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공에 맞아 휘어진 새끼 손가락을 보여주는 김기만 코치

농구공에 맞아 휘어진 새끼 손가락을 보여주는 김기만 코치 ⓒ 유병천


지난 17일 서울 중구 신당동 모처에서 한국의 데니스 로드만이라고 불렸던 SK 나이츠 농구팀 김기만 코치를 만났다. 그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2000년에 프로에 입단 후 2011년에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2년간 전력 분석원으로 활동했고 2012년부터 2014년까지 2군 감독을 맡았으며 현재 1군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우승을 축하합니다. 선수 시절, 코치 시절을 통틀어 본인에겐 첫 번째 우승이라고 들었어요. 소감을 말해주세요.
"프로입단 18년 만에 첫 우승반지를 끼웠습니다. 그 기쁨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2000년에 프로에 입단했습니다. 입단 후 머지않아 십자인대 수술을 했어요. 재활 기간 동안 뛸 수 없었죠. 골드뱅크, 코리아텐더, KTF 등을 거쳐 SK로 트레이드 되기 전까지 정말 힘들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더군요. 골드뱅크에 3순위로 입단해서 열심히 뛰어야 할 상황에 현주엽 선수가 갑자기 트레이드 되어 저희 팀으로 온 거예요. 같은 포지션에 저보다 잘하는 선수가 오니 저는 식스맨으로 밀렸죠. 거기에 십자인대가 끊어져서 뛸 기회조차 없었죠. 당시 상황이 안 좋아져서 일 년간 급여가 나오지 않은 적도 있어요. 그 때를 생각하면 우승이란 단어, 처음 받는 우승반지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프로 입단 후 첫 우승이라니 감회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우승을 차지한 이번 시즌 중에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정규리그 중 시즌 초반에 김선형 선수가 부상당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팀의 주축인데다 주장이 자리를 비운 팀을 꾸려나가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죠. 특히 20점 이상 이기던 경기를 역전 당해서 진 경기가 몇 번 있었어요. 벤치에서는 타임아웃으로 흐름을 끊을 수 있지만, 횟수도 제한적이고 어려운 상황에서 주장의 역할은 정말 중요합니다. 김선형 선수의 공백이 정말 컸어요. 김선형 선수의 부상만 없었다면 아마 정규시즌 우승도 노려볼만 했죠.(웃음)

기억에 남는 다른 한 가지는 챔피언 결정전에서 1, 2차전 패배를 말할 수 있습니다. 초반에 사기가 떨어지면 이후 경기가 상당히 부담스럽기 때문이었어요. 3차전까지 지고 우승한 팀도 거의 없었죠. 3차전에서도 전반을 20점 정도 뒤진 후 마쳤어요. 우승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죠. 하지만 그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어요. 후반에 정말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했죠. 그런데 그 전략이 통한 거예요. 역전에 성공할 수 있었고, 이후 경기에도 좋은 흐름을 이어갈 수 있었죠. 그 때 마음 졸이던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프로 입단 후 코치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우승반지를 끼운 김기만 코치.

프로 입단 후 코치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우승반지를 끼운 김기만 코치. ⓒ 유병천


-문경은 감독과 전희철 코치를 중심으로 모든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모두 우승의 주역들이죠.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요?
"우리 팀 프런트의 장지탁 사무국장님이 생각납니다. 물론 말씀하신 대로 문경은 감독님과 전희철 코치님 이하 스태프의 노고로 우승을 이끌어냈습니다. 장자탁 사무국장님은 챔프전 1, 2차전 패배 후 조금은 흔들릴 수 있는 선수단과 코칭스태프에게 긍정적인 소통으로 팀의 중심을 잡아줬습니다. 아마 3차전의 획기적인 전략변화는 여기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다른 한 사람은 시즌 초반 김선형 선수의 수술 이후, 빠른 복귀를 위해 하루도 쉬지 못하고 고생한 유승범 재활 트레이너를 꼽을 수 있습니다. 유승범 트레이너가 아니었다면 챔프전에서 김선형의 활약은 기대할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저와 함께한 코치들, 외국인 용병과의 소통을 담당하는 통역, 아픈 몸을 돌봐주는 트레이너,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매니저, 지친 선수들을 안전하게 숙소로 데려다주는 버스 기사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주신 모든 분들이 숨은 우승의 주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희철, 현주엽, 서장훈이 대학에서 활약할 때 정말 재미있게 농구를 봤습니다. 프로농구리그가 출범하고 외국인 선수도 함께 뛰는 지금과 당시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관계자들이 요즘 선수들을 두고 개인기가 많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현주엽, 서장훈, 전희철 등 예전의 농구선수들은 키도 크지만 슈팅이나 기술들이 꽤 수준급이었습니다. 그러나 용병제도가 도입되면서 더 크고 더 힘센 용병 선수들을 상대하려다 보니 팀 전력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용병을 막기 위해 수비에 힘써야 했고, 농구 기술 개발보다는 웨이트 트레이닝에 좀 더 치중해야 했습니다. 물론 그 덕분에 국내 선수들의 체력이 좋아졌고 발전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예전 허재 감독님처럼 화려한 기술 농구와 이충희, 김현준, 문경은 같은 슈터가 없고 강동희, 이상민 처럼 특출한 가드가 나오지 않는 것이 현재의 프로농구가 예전농구와 다른 점인 것 같습니다."

-최근 NBA에서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농구의 유행을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프로 농구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은 없나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SK 나이츠인 것 같아요. SK의 올해 우승의 원동력도 워리어스와 같은 정확한 슈팅과 빠른 공수전환 그리고 각자 맡은 임무에 대한 이행능력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워리어스뿐만 아니라 세계 농구의 트렌드가 그렇게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샤킬오닐이나 야오밍, 패트릭 유잉 같은 센터 농구가 아닌 키 큰 선수들로 하여금 빠른 공수전환이 가능한 농구가 요즘대세입니다.

올해 SK는 용병슈터 테리코 화이트와 애런 헤인즈의 정교한 외곽 슛으로 정규리그를 2위를 차지했고, 헤인즈의 부상대체 용병 메이스 또한 챔프전에서 외곽 슛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또한 최준용, 안영준, 김선형이 빠른 농구를 전담하고 최원혁, 이현석, 변기훈이 외곽 슛과 외곽 수비를 책임지며 김민수, 최부경이 팀의 스크린과 리바운드 등 궂은일을 맡아 뛰었습니다. 이 전략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나 다른 NBA 팀처럼 세계적 트렌드에 발맞춘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SK도 이런 농구 전략을 접목시켜 우승이라는 커다란 목표를 이루게 된 것 같습니다. 또한 국내의 전자랜드, 모비스, DB 등도 세계적 추세에 맞춰 나가는 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의 김기만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의 김기만 ⓒ 김경록


-가장 좋아하는 농구 선수는 누구인가요?
"스코티 피펜, 클레이 탐슨, 데니스 로드맨 그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2인자 자리에서 팀을 위해 꾸준히 플레이하는 선수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국내선수 중엔 우리 팀의 김민수, 최부경 선수를 좋아합니다. 항상 묵묵하게 리바운드 스크린 같은 팀의 궂은일이나 선임자로서의 역할 등을 잘 하고 있습니다. 기량이 뛰어난 후배 선수들도 있지만 같이 융합하고 다독이며 팀을 이끄는 모습을 보이는 선수들이 정말 좋습니다.

미국 전지훈련 때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클레이 탐슨 선수를 본 적이 있어요. 개인 연습을 하는 중이었는데, 코치가 무려 6명이 함께 연습하더군요. 탐슨 선수가 슈팅연습 할 때엔 저희 선수들은 연습도 하지 못한 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링 들어가는 슛을 보면 '슈팅머신'이라는 그의 별명이 왜 붙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죠. 그런데 탐슨 선수는 슈팅만 잘하는 선수가 아니에요. 수비 실력이 출중해서 그의 슛이 잘 들어가지 않더라도 감독은 탐슨 선수를 기용할 수밖에 없죠. 수비 연습도 슈팅 연습에 전혀 뒤지지 않았습니다. 그 날 탐슨 선수의 연습하는 모습을 본 것은 우리 팀에게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우리 선수들도 느끼는 점이 많았을 겁니다."

-선수 생활과 코치 생활을 비교하면 어떤가요?
"매우 다릅니다. 선수 때엔 몸만 힘들었지만, 코치를 맡은 후엔 몸과 머리가 다 힘듭니다. 선수 때엔 자기만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팀원과 팀 성적도 생각하지만 그 바탕엔 자신의 연봉, 자신의 출전 시간 여부가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랬고요.(웃음) 가끔 훈련을 빠지거나 요령을 피울 생각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코치라는 자리는 '선수에 의해, 선수를 위하여 존재하는 자리'입니다. 약 20명에 달하는 선수의 심리상태와 몸 상태 등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고 최적의 컨디션 유지를 위해 항상 긴장하고 신경써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즐겁고 효율적으로 훈련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프로농구가 더욱 사랑받기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요?
"당연히 우선해야 할 것은 선수들의 기량 향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팬들이 환호할 수 있을 만한 기량. 영화 배우가 연기를 못한다면 그 영화를 누가 보러가겠습니까? 팬들이 농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플레이를 선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량 발전 이후에는 팬들을 농구장으로 모이게 할 수 있는 팬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시즌이 다르기 때문에 농구의 경쟁상대는 야구, 축구가 아닙니다. 가끔 야구를 비교하는 경우가 있는데, 야구와 농구는 정말 달라요. 야구는 3시간 이상 경기를 하고 맥주도 한 잔 마시며 음식을 즐길 여유가 있죠. 하지만 농구는 그렇지 않아요.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집중해서 관전하지 않으면 주요장면을 놓칠 수도 있죠. 학생체육관이라 맥주를 마실 수도 없지만, 맥주 한 모금 마시고 안주 먹는 사이에 경기가 뒤집힐지도 모르죠. 그걸 못 보면 정말 아쉽지 않을까요?(웃음) 다양한 즐길 거리가 많은 사회에서 팬들이 농구장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으려면 멋진 플레이가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수들과 다음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김기만 코치

선수들과 다음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김기만 코치 ⓒ 문형준


-인터뷰를 마치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선수 때와 다르게 보이는 점이 있어요. 경기 준비를 위해서 많은 사람이 주목받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죠. 경기가 오후 3시라면 그들은 아침 일찍부터 경기장에 가서 준비를 해요. 전용 구장이 아니라서 준비해야 할 일들이 정말 많아요. 선수는 그들이 준비해준 공간에서 경기를 하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카메라도 선수와 감독에게 초점을 맞추죠. 경기가 끝나면 역시 그들이 남아서 정리를 해요. 마치 연극이 끝난 무대처럼 말이죠. 경기 후 식사 장소에도 뒤늦게 도착하곤 하죠.

저희 사무국 자랑을 좀 할게요. 한국소비자포럼 주최 브랜드위원회 제정한 2018퍼스트브랜드대상에 올해의 브랜드 대상 수상했어요. 그리고 11년 연속 10만 관중 최초 돌파도 했고요. 국내 최초 시니어 챌린저 프로그램 도입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번 우승은 선수와 코칭스텝 그리고 사무국 모두의 우승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사무국에도 감사하단 말을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는 모든 분들도 파이팅하시길 바랍니다. 저도 제 자리에서 열심히 준비해서 다음 시즌에도 멋진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많이 응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선수 시절에 이루지 못한 우승의 꿈을 코치가 되어 이루어낸 SK 나이츠의 김기만 코치를 만났다. '한국의 데니스 로드만'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던 그에게 팀 동료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까지 생각하는 섬세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인자가 아니라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팀의 승리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그의 말에서 경쟁 사회에서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치열한 경쟁으로 경기에 이겨야하는 선수들과 코칭스텝, 그리고 사무국장을 중심으로 프론트에서 일하는 운영진 모두와 우승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벌써 다음 시즌 준비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김기만 코치의 두 번째 우승(팀은 세 번째)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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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만 SK나이츠 농구코치 우승반지 데니스로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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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에 회사에 다니고 주말에 글을 쓰는 주말작가입니다.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좋은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https://brunch.co.kr/@yoodluf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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