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스크래퍼 포스터

스카이스크래퍼 포스터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올 여름 단 하나의 재난 액션 블록버스터"(포스터 문구)는 드웨인 존슨에게 재난이 되었다. <스카이스크래퍼>는 미국에서 3782개관에서 개봉했다. 그의 출연작 31편 중 6번째, 단독 주연작 중 2번째로 많은 개봉관이었다. 그러나 개봉일 티켓 판매액은 역대 출연작 17위에 불과했다.

한국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간 드웨인 존슨의 출연작은 6편 연속으로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그러나 <스카이스크래퍼>는 개봉 일주일째인 17일까지 72만 명에 그쳤다. 개봉 4주차 <마녀>에도 평일 관객수에서 밀린다. 연속 기록 갱신은 다소 힘들어 보인다.

<스카이스크래퍼>의 흥행 결과를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드웨인 존슨 영화'는 흥행 기록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정석이다. 확실한 상품이니까. 다른 말로 하면, '볼 사람은 보고 안 볼 사람은 안 보는' 영화들이기도 하다.

<스카이스크래퍼>는 예고편부터 <다이 하드>를 닮았다. 본편은 더 닮았다. <스카이스크래퍼>가 <탈출>(1995) 시절에 개봉했다면 한국 제목은 아마 <드웨인 존슨의 다이 하드>가 됐을 것이다. 이런 표현은 '흉'이 아니다. 드웨인 존슨 영화가 기획 상품이라고 전제하면, 이보다 더 안전한 조건은 없다. 볼 사람과 안 볼 사람에게 더 명확한 기준을 줬으니.

오프닝 장면, 특수부대가 인질극 현장으로 진입한다. 이는 <다이 하드2>(1990)의 눈밭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호기심은 거기까지다. 영화는 <다이 하드>와 드웨인 존슨의 합집합에는 실패했다. 영화는 그를 불타는 홍콩 '타워링'에서 혼자 뛰어다니는 'T-800'(터미네이터)으로 만들어 '버렸다'.

브루스 윌리스와 존 맥클레인에 대하여

 다이하드 포스터

다이하드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브루스 윌리스의 모든 영화는 마치 <다이 하드>의 주인공 '존 맥클레인'의 평행 세계와도 같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투덜대며 농담하던 아이(<마이키 이야기>, 1989), 딸과 사이가 안 좋은 사립 탐정(<마지막 보이스카웃>, 1991), 환자 얼굴도 못 알아본 정신과의사(<컬러 오브 나이트>, 1994), 의뢰인 애인과 바람난 살인 청부업자(<라스트맨 스탠딩>, 1996), 소행성으로 확실히 떠난 석유굴착 재벌(<아마겟돈>, 1998), 환자에게 치료 받는 아동심리학자(<식스센스>, 1999), 아프리카에 파견된 네이비씰 대위(<태양의 눈물>, 2003), 술에 절어 말년을 보내는 뉴욕 경찰(<식스틴 블록>, 2006), 은퇴한 CIA 요원(<레드>, 2010) 등등.

평행 세계의 존 맥클레인들을 재조립하면 <다이 하드> 시리즈 중 하나가 된다. '존 맥클레인'이라는 캐릭터는 아직 우리가 브루스 윌리스를 소비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해도 <다이 하드>에 브루스 윌리스를 캐스팅한 건 지금 봐도 무리수에 가까웠다. 그때는 실베스타 스텔론과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액션영화를 지배할 때였다. 당시 브루스 윌리스는 겨우 TV쇼 <블루문 특급>(1985-1989)으로 반짝이기 시작할 때였다.

게다가 저렴한 캐스팅도 아니었다. 그는 <다이 하드> 출연료로 500만 달러를 불렀다. 이는 영화 제작비의 1/5에 가까웠다. 골든글로브 TV 부문 수상자가 아카데미 주연상 수상자급으로 달라니. 뭣 모르는 브라운관 스타는 영화도 TV쇼처럼 중간 광고나 PPL을 팔면 되는 줄 알기라도 했던 걸까.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48시간>(1982), <리쎌 웨폰>(1987) 등 이미 11편을 제작했던 조엘 실버는 그의 요구를 투자배급사 이십세기폭스에게 전했다. 그걸 또 이십세기폭스는 싸인했다. 그 후 TV스타는 이미 계약한 <블루문 특급> 5시즌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TV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관에서 펼쳐지는 존 맥클레인의 평행 세계들.

<다이 하드>의 흥행 결과를 보면 그럴 만했다. 개봉한 1988년에 액션 장르 1위, R등급 3위 매출을 기록했다. 같은 날 개봉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더티 해리5 - 추적자>(1988)를 2.2배 앞선 건 그야말로 상징적이었다. 신출내기 뉴욕 형사가 18년차 샌프란시스코 형사를 은퇴시킨 셈이었으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앞서 개봉했던 실베스타 스탤론의 <람보3>(1988)보다 1.5배,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레드 히트>(1988)보다 2.4배가 많았다.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실베스타 스탤론을 따라잡고 라이벌이 될 즈음, 둘과 전혀 다른 지점에 브루스 윌리스가 자리 잡았다.

드웨인 존슨과 '더 락'에 대하여

 <레슬매니아 32>의 더 락

<레슬매니아 32>의 더 락 ⓒ WWE


<스카이스크래퍼>에서 21세기 버전 '존 맥클레인'을 연기한 드웨인 존슨도 TV쇼 출신이다. '헐크 호건'이 빠진 시기에 드웨인 존슨은 '더 락'으로서 프로레슬링 WWE의 TV쇼를 이끌었다. PPL이나 중간광고뿐만 아니라 링의 메인 이벤터로서 투어 티켓을 매진시키고 PPV를 팔았다.

그는 TV쇼를 영화배우가 되어서도 적극 활용했다. 초기 출연작의 크레디트에 링 네임 '더 락'을 그대로 썼다. 어느 정도 영화가 쌓인 뒤에는 드웨인 존슨으로 대체했지만, 그래도 언제나 링에 돌아갈 수 있도록 근육을 유지한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실제로 잊힐 만하면 그는 WWE의 TV쇼에 출연하고 있다.

드웨인 존슨은 링 밖 스크린 안에서 '더 락'을 확장시켰다. 그래서 드웨인 존슨의 모든 영화는 프로레슬링 WWE의 '더 락'이 링 밖에서 움직이는 세계이다.

드웨인 존슨의 데뷔작들인 <미이라2>(2001)와 <스콜피온 킹>(2002)에서 '더 락' 캐릭터를 활용한 건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10년이 지나 감독 브래드 페이턴과 작업한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2: 신비의 섬>(2012), <샌 안드레아스>(2015), <램페이지>(2018) 등에서도 유지됐다. 다른 배우가 주도하는 프랜차이즈에 중간 투입된 <분노의 질주> 시리즈(2011, 2013, 2015, 2017)와 <지.아이.조 2>(2013)에서도, 목소리 연기를 한 애니메이션 <모아나>(2016)조차 그렇다.

그는 <록키3>(1982)의 헐크 호건처럼 스크린에 레슬러 캐릭터를 헛되이 소모하지 않았다. 그 세계가 벌어들인 티켓 매출은 2018년 현재 33억 3800만 달러, 드웨인 존슨은 할리우드 배우 중 티켓파워 20위다. '드웨인 존슨'은 '더 락'과 공존하는 '스크린 네임'이 되었다. 이름값을 스티븐 시걸이나 장 끌로드 반담처럼 10년도 안 되어 부가판권용으로 전락시키지도 않았다. 그는 영화배우 데뷔 17년째였던 2017년에 할리우드 최상위 출연료 5위였다. 드웨인 존슨은 영화관에서도 '메인 이벤터'가 되었다.

드웨인 존슨 출연료 2000만 달러에 대하여

그는 실베스타 스탤론처럼 터무니 없는 액션을 선보이면서도 아놀드 슈워제네거처럼 무적이고 브루스 윌리스처럼 농담을 관객에게 전달했다.

'더 락'은 링 안에서 거대한 몸집으로 스턴트만 보여주는 캐틱터가 아니었다. 그게 전부라고 여긴다면 WWE 시절의 '더 락'을 (알기만 할 뿐) 본 적이 없거나 드웨인 존슨 영화를 제대로 소비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독설과 유머를 뒤섞어 좔좔좔 떠드는 그의 마이크웍이 '더 락'을 완성시켰다. '더 락'의 마이크웍에서 WWE의 '스맥다운' 브랜드가 탄생되기도 했다.

스크린에서도 마찬가지다. 관객들이 어차피 자신의 영화에서 기대하지 않을 '사연팔이 빌드 업'은 생략한다. 그의 영화에서는 대부분 캐릭터를 터무니 없는 위기 상황에 곧장 밀어 넣는다. 구구절절한 사연 대신 유머 감각으로 캐릭터를 관객에게 공유시킨다. 말도 안 되는 액션 장면에서 감정 이입이 되는 건 그 덕이다.

눈치 챘겠지만, 실베스타 스탤론과 아놀드 슈워제네거에게는 없는 게 드웨인 존슨에게 있고, 브루스 윌리스에게는 없는 게 드웨인 존슨에게는 있다. <다이 하드>로 한정하면, '존 맥클레인'에게는 없는 게 '더 락'에게 있고, '존 맥클레인'에게 있는 게 '더 락'에게도 있다. 그래서다. <스카이스크래퍼>의 캐스팅은 <다이 하드>가 30년 전에 원래 그래야 했던 캐스팅을 이제야 한 것처럼 보였다.

출연료로 따지면 합리적이기까지 하다. <스카이스크래퍼>의 제작비는 1억 2500만 달러. 그 중 드웨인 존슨에게 2000만 달러를 지급했다. 메인 이벤터에게 제작비의 16%를 쓴 건 비율 면에서 많은 게 아니다. <다이 하드>는 전작 <데이트 소동>(1987)도 망한 스크린 초보에게 제작비의 18%를 줬다.

감독까지 감안하면 <다이 하드>는 '긁지 않은 복권'이었고, <스카이스크래퍼>는 '투자'였다. <다이 하드>는 감독 존 맥티어난과 배우 브루스 윌리스의 첫 작업이었다. 반면 <스카이스크래퍼>는 이미 성공한 파트너들과 함께한 작업이었다.

감독 로슨 미셜 터버와 배우 드웨인 존슨은 코미디 액션 영화 <센트럴 인텔리전스>(2016)로 흥행에 성공했다. 제작비 0.5억 달러 영화는 미국에서 1.27억 달러, 전세계에서 2.17억 달러 매출을 올렸다. <센트럴 인텔리전스> 미국 시장 매출액과 <스카이스크래퍼> 제작비가 같은 규모인 건 로슨 미셜 터버가 드웨인 존슨 영화 상품을 잘 팔리게 만든다는 계산에 가깝다(어떻게 보면 드웨인 존슨에게 <스카이스크래퍼>는 로슨 미셜 버터를 3편을 함께 한 감독 브래드 페이턴처럼 비즈니스 파트너로 안착시키려는 작업이기도 했다).

<스카이스크래퍼>의 착오에 대하여

 <스카이스크래퍼>의 한 장면. 주인공 월 소여는 타워크레인 꼭대기까지 맨손으로 등반한다.

<스카이스크래퍼>의 한 장면. 주인공 월 소여는 타워크레인 꼭대기까지 맨손으로 등반한다.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뒤집으면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동선만으로는 드웨인 존슨 영화의 상품성은 불완전하다는 얘기가 된다. <스카이스크래퍼>가 2000만 달러의 가치를 극대화하려면 '더 락'의 연장이어야 했다. 감독은 <센트럴 인텔리전스>처럼 가지 않았다. 드웨인 존슨으로부터 보고 싶은 걸 더 보여주면 된다는 그 안전한 계산. 착오였다.

영화는 내내 '더 락'이 경기를 할 때 보이는 듯한 모습에만 집중했다. 옛 동료와 격투를 벌이는 첫 번째 액션 장면은 영락없이 프로레슬링 기술들이다. 타워 크레인에서 빌딩으로 점프하는 액션 장면은 프로레슬링의 공중 기술과 다를 바가 없다.

그의 액션 연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지금까지 링과 영화에서 그랬듯이, 그는 역동적으로 접수했다. 그런데 전작 <램페이지>에서 고릴라와도 농담을 하며 여유를 부리던 그의 모습은 없었다. 영화는 18년차 배우를 마치 새로운 관객에게 선보이듯이 굴렸다.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채 그는 불타는 빌딩에서 계속 뛰어다녔다. 

<스카이스크래퍼>는 '존 맥클레인' 이전 시대의 근육으로 '존 맥클레인'의 유머까지 소화하는 배우를 그렇게 써먹는 게 다였다. 그의 상품성을 반쪽만 쓴 결과, 개봉일 매출 2490만 달러로 역대 출연작 17위에 불과했다.

셔츠 vs. 셔츠

우리가 기대한 건 드웨인 존슨 스타일의 <다이 하드>인데 정작 영화는 그걸 외면한다. 정작 중요하지 않은 <다이 하드> 설정을 그대로 빌려오는 데 급급해 보인다. 예컨대 셔츠. <다이 하드>는 셔츠 하나로 영화를 설명하는 의상이지만, <스카이스크래퍼>는 액션 전개를 위한 디딤돌 소품에 불과하다.

<다이 하드>는 존 맥클레인의 언더셔츠로 영화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속옷은 기존 액션 스타들과 달리 근육 갑옷이 없는 존 맥클레인 캐릭터를 드러낸다. 동시에 그 하얀 셔츠는 점점 까매지면서 존 맥클레인이 얼마나 거친 시간을 보내는지 표현한다.

<스카이스크래퍼>는 언더셔츠를 드레스 셔츠로 바꾼다. 슈트를 벗고 셔츠 하나만 입은 윌 소여는 액션을 시작한다. 셔츠가 너덜너덜해지면서 윌 소여의 근육과 문신이 드러난다. 그게 뭐? 그걸 모르고 극장에 들어온 관객은 없을 텐데.

영화는 윌 소여에게 드레스 셔츠를 입혔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듯하다. 윌 소여는 부상당한 자신을 돌봤던 아내 앞에서 드레스 셔츠에 슈트를 입는다. 특수부대원이었던 그가 이제는 사무직의 안전한 직업을 가진 남편이라는 서술이다. 어차피 악당과 싸울 걸 알지만 근육과 슈트가 양립해야 효과적일 텐데 스토리 전개에서 슈트의 상징은 무시된다.

그는 회장 앞에서 빌딩 보안이 완벽하다고 프레젠테이션 한다. 사건 전개는 그의 프레젠테이션과 정반대다. 빌딩은 테러범에게 쉽게 침투 당하고, 스프링클러는 그 자체가 발화를 극대화하는 장치였고, 그마저도 내부를 차단하고 외부에서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아니, 그보다 먼저 보안 회사 대표라면서 총까지 쏴대는 소매치기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 마무리가 되고, 그러니까 빌딩 소유주는 이걸 다 겪고도 그 보안 회사와 계약할 기세다. 그런 무능한 보안 회사 대표를 선택했던 테러범의 안목이 더 탁월하다. 굳이 드레스 셔츠일 필요가 없었다.

 <스카이스크래퍼>의 한 장면. 주인공 윌 소여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 고공 크레인에서 건너편 빌딩으로 점프한다.

<스카이스크래퍼>의 한 장면. 주인공 윌 소여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 고공 크레인에서 건너편 빌딩으로 점프한다.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맨발 vs. 의족

존 맥클레인의 맨발. 맨발은 그렇지 않아도 테러범보다 약한 존 맥클레인에게 시련을 더 하는 설정이다. 테러범들은 그가 맨발이라는 걸 알고 유리를 박살내면서 총격전을 유리하게 이끈다. 맨발과 총격전은 연속적이면서도 개별적인 이벤트가 된다.

<스카이스크래퍼>는 맨발을 의족으로 바꾼다. 활용법은 반대다. 여기서는 이미 외형상으로 악당들을 압도하는 드웨인 존슨의 능력치를 감소시키는 패널티이다. 그래봐야 악당들의 사망 시간을 약간 지연시키는 정도지만.

결국 그래봤자다. 윌 소여에게 의족은 아무 것도 아니다. 윌 소여는 타워 크레인 꼭대기까지 맨손 등반하고, 거기서 도움닫기가 안 되기는커녕 우사인 볼트보다 더 빨리 뛰어 건너편 펄 빌딩까지 점프한다. 아, 그것도 경찰 헬리콥터의 총격을 피해가면서. 기왕 있으니까 쓰는 거야, 그런 연출의 연속이다. 드웨인 존슨이니까 괜찮은 게 있고, 드웨인 존슨이어도 안 괜찮은 게 있다. 그럴 바에는 <언더시즈2>(1995)의 요리사 설정이 더 설득력 있다.

빌딩 vs. 빌딩

불타는 빌딩. <다이 하드>에서 업그레이드되지도 않았고, 어차피 CG인데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천국으로의 카운트다운>(2001)보다도 스케일이 크지 않았다. 차라리 <스카이스크래퍼>보다 1500만 달러를 덜 쓴 <샌 안드레아스>(2015)의 빌딩 장면이 더 강렬하다.

불타는 빌딩보다 빌딩이 쥐덫이 되어 갇힌 주인공, 이 설정이 <다이 하드>의 핵심이다. 그런데 빌딩의 소유주와 위치가 다르다. 그러면서 더 이상 빌딩은 쥐덫이 아니고, 표적 관객도 달라진다.

<다이 하드>의 나카토미 빌딩은 LA의 일본 기업 건물이다. 개봉 당시 유행했던 해석, 일본 자본이 미국에 들어오던 상황을 상징한다. 테러범들이 독일계라는 설정까지 붙인 걸 보면 영화는 관객에게 2차 세계대전을 떠올리라고 요구한 거다. 이런 관점으로 줄거리를 요약하면, 미국 내 일본 기업 때문에 미국 직장인들이 테러를 당한다. 그 빌딩에 있던 미국 형사가 유럽계 테러범에 대항해 직장인들을 구한다.

당시 일본의 미국 내 자본 침투는 할리우드 내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1989년에 콜럼비아 픽처스와 트라이스타 픽처스가 소니에 인수됐고 이후 소니 픽쳐스 엔터테인먼트가 된다. <블랙 레인>(1989), <리틀 도쿄>(1991), <로보캅3>(1993) 등 유독 일본 소재의 할리우드 영화가 많이 나오던 시절이다.

<스카이스크래퍼>는 일본을 중국으로 바꾼다. <스카이스크래퍼>의 펄 빌딩은 홍콩의 중국 재벌 건물이다. 똑같은 관점으로 요약하면, 미국 회사가 중국 재벌이 만든 전 세계 최고층 빌딩의 부대 계약을 '수주하러' 중국의 특별행정구 홍콩에 들어간다. 윌 소여가 테러범과 만나는 것도 똑같은 구조다. 빌딩에 갇혔던 게 아니라 외부에서 빌딩 안으로 들어간다.

할리우드가 바라보는 외국 자본이라는 구닥다리 해석, 이쪽은 <다이 하드>보다 더 아귀가 맞는다. <스카이스크래퍼>의 제작사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는 중국 완다그룹이 인수한 할리우드 제작사다. 더 정확히 말하면, 레전더리 픽쳐스는 중국과 합작한 영화 <그레이트 월>(2016)을 내놓은 후 중국 완다 그룹에 인수되는 데 '성공'했다. 펄 빌딩의 패널들이 있는 꼭대기 층은 어딜 봐도 <그레이트 월>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한 평창동계 올림픽 폐회식의 중국 공연을 복사했고, 거기서 펼쳐지는 마지막 액션 장면은 <용쟁호투>의 그것이다. 그저 우연일 수가 없다.

펄 빌딩의 위치가 기왕 상하이면 될 텐데 굳이 홍콩일까? 중국이 배경이 돼 본토는 침공 당해서는 안 되는 암묵적인 규칙이 적용된 것 같다.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2014),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2016)가 그렇고,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의 <퍼시픽 림: 업라이징>(2018)이 그랬다.

빌딩 위치로 <스카이스크래퍼>의 표적 관객은 분명해진다. 홍콩 역사를 감안하면, 테러범과 윌 소여의 자녀들이 나눈 "폐하"라는 대사는 중국 시장을 향한 참 자잘한 서비스로 보인다. 심지어 빌딩 주인은 영웅이 된다. 마지막에는 불타버린 빌딩을 바라보며 비장하게 다시 짓겠단다. <스카이스크래퍼>는 할리우드가 글로벌 시장이 곧 중국시장이라는 인식을 그렇게 드러낸다.

덕트 테이프, 가족, 아내, 경찰, 미디어

덕트 테이프. <다이 하드>에서 덕트 테이프는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특히 마지막 대결 장면의 덕트 테이프는 반전 소품이다. <스카이스크래퍼>에서 덕트 테이프는 만능이다. "덕트 테이프가 쓸모없을 때는 더 사용하면 된다." 그건 선언이다. 가령 윌 소여는 덕트 테이프를 두 손에 칭칭 감더니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2011)에서 에단 헌트(톰 크루즈)가 진공빨판 장갑을 두 손에 끼고 초고층 빌딩을 오르는 장면을 재현한다. 테러범과 최후를 준비할 때도 무기 대신 덕트 테이프를 찾는다. 그 모습을 보고 흡사 맥가이버인 줄 알았다.

 <스카이스크래퍼>의 한 장면.

<스카이스크래퍼>의 한 장면.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가족을 다루는 부분은 어떤가. 구성은 동일하다. 다만 분위기가 다르다. 윌 소여 가족이 존 맥클레인 가족처럼 산산이 부서질 일은 없을 듯하다. <다이 하드> 시리즈는 부부싸움을 할 때도(<다이하드>, 1988), 아내와 별거 중일 때도(<다이하드3>, 1995), 딸이 친구들에게 아빠가 죽었다고 하더라도(<다이하드4.0>, 2007), 아들이 아빠를 존이라고만 불러대도(<다이하드: 굿 데이 투 다이>, 2013)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다. 훗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시리즈에서 윌 소여 가족들이 그런다면 그건 패륜이다. 그 정도로 가족들이 완벽하게 아빠를 믿는다.

아내. 직업이 회사원에서 군의관 출신으로 바뀌었다. 직업 변경을 빌미로 전투력이 강해진다. <다이 하드>의 아내는 자신과 남편을 위험에 빠트렸던 방송 기자에게 주먹을 날려 앞니 2개를 부러뜨린다. <스카이스크래퍼>의 아내는 그 수준을 뛰어넘는다. 테러범들을 칼로 찌르고, 발차기로 기절시킨다. 게다가 빌딩에서 탈출한 아내는 경찰을 진두지휘한다. 아내는 홍콩 경찰(중국 경찰이 아니다)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테러범들의 집결지를 예측하고 설득한다.

경찰과의 관계를 보자. 존 맥클레인은 무전기로 경찰과 대화를 나누며 상황을 설명한다. 그러나 윌 소여는 경찰과 전혀 소통이 없다. 대신 빌딩에서 탈출한 아내가 경찰에게 설명한다. 경찰팀장은 제 부하보다 아내의 작전을 받아들이는 건 덤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윌 소여와 경찰 팀장이 만나게 한다. 경찰 팀장은 윌 소여에게 "드디어 만났다"고도 한다. 윌 소여는 그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미디어. <다이 하드>의 미디어는 들러리가 아니다. 사건 전개에 변수로 작용한다. 기자는 테러 상황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뉴스를 '만든다'. 그 뉴스 때문에 빌딩 안의 아내는 테러범의 인질이 된다. <스카이스크래퍼>에서 미디어는 전혀 변수가 아니다. 초대형 스크린으로 윌 소여의 쇼를 구경꾼들에게 중계한다. 구경꾼들은 그걸 박수치고 환호한다. 심지어 그가 조금 전까지 주요 용의자로 거론됐던 인물인데도!

로봇이 인간과 너무 닮았더라도 미묘하게 틀어지면 혐오감이 생긴다고 했던가. 두 영화 관계가 그렇다. <스카이스크래퍼>는 <다이 하드>를 본 관객을 '불쾌한 골짜기'에 빠트린다. <스카이스크래퍼>를 보고 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이 하드>를 다시 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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