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화영> 중 한 장면.

영화 <박화영> 중 한 장면. ⓒ (주)리틀빅픽처스


"박화영은 외롭죠. 결핍이 많은 친구? 무모하고 악랄하게도 보이지만 계속 분석하면 할수록 저보다 용감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관계를 지키려고 고군분투하지 않았어요. 저는 숨기기 바빠졌죠. 뜨거웠던 친구죠."

영화 <박화영>(감독 이환, 7월 19일 개봉)은 내면을 외면받은 18세 소녀 박화영의 '함께 홀로서기'를 보여준다. 극 중 박화영은 엄마에게 버림받았지만 스스로 엄마가 되어 또래 친구들을 돌본다. 그 중심에 박화영을 연기한 신인 배우 김가희가 있다. 그는 이번에 첫 장편영화 주인공을 맡았다.

"동료들이 열심히 찍었는데, 만약 개봉 못 하면 어떡하나? 했어요. 반응이 세다고 했는데, 다행히 재밌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그는 박화영이 되기 위해 체중을 15kg 이상 증량했고, 수초 간격으로 터지는 욕설로 관객의 귀를 묵직하게 채웠다.

"소리만 빽빽 지르는 애로만 보이질 않을까 걱정했어요. 내가 얼마나 담아낼 수 있을까? 어리광과 내면의 아픔, 다채로운 감정들이요."

최근에는 제36회 뮌헨국제영화제에 영화가 초청되어 독일을 다녀왔다. 러시아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독일이 한국에 졌을 때다.

"개막식 때 사회자분이 '한국영화 꼭 보세요. 축구도 잘하고 영화도 잘 만들어요'라고 했어요."

데드리프트 중량 올리는 것이 좋다는 그는 웃음과 활기가 넘쳤다. 인터뷰 당일 긴장해 가위에 눌린 경험도 웃어넘길 만큼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지난 13일, 을지로3가 한 카페에서 배우 김가희를 만났다.

 배우 김가희

배우 김가희 ⓒ 김광섭


배우 김가희의 박화영 되기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다른 것도 하려고 했지만 다른 것을 할수록 영화에 확신이 갔어요. 심리 관찰하는 거 좋아해요. 무대 위에 있는 걸 좋아했어요."

그가 처음 본 영화는 <타이타닉>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잭 도슨의 죽음을 보고 눈물도 흘렸다.

"2시간 안에 하나의 세계를 보는 게 좋았어요. 몇 번이고 계속 봐도 재미있던 것은 <올드보이>였어요. 배우가 되고 싶지만 베드신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올드보이>를 보면서 버릴 것이 없었고 모두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속) 벽지까지도 멋있었는데 벽지가 제게 이야기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영화를 공부하면서 연극과 단편영화의 문을 두드렸다.

"카메라와 친해지는 게 필요해서 비상업 작품 위주로 많이 지원하고 활동을 했어요."

<박화영>의 프리퀄인 이환 감독의 단편영화 <집>에도 출연했지만 그 인연만으로 박화영 역을 맡은 것은 아니다. 5차 오디션을 마치고서야 박화영에 낙점됐다.

"체중, 머리 스타일 등 기초 노력을 했더니 역에 다가가는 게 좋더라고요.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했어요. 하루 4시간도 부족하더라고요. 계속 궁금하고, 계속 모르겠고요. 똑같은 이야기를 3달간 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감독님이 몰랐던 것도 제 색깔로 들어가고요."

이환 감독이 그에게 원한 것은 '지독한 외로움'이다. 이 외로움을 이해하기 위해 감독의 디렉션에 따라 허허벌판을 혼자 견뎠다.

"할 게 없어 개미를 봤어요. 버둥버둥하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했더니 지독한 외로움을 원했다고 하더라고요."

박화영은 마음과 몸 싸움의 연속이다. 우두머리 영재(이재균)는 박화영을 학대한다. 박화영은 이 무리 속에 남기 위해 견딘다. 

"재균 오빠가 연극을 오래 했어요. 몸을 굉장히 잘 써요. 다른 배우에게 한 대 맞은 것보다 재균 오빠에게 열 대 맞는 게 더 안 아프거든요. 효과적으로 때려줘요. 위험한 신이 있어 워크숍을 많이 했어요. 가짜로 하는 장치도 있었지만 합이 맞아 다른 신보다 수월하게 찍었죠. 워낙 복잡한 감정을 찍는 것에 더 신경을 써서요."

박화영이 지켜주고 싶은 존재인 단짝 은민정 역을 맡은 강민아와는 서로를 이해하려고 매일 통화했다.

"팀에서 민아가 가장 어리고, 제가 가장 언니예요. 연습 없는 날에도 곱창에 소주 마시며 이야기했어요. 소통을 많이 했죠."

청소년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수학을 가르치는 등 10대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박화영 인물에 다가갔다. 은민정과 함께 놀이기구를 탈 때, 겁에 질린 박화영의 모습은 그의 인물 분석 결과다.

"놀이기구를 한 번도 안 타본 사람에겐 새로운 경험일 거로 생각했어요. 박화영은 강인해도 놀이기구를 접해본 적이 없거든요. 결국 그도 아이죠."

 배우 김가희

배우 김가희 ⓒ 김광섭


이 영화에 김가희 없으면 '어쩔 뻔 봤냐'

극 중 박화영은 가출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버림받았다. 왜 버림받았는지에 대해 영화는 말을 아낀다.

"편집된 것이 아니라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나오지 않아 궁금해서 계속 읽었는데 단서가 너무 없었어요. 감독님께서 '억지로 상황을 만들지 말고, 너의 이야기를 느껴'라고 했어요. 엄마라면 살 부대끼는 것이 맞는데, 소통 하나 해주지 않잖아요? 외로움, 결핍을 나타내려고 했어요. 얼마나 치고받고 했으면 말도 못 할까? 둘이 있을 때 되게 차갑거든요."

엄마가 그를 버리면서 마지막으로 그에게 준 것은 몇 푼의 돈이지만, 그 돈으로 인해 인연은 더욱 질겨진다.

"엄마를 싫어한다고 하지만 돈 달라고 계속 전화해요. 소통을 원하고 있는 거죠."

엄마에게서 받은 돈은 박화영과 친구들의 공간인 지하방의 월세로 낸다. 엄마의 빈자리가 친구들로 대체된 것이다. 그러면서 박화영은 그들의 엄마가 된다.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라고 대사를 던진다.

"'나는 너네 없으면 안 돼' 느낌이 점점 더 강해지더라고요. 주문이죠. 너네는 나 없으면 안 돼, 나는 너네가 필요하다는 외침 같았어요. 우스개로 하면서도 씁쓸한 말?"

박화영의 변화는 머리 스타일로 드러난다. 엄마에게 버림받기 전과 후, 친구들과 헤어지기 전과 후, 머리카락의 길이는 다르다. 박화영이 살인사건에 휘말린 이후 긴 머리로 등장할 때, 그는 연기의 힘을 뺐다.

"물에 담갔다 뺀 것 같은 느낌으로 생각했어요. 죄를 뒤집어써서 5년 동안 어디를 갔다 왔죠. 힘이 쭉쭉 빠졌을 것 같아요. 독기가 다 빠진."

그럼에도 박화영은 여전히 엄마의 삶을 살기로 한다.

"또 똑같은 삶을 반복하잖아요? 그게 익숙했고, 새로운 걸 하는 게 두려워요. 익숙한 그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죠. 희생하는 게 행복이고 편한 거죠."

뜨거운 배우가 되고 싶어

김가희는 어머니가 자신을 강하게 키웠다고 했다. 어머니가 자신이 출연한 작품을 본 적은 없지만 이번 영화 <박화영>은 몰래 볼 것 같다고.

"전형적인 드라마에 나오는 따스한 엄마가 아니라 되게 강하세요. '하고 싶은 것 안 꺾었으니까. 그래 네 마음대로 해봐라' 그러세요. '지켜봐 줄게'가 아닌 '너 지켜본다' 그렇게 보고 계시죠."

자기 색깔을 가진 매력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는 <박화영> 작업은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정말 많이 배웠죠. 찍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책임감도 생겼고, 책임감을 지켜나가기 위해 성장하고요. 힘든 역이라서 자존감이 떨어질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저를 알게 되고 더 강해졌어요. 저를 많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일로 성장하고 인생까지 배웠다는 느낌에 너무 행복하고 벅차요."

영화 <박화영>을 통해 독립영화의 재미를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새로운 충격을 주면 좋겠어요. 단순히 자극적인 장면이 아니라, '이런 배우도 있구나' 하는 인상을 주었으면 좋겠어요. '독립영화 재미있는 거잖아요?', '되게 신선한 거잖아요?' 계속 생각나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는 '극 중 박화영처럼 뜨거운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열심히 무식하게 뜨거운 배우가 되고 싶어요. 해이해질까 봐요. 계속 연기로 먹고살고 싶죠."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과의 작업을 꿈꾸느냐는 질문에 그는 "욕심내도 돼요?"라며 크게 웃었다. 그 욕심은 '박화영' 삼행시에서 드러나는 듯했다.

"박 : <박화영> 영화는
화 : 화끈하고
영 : 영원히 기억되는 작품으로 남겠습니다."


 배우 김가희

배우 김가희 ⓒ 김광섭


김가희에게 물어보는 영화 <박화영> 뒷이야기.

박화영 패션에 관해 말하자면?

"겨울에 비닐바지를 입히고 디스코 팡팡 태우고 정말 힘들었어요. 자꾸 속이 비쳐요. 감독님이 비닐바지를 되게 좋아하셨어요. '오, 좋아~'"

박화영의 미래는 어떨까?

"요리사 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에게 요리 만들어주는 행복이 복이거든요."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8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가희 박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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