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메인포스터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메인포스터

▲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메인포스터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메인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01.

2008년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진행된 마블 유니버스의 세계관도 벌써 3번째 단계에 접어들어(Phase 3) 그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페이즈 3의 특징적인 부분은 지난 페이즈 1, 페이즈 2의 이야기들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향해 나아가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 실제로 지난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2018)를 통해 보여준 충격은 이러한 방향성을 지지하는 증거로 이해되고 있다. – 마블 유니버스의 페이즈 3는 2016년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를 시작으로 2019년에 예정된 세 작품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이번 단계에서 새롭게 추가되는 캐릭터는 닥터 스트레인지와 블랙 팬서, 페이즈 2의 말미에 합류한 앤트맨이며, 내년에는 첫 번째 여성 솔로 무비로 캡틴 마블이 합류할 예정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개별 솔로 무비의 속편으로 다시 제작된 <앤트맨과 와스프>는 이 단계에서 이번 작품의 세계관과 캐릭터가 얼마나 큰 무게를 갖는지 보여준다.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스틸컷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스틸컷

▲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스틸컷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02.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는 기본적으로 시리즈의 전편인 <앤트맨>(2015)과 시기적으로 이야기의 직전 시점이 되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 쿠키 영상까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도 사전에 관람할 필요가 있다. – 영화 곳곳에 지난 작품들과 연결되는 지점의 이야기들이 대사를 통해 언급되기 때문. 시작부터가 시빌 워 사건으로 FBI로부터 가택연금을 당하고 있는 스캇 랭(폴 러드 역)의 모습이다. 물론 그에 대한 부연 설명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히어로로서의 삶과 일반적인 가장의 삶 사이에서 고민 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마블 유니버스 내에 속해 있는 다른 히어로들과는 태생이 조금 다르다. 선천적인 능력을 타고 난 것도 아니며, 후천적이기는 하나 스파이더맨처럼 능력을 내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굳이 언급하자면, 외부의 기술, 특히 수트로부터 능력을 부여 받은 일반인에 가까운 편. 하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강한 믿음과 신념으로 뚜렷한 목적을 가진 아이언맨과는 또 다른 지점에 위치해 있다. 선대인 행크 핌 박사(마이클 더글라스 역)에 의해 지목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 심지어 지금은 그렇게 부여 받은 능력 때문에 국가의 감시를 받고 있는 상황이니 자신의 역할에 대해 혼란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부분은 양자 영역에 빠져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줄 알았던 재닛 반 다인(미셸 파이퍼 역)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호프 반 다인(에반젤린 릴리 역)과 행크 핌의 모습과 더불어 이번 작품이 자연스럽게 가족 영화로 나아가는데 기여한다. 물론, 작품 내에서 주로 할애되는 그의 역할은 히어로서의 모습이다. 그러나 간간이 등장하는 딸 캐시 랭(애비 라이더 포트슨 역)과의 케미스트리가 눈에 띄는데, 앞으로 그녀 또한 새로운 히어로로 참여할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스틸컷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스틸컷

▲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스틸컷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03.

외견적으로는 전편에 이어 앤트맨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능력을 – 축소와 확대 – 적절히 활용하며 액션 시퀀스의 호흡을 잘 이끌어 나간다. 이는 DC 유니버스와 달리 마블 유니버스가 가진 현명함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데, 적어도 현재까지는 마블 유니버스에서 소개하고 있는 히어로들의 능력의 면면이 겹치지 않아 작품 별로 유사한 액션 장면에도 개성 있는 표현이 가능해지고 있다. 다만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이 작품의 타이틀이 앤트맨인 것과 달리, <시빌 워>에 이어 이번에도 스캇이 보여주는 자이언트 맨은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다는 것이다.

전작의 분위기를 그대로 잘 이어오며 특유의 유머 코드를 십분 발휘하고 있다는 것도 이번 작품의 매력이라 볼 수 있다. <앤트맨> 시리즈의 유머 코드는 <데드풀>이 지향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면서도 유사한 점이 있는데, 확실히 원어를 그대로 알아들을 때 작품의 유머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데드풀>에서 논란이 되었던 오역의 지점까지는 아니지만, 원문에 담겨있는 개그 코드들이 한국어로 직역되는 과정에서 소실되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미를 이용해 스캇의 가택연금을 대신한다던가, 스캇이 타기 위해 부른 개미들이 갈매기에게 몇 번이나 잡아 먹히는 등의 시각적 효과를 활용한 개그들은 유용한 편이다.

04.

이번 작품의 유일한 아쉬움은 미약한 빌런의 존재감에 있다. 원작에서는 남성이었던 캐릭터를 여성으로 바꾸면서까지 <토르> 시리즈의 헤라에 이어 개성 있는 빌런의 개발에 공을 들인 모양이지만 그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다. 근본적인 원인은 빌런인 고스트(해나 존 케이먼 역)의 목적 자체가 세계나 타인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에 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이것은 단순히 마블 유니버스 세계관뿐만 아니라, 엑스맨 세계관에서도, DC 유니버스 세계관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 히어로 장르에서 '악'을 그려내는 데 있어 악역을 오롯이 짊어지고 가야 할 빌런에게 잠시의 유약한 여지를 남겨버리면 그만큼 선역의 이미지는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다크나이트> 시리즈의 '조커'라는 캐릭터에 열광했던 까닭 역시 그를 연기했던 히스 레저의 뛰어난 연기력과 함께 캐릭터 자체가 갖고 있는 무자비한 광기와 잔혹함 때문이었다.

앤트맨이 놓인 상황의 설정 자체도 빌런의 역할을 두드러지지 못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 일반적으로 빌런은 히어로의 능력을 제한하거나 무력하게 만들어 시험에 들게 하거나 양심과 도덕성이 현실 앞에 흔들리도록 만들어 자신의 존재를 더욱 부각시키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지점에 있어 히어로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는 히어로의 존재 목적 자체가 공적인 안전이나 가치관의 수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소 개인적인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작품 스스로가 히어로의 영역을 제한함으로 인해 빌런이 딱히 크게 존재감을 드러낼 일이 없어지고 만다. 실제로 재닛이 양자 영역에서 구출된 이후로 고스트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으며, 재닛에 의해 빌런 스스로의 문제가 해결되고 난 이후에는 갈등적 상황이 일순 해소되고 마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스틸컷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스틸컷

▲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스틸컷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05.

사실 이번 작품의 의미는 단편이 아닌 시리즈, 시리즈 중에서도 <앤트맨> 시리즈가 아닌 마블 유니버스 내에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동안 마블 유니버스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장해오는 과정에서 또 한번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아이언 맨>과 <인크레더블 헐크>, <캡틴 아메리카> 등의 작품을 공개하며 <어벤져스> 세계관을 형성하기 위해 첫 발을 내딛던 시기가 첫 번째 지점. 그리고 이미 형성된 <어벤져스> 시리즈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더하고, 기존 솔로 무비의 속편들을 내놓으며 세계관을 확장해 나가던 시기가 두 번째 지점이다.

이제는 그 동안 충분히 확장된 세계관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시점과 공간의 요소 요소에 또 다른 이야기들을 밀어 넣어 볼륨을 키우고 있는 모습이다. 이번 작품이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와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의 사이에 놓인 지점의 이야기라는 것, 양자 영역에서 충분히 생존해 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다시 설명하면, 과거에는 <아이언 맨 2>를 보기 위해 <아이언 맨>을 이해하고,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를 보기 위해 <캡틴 아메리카 : 퍼스트 어벤져>를 이해하는 식의 패턴이었지만, 이제는 마블 유니버스 세계관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솔로 무비 하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점은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 함께 나오는 쿠키 영상을 통해 더 명확해진다. 이 작품의 바통을 이어받을 작품은 브리 라슨의 <캡틴 마블>(2019)이다. 시리즈의 두께가 더욱 두꺼워지고 난 뒤에 이 작품이 솔로 무비의 그것 이상으로 또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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