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처음에는 부족하고 서툴지만 실수를 반복하면서 성장하게 마련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그냥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성공조차도 단 한 번의 성공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인 영화계에서 계속해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과 같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했다. 계속해서 비범한 영화들을 만들어내는 거장들의 첫 영화는 그들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을까? 그래서 현재 생존해있는 70세가 넘은 거장들의 첫 영화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들은 과연 떡잎부터 달랐을까? - 기자 말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영화 포스터.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영화 포스터.ⓒ The Criterion Collection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을 가진 '누벨바그'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57년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저널리스트 프랑소와즈 지루가 <익스프레스>에 새로운 세대가 가지는 사회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면서부터다.

1958년 <시네마 58>에서 피에르 비야는 지루가 사용한 이 단어를 자신의 글에 인용했으며 이후 1959년에 개봉한 프랑스 젊은 감독들의 영화를 '누벨바그 영화'라 부르게 된다. 오늘날에는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말에 만들어진 프랑스 영화들을 일컬어 '누벨바그 영화'라 부르고 있다.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이 의도를 가지고 탄생한 것이 아니라 전후 열악한 영화제작환경에 의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라면 프랑스의 누벨바그는 당시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영화비평을 하던 젊은 영화인들이 기존의 영화(특히 할리우드)와는 차별화된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영화'라는 매체의 가능성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실험한 문화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누벨바그를 하나의 장르로 보기는 어렵지만 누벨바그는 분명 누벨바그로 규정지을 수밖에 없는 영화적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실존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이야기의 비약적 전개(개연성의 결여), 로케이션 촬영, 자연광, 핸드핼드, 영화의 문법을 파괴하는 과감한 연출 등등.

헤어질 위기에 놓인 젊은 커플, 그리고 어촌 마을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The Criterion Collection


영화에서 '누벨바그'라는 단어는 1958년에 처음 사용되었지만 프랑스 영화계에 진정 새로운 물결을 몰고 온 영화는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이라고 영화평론가 조르주 사둘은 말했다. 1954년에 촬영해서 1955년에 완성된 이 영화는 헤어질 위기에 놓인 젊은 커플이 남자의 고향인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라 푸앵트 쿠르트의 세트(Sète)라는 어촌 마을을 방문해 이곳저곳을 다니며 나누는 대화와 어촌 마을 사람들의 여러 모습들을 담고 있다.

자신들의 관계에 확신을 잃은 여자가 남자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안정을 찾는 과정과 마을 사람들의 일상은 두 개의 독립된 이야기로 평행하면서 '공간'이라는 지점 외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다. 젊은 커플의 이야기가 시와 연극이라면 어촌 마을 사람들의 일상은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카메라에 담기고 전달되어지는 방식 또한 전혀 다르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크게 넷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 라 푸앵트 쿠르트의 어부들이 채취한 조개에서 세균이 발견되어 위생국에서 단속에 들어가지만 가난한 주민들은 관리원들의 감시를 피해 계속해서 조개를 채취하고 결국 라파엘이라는 청년이 체포된다. 둘, 몇 명이 있는지 셀 수도 없을 만큼 아이가 많은 집에서 아이들은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집 안 여기저기 방치되어있다. 그 많은 아이들 중 하나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끝내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한다.

셋, 어린 안나는 라파엘과 사랑하는 사이다. 그녀가 아직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는 부친과 자신도 19살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안나의 편을 들어주는 모친은 안나의 외조부모와 함께 안나의 결혼에 대해 이야기한다. 넷, 매년 여름이면 라 푸앵트 쿠르트에서는 축제가 열리고 청년들은 창 찌르기 대회에 참가한다. 이 대회에서 라파엘은 좋은 경기를 펼치고 안나의 아버지는 라파엘에 대한 경계를 누그러뜨린다. 낮에는 창 찌르기를 구경하던 사람들은 밤이 되면 음악에 맞춰 즐겁게 춤을 춘다.

파리지엔 여자는 고향으로 돌아간 남편에게 이별을 고하기 위해 그의 고향을 찾았다. 여자는 예전의 뜨거웠던 시간이 지나가고 찾아온 지금의 무던함을 받아들일 수 없다. 커플은 남자의 고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감정과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오죽하면 남자의 친구가 이들 커플을 가리켜 "저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대화를 나누지"라고 말할까). 산책과 대화를 통해서 이들은 지금의 감정도 사랑임을 깨닫고 이별 대신 마을 축제가 한창이던 저녁, 함께 파리로 떠난다.

사진 대신 영화를 찍기로 한 '아녜스 바르다'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The Criterion Collection


무엇을 이야기하느냐와 어떻게 이야기하느냐는 우선순위를 따질 수 없을 만큼 서로의 영향 아래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주제의식과 영화의 형식이 철저한 계획아래 함께 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는 플롯과 캐릭터를 가지고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전달하기 위해 고민한다.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에서 대사와 이미지, 그리고 그것들의 연속은 개연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영화의 문법을 무시하고 전혀 새로운 형식의 접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녜스 바르다가 영화 전공자는 물론이고 트뤼포와 같은 영화광도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촌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겠다는 감독의 생각에서 이 영화는 출발했을 것이다.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을 찍기 전,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 커리어는 전무했다. 그녀는 소르본에서 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했고 큐레이터가 되기 위해 다시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사진에 매력을 느끼고는 보자르에 들어가 사진과 예술사를 공부했다. 졸업 후 사진작가로 일하던 중 자신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세트(Sète)를 배경으로 사진작업을 하려고 했으나 그녀는 사진 대신 영화를 찍기로 한다.

어촌 마을 사람들의 일상에는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지만 그것을 담는 감독의 시선에는 가식이 없고 그들의 이야기 안에 자신의 생각을 투영하지도 않는다. 이야기는 특별할 게 없지만 그것을 담는 방식은 낯설면서도 아름답다. 나이든 남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카메라는 나무기둥을 밟고 올라서 균형잡기 게임을 하는 소년들의 발을 클로즈업으로 담고 있다. 마치 귀로는 남자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눈은 소년들의 날렵한 발을 쫓고 있는 것처럼.

애초 영화가 1초에 24개 프레임의 연속이지만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은 스틸 사진으로 시작해서 움직이는 영화로 확장되면서 보는 사람의 의식도 같이 확장되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아녜스 바르다가 영화에 접근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이 영화로 찍고 싶은 것들을 먼저 사진으로 찍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The Criterion Collection


인물을 전경에 두고 원경과 분리시키며 카메라는 인물 가까이 가거나 패닝을 하면서 멀어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특징은 주인공 커플을 담을 때 극대화 된다. 이들의 대사는 마치 잔잔한 산문시를 읊는 것 같고 이들의 몸짓과 표정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 과장을 배제한 이들의 연기는 로베르 브레송이 말한 '모델'을 연상시키고, 남자의 정면과 여자의 옆모습을 중첩시킨 장면은 입체파 화가들의 초상화를 연상시킨다.

아녜스 바르다는 다작을 하는 감독은 아니지만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며 그 시대의 가장 젊은 영화를 만들어왔다(얼마 전 개봉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보라! 그녀의 나이 여든여덟에 만든 영화다). 1959년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 장-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프랑소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 이전에 이 영화가 있었다.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은 '혁신'이라는 표현과 '누벨바그의 진정한 첫 영화'라는 평가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영화이며, 이 영화 하나만으로도 아녜스 바르다의 이름은 영원히 기억될 가치가 있다.

* 추신
1. 마을 곳곳에 보이는 고양이들, 그녀의 유별난 고양이 사랑은 이 영화에서도 볼 수가 있다.
2. 알랭 레네의 두 번째 영화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1961)와 형식적인 면에서 많이 닮아 있는데 알랭 레네는 이 영화의 편집을 맡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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