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주인공 캐스팅,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나이 차, 뜻밖의 연기 논란, 시대적 배경까지.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둘러싼 논란은 마치 '두더지 잡기'와 같다. 여기저기서 쉴 새 없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그런 '논란'이 무색하게도 시청률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김은숙 작가, 배우 이병헌이라는 화제성을 업고 시청률 8%를 거뜬히 넘기며 시작하더니, 3회차에 10%를 넘어섰다(닐슨 코리아 유료 가구 플랫폼 기준).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주인공들

 tvN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tvN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 tvN


<미스터 션샤인>의 시작은 비감했다. 강화도 김씨 가문에서 노비였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야반도주를 하다 잡혔다. 아비는 멍석말이 매타작 등으로 목숨을 잃었고, 어미는 유진(이병헌 분)을 살리기 위해 양반네 며느리의 목에 날카로운 비녀를 들이댄 뒤 그에게 도망치라 다그친다. 어미는 자신의 던져준 양반네 며느리의 노리개를 아들 유진이 들고 도망가자 우물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

아들 유진은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자신을 쫓는 추노꾼들을 따돌리고 생감자를 씹으며 길을 나섰다. 도공의 집에서 만난 미국인을 따라 조선 땅을 떠났다. 그것만이 어머니가 남긴 유언을 지키는 길이라 어린 유진은 생각했다. 그리고 낯선 이방의 땅에서 그는 살아남기 위해 총을 들었다. 그리고 그 총이 유진 초이를 다시 고국으로 돌려보냈다.

조국을 '오만 원'에 팔겠다는 이완익(김의성 분)을 처단하기 위해 총을 든 의병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배신자가 있었고 의병들은 총에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동지를 지키기 위해 홀로 남아 적들에게서 시간을 끌던 어미(김지원 분)는 자신의 아이를 동지에게 전한다. 아비(진구 분) 역시 장렬하게 목숨을 잃었다. 아이는 완고한 학자인 할아버지의 그늘에서 자랐다. 할아버지는 고애신(김태리 분)에게 정숙한 여인으로 살라고 했고 고애신은 그렇게 살 바에야 기꺼이 목숨을 내놓겠다고 했다. 이에 할아버지는 고애신을 의병이었던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의병이 된 장승구(최무성 분)에게 보냈다.

구동매(유연석 분)의 운명도 다르지 않다. 그의 어미, 아비는 백정이었다. 칼을 들어 동물을 잡는 건 그들의 직업이었지만, 돌아오는 건 일반 백성들조차 사람 대접하지 않는 모진 현실이었다. 그래서 그는 동물을 잡던 칼 끝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tvN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tvN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 tvN


위 세 주인공들은 성별과 연령은 달라도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나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이들은 '사람'으로 대접받은 적이 없는 존재들이다.

고대 그리스가 민주주의의 원형이라지만, 당시 시민에 노예와 여성은 해당되지 않았다. 조선에 노비, 백정과 여성의 자리는 없었다. 바로 거기서부터 <미스터 션샤인>의 질문은 시작된다. 지켜주지 않는 국가, 지킬 가치조차 없는 나라. 그 구성원들에게 국가는 어떤 것일까?

그 질문을 시작하기 위해 <미스터 션샤인>은 가장 드라마틱한 설정으로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구축했다. 조선은 비루했고 비겁했으며, 외세 앞에 무력했고 초라했다. 그에 비해 외세는 일본이든 미국이든 영악했으며 강력했고 압도적이었다. 드라마의 곳곳에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지 않은 점 혹은 심지어 왜곡을 만난다. 그 부실한 역사를 엮어 드라마가 도달하고자 한 것은 구한말의 역사에서 애초에 국가의 구성원인 적 없었던 세 주인공들의 가장 비극적이고도 낭만적인 캐릭터다.

이는 고려의 무신이었으나 나라의 버림을 받아 칼이 꽂힌 채 천년의 세월을 살아내야 했던 '도깨비' 김신과 그의 아내가 되기 위해 비극적 가족사를 감내해야 했던 지은탁의 서사와도 이어진다. 허구의 역사를 가장 낭만적으로 곁들였던 <도깨비>의 서사가 이제 가장 극적인 역사의 전환기였던 구한말로 시점을 옮겨 '사랑'과 함께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자각하는 근대적 개인, 그들의 선택

 tvN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tvN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 tvN


근대 이전에 개인의 존재와 역할은 신분제 사회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겐 별다른 의미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드라마는 '신분' 속에서 살던 주인공들을 그 '신분'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가장 극적인 장치를 도입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신분을 부여한 부모를 잃었다. 그저 잃은 것이 아니라 소속돼 있던 공동체가 그들을 버렸다. 거기서 그들의 첫 번째 자각이 싹튼다. 그저 노비로, 백정으로 순탄하게 살아갔다면 몰랐을 '공동체'의 실체를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 존재론적 깨달음은 가장 극적으로 그들에게 다가온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들은 자신이 몸담았던 공동체로부터 떠나게 된다. 유진은 살아남기 위해 양반 사회인 조선을 떠나 미국이라는 신 문명에 자신을 던진다. 구동매 역시 칼잡이였던 자신의 특기를 살려(?) 일본의 무사가 되었다. 고애신은 양반가의 여식이었지만, 어미·아비의 뜨거운 피를 물려받은 그녀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조신하게 한학이나 배우다 누군가의 지어미로 살아가야 할 운명을 거역한다. 고애신은 사냥꾼의 아들 포수를 받들며 바느질 대신 총을 든다. 전근대와 근대의 격동기에 그들은 그렇게 집단에서 벗어난 '개인'으로 각자 자신의 운명 앞에 선다.

 tvN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tvN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 tvN


신분제 사회에서 이탈된 세 명의 주인공은 스스로를 근대적 개인으로 자각한다. 그리고 개인과 국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양반에게 당하고 버림받는 게 당연하지 않다는 것, 양반 사회의 일원이 아니라는 것, 무너져가는 조국에 대한 비감함. 이 모든 게 그들을 자각한 개인으로 국가 앞에 서게 만든다. 과연, 지킬 가치조차 없는 국가를 왜 지켜야 할까. 나를 지켜주지 않는 국가는 존재할 가치가 있을까? 더 나아가 '국가'란 무엇인가? 이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해 김은숙 작가는 드라마틱한 인물들을 포진시켰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고애신이 조국을 구하기 위해 선뜻 총을 든 것과 달리, 유진과 구동매에게 총과 칼은 자신을 버티기 위한 방패다.

자신을 버렸던, 그래서 돌아올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던 고국으로 돌아온 유진과 구동매는 원치 않았지만 자신의 존재를 본다. 이들은 득세하는 적들 사이에서 총을 든 고애신과 만나 새로운 질문에 봉착할 예정이다.

그 질문은 우리가 지난 정권에서 던졌던 질문과 일맥상통한다. 로맨틱한 이야기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던 김은숙 작가에게 이번 도전은 시련이 될 수도 있다. 작가가 그려내는 역사는 성기고 뜻밖에도 호흡은 느리며 연기는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김은숙 작가는 이번에도 신화를 다시 쓸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미스터 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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