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아트 사커'라는 말을 축구장에 멋지게 새겨 놓은 프랑스가 다시 한 번 그 실력을 분명히 인정받았다. 당시 우승의 주역이었던 디디에 데샹 선수가 20년 후 감독으로서 '실리 축구'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팀을 조율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별 하나를 프랑스 축구협회 엠블럼 위에 새겨넣을 수 있게 됐다.

디디에 데샹 감독이 이끌고 있는 프랑스 남자축구대표팀이 한국 시각으로 16일 오전 0시 모스크바에 있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8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결승전 크로아티아와의 경기를 4-2로 이기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이어 두 번째 우승 위업을 이뤘다.

"운도 축구 실력이다"

2018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 프랑스-크로아티아 경기 7월 16일 오전 0시(한국시각) 러시아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8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결승전 프랑스-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 4-2로 이긴 프랑스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 2018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 프랑스-크로아티아 경기7월 16일 오전 0시(한국시각) 러시아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8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결승전 프랑스-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 4-2로 이긴 프랑스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PENTA-연합뉴스


16강 이후 세 경기 내내 연장전까지 뛰면서 놀라운 체력과 조직력을 자랑한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결승전에도 믿기 힘든 경기력을 선보였다. 공 점유율(크로아티아 61%, 프랑스 39%)은 물론이거니와 456개의 패스를 성공(성공률 83%)시켜 198개의 패스를 성공시킨 프랑스(패스 성공률 74%)를 압도한 것이다.

이러한 점유율, 패스 성공률 수치만 비교해도 프랑스의 '실리 축구'가 보인다. 그들은 크로아티아 선수들의 집중력이 흐려질 순간을 철저하게 기다리는 축구를 택했다. 공 점유율이나 패스 성공률은 단지 경기 내용을 살피기 위한 참고 자료일 뿐이고 승리를 가져오는 가장 중요한 방법인 '골'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계산된 축구를 펼친 것이다.

사실 프랑스의 결승전은 운도 조금 따랐다. 경기 초반 15분간 크로아티아의 공격 시도가 훨씬 많았다. 이 기세라면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결승에 오른 크로아티아의 놀라운 마침표가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유능한 플레이 메이커 모드리치와 왼쪽 날개 공격수 페리시치의 발끝에서 뭔가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프랑스에게 행운의 골 선물이 먼저 도착했다. 경기 시작 후 18분만에 프리킥 세트 피스 기회를 얻은 프랑스의 그리즈만이 왼발로 부드럽게 감아올린 공이 수비에 가담한 크로아티아 골잡이 만주키치의 머리를 스치며 골문 왼쪽 구석으로 빨려들어갔다. 월드컵 결승전 역사상 첫 번째 자책골이 나온 것이란다.

실망감이 컸던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10분 뒤 이반 페리시치의 침착한 왼발 동점골에 환호하며 다시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6분 뒤에 행운의 골 선물 또 하나가 프랑스 선수들에게 배달되었다. 그리즈만이 왼발로 올린 오른쪽 코너킥이 마튀디 머리를 살짝 넘어가면서 이 결승전 동점골 주인공 페리시치의 왼손에 맞았다.

피타나 네스터(아르헨티나) 주심은 그 순간을 놓쳤지만 VAR(비디오 판독 심판) 시스템의 조언을 받아들여 페리시치의 핸드 볼 반칙과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이 절호의 기회를 앙투안 그리즈만이 왼발 인사이드 킥으로 침착하게 굴려 넣었다.

프랑스의 실리 축구, '선택과 집중'

프랑스는 후반전에 크로아티아 선수들이 어떻게 밀고 올라올지 다 알고 있다는 듯 이번에도 '기다리는 축구 전술'을 펼쳤다. 섣불리 공격만 시도하다가 핵심 선수들의 체력이 고갈되는 것을 예방하는 효과도 고려한 것이었다. 힘과 스피드를 아꼈다가 상대가 휘청거릴 때 그것을 몰아서 쏟아붓는 기본 전략을 정확하게 숙지하고 나온 선수들이었다.

그 와중에 눈에 띄는 선수 교체 지시가 프랑스 벤치의 디디에 데샹 감독으로부터 떨어졌다. 54분에 은골로 캉테를 빼고 스티븐 은존지를 들여보낸 것이다. 프랑스 축구가 결승전에 오르기까지 수비형 미드필더 은골로 캉테의 존재감은 그리즈만이나 음바페 그 이상이었기에 이 선수 교체 지시가 잘못된 줄 알았다.

하지만 디디에 데샹 감독은 너무나도 냉정하게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날 이상할 정도로 캉테의 움직임이 나빴다. 캉테는 미드필드 지역에서 크로아티아 공격 줄기를 차단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무리하게 방향 전환과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다가 공을 자주 빼앗겼다.

강테 대신 은존지가 들어온 프랑스는 철저하게 역습 기회를 기다렸다가 결정적 한 방을 적중시키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준 것이다. 59분에 폴 포그바의 시원한 공간 패스가 킬리안 음바페의 앞 공간에 떨어졌다. 월드컵 결승전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폴 포그바 - 킬리안 음바페 - 앙투안 그리즈만'으로 이어진 프랑스의 역습은 크로아티아 수비수들의 빠른 대처로 곧바로 슛까지 만들지는 못했다. 웬만한 축구 팀은 이 상황에서 무리하게 슛을 시도하는데 프랑스는 더 확률 높은 방법을 선택했다. 음바페의 무리한 드리블도 아니었고 그리즈만의 무리한 왼발 터닝 슛도 아니었다. 어느 순간 페널티 구역 반원 부근까지 접근한 폴 포그바에게 그리즈만의 리턴 패스가 이어진 것이다.

여기서 포그바의 오른발 중거리슛이 1차로 수비벽에 막혔고 곧바로 2차 왼발 슛이 감아차기로 이어졌다. 포그바는 강한 슛보다 정교한 인사이드 감아차기 기술을 선택한 것이다. 포그바의 왼발 끝을 떠난 공은 모드리치를 피해 절묘한 곳으로 날아가 꽂혔다. 시야까지 가려서 타이밍도 빼앗긴 크로아티아 골키퍼 수바시치는 몸을 날려보지도 못하고 빨려들어가는 공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로부터 6분 뒤에도 프랑스의 역습은 확실하게 계산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왼쪽 옆줄을 따라 뤼카 에르난데스가 빠르게 공을 몰고 가다가 더 좋은 위치를 잡은 킬리안 음바페에게 정확한 횡 패스를 주었고 음바페는 오른발 슛을 정확하게 꽂아넣었다. 그의 앞을 가로막은 수비수나 골키퍼 모두 음바페의 슛 방향을 오른쪽 구석으로 예측했지만 마지막 순간 음바페는 몸 방향을 왼쪽으로 바꿔 발목 힘으로 틀어 때리는 기술을 자랑한 것이다.

후반전 20분만에 결승전 점수판이 4-1로 변했기에 역전승의 귀재들이라 불린 크로아티아도 프랑스를 따라잡기에는 뒷심이 모자랐다. 69분에 마리오 만주키치가 프랑스 골키퍼 위고 요리스의 패스 실수를 이끌어내며 따라붙는 골을 터뜨렸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결승전 이전까지 프랑스는 경기당 0.67골을 내주었기에 지키는 축구에도 자신이 있었다. 반면에 경기당 평균 득점은 1.67골이었다. 기록이 말해주듯 프랑스는 1골 차이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실리 축구'를 선택하고 거기에 모든 경기력을 쏟아부은 것이다.

1-0으로 끝난 벨기에와의 준결승전을 두고 프랑스 축구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들릴 정도로 실리를 추구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프랑스 팀이 남긴 주요 데이터는 그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었다.

준결승전 프랑스의 점유율이 40%(벨기에는 60%), 결승전 점유율은 39%(크로아티아는 61%)뿐이었다. 패스 성공 숫자에서도 준결승전(프랑스 294개, 벨기에 565개)과 결승전(프랑스 198개, 크로아티아 456개) 모두 비교하는 의미조차 없었다고 봐야 한다.

이만큼 디디에 데샹 감독과 프랑스에게 찾아온 월드컵 두 번째 우승 기회는 누가 비난하더라도 확실한 승리 노선을 유지했기에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이다. 스페인이나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벨기에, 독일 등이 그랬듯 수없이 공격을 퍼붓다가 먼저 지쳐 쓰러져 실패하는 것보다 상대 팀이 휘청거릴 때를 기다렸다가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릴 줄 아는 축구를 준비한 것이다.

프랑스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3-0으로 브라질을 물리치고 첫 우승을 차지한 이후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두 번째 우승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흥분하고 덤비다가 이탈리아에게 승부차기로 진 기억을 지울 수는 없었다. 4년에 딱 한 번 찾아오는 월드컵의 영광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 냉정한 분석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프랑스가 너무나 잘 가르쳐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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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2018 러시아월드컵 결승 결과(16일 오전 0시, 루즈니키 스타디움-모스크바)

★ 프랑스 4-2 크로아티아 [득점 : 만주키치(18분,자책골), 앙투안 그리즈만(38분,PK), 폴 포그바(59분), 킬리안 음바페(65분,도움-뤼카 에르난데스) / 이반 페리시치(28분,도움-도마고이 비다), 마리오 만주키치(69분)]

◎ 프랑스 선수들
FW : 올리비에 지루(81분↔나빌 페키르)
AMF : 블레이즈 마튀디(73분↔코랑탱 톨리소), 앙투안 그리즈만, 킬리안 음바페
DMF : 은골로 캉테(27분,경고/54분↔스티븐 은존지), 폴 포그바
DF : 뤼카 에르난데스(41분,경고), 사무엘 움티니, 라파엘 바란, 벵자맹 파바르
GK : 위고 요리스

◎ 크로아티아 선수들
FW : 마리오 만주키치
AMF : 이반 페리시치, 루카 모드리치, 안테 레비치(71분↔안드레이 크라마리치)
DMF : 마르첼로 브로조비치, 이반 라키티치
DF : 이반 스트리니치(82분↔마르코 피야차), 도마고이 비다, 데얀 로브렌, 시메 브르살리코
GK : 다니엘 수바시치

◇ 주요 기록 비교
슛 : 프랑스 8개, 크로아티아 15개
유효 슛 : 프랑스 6개, 크로아티아 3개
막힌 슛 : 프랑스 1개, 크로아티아 4개
코너킥 : 프랑스 2개, 크로아티아 6개
오프 사이드 : 프랑스 1개, 크로아티아 1개
공 점유율 : 프랑스 39%, 크로아티아 61%
패스 성공률 : 프랑스 74%(198/269개), 크로아티아 83%(456/548개)
뛴 거리 : 프랑스 99km, 크로아티아 100km

◇ FIFA 월드컵 결승전 결과(최근 10회, 괄호 안은 개최국)
2018년(러시아) 프랑스 4-2 크로아티아
2014년(브라질) 독일 1-0 아르헨티나
2010년(남아공) 스페인 1-0 네덜란드
2006년(독일) 이탈리아 1-1(승부차기 5-3) 프랑스
2002년(한국-일본) 브라질 2-0 독일
1998년(프랑스) 프랑스 3-0 브라질
1994년(미국) 브라질 0-0(승부차기 3-2) 이탈리아
1990년(이탈리아) 서독 1-0 아르헨티나
1986년(멕시코) 아르헨티나 3-2 서독
1982년(스페인) 이탈리아 3-1 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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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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