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20년 만에 월드컵에서 우승하면서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이 종료됐다. 브라질, 독일 등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거인들이 예상보다 낮은 단계에서 침몰한 반면 크로아티아, 벨기에 등 신진 세력이 위세를 떨쳤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을 포함해 최근 다섯 번의 월드컵의 챔피언이 전부 달랐다. 바야흐로 월드컵의 춘추전국 시대다.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팀들이 활약했던 것과 별개로 이번 월드컵의 전술적 키워드는 단순하고 명료했으며 반복적이었다. 월드컵에 참가한 대부분이 팀들이 비슷한 수비 전술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많은 참가국이 수비 상황에서 4-4-2 포메이션을 적극 활용했다. 우승국 프랑스를 비롯해 짠물 수비를 보여준 우루과이, 유럽 챔피언 포르투갈, 24년 만에 8강에 진출한 스웨덴 등이 그러했다. 한국 대표팀도 4-4-2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독일을 잡아내는 쾌거를 이뤄내기도 했다.

축구의 기본 4-4-2 포메이션, 수비력을 선사하다

이번 대회에서 4-4-2 포메이션이 대유행했던 이유는 명확하다. 세계 최고의 전술가들이 매년 격돌하는 UEFA 챔피언스리그와 유럽 5대 리그에서 지난 4년 간 가장 위력적이었던 포진이기 때문이다.

4-4-2 포메이션은 축구 포메이션의 교과서와 같다. 축구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면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포메이션이다. 4-4-2 포메이션이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한 대회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이었다. 당시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이었던 알프 램지는 브라질 대표팀에게 영광을 안겨줬던 4-2-4 포메이션에 변형을 가했다. 측면 공격수 없이 4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기용해 우승까지 자치하며 '날개 없는 기적'을 일궈냈다. 잉글랜드는 중원 장악력을 바탕으로 한 단단한 수비로 단 3실점을 허용하며 첫 우승을 일궈냈다.

보다 현대적인 4-4-2 포메이션, 즉 미드필더들이 일(一)자 형태로 자리잡는 진형은 이탈리아 AC밀란의 아리고 사키 감독 손에서 꽃을 피웠다. '압박'이란 개념을 도입한 사키의 4-4-2 포메이션은 치밀했고 빈틈이 없었다. 사키의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파비오 카펠로 감독의 밀란은 1993-1994 시즌 34경기에서 단 36골을 넣고도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의 원동력은 단 15실점 만을 내준 수비력이었다.

심지어 공격 축구의 표상 브라질마저 4-4-2 포메이션을 차용했다. 그러나 1994년 미국 월드컵까지 유행했던 4-4-2 포메이션은 빠른 속도로 쇠락하기 시작했다. 중원 싸움에서 수적 우위를 가져갈 수 있는 4-3-3 포메이션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4-4-2 포메이션은 역사의 뒤안길로 서서히 사라졌다. 사키가 만들어냈던 전략은 지네딘 지단, 후안 로만 리켈메와 같은 위대한 공격형 미드필더들의 활약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4-4-2 포메이션의 마지막 보루와 같았던 잉글랜드 축구도 4-3-3 포메이션을 활용한 조세 무리뉴의 침공에 백기를 들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불어 닥친 스페인식 4-3-3 포메이션도 전 세계적으로 위력을 떨치면서 4-4-2 포메이션은 '쓸모 없는' 과거의 포메이션으로 전락하는 듯했다.

시메오네·라니에리가 부활시킨 4-4-2 포메이션, 월드컵 지배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스페인과 FC 바르셀로나(아래 바르사)의 4-3-3 포메이션은 생각보다 일찍 공략을 당했다. 아이러니하게도 4-3-3 포메이션의 영광의 시대를 무너뜨린 것은 다시 4-4-2 포메이션이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디비전 지난 27일(현지시각),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프리메라리가 경기에서 AT 마드리드 선수들이 레알 마드리드와의 승부에서 이긴 후 기뻐하고 있다.

▲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디비전 지난 2016년 2월 27일(현지시각),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프리메라리가 경기에서 AT 마드리드 선수들이 레알 마드리드와의 승부에서 이긴 후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EPA


한때 '구닥다리' 전술로 취급받던 4-4-2 포메이션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아래 ATM) 디에고 시메오네를 만나 화려하게 부활했다. 사키가 압박을 통해 4-4-2 포메이션에 힘을 더했다면 시메오네는 '간격'으로 숨을 불어 넣었다. 4-3-3 포메이션을 상대하는 4-4-2 포메이션이 가지는 구조적인 약점을 1선-2선-3선 사이의 촘촘한 간격으로 해결했다.

특히 수비 라인과 미드필더 라인의 간격을 최소화 시킨 점이 효과적이었다. 제 아무리 뛰어난 공격형 미드필더나 공격수도 시메오네가 만들어 낸 좁은 공간 안에 먹잇감에 불과했다. 좁디 좁은 공간에서 공을 탈취하기 위해 무섭게 달려드는 ATM 선수들의 투쟁적인 수비에 바르사와 레알 마드리드도 속수무책이었다. 공격 상황에서는 다재다능한 네 명의 미드필더와 뛰어난 공격력에 풀백이 공을 전방으로 운반하면 강력한 투톱이 득점을 뽑아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레스터 시티의 감독이었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는 4-4-2 포메이션 부활에 방점을 찍었다. 라니에리 감독은 시메오네의 전략을 완벽하게 수용했다. 좁은 간격에서 나오는 단단한 수비력과 선수들의 투쟁심까지 모든 것이 시메오네의 방식과 닮았다. 다만 공격 장면에서는 ATM보다 전력이 떨어지는 만큼 보다 직선적인 롱패스와 측면 자원들의 드리블로 승부를 결정짓는 차이점이 있었다.

 레스터 시티의 감독 클라우디오 라니에니와 주장 웨스 모건이 지난 7일(현지시각) 영국 킹파워 스타디움에서 열린 에버턴과의 경기가 끝난 후, 영국 프리미어 리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레스터 시티의 감독 클라우디오 라니에니와 주장 웨스 모건이 지난 2016년 5월 7일(현지시각) 영국 킹파워 스타디움에서 열린 에버턴과의 경기가 끝난 후, 영국 프리미어 리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 연합뉴스/EPA


ATM과 레스터 시티의 대성공은 상대적 약체들의 표본이 됐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세계 최고의 팀들도 4-4-2 포메이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클럽이 레알 마드리드(아래 레알)다. 공격시에는 4-3-3 혹은 다이아몬드 4-4-2 포메이션을 활용했지만, 수비 상황에서는 망설임 없이 일자형 4-4-2 포메이션으로 모습을 바꿨다. 카를로 안첼로티와 지네딘 지단은 공격 상황과 달리 수비시에 4-4-2 포메이션으로 전환하는 전술로 최근 5년 간 4개의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팀에 선물했다.

레알과 같은 절대적 강팀부터 레스터 시티와 같은 절대적 약체까지 모조리 4-4-2 포메이션으로 성공을 거둔 지난 4년의 영향력은 이번 월드컵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대회 챔피언이자 우수한 전력을 갖춘 절대적 강자 프랑스는 공격시에는 4-2-3-1 포메이션으로 활용하다 수비시에는 빠르게 4-4-2 포메이션으로 전환해 수비 안정성을 극대화했다.

유능한 미드필더와 강력한 투톱을 보유한 우루과이의 경우 ATM의 성공 방식을 표방했다. 오스카 타바레즈 감독은 ATM의 주전 수비수인 고딘-히메네즈 조합으로 빈틈없는 수비를 구축하고, 수아레즈와 카바니로 구성된 공격진으로 상대를 궤멸시켰다.

절대적 약체 한국도 4-4-2 포메이션으로 승리했다. 레스터 시티의 방식대로 한국은 독일과 경기에서 필드 플레이어 10명이 성실히 수비에 가담했다. 역습 상황에서는 과감한 전진 패스로 독일의 뒷공간을 공략했다. 결국 한국은 독일은 2-0으로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번 대회에서 공을 점유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 공간을 선점하는 일이 중요했다. 빠르게 수비 라인을 정비해 수비 장면에서는 공간을 최소화하고, 반대로 공격 장면에서는 상대가 허용한 공간을 빠르게 공략하는 '공간의 전쟁'이었다. 공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팀은 십중팔구 4-4-2 포메이션을 사용했다. 2018년 현재 4-4-2 포메이션은 부정할 수 없는 전술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반복되는 역사, 4-4-2 포메이션을 뚫어낼 전술은?

4-4-2 포메이션의 위세가 언제까지 갈 지는 미지수지만 확실한 사실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점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이 4-4-2 포메이션도 언젠가는 다시 침체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역사의 반복이다. 100년이 넘는 축구 역사에서 하나의 포메이션이 수십 년간 세계를 지배한 경우는 드물다. 축구사의 탁월한 전술가들은 유행하는 포메이션을 박살낼 전술을 매번 개발했다. 이러한 경향은 미디어가 발달할수록 빨라지고 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스페인식 4-3-3 포메이션의 수명이 10년이 채 되지 못했다는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월드컵 챔피언 프랑스는 수비 상황에서 4-4-2 포메이션을 활용했다

월드컵 챔피언 프랑스는 수비 상황에서 4-4-2 포메이션을 활용했다 ⓒ 봉예근


그렇다면 현재 포메이션의 정점에 서 있는 4-4-2 포메이션을 뚫어낼 전술을 무엇일까. 가장 먼저 해답을 던진 팀은 EPL의 첼시 FC다. 2016년 첼시의 감독으로 부임한 안토니오 콘테는 3-4-3 시스템으로 4-4-2 포메이션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상대 투톱을 쓰리백으로 막는 축구 포메이션의 기본 상성을 이용했다. 단순한 3-4-3 포메이션이었으면 콘테가 찬사를 받았을 리 없다. 핵심은 쓰리백 수비수들의 역할 변화였다. 과거 쓰리백 수비수들은 상대 투톱을 막는 데 전념했지만, 콘테의 쓰리백 자원들은 과감히 앞으로 전진했다. 공 다루는 기술이 준수한 다비드 루이즈 혹은 풀백 출신의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가 상황에 따라 전진해 중원의 밀도를 높였다.

루이즈 또는 아스필리쿠에타의 중원 가세로 첼시는 중원에서 수적 열세에 빠지지 않았다. 미드필더에 해당하는 측면 윙백들은 수비 상황에서 빠르게 수비로 내려와 쓰리백 자원의 전진을 메웠다. 라니에리의 성공과 기본적으로 4-4-2 포메이션에 능한 EPL 팀들은 유동적인 콘테의 쓰리백에 압도를 당했다.

지난 시즌 맨체스터 시티의 EPL 우승을 만든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전술도 주목할 만하다. 과르디올라는 공격 상황에서 풀백을 중원에 위치시켜 상대 투톱과 미드필더의 협동 압박을 벗어났다. 수적 우위를 통한 안정적인 빌드업을 시작으로 수비에서 공격 지역으로 공을 빠르게 투입했다.

EPL 맨시티, 첼시에 1-0 승리 지난 3월 4일 영국 맨체스터 에티하드 스타디움에서 진행된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첼시 FC와의 경기에서 맨체스터 시티의 르로이 사네(오른쪽)가 공을 차고 있다.

▲ EPL 맨시티, 첼시에 1-0 승리 지난 3월 4일 영국 맨체스터 에티하드 스타디움에서 진행된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첼시 FC와의 경기에서 맨체스터 시티의 르로이 사네(오른쪽)가 공을 차고 있다. ⓒ 연합뉴스/EPA


또 하나의 특징은 측면에 클래식한 윙어를 기용했다는 점이다. 오른발잡이를 왼쪽에, 왼발잡이를 오른쪽 측면에 배치하는 '반대발 윙어' 대신 오른발 잡이 라힘 스털링을 오른쪽에, 왼발잡이 르로이 사네를 왼쪽 측면에 배치하는 전술을 택했다. 측면 공격수의 직접 슈팅은 다소 어려워졌지만 공격의 속도는 증대됐다. 공격의 스피드를 높여 상대가 4-4-2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수비 라인을 정비하기 전에 결정타를 날리려는 과르디올라의 묘안의 성공적이었다.

다비드 실바와 케빈 더 브라위너를 동시에 경기장에 투입한 방안도 훌륭했다. 4-4-2 포메이션으로 1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는 좁은 틈바구니에 가둬놓을 수 있을지 몰라도 2명의 선수를 동시에 커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탁월한 기술력을 지닌 두 명의 사령관은 4-4-2 포메이션을 멋지게 격파했다.

다만 과르디올라가 제시한 해결책에는 한계점이 있다. 일단 복잡한 전술이기에 경기장에서 실제로 수행하기가 어렵다. 전술 외적으로는 팀에 우수한 공격형 미드필더가 두 명 이상이 없으면 활용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한 공격의 속도를 높이기 전에 4-4-2 포메이션을 활용하는 팀이 애초에 내려앉아 공간을 최소화하면 크게 의미가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점도 있다.

사실 어떤 전술이 4-4-2 포메이션의 황금기를 끝낼지는 미지수다. 한 달 사이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축구계에서 예측은 금물이다. 다만 명확한 점은 누군가는 4-4-2 포메이션을 물리칠 방도를 찾아낼 것이란 점이다. 콘테와 과르디올라가 보여준 방법 이외의 방식이 등장할 수도 있다. 4년 뒤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포메이션의 유행을 목도하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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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포메이션 러시아 월드컵 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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