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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영화보기를 즐긴다. 나름의 잣대로 평론도 한다. 그러나 엔딩 크레딧 때 에디터를 눈여겨본 적은 없다. 김형석의 <영화 편집>은 그런 관객의 놓침을 짚어준다. 스크린 상의 미학적 스토리텔링은 에디터의 편집 덕이란 걸 비로소 알게 한 거다. 에디터가 촬영된 숏들의 꾸러미를 유의미한 시퀀스로 재배열해야 볼 만한 영화 한 편이 완성된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영화 편집은 관객의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조작이다. 감정이입이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보편적 방식에 닿아 있음을 고려할 때, 숏들의 관계를 조작하는 에디터의 수단은 전체를 통찰하는 객관적 관점이다. 그것의 오롯한 확보를 위해 에디터는 촬영 현장이나 배우, 심지어 감독의 의견조차 멀리한다. 그걸 모른 채 영화 감상을 불편 없이 한 내 경우를 보더라도, 에디터는 영화에서 감쪽같은 존재다.

상영관을 나서면, 영화 본 게 한바탕의 꿈과 같다. 돌아보면 인생도 매한가지다. 인생이 한 편의 영화인 셈이다. 그러니 인간은 너나없이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자 에디터가 될 수 있다. 요즘 나는 명상할 때 에디터가 된다. 내 상태를 알아채고 관리하는 데 유익한 명상은 의식의 숏들을 띄우기에도 좋다. 롱 테이크 숏으로 나를 확연히 보다가 동시간대의 교차 편집과 다른 시간대의 평행 편집으로 뭇 관계를 조율한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는 이유는 하나다. 난 행복할 권리가 있어서다. 물론 내 행복을 남의 불행 위에 쌓지 않기 위해서는 영화 편집에서처럼 객관적 관점이 필요하다. 그러자니 때로 점프 컷으로 돌파구를 찾으며 아이라인 매치 컷으로 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도 한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지만, 물밑에서 쉼 없이 발헤엄하는 백조 같은 눈속임이 진행 중인 셈이다. 영화처럼 내 삶도 편집의 연속이다.

그런데 꿈속의 나는 애써 편집하지 않는다. 내 꿈의 시퀀스가 적기도 하지만, 꿈마다 다양한 형상으로 변주되는 나는 맞닥뜨린 상황을 그냥 받아들인다. 좋든 나쁘든 그다지 동요하지 않는다. 그래선지 꿈속의 나는 행복하다. 그렇다면 내 행복은 어떤 처지에서든 지금 여기를 인정하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되지 싶다. 현실에서 삶을 편집하는 건 꿈속처럼 편집하지 않는 삶을 위해서라는 역설이 성립한다.

그 역설을 위해 나는 부지불식간에 신의 한 수를 찾아 수많은 영화를 기웃거린 걸까. 자신의 삶을 편집하길 원해서 사람들이 영화를 좋아한다는 롭 코헨 감독의 말을 곱씹는다. 캔 댄시거는 편집을 '기술'(technique)과 '솜씨'(craft)와 '예술'(art) 등 세 가지 차원으로 바라본다. 현실의 편집 문법을 깨뜨린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montage)와 프랑스의 누벨 바그 같은 예술적 차원에 나는 솔깃한다.

맨땅에 헤딩하듯 영화를 감상하던 내게 <영화 편집>은 "영화 편집에 대한 기본 상식과 교양 정도의 지식"을 친절하게 챙겨준다. 덕분에 관람 중에 어림잡았던 느낌이나 생각의 앙금들을 털어낸 기분이다. 특히 시나리오대로 촬영된 숏들의 이야기 방식과 이미지를 넘어서려는 편집 욕구가 운명을 개척하는 인간 정신의 자유의지와 닮았음을 안 건 큰 수확이다.


영화 편집 - 역사, 개념, 용어

김형석 지음, 아모르문디(2018)


태그:#영화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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