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몬티 파이튼의 성배> 포스터

영화 <몬티 파이튼의 성배> 포스터ⓒ EMI Films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처음에는 부족하고 서툴지만 실수를 반복하면서 성장하게 마련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그냥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성공조차도 단 한 번의 성공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인 영화계에서 계속해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과 같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했다. 계속해서 비범한 영화들을 만들어내는 거장들의 첫 영화는 그들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을까? 그래서 현재 생존해있는 70세가 넘은 거장들의 첫 영화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들은 과연 떡잎부터 달랐을까? - 기자 말.

기괴한 상상력과 풍자 가득한 유머가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테리 길리엄 감독은 1970년대 초 영국 BBC에서 방영된 코미디쇼 <몬티 파이튼>의 멤버이자 애니메이션 제작자다. 지금 보아도 획기적이고 강도가 센 <몬티 파이튼> 풍자 개그쇼의 출연자들은 연기는 물론이고 각본, 연출, 애니메이션 등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큰 주목을 받았다. 그 중에서 오늘날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테리 길리엄일 것이다.

그는 테리 존스(역시 '몬티 파이튼'의 멤버)와 함께 1975년 영화 <몬티 파이튼의 성배>를 연출하고 감독으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았으며 이후로 비교 대상이 없는 그만의 독특한 영화들을 만들어오고 있다.

아서왕과 기사들의 여정, 황당한 오프닝 크레딧

 영화 <몬티 파이튼의 성배>의 한 장면

영화 <몬티 파이튼의 성배>의 한 장면ⓒ EMI Films


<몬티 파이튼의 성배>에서는 아서왕(그레이엄 채프먼)이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자신과 함께할 원탁의 기사들을 모집하고, 랜슬롯(존 클리즈), 베디베어(테드 존스), 로빈(에릭 아이들), 갈라드(마이클 팔린)가 아서왕의 기사가 되어 함께 카멜롯으로 향한다. 카멜롯에 도달했을 즈음 아서왕은 신으로부터 성배를 찾으라는 계시를 받게 되고 아서왕과 기사들은 성배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이처럼 간단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이 줄거리를 채우는 여러 에피소드들은 각각 한 편의 코미디 쇼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관객에게 "이 영화는 농담이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스웨덴어 자막으로 된 오프닝 크레딧이 올라가다가 갑자기 안내문이 뜬다. '자막 담당자의 실수다. 자막 담당자를 자르고 그 담당자를 또 관리하는 담당자를 잘랐다'는 안내문이 지나고 나면 다시 영어로 바뀐 오프닝 크레딧이 마저 올라가고 영화가 시작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전설의 아서왕과 그의 기사들이다. 실존인물이라고 하지만 그와 관련한 기록들이 정확한 것은 아니다. 시와 문학에 기록된 바로는 아서왕은 5-6세기 인물인데 <몬티 파이튼의 성배>는 '서기 932년, 잉글랜드'라고 영화의 배경을 알린다. 오프닝 크레딧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믿지 마세요" 혹은 "어차피 전설의 인물, 우리 마음대로 이야기 해 볼랍니다" 하고 말하는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설정, 근·현대 유럽 사회 비꼬는 풍자

 영화 <몬티 파이튼의 성배>의 한 장면

영화 <몬티 파이튼의 성배>의 한 장면ⓒ EMI Films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고 해도 영화가 허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주인공이 외계인이건 초능력을 가졌건 관객은 양화 속 상황에 몰입해 배우가 느끼는 기쁨과 슬픔이 진짜라 믿으며 기승전결이 있는 한 편의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게 마련인데 <몬티 파이튼의 성배>는 영화의 장르가 코미디인 것을 제외하더라도 자막과 나레이션,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통해 영화를 만든 사람의 직접적인 개입을 통해 이 영화의 허구성을 강조한다.

연출은 테리 길리엄과 테리 존스가 맡았지만 각본은 '몬티 파이튼' 멤버들이 모두 참여했다. 이들은 아서왕 전설은 물론이고 그리스로마 신화를 비롯해 근현대 유럽의 정치와 사회를 신랄하게 비꼬면서 끊임없이 이를 희화화하고 있다. 하나같이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몬티 파이튼의 성배> 속 인물들은 자신들이 하는 말과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 채로 영국과 유럽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관습과 선입견을 풍자하고 비웃는다.

아서왕과 기사들은 캐스터네츠처럼 코코넛 껍질을 딸각거리며 그게 말발굽 소리라 말하고, 말을 타고 있지 않으면서도 말을 탄 것처럼 연기한다. 이것은 애초에 계획된 개그라기보다 제작비 절감을 위한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설정은 오히려 영화의 성격과 잘 맞아 떨어진다.

"내가 너의 왕이다"라고 말하는 아서왕에게 "그래서 뭐 어쩌라고. 권력은 노동자들의 선택을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거야"라고 말하는 천민이 있는가 하면, '생긴 게 마녀 같다'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여자를 마녀 재판에 회부하는 군중도 있다. 군중은 여자에게 마녀 코를 붙이고 마녀들이 입는 옷을 여자에게 입혀 그녀가 마녀라고 주장하며 화형 시키라고 외친다. 마녀 재판 과정에서 이 군중의 우매함은 여실히 드러난다. 집단의 힘이 무고한 여자를 화형 시키는구나 생각할 즈음 여자는 진짜 마녀로 밝혀진다.

역사의 여러 우화들을 섞은 장면들, 재치 있고 유쾌

 영화 <몬티 파이튼의 성배>의 한 장면

영화 <몬티 파이튼의 성배>의 한 장면ⓒ EMI Films


영화는 여러 영웅들의 모험담을 섞었다. 여러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승리를 쟁취하는 영웅담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영화는 영웅들의 고난을 말도 안 되는 넌센스 극으로 패러디하고 있다. 프랑스(잉글랜드와 오랜 앙숙)군이 점령한 성을 공격하는 방법으로 토끼 모형의 나무 마차를 만들지만 정작 마차 안에 아무도 들어가지 않고, 수녀원으로 묘사된 성은 알고 보니 욕구불만의 젊은 여성들로 가득 찬 공간이다. 죽음의 다리 앞에서 세 개의 질문을 던지고 답을 못할 시 다리 밑으로 던져 버리는 노인은 오히려 역 질문을 받고 답을 못해 자신이 다리 밑으로 떨어진다. 이는 트로이의 목마, 세이렌의 유혹,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각각 패러디한 것.

영화 초반에 아서왕 전설에 대해 설명하는 역사가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 영화의 화자인 듯 보인다. 그러나 그는 정체불명의 (실제)말을 탄 기사의 칼에 맞고 그 자리에서 죽어버린다. 역사가를 죽인 기사가 누구인지 왜 죽였는지에 대해선 전혀 설명하지 않고 영화는 역사와 역사가의 존재를 허무하게 지워 버린다. 역사 속 무명의 인물에 의해 살해된 역사가의 죽음은 현재의 경찰이 아서왕과 기사단을 체포함으로서 결국 무고한 인물에게(아서왕과 그의 기사들은 실제 말을 타고 있지는 않다) 책임을 묻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 된다.

영국의 역사와 아서왕 신화에 대해 잘 모른다 해도 <몬티 파이튼의 성배>의 말장난과 배우들의 슬랩스틱 코미디는 이 영화를 충분히 재치 넘치고 웃긴 영화로 만든다. 또한 이 영화의 큰 매력 중 하나로 영화 중간 중간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은 실사로는 표현하기 힘든 장면들을 대신 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영화의 색을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테리 길리엄의 상상력은 관객들에게 낯선 즐거움을 선사한다. 작가로서의 참신함, 애니메이터로서 상상한 것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표현해내는 능력, 그리고 글과 영상을 함께 어우르고 배우들에게서 그들의 새로운 모습을 끌어내는 연출력(배우들에게는 테리 길리엄의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확장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까지. 할리우드가 그의 재능을 탐낸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무려 25년의 제작기간이 걸린 우여곡절이 많았던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가 2018 칸느 영화제 폐막작으로 처음 선을 보이고 현재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돈키호테와 테리 길리엄. 너무도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자신을 돈키호테로 알고 있는 21세기의 노인이 겪는 이야기가 어떠할지, 25년의 에너지를 투자한 보람이 있을지, 기대가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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