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공식 포스터.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공식 포스터.ⓒ BIFAN


정우성은 반짝반짝 빛났다. 제22회를 맞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아래 BIFAN)의 초반 분위기를 달군 배우 정우성은 '스타, 배우, 아티스트 정우성'이란 제목의 '정우성 특별전' 호스트였다. "침묵하지 말고 행동하자"는 메시지를 전한 정우성은 기자회견 외에도 영화제 초반 곳곳을 누비며 축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이번 BIFAN은 <비트> <태양은 없다> <똥개> 등 그의 대표작 12편을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작년 '전도연 특별전'에 이은 '정우성 특별전'은 1990년대 작품부터 최신작 <아수라> <강철비> <그날, 바다>까지 한국영화 근작들을 다시 재평가하는 자리라 그 의미가 크다. 

그뿐 아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비롯해 다섯 편의 장편과 열네 편의 단편을 소개하는 '(주)인디스토리 20주년 특별상영'은 2000년대 이후 한국 독립영화의 발전사를 확인할 수 있는 의미 깊은 특별전이라 할 만하다.

이 두 특별전이 이번 BIFAN에서 한국영화의 '과거'를 가리킨다면, 9편이 소개된 '코리아 판타스틱 장편-경쟁'과 7편 중 3편이 신작인 '코리아 판타스틱 장편-초청', 6편의 재기발랄한 단편을 모은 '코리아 판타스틱-단편'은 한국 장르 영화의 최전선을 만끽할 수 있는 'BIFAN'의 핵심 요소다. 그 중 따끈따끈하고 '핫'한 신작 세 편을 소개할까 한다. 부천에서 만난 다채롭고 젊은 한국 장르영화의 '힘'이 여기 있다.

백재호·이희섭 감독의 <대관람차>

 영화 <대관람차>의 한 장면.

영화 <대관람차>의 한 장면.ⓒ BIFAN


'선박사고로 실종된 직장상사 대정을 대신해 일본 오사카에 출장 온 우주는 그곳에서 대정과 닮은 사람을 본 것 같다. 그를 쫓다 귀국 비행기를 놓치고 오사카에 머물게 된 우주는 각자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BIFAN 공식 시놉시스)

가수 출신 배우 강두가 '물이 되는 꿈'을 부르는 장면은 좋은 영화가 주는 마법 같은 순간을 다시금 일깨운다. 세월호 추모곡을 불렀던 그 '루시드 폴'의 그 곡은 강두의 가창력을 확인시켜주는 동시에 <대관람차> 속 주인공 우주의 꿈과 방황을 은유적으로 함축한다. 백재호, 이희섭 감독이 공동연출한 <대관람차>가 그런 영화다. 음악으로, 영화로 누군가를, 청춘을, 그리고 우리를 위로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힐링'의 정서로 충만하다.

술김에 '탈선'을 해버린 우주(강두)는 출장 온 오사카에 '정박'해 버린다. 그리고 큰 사고가 난 그 '배'를 수입했었던, 지금은 실종되고 없는 대정을 떠올린다. 함께 음악 이야기를 나눴던 그를 찾는 일은 어쩌면 '밴드 출신' 우주가 잃어버린 그 '무엇'을 회복하는 여정의 다름 아니리라. 그 오사카에서 우주는 역시나 재해로 인해 상처받고 위축된 하루나(호리 하루카)와 만나고 음악으로 위로하며 자신의 '지금'을 되돌아보게 된다.

'대관람차'는 다만 위아래로 빙글빙글 돌 뿐이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온다. 하지만 땅보다 더 멀리 올라가 그 어딘가를 바라보게 만든다. 영화 속에서 꾸준하게 등장하는 그 '대관람차'는 세상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자신의 위치가 아직 어딘지 모르는 우주라는 이름의 청춘을 대변하는 것이리라.

우주의 휴가를, 음악이 동반된 그 불분명한 여정을 응원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우리는 상실을 경험한 그 우주와 하루나가 어디로든 한 발짝 나아가기라는 사실을 믿고 있으니까. <그들이 죽었다>(2014)를 만들었던 백재호 감독의 영화적 여정이 그리한 것처럼. 

김선웅 감독의 <하쿠나 마타타 폴레 폴레>

 영화 <하쿠나 마타타 폴레 폴레>의 한 장면.

영화 <하쿠나 마타타 폴레 폴레>의 한 장면.ⓒ BIFAN


'론칭을 앞둔 RPG 게임의 더빙을 위해 성우들이 모인다. 저마다의 사연과 자부심으로 녹음을 시작하지만 온갖 소동의 연속 속에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박호산, 이이경, 문지인 등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며 성우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재미도 쏠쏠하다.' (BIFAN 공식 시놉시스)

수작 <웰컴 투 미스터 맥도날드>(2000)는 '라디오 드라마'에 대한 헌사였다. 그 일본영화와 같이 녹음실 스튜디오를 주요 배경으로 삼은 <하쿠나 마타타 폴레 폴레>는 '성우'라는 직업 세계를 뛰어 넘어 한 가지 '업'에 매진하는 이들이 지닌 '장인 정신'에 대한 찬사와도 같다. 대신 코미디와 장르의 복합은 한층 더 세졌고, 자본의 '갑질'에 대한 직설적인 풍자까지도 탑재했다. 에둘러 가지 말자. 공포와 호러, 판타지 분야에 특화된 BIFAN에서 만난'올해의 발견'.

PD 출신 제작자는 비루하더라도 녹음을 완료해야만 한다. '갑질'이 체화된 젊은 팀장이 아무리 방해하더라도, 스타 여성 배우가 녹음을 망치더라도, 연출자와 성우들이 제각각 사연으로 무장한 채 녹음을 중단시키더라도. 이렇게 <하쿠나 마타타 폴레 폴레>는 초대형 MMORPG 게임 더빙을 위해 모인 이들의 개성과 갈등, 화합을 깔끔하고 무리 없는 호흡으로 제대로 풀어낸다.

여기에 소극이 품은 전형적인 소동과 말장난 개그, 아기자기하고 잘 짜인 캐릭터와 이야기의 연쇄는, 신인답지 않는 김민주·김정팔·문지인·박호산·배유람·연제욱 등 누구하나 버릴 것 없는 캐릭터들의 향연은 이 작품의 장르가 '코미디'임을 다시금 각인시킨다. 이렇게 넘치지 않으면서도 꽉 짜인, '오버'하지 않는 한국 코미디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오랜만인가. 영화를 보고 나면 주인공들처럼 걱정 근심 떨쳐버리고 '그래 다 잘 될 거야'라며 미소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라이브TV>를 연출했던 김선웅 감독의 신작.

오인천 감독의 <데스트랩>

 영화 <데스트랩>의 한 장면.

영화 <데스트랩>의 한 장면.ⓒ BIFAN


'탈옥한 연쇄살인마를 쫓던 열혈 형사 권민은 DMZ 인근의 알 수 없는 숲속에서 지뢰를 밟고 만다. 설상가상 범인까지 마주하게 된 상황. 가진 것은 오직 귀에 걸려있는 블루투스 헤드셋과 권총 한 자루! 그는 과연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BIFAN 공식 시놉시스)

아이디어로 승부하라! 제한된 공간과 한정된 인물로 꾸려진, 한국에서 거의 시도된 적 없는 저예산 스릴러. DMZ 부근 숲에서 지뢰를 밟은 형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몇이나 되겠는가. 지난 4월 미국 애리조나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액션 영화상'을 수상 <데스트랩>은 그러한 한계를 영화적인 설정과 리듬, 편집으로 돌파해내는 뚝심을 발휘한다.

사실 이런 '소재'는 서구에서 몇 차례 시도된 바 있다. 하지만 <데스트랩>은 여기에 DMZ라는 공간 설정을 더해 상상력과 개연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그러한 설정상 '말의 성찬'이자 '설득의 기술'이 더해질 수밖에 없는 이러한 작품이 '액션 영화상'을 수상한데는 <데스트랩>이 확보해낸 '영화적인' 감각을 높이 산 것으로 풀이된다. 여러 한계를 돌파해내는 그 영화적인 뚝심 말이다.

작년 말 역시 저예산 장르 프로젝트인 '호러' <월하>와 '공포 스릴러' <야경: 죽음의 택시>를 선보였던 오인천 감독의 신작 <데스트랩>은 꾸준히 진화 중인 오 감독의 작품 세계를 궁금케 만드는 '액션' 영화다. 이미 <더스트엔젤>, <비무장살인지대>로 이어지는 이른바  'DMZ 액션스릴러' 3부작을 모두 완성한 오인천 감독. <데스트랩>은 그가 파고 있는 '장르영화'라는 한 우물을 계속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임에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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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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