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이 약 한 달간의 치열했던 대장정을 마감하고 프랑스의 '20년 만의 정상탈환'으로 막을 내렸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화제와 감동, 논란을 낳았던 이번 월드컵도 어느덧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됐다.

세계 최고의 선수와 감독들이 경쟁하는 월드컵은 한 시대의 축구 트렌드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무대이기도 하다. 2018 러시아월드컵의 특징은 역시 '실리축구'로 요약할 수 있다. 과거 스페인식 '티키타카'로 대표되는 점유율 축구가 한 시대를 호령했다면 이번 대회는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선수비 후역습 전술을 펼친 팀들의 강세가 돋보였다. 아무리 오래 소유하고 있어서 결국 승부는 골을 누가 더 효율적으로 넣느냐에서 운명이 갈린다. 축구라는 스포츠의 묘미 혹은 모순을 잘 보여준 장면이다.

2018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 프랑스-크로아티아 경기 7월 16일 오전 0시(한국시각) 러시아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8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결승전 프랑스-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 4-2로 이긴 프랑스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 2018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 프랑스-크로아티아 경기 7월 16일 오전 0시(한국시각) 러시아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8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결승전 프랑스-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 4-2로 이긴 프랑스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 PENTA-연합뉴스


점유율 축구의 강자로 꼽히는 스페인이나 독일의 조기탈락을 비롯하여 이번 대회 내내 점유율에서 앞선 팀들이 정작 승부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공을 점유하기 위해 무리하게 앞으로 전진하기보다는 자기 진영에서 최대한 상대에게 공간을 허용하지 않고 기다린다. 그렇다고 무조건 지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패스 미스나 실수가 나오면 최대한 빠른 속도와 패턴으로 상대 골문까지 전진하는 '빠른 공수전환'이야말로 이 전술의 가장 큰 핵심이었다.

지난 대회와 비교하여 세트피스의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도 눈에 띈다. 모든 선수들이 공격과 수비에 가담할 수 있는 세트피스는 강팀과 약팀을 막론하고 월드컵 같은 단기전에서 가장 효율적인 득점 루트이자 팀플레이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번 대회에서는 무려 69골이 세트피스 상황에서 나오면서 역대 월드컵 중 단연 최다 기록을 세웠다. 특히 잉글랜드는 이번 대회에서 12골 중 9골을 세트피스 상황에서 뽑아내며 단일팀 월드컵 세트피스 최다골 기록을 수립했다. 각 팀들도 이번 대회에서 세트피스를 통한 득점루트를 발굴해내는 데 총력을 기울이며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세트피스 전술이 빛을 발하기도 했다.

이러한 실리축구의 득세는 자연히 언더독들의 반란으로 이어졌다.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사상 최초로 결승전에 진출한 크로아티아는 16강부터 준결승까지 3연속 연장 승부와 역전승이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특유의 '짠물 수비'로 8강까지 진출한 스웨덴이나 러시아도 우승후보와는 거리가 있는 팀들이었다. 상대적인 약팀들이 강팀을 상대로 월드컵 같은 큰 무대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 대회였다.

세대 교체 않은 팀 몰락, 미드필더 영향력 두드러진 대회

조별리그를 통과하지는 못했지만 이란-아이슬란드, 거함 독일을 침몰시킨 한국 등도 강력한 수비를 통해 약팀이 강팀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모범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심지어 우승국인 프랑스나 3위를 차지한 벨기에 같은 전통의 강팀들조차 단판승부인 토너먼트에서는 상황에 따라 점유율보다 수비와 역습에 무게를 둔 안정적인 경기운영으로 승리를 챙긴 경우가 많았다.

탄탄한 '황금세대'의 구축은 이번 대회에서 성공을 거둔 강팀들의 공통점이다. 이번 월드컵은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네이마르 등 개인능력으로 승부를 좌우하는 슈퍼스타들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안정적인 공수밸런스를 유지한 '원 팀'들이 강세를 보였다. 4강에 오른 프랑스, 벨기에, 잉글랜드, 크로아티아는 모두 자국 역사상 손꼽히는 황금세대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프랑스와 잉글랜드는 이번 대회 선수단 평균연령이 26세로 출전국 중 가장 어린 편에 속할만큼 과감한 세대교체가 돋보였다. 반면 4년 전에 비하여 선수단 구성에 크게 변화가 없었거나 30대 이상 노장 선수들의 비중이 높았던 독일, 아르헨티나, 브라질, 스페인 등 전통의 강호들이 대거 몰락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2018년 7월 7일 오전 3시(한국시간) 열린 러시아 월드컵 8강 브라질과 벨기에의 경기. 벨기에의 케빈 데 브라위너가 팀의 두 번째 골을 득점한 후 환호하고 있다.

2018년 7월 7일 오전 3시(한국시간) 열린 러시아 월드컵 8강 브라질과 벨기에의 경기. 벨기에의 케빈 데 브라위너가 팀의 두 번째 골을 득점한 후 환호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또한 러시아월드컵은 최전방 스트라이커보다는 미드필더들의 영향력이 두드러졌던 대회이기도 했다. 준우승에도 골든볼을 수상한 루카 모드리치(크로아티아)를 비롯하여, 앙투안 그리즈만(프랑스), 에당 아자르(벨기에), 이반 라키티치(크로아티아), 케빈 데 브라위너(벨기에), 킬리앙 음바페(프랑스) 등 기술력이 좋은 중앙 미드필더, 혹은 폭발적인 스피드를 지닌 측면 공격수들의 경기 지배력이 승부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았다.

6골로 골든부츠를 차지한 잉글랜드의 해리 케인은 득점의 절반이 PK였고 토너먼트에서 고작 한 골을 추가하는 데 그쳐 역대 가장 '머쓱한' 득점왕이 됐다. 반면 우승팀 프랑스의 주전 공격수 올리비에 지루는 결승전까지 단 한 골도 넣지 못했지만 공중볼 장악과 연계플레이 등 전술적 역할을 잘 소화하여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현대축구에서 공격수들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페널티박스와 득점 위주'에서 벗어나 날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럽 강세 두드러져... VAR은 제도적 보완 필요하다

대륙별로는 역시 유럽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2006 독일 대회를 시작으로 4회 연속 유럽에서 우승팀이 배출됐다. 1958년 스웨덴 대회 이후 '개최 대륙이 유럽인 월드컵에서는 항상 유럽팀이 우승한다'는 공식은 60년째 계속됐다. 유럽은 이번 대회 4강을 독식했을 뿐 아니라 조별리그를 통과한 16강 중 10개팀을 차지할 만큼 타 대륙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한때 유럽의 대항마로 꼽혔던 남미는 브라질과 우루과이만이 8강에 올라 체면치레를 하는데 그쳤다. 아시아와 북중미는 각각 일본과 멕시코만이 16강에 올랐고, 아프리카는 출전 5개국이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피하지 못했다. 향후 월드컵 개최국이 48개국까지 늘어나는 만큼 대회 수준의 질적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타 대륙 국가들의 분발이 필요해 보인다.

'지금은 비디오 판독중' 18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로드 경기장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대한민국 대 스웨덴의 경기. 후반 패널티 지역 내 김민우의 태클을 VAR를 통해 분석하고 있다.

▲ '지금은 비디오 판독중' 지난 6월 18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로드 경기장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대한민국 대 스웨덴의 경기. 후반 패널티 지역 내 김민우의 태클을 VAR를 통해 분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대회에선 처음으로 도입된 비디오판독 시스템(VAR)은 경기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떠올랐다. 이번 대회에서만 역대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총 29개의 페널티킥(성공한 득점은 22골)이 선언됐고, 레드카드는 역대 최소인 4장밖에 나오지 않은 것은 모두 VAR 효과와 무관하지 않다. 자책골도 무려 12골로 역대 최다를 기록하며 최초의 두 자릿수를 넘겼다. VAR 도입으로 사후 판독과 판정 정확도가 높아졌고, 선수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파울이나 비신사적인 행동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VAR 판독의 권한이 오직 심판에게만 주어진 탓에 조별리그까지는 특정 강팀에게만 유리하다는 '편파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실제로 모로코 같이 VAR 판독으로 결정적인 피해를 입은 팀들도 존재했고, 한국은 조별리그 멕시코와 스웨덴전에서는 VAR로 손해를 봤지만 독일전에서는 김영권의 결승골이 VAR 판독 끝에 인정받는 등 피해와 수혜를 동시에 입은 팀이 되기도 했다. 앞으로 VAR이 보편화되는 과정에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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