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스퀘어>의 포스터.

영화 <더 스퀘어>의 포스터. ⓒ 영화사 찬란


시민사회국가의 보루로 여겨지는 북유럽, 그 중 스웨덴의 영화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비아냥대는 듯 보이는 대사 한 마디가 나왔다. 그것도 약자와의 연대를 강조하던 한 미술관에서 말이다.

지난해 열린 제 70회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더 스퀘어>는 당시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높은 평점을 받으며 일찌감치 파란을 예고했다. 내로라하는 거장들을 제치고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자신이 속한 사회, 나아가 점점 연대가 약해지는 공동체 문제를 직시했고 그것을 영화에 풍자적으로 녹였다.

짜증나는 코미디

배경은 스톡홀름의 한 현대박물관이다. 이곳의 수석 큐레이터인 크리스티안(클라에스 방)은 훤칠한 외모에 종종 지나가는 노숙자들에게 잔돈을 주거나 빵을 사주는 호인이기도 하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출근 날 도움을 호소하는 한 여성을 돕다가 소매치기를 당한 뒤 그에겐 각종 이해할 수 없는 사소한 문제들이 다가온다.

이를 테면 청소부의 실수로 공들여 준비한 일부 작품이 파손되거나, 우연히 잠자리를 가졌던 한 기자를 하룻밤 상대 정도로 대했다가 된통 당하기도 한다. 잃어버린 지갑과 휴대폰을 찾기 위해 도둑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사는 곳에 협박 편지를 썼다가 외려 망신을 당한다.

크리스티안 입장에선 짜증나는 일들의 연속이다. 남부끄럽지 않게, 그리고 적절한 배려와 약자에 대한 연민을 지닌 걸로 보이는 그에게 지인들은 "정치적 올바름은 버려! 누가 스웨덴 사람 아니랄까봐" 류의 농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한 분위기는 박물관 홍보영상을 새롭게 결정하는 과정에도 녹아드는데 한 홍보대행사가 준비한 과도한 콘셉트의 영상이 대표적 상징으로 작용한다. 금발의 아이를 노숙자로 등장시켰다가 말미에 폭발과 함께 사라지게 하는 해당 홍보 영상으로 크리스티안은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온갖 질타와 비난을 받게 된다.

 영화 <더 스퀘어>의 한 장면.

영화 <더 스퀘어>의 한 장면. ⓒ 영화사 찬란


잘 나가던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티안은 이런 일들에 어떻게 대처할까. 점잖고 평상심을 유지하던 그는 위 사건을 겪으며 종종 격한 모습을 보이거나 혼란스러워 하기도 한다. 영화는 그런 그의 주변으로 끊임없이 지나다니는 노숙자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후원을 요구하는 비정부기구 홍보 부스와 그것을 매일 외면하며 출근하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묘한 대비 효과를 노린다.

대사와 이들이 처한 현실은 결코 웃기지 않지만 이른바 상류층으로 보이는 미술관 고객들과의 반복되는 대비는 일종의 풍자처럼 작용한다. 약자를 돕고 함께 공존해야 한다는 정치적 메시지가 매일 미디어에 가득한 국가지만 그 안에서 사는 노숙자들과 걸인들도 상당히 많고, 그들을 외면하는 시민들도 존재한다.

진짜 의도

그렇다면 감독은 이런 일상과 국가의 모순을 그리고자 했을까. 그보다는 좀 더 작은 단위를 말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물관을 대표하는 최신 전시품인 '더 스퀘어'에 새겨진 글귀를 보자. 사각형의 틀이 바닥에 새겨져 있고 안내판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더 스퀘어는 신뢰와 배려의 성역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모두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나눠 갖는다'.

이 글귀는 영화 곳곳에서 화면 혹은 인물의 대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그런 대사 뒤엔 어김없이 노숙자들의 모습이 보이거나 상류층 사람들의 바쁜 모습이 보인다. 개인적 성취를 멋지게 이룬 사람들의 모습, 다소 뻔뻔하게 행인들에게 적선을 요구하는 노숙자들의 모습은 여러 감흥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더 스퀘어 문구와 함께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대사가 바로 '도와주세요!'라는 말이다. 외마디 비명처럼 또는 습관처럼 아무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채로 영화 곳곳에서 도와달라는 말이 등장한다. 주인공 크리스티안도 예외는 아니다. 집 건물에서 들리는 '헬프 미!'라는 말에 민첩하게 반응하지만 도무지 어디에서 들리는지 알 수 없다. 환청이었을까. 애써 무시하던 그가 영화 말미 어떤 행동을 하게 되고,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영화 <더 스퀘어>의 한 장면.

영화 <더 스퀘어>의 한 장면. ⓒ 영화사 찬란


홍보 과정에서 블랙 코미디라는 단어가 들어갔듯 보는 내내 유쾌하진 않지만 어떤 특별한 미소가 나올 법하다. 이쯤에서 감독의 변을 들어보자.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영화 연출 의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변을 돌아보면 개인에 대한 확신은 점점 늘어나는 반면, 공동체에 대한 신뢰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영화는 사회적 책임과 신뢰, 부유함과 가난함, 힘 있는 자들과 힘 없는 자들에 관한 주제를 넘나들며 인간과 사회, 미디어의 양면성을 꼬집는다."

한 줄 평 : 인간은 이래서 위대하고, 동시에 초라하다
평점 : ★★★☆(3.5/5)


영화 <더 스퀘어> 관련 정보
연출 : 루벤 외스틀룬드
출연 : 클라에스 방, 엘리자베스 모스, 도미닉 웨스트, 테리 노터리 등
수입 : 영화사 찬란
배급 : 아이 엠
공동제공 : 51k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51분
개봉 : 2018년 8월 2일


더 스퀘어 칸 영화제 스웨덴 민주주의 노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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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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