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구자철, '외질을 막아라' (카잔=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에서 구자철이 독일의 메주트 외질을 저지하고 있다.

▲ 구자철, '외질을 막아라' 지난 6월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에서 구자철이 독일의 메주트 외질을 저지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독일의 축구스타 메수트 외질이 국가대표팀 은퇴를 전격 선언했다. 외질은 23일 자신의 SNS를 통해 "고민 끝에 어려운 선택을 내렸다. 더 이상 대표팀에서 경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라고 발표했다.

외질은 현재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독일 베르더 브레멘과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잉글랜드 아스널 등 유럽 굴지의 명문클럽을 거쳤고 독일 국가대표로도 10년 가까이 가는 팀마다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정교한 패스와 경기운영 능력으로 많은 축구팬들을 매료시켰다.

외질은 부모가 모두 터키인 출신인 이민자 2세이자 독일과 터키 이중국적자라는 독특한 출신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외질은 축구선수로서 모국인 터키 대신 독일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을 선택했다.

2006년 독일 17세 이하 대표팀에 첫 발탁된 것을 시작으로 연령대별 대표팀을 착실하게 거친 외질은 2009년 2월 11일, 노르웨이와의 친선 경기에서 성인대표로 첫 A매치에 출전했다. 독일 국가대표로서는 지난 10년간 A매치 92경기에서 23골을 기록했으며 2014 브라질 대회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독일의 월드컵 우승을 견인하기도 했다.

러시아월드컵 이후 악화된 여론, 유독 외질 향해 비난 쏟아져

승승장구하던 외질의 축구 인생은 최근 러시아월드컵을 기점으로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월드컵을 앞둔 지난 5월 외질은 같은 독일대표팀 동료이자 터키계인 일카이 귄도간과 함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을 만나 기념촬영을 한 사진이 외부에 공개됐다.

보통의 경우라면 터키 출신인 외질이 모국의 대통령을 만나는 자체가 크게 문제삼을 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과 터키는 역사적으로 그리 관계가 좋지 않은 데다 특히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국 내 인권 탄압과 민주주의 훼손을 이유로 서방세계에서 독재자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었고 독일과도 불편한 관계였다.

터키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외질이 '에르도안의 선거 캠페인을 위하여 정치적으로 이용당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독일 사회에서는 외질의 경솔한 처신에 대한 비판 여론이 급격히 높아졌다. 일각에서는 외질을 독일 대표팀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외질이 독일 축구협회를 통하여 공개사과했고, 요아힘 뢰브 독일대표팀 감독이 외질에 대한 변함 없는 신뢰를 확인하며 월드컵 최종명단에 발탁하면서 사건은 겨우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독일 대표팀이 지난 러시아월드컵에서 멕시코와 한국에 패하여 사상 최초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대참사'가 발생하며 다시 상황이 악화됐다.

독일은 러시아월드컵에서 지난 대회 우승국다운 위용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4년 전에는 우승의 주역이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폼이 극도로 떨어진 모습을 보여준 주전급 선수들의 경기력이 도마에 올랐다. 몇몇 스타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며 경기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그리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외질도 비판의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월드컵] 외질 수비하는 이재성 (카잔=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 한국 이재성이 독일 메주트 외질을 수비하고 있다.

▲ 외질 수비하는 이재성 지난 6월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 한국 이재성이 독일 메주트 외질을 수비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제는 유독 외질에게 비난이 집중되며 사실상 독일대표팀 부진의 희생양으로 내몰렸다는 점이다. 토마스 뮐러, 사미 케디라, 토니 크로스, 마누엘 노이어 등 이번 월드컵에서 외질 이상으로 기대에 못 미친 선수들이 적지 않았고 외질이 이들에 비하여 딱히 더 부진했다거나 경기에 임하는 자세에 불성실했다고 볼 만한 근거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비난은 외질에게만 더 가혹했던 면이 없지 않다.

독일 축구계와 축구협회도 어느 정도 이런 여론을 악용한 측면이 있다. 독일 대표팀의 비어호프 단장은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외질을 월드컵에 데려간 것은 실수"라고 언급하며 외질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가 사과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심지어 라인하르트 그린델 독일축구협회 회장은 외질보다는 비어호프의 입장을 더 변호하는 듯한 해명으로 논란을 키웠다. 이밖에도 마리오 바슬러, 로타어 마테우스 등 많은 독일 축구의 레전드들도 외질에 대한 비판에 동참했다. 이처럼 독일 축구계가 외질에게 비난이 집중되는 상황에서도 선수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한 외질 측도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외질의 부친인 무스타파 외질은 언론 인터뷰에서 "독일축구협회가 월드컵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내 아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며 울분을 터뜨리기도 했다. 축구협회와 독일 사회의 여론에 실망한 외질이 독일대표팀을 은퇴할 수 있다는 소문이 이미 몇 주 전부터 계속 흘러나왔다. 외질은 결국 지난 23일 만 29세의 젊은 나이에 독일 국가대표 은퇴를 전격 선언하며 소문은 현실이 됐다. 독일대표팀에서 그간 외질의 커리어와 기여도를 감안하면 너무 이른 시점에 선택한 아쉬운 결말이었다.

귀화 대표 선수 늘어나는 한국, 외질 사례는 남의 일 아니다

한편으로 독일 사회에서 외질을 바라보는 시선이 유독 차가웠던 이유는 결국 '정체성'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 외질은 에르도안과의 사진촬영 논란이나 러시아월드컵에서의 부진 이전부터 독일에 대한 애국심과 국가대표로서의 태도 문제를 놓고 여러 번 구설수에 오르내린 전력이 있다. 독일 대표로서 오랫동안 출전했음에도 독일 국가를 제대로 따라부르지 않는 모습이라든가, 독일인과 터키인 사이에서 정체성이 애매한 태도로 일관한 것은 아직은 다문화-다인종 사회에 보수적인 정서가 남아있는 독일인들의 심기를 건드린 측면이 있다.

그동안 외질이 독일 대표팀 부동의 주전으로서 뛰어난 모습을 보일 때는 실력으로 논란을 불식시켰지만 최근 1~2년 사이에 외질의 기량이 하락하고 대표팀 내 입지가 흔들리면서 비판여론은 점점 거세졌다. 다수의 독일 축구인들과 팬들 중에는 외질이 자신의 축구 커리어를 위하여 독일 국적을 선택했을 뿐이며 브라질월드컵에서 우승한 이후로는 더 이상 독일을 위하여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월드컵 이후 외질에게만 쏟아지는 비난 자체는 과도한 측면이 있지만, 독일인들이 외질에게 점차 등을 돌리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그리 단순한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새 유니폼 선보이는 독일 축구대표팀. 제일 앞줄에 선 메수트 외질(왼쪽), 제롬 보아텡(중앙), 율리안 드락슬러(오른쪽) 선수.

지난 6월, 새 유니폼 선보이는 독일 축구대표팀. 제일 앞줄에 선 메수트 외질(왼쪽), 제롬 보아텡(중앙), 율리안 드락슬러(오른쪽) 선수. ⓒ EPA/연합뉴스


외질의 국가대표팀 은퇴 과정에서 드러난 일련의 해프닝은 한국 스포츠계에서도 언제까지 머나먼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닐 수 있다. 한국도 최근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한국 국적을 원하는 이민자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특히 스포츠계에서는 농구, 아이스하키 등 많은 종목에서 귀화선수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축구는 아직 귀화선수가 국가대표가 된 사례는 없지만 언젠가는 프랑스나 독일처럼 귀화인이나 이민자 2세대가 태극마크를 다는 시대가 조만간 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특히 체육계 우수 인재들은 특별귀화라는 방법으로 비교적 손쉽게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이번 러시아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프랑스는 선수단 23명 중 21명이 이민자 2~3세대 출신으로 구성되었을 만큼 다인종-다문화팀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그런 프랑스도 불과 8년 전 남아공월드컵에서는 대회기간 중 초유의 선수단 내 분열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할 만큼 '콩가루 집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선수들 개개인의 뛰어난 재능이나 실력과는 별개로 국가대항전에서 나라를 대표한다는 애국심과 책임감의 유무는 엄청난 변수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앞으로 한국 스포츠계에도 다문화 출신 선수들이 늘어날수록 정체성 문제는 피할 수 없는 화두가 되는 시기가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지난 평창올림픽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했던 귀화선수 출신 국가대표 중 올림픽이 끝나지 몇 달도 안 되어 한국 국적을 포기하거나 다시 해외로 나가는 사례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올림픽이나 단기적인 국제대회 성적만을 위한 무분별한 일회성 귀화 이벤트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적지 않다.

이처럼 당장 눈앞의 성적을 위하여 귀화선수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만 그 과정에서 명확한 원칙과 절차가 없다면 오히려 태극마크의 가치가 훼손되거나 한국 국적이 그저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도 존재한다. 외질의 사례처럼 '그 나라 국민'으로서 요구되는 애국심과 정체성의 문제를 어떻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해보인다.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방지하고 건강한 다문화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하여 우리가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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