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축구가 월드컵에서 보여준 모습들은 축구종가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월드컵에서도 자국에서 열린 1966년 월드컵 우승과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4강에 오른 것이 가장 좋은 성적인 잉글랜드는 16강과 8강에 그치는 등 항상 월드컵에서 조연에 불과한 팀이었다.

하지만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선 달라진 모습이었다. 최근 잉글랜드 축구는 지난해 FIFA U-20 월드컵과 U-17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어린 선수들의 발전이 돋보이는 가운데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주전급으로 활약하며 기량이 성장한 젊은 선수들이 중심이 됐다. 덕분에 잉글랜드는 이번 월드컵에서 확실히 과거와는 달라졌다.

과거 '잉글랜드 축구'하면 세트피스를 통한 한방에 의존하며 단조로운 공격을 펼치며 답답한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최근 잉글랜드는 장기인 세트피스 공격을 유지함과 동시에 중원에서 아기자기한 패스플레이를 통한 공격전개를 보여줬다. 또 발 빠른 공격수들을 앞세워 후방에서 길게 역습으로 찔러주는 플레이 등 다양한 공격루트를 생산해냈다. 이번 월드컵에선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잉글랜드는 러시아 월드컵을 4위로 마쳤는데 이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 28년 만에 이룩한 성과였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서도 좋았던 점은 있었지만 한계에 부딪히는 모습도 보였다.

 잉글랜드를 28년만에 준결승에 진출시킨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

잉글랜드를 28년만에 준결승에 진출시킨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 연합뉴스


다양한 공격루트 양산, 젊은 선수들의 활약으로 앞으로 기대돼

잉글랜드가 이번 대회 4강 크로아티아전 전반전까지 보여준 퍼포먼스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서두에 언급한 세트피스를 비롯해 중원에서의 패싱플레이, 후방에서 전방으로 한번에 이어지는 역습 등 이전과는 달리 공격루트가 한결 다양해졌다.

수비에서도 3백 포메이션을 가동하면서 수비 3명을 비롯해 양쪽 윙백과 조던 핸더슨 등 6명의 선수들이 흔들림 없는 수비블럭을 선보였다. 그러면서 탄탄한 수비를 과시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이번 월드컵에서 공격에서 위력이 더 커질 수 있는 계기였다.

젊은 선수들의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데이비드 시먼 이후 대표팀의 취약 포지션이었던 골키퍼 자리에는 24살의 신예 조던 픽포드가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주전자리를 차지했다. 픽포드는 콜롬비아와의 16강전 승부차기에서 카를로스 바카의 페널티킥을 막아내며 잉글랜드의 승부차기 징크스를 깨는 데 공헌했다. 스웨덴과의 8강전에서도 후반전 3차례의 슈퍼세이브를 선보이며 조국을 4강으로 이끌었다.

수비에서는 해리 매과이어의 활약이 돋보였는데 매과이어는 준수한 발밑과 피지컬, 제공권을 바탕으로 수비에서 상당히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고 스웨덴과의 8강전에서는 제공권을 바탕으로 세트피스에서 득점을 터뜨리며 잉글랜드가 4강에 오르는 데 일조했다.

이밖에 중원에서 다양한 공격루트를 제공해준 제시 린가드를 비롯해 델리 알리, 그리고 6골로 득점왕이 유력한 해리 케인까지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는 젊은 선수들의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이는 잉글랜드가 4강에 오를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이번에도 고비를 넘지 못한 잉글랜드

잉글랜드가 그동안 월드컵 토너먼트에서 탈락한 원인에는 고비를 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번번히 우승팀에게 걸린 지독한 대진운의 문제도 있었다. 토너먼트를 치르다 보면 전력이 엇비슷한 팀과 한번쯤은 맞대결을 펼쳐야 한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그때마다 고비를 넘지 못해 탈락하고 말았다.

사실 이번 대회에선 기량이 성장한 젊은선수들이 중심이 돼 팀 전력이 강해진 것도 있지만 토너먼트에서의 대진운은 그동안보단 확연히 좋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었다. 8강에서 만날 것이 유력했던 최대 라이벌 독일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또 다른 우승후보인 스페인은 16강에서 개최국 러시아에 발목이 잡히며 조기탈락했다.

그나마 고비는 16강 콜롬비아전과 4강 크로아티아전이었다. 콜롬비아와의 16강전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하며 한 고비를 넘긴 잉글랜드는 4강 크로아티아전에서 연장승부 끝에 패하면서 아쉽게 고비를 넘지 못했다. 이후 만난 벨기에와의 3, 4위전에서 잉글랜드는 어떠한 반격조차 하지 못한 채 0-2로 패했다.

벨기에와의 경기에서의 패배가 타격이 컸던 이유는 단순히 3위를 차지하지 못해서 뿐 아니라 조별리그 최종전을 치렀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주전급 멤버들이 다수 출전했음에도 패했다는 점에서 타격이 크다. 벨기에와의 3, 4위전 패배는 결과적으로 전력이 엇비슷한 팀을 만났을때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입증하는 경기였다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득점왕 유력한 해리 케인, 그러나 아쉬움도 많아

2014~2015시즌부터 17~18시즌까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해리 케인이 기록한 득점수는 무려 109골. 특유의 몰아치기 본능도 있지만 빼어난 위치선정과 문전 앞 집중력 등 공격수가 갖고 있어야 할 장점들을 모두 발휘했다. 케인의 기량 덕분에 잉글랜드에서는 실로 오랜만에 제대로 된 공격수가 탄생했다.

2015년 3월 잉글랜드 대표팀에 데뷔한 케인은 벨기에와의 3, 4위전까지 A매치 30경기 19골을 기록하는 등 대표팀에서도 엄청난 골 결정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생애 처음 출전한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6골을 기록하는 등 이변이 없다면 골든부츠를 수상할 것이 유력한 상황이다.

 2018년 6월 18일(현지 시간), 튀니지와 잉글랜드의 러시아 월드컵 G조 조별리그 1차전 경기 모습. 잉글랜드의 해리 케인 선수가 결승골을 터뜨리고 기뻐하고 있다.

2018년 6월 18일(현지 시간), 튀니지와 잉글랜드의 러시아 월드컵 G조 조별리그 1차전 경기 모습. 잉글랜드의 해리 케인 선수가 결승골을 터뜨리고 기뻐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케인이 이번 월드컵에서 골든부츠를 차지한다면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6골로 득점왕에 오른 게리 리네커 이후 32년 만에 잉글랜드 선수가 월드컵 득점왕을 차지하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면 케인의 골든부츠 수상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케인이 이번 월드컵에서 기록한 득점은 모두 6골인데 내막을 들여다 보면 페널티킥으로만 3골로 6골 중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다. 4골을 기록한 로멜루 루카쿠와 데니스 체리셰프가 모두 페널티킥 득점이 없다는 점을 상기해봤을 때 아쉬움이 남는 득점 수다.

여기에 6골 중 5골은 조별리그 1, 2차전 튀니지, 파나마전에서 나온 득점이라는 점이다. 물론 2위인 루카쿠도 4골 모두가 파나마, 튀니전에서 기록한 득점이었지만 케인은 콜롬비아와의 16강전에서 페널티킥 득점 외엔 토너먼트에서 침묵을 지켰다. 이 경기를 중계한 한준희 KBS 해설위원도 케인과 루카쿠의 활약을 소개하면서 케인보다 루카쿠의 이번 월드컵 퍼포먼스를 더욱 인정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케인은 튀니지, 파나마전에서 특유의 몰아치기 본능을 발휘하며 득점랭킹 1위에 올라있지만 골든부츠를 차지한다면 쑥쓰러운 골든부츠 수상이 될 케인의 이번 월드컵 활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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