도 에밀리를 끌어안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건 그들 스스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과정에서 선행되었어야 할, 자신의 마음을 여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도널드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던 인물이기에 사회적으로 비주류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그가 자발적으로 움직인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의 삶 속에 개입하게 되면서 비주류로 분류되기 시작한 케이스. 에밀리의 경우는 정반대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까지만 해도 이웃들과 교류하며 중산층 이상의 평범한 자신의 세계 속에서 주류의 삶을 이어왔기 때문. 남편의 죽음과 함께 가난과 외로움이 한데 찾아오면서 원래의 세계에서 점점 멀어지고 비주류가 되기 시작한다. 설명한 대로, 겉으로 보기엔 두 사람의 삶이 부의 정도에 따라 혹은 삶의 영역에 따라 완전히 다른 쪽으로 구분되지만, 심리적으로는 어느 정도 유사한 부분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04.

그런 두 사람의 옅은 유대 관계는 서로가 섞일 수 있는 여지가 되어 준다. 그리고 그 여지는 상대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해 앞으로의 삶을 바꾸어 가는 데 초석이 된다. 젊은 시절 사랑했던 여인이 아파하고 힘겨워할 때 그 곁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세상과 거리를 둔 채, 17년이라는 긴 세월을 자기 부정과 학대로 보낸 도널드는 그녀를 만난 이후 다른 사람의 사랑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부유한 삶 속에서 타인의 시선과 자신의 보이는 것들에 몰두되어 있던 에밀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 역시 도널드를 만난 이후 허영과 겉치레가 아닌, 자신의 의지와 목적대로 삶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임을 깨닫게 된다. 처음 언급했던 함께 해결해야 할 어려움 가운데 하나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현실적인 문제인 도널드의 퇴거 문제에 관한 것이다. 몇 번의 사소한 에피소드로 진행되던 이 부분의 내러티브는 중후반부의 법정 장면으로 넘어가면서 도널드가 살아온 생활터전을 위협하는 재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이어나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사회적 문제를 심오하게 다루어내거나 깊이 있는 고찰을 이끌어내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이 작품의 핵심은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중년의 사랑. 로맨틱 코미디이기 때문이다. – 온전히 결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니지만, 환경 개발과 관련한 조금 더 심도 있는 작품을 원하는 경우, 구스 반 산트 감독의 <프라미스드 랜드>를 권한다. – 여기에서도 도널드는 에밀리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게 되고, 긍정적인 결과물을 받게 된다.

영화 <햄스테드> 스틸컷 영화 <햄스테드> 스틸컷

▲ 영화 <햄스테드> 스틸컷 영화 <햄스테드> 스틸컷 ⓒ 팝엔터테인먼트


05.

그 동안 이런 종류의 영화들은 끊임없이 제작되어 왔다. 큰 제작비를 들이지 않으면서 따뜻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배우들의 연기력에 기대어 나아가는 작품들. 로빈 윌리엄스의 유작으로 알려진 <앵그리스트 맨>(2014)이나 이 작품의 여성 주인공인 다이앤 키튼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2014)과 같은 영화들이다.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에브리바디스 파인>(2009) 역시 유사한 결을 갖고 있다. 영화 산업의 중산층과 같은 존재들인데, 북미권과 유럽권 국가들의 영화 산업이 오랫동안 튼튼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해주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쉽게 지나칠 수 있지만 작품 외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

이 작품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도 상당히 흥미롭다. 지난 2007년, 실화의 주인공인 헨리 할로스는 홈리스로 지내던 중, 이 지역 햄스테드에 남이 버린 물건들을 주워다 집을 짓고 살게 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주위를 산책하고 여행했지만 그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대지의 소유주가 토지 개발을 계획하던 중 그의 주거지를 발견하게 되고 퇴거 명령을 내리지만, 12년 이상 한 곳에서 거주하면 점유권이 인정될 수 있다는 영국 법에 따라 소유권을 얻어낸 일이다. 그는 2016년 사망하는데, 당시 토지의 시가는 약 200만 파운드, 한화로 30억이 넘었고, 그는 자선 단체에 모두 기부했다고 한다.

원래 토지를 갖고 있던 소유주에게는 다소 안타까운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부가 좋은 일에 모두 환원된 따뜻한 이야기를 멋진 두 배우의 연기로 사랑스럽게 그려졌으니,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미소를 감출 수 있을 리 없다.

영화 넘버링무비 햄스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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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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