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일본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김지운 감독의 <인랑> 포스터

1999년 일본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김지운 감독의 <인랑> 포스터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음울한 분위기가 감도는 디스토피아.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로 한국 관객에게도 잘 알려진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근 미래는 늘 그랬다. 현재를 살고 있는 인류가 약간의 상상력만 발휘하면 예상해 볼 수 있는 10년, 20년 뒤의 세상은 그에겐 늘 어둠과 파편화 된 개인이 중심이었다.

<장화, 홍련>(2003), <달콤한 인생>(2005), <악마를 보았다>(2010), <밀정>(2016) 등을 연출한 김지운 감독이 오시이 마모루의 세계관을 재해석했다. 원작 애니메이션 <인랑>의 각본을 썼던 오시이 마모루는 역시나 디스토피아 적 근 미래 안에서 조직과 개인 사이에서 투쟁하는 한 사람의 처절한 방황을 그려냈다.

통일 한국에 이식된 디스토피아 DNA 

김지운 감독은 이 프로젝트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이견의 여지가 없다. 작품 스타일로 놓고 보면 미술과 소품, 분장에 대한 이해도가 누구보다 뛰어나고 세심하며 독창성 또한 갖고 있다. 이야기 구성과 캐릭터 표현에 있어서도 김지운 감독은 뜨겁거나 따뜻한 편이 아닌 차갑고 건조한 감성을 주로 그려왔다.

그 때문에 그가 <인랑>의 실사 영화를 내놓는다 했을 때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을 만했다. 앞서 언급한 김지운 감독의 개성이 기대감이 드는 이유라면, 일본 애니메이션 실사화의 성공적 사례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는 점은 우려가 들기 충분했다. 아무래도 원작에 짙게 깔린 일본색이 가장 큰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영화 <인랑>에서 강동원은 경찰 조직인 특기대원으로서 무장 시위 단체를 해산시키는 임무를 맡은 임중경을 연기했다.

<인랑> 의 한 장면.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영화는 원작 <인랑>의 뼈대와 주요 설정을 그대로 이었다. 전쟁 이후 혼란에 빠진 일본 사회, 실업자들이 중심으로 된 반정부 세력 '섹트'와 이들을 제어하려는 자치 경찰 단체의 대결, 그리고 그 자치경찰 대원 중 한 최정예대원이 그 반정부 세력 단원과 사랑에 빠진다는 골격은 통일한국이라는 배경만 바뀐 채 대부분 영화에 차용됐다.

영화의 시작부터 몰입도가 꽤 높았다. 다시금 찾아온 냉전시대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략적 통일을 택했던 한국, 하지만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견디지 못한 반정부 세력은 틈틈이 폭력 행사를 통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창설된 특기대는 원작에서처럼 죄 없는 소녀들을 살상하는 무리수를 두고, 해체 위기에 놓인 특기대는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정체를 숨긴 채 힘을 키워 나간다.

주요 배경을 속도감 있게 전한 이후부터가 관건이었다. 영화 <인랑>은 크게 두 갈래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특기대 소속 정예대원 임중경(강동원)이 반정부세력 섹트를 위해 폭탄을 나르던 빨간 망토 소녀(신은수)의 언니 이윤희(한효주)를 만난 후 사랑을 느끼게 되는 과정과 그가 스승처럼 따랐던 훈련소장 장진태(정우성)를 거부하게 되는 과정이 그것이다.

중심 이야기들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선 각 캐릭터가 쌓아가는 감정선과 서로 간의 연결 고리가 탄탄해야 했다. 원작의 함정인 일본색에 빠지지 않기 위해 통일한국이라는 설득력 있는 배경을 끌어 왔지만 영화 속 캐릭터들과 이야기들이 적확하게 그 배경에 녹지 못했다는 게 문제다. 임중경이 이윤희를 좋아하게 되는 과정에서의 감정선은 대체로 건조하며, 특기대를 견제하는 공안부, 그리고 공안부 내 특임대 간 알력 다툼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쉬움 속에 피어난 미덕
 영화 <인랑>의 한 장면.

영화 <인랑>의 한 장면.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정작 특기대 내 또 다른 조직인 '인랑'의 정체 자체가 모호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로 보인다. 정부 기관 주요 인사, 그러니까 일종의 썩은 부위를 도려내기 위한 요원들이라고 설명이 되지만 거기까지다. 김지운 감독이 지난 언론 시사회 당시 밝혔듯 "집단의 임무를 수행하다 심리적 타격을 입은 개인이 결국 사랑을 매개로 개인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라면, 영화 속 흐름상으로는 임중경이 반드시 인랑일 필요가 없어 보였다.

특기대와 특임대 간 알력 싸움, 임중경과 이윤희의 사랑, 특기대 내 인랑의 존재 의미라는 주요 플롯들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조직의 임무와 개인의 자아 사이에서 방황하다 특별한 선택을 하는 한 사람의 비극성이 <인랑> 내에서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인랑>을 봐야 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원작의 팬이라면 김지운 감독이 실사로 구현해 낸 총기 액션에 환호할 것이며, 화면의 리듬감 또한 살아 있다. 제한된 공간에서 처절한 액션을 묘사해 온 여러 한국영화들의 성과가 있는데 <인랑>에서 펼쳐지는 지하 벙커 액션, 수로를 따라 펼쳐지는 여러 장면은 김지운 감독이 이번 작품을 통해 이뤄낸 독창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특히 섹트 단원들의 AK 소총, 특기대가 사용하는 MG42 기관총 등은 원작의 설정을 오마주하면서 동시에 냉전 시대 산물을 상징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인랑 대원들이 입는 강화복 또한 독일 나치군을 연상하게끔 하는데 이를 두고는 찬반의 여지가 있겠지만 영화 안에서는 충분히 기괴감과 위압감을 준다. 참고로 해당 강화복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아이언맨> 수트를 제작한 곳에 디자인을 의뢰한 결과물이다.  

배우들 또한 주어진 캐릭터를 사력을 다해 소화해냈다. 과거 특임대 출신이면서 임중경을 견제하게 된 한상우(김무열)와 임중경의 동료 김철진(최민호), 그리고 섹트 단원이면서 이윤희와 임중경의 연결고리가 되는 구미경(한예리) 캐릭터가 눈에 띈다.

한 줄 평 : 독창적 액션과 배우들 합으로도 볼거리는 충분하다
평점 : ★★★(3/5)


영화 <인랑> 관련 정보
감독 : 김지운
출연 : 강동원, 한효주, 정우성, 김무열, 한예리, 최민호, 허준호(특별출연) 등
원작 : 장편 애니메이션 <인랑>(오시이 마모루 각본)
제공 : 유니온투자파트너스, 워너브러더스픽쳐스
배급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작 : 루이스픽쳐스
크랭크인 : 2017년 8월 16일
크랭크업 : 2018년 3월 23일(113회차)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38분
개봉 : 2018년 7월 25일


인랑 강동원 한효주 정우성 김무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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