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스틸 컷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스틸 컷 ⓒ tvN


"러브? 벼슬 말고 하겠다는 걸 보면, 벼슬보다 좋은 것임이 분명한데. 대관절 그게 무엇이길래? 러브?"

'애기씨' 고애신(김태리)이 신기한 듯 연신 혼잣말로 '러브'라는 잉글리시 단어의 뜻을 궁금해 한다. 이건 꽤나 노골적인 선언이다. 구한말 한성에서 모르는 이 없는 '애기씨'의 사랑을 '잉글리시'를 구사하는 이와 엮어서 펼쳐내겠다는 노골적이고 뻔뻔한 선언. '러브'란 표현이 등장한 장면은 또 어떤가.

"그 잉글리시는 어디에 쓰오? 벼슬을 하오?"
"근데 어려운 말은 못 배워 통변이 어렵습니다. 근데 저는 잉글리시를 배워 러브를 할 겁니다. 저는 벼슬보다 러브가 더 좋습니다."

갑자기 출현한 포목점 딸내미는 백인 여성을 옆에 대동하고는 "벼슬보다는 러브"라는 뜬금없는 대사를 치고 빠진다. 구한말 엄연했을 위계나 계급 따위 말끔히 던져버리고는 '러브'란 화두를 던지고 떠난 이 단역과 고애신과의 시퀀스를 2분 넘게 배치시키는 패기, 마치 '김은숙 월드'로의 초대장 같다. 

그 직전, 한복을 입고 너른 한옥 문을 나서는 고애신과 '미국' 금문교를 연상시키는 다리를 지나 한성으로 들어서는 남자 주인공 유진 초이(이병헌)의 모습을 교차시키는 편집. 이 둘의 '러브'를 자연스레 강조하는 이 <미스터 션샤인>의 작가는 바로 '그' 김은숙이다. 

<태양의 후예>, <도깨비>의 김은숙 작가와 이응복 PD의 조합, 400억 이상의 제작비, 넷플릭스와의 방영권 판매 계약을 통한 아시아·미주·유럽 공개, 월드스타 이병헌의 드라마 컴백 등등. 지난 주말 첫 방영된 tvN <미스터 션샤인>의 화제 요인을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미 물량과 외양 면에서 '최고'를 경신한 이 드라마는 1회 8.8%, 2회 9.6%를 기록하며 김은숙-이응복 콤비의 전작 <도깨비>의 출발을 훌쩍 넘어섰다.

"어제는 멀고, 오늘은 낯설며, 내일은 두려운 격변의 시간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각자의 방법으로 격변하는 조선을 지나는 중이었다."

고애신의 이 인상적인, 다소 허세에 찬 내레이션으로 대변되는 <미스터 션샤인>은 "신미양요(1871년)때 군함에 승선해 미국에 떨어진 한 소년이 미국 군인 신분으로, 자신을 버린 조국인 조선으로 와 주둔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드라마"라 소개하고 있다.

마치 초반 2회 안에 모든 것을 집약해 보여주겠다는 자신만만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미스터 션샤인>에서 눈여겨 볼 것들을 챙겨 봤다. 호불호가 갈리고 논란도 불거진 상태이지만 매우 흥미로운 작품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드라마 안팎에서 모두. 

구한말이란 배경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스틸 컷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스틸 컷 ⓒ tvN


어디서 많이 본 기시감의 나열이라 폄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릴 적 억울하게 '노비' 부모를 잃은 유진을 뒤쫓는 '추노'꾼의 존재도, 마치 '덕혜옹주'가 받았던 스포트라이트를 옮겨 놓은 것 같은 '애기씨' 고애신을 향한 세간의 관심도, '암살'의 전지현처럼 장총을 든 고애신의 비주얼이나 어머니가 죽임을 당한 끝에 살아남은 고애신의 전사도, 러시아와 일본을 주축으로 외국인들이 활보했던 '모던보이', '모던걸'들의 공간이나 고종이 즐겼다던 '가배'차의 언급까지도. 

모든 것은 유진 '초이'의 존재, 그러니까 노비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가 군인이자 암살자가 되어 돌아온 이 캐릭터의 공간과 관계에 수렴될 것이니까. 그래서 신미양요 전 미국인이 국내에 오고갔다는 설정 등에 대한 고증은 '지엽적'인 문제로 보인다. 핵심은 '구한말'이란 배경을 끌고 들어온 '설정' 그 자체다.

구한말이란 배경은 인종(백인에 한정될 테지만)이나 언어가 교차하는 '글로벌'이란 화두와 볼거리를 자연스레 '한성'이란 공간으로 이식할 수 있는 효과적인 설정이다. 언어와 문화, 계급적 차이가 빚어내는 갈등과 긴장 또한 멜로와 유머 등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한 마디로 영리한 포석이다. 여기에 '여성' 고애신 등 일제시대 항일 독립군과 비근한 '의병'의 활약이 그 존재감을 드리우고 있다.

미국 군인 유진 초이

이 중심에 '미군' 유진 초이가 자리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 반대편에서는 이완용에서 따온 것이 완연해 보이는 이완익(김의성)이 친미에서 친일을 '선택'하는 장면을 강조했다. 이 선택은 꽤나 시사적이다.

<미스터 션샤인>은 구한말이란 복합적인 갈등만큼이나 구체적인 '적'이 상정돼야만 하는 작품이다. 당시 미국의 존재나 '친미'의 의미는 '친일'과 급이 달랐다.

구한말과 '미군' 유진 초이의 존재는 그런 점에서 드라마 내외적으로 '핵심'일 수밖에 없다. '격변' 속 공간에서 미국 군인 유진 초이는 이성과 감성, 그리고 권력을 내포한 인물로 상정된 듯하다(흡사 김은숙 작가의 현대극에서 매번 '남주'의 자리를 꿰찼던 그 '재벌'을 닮은).

그는 '언어'(문화적 권력)와 '지위'(근대화된 계급)를 이미 획득했다. 다만 '노비'라는 ('조선'이란 조국과 양반이란 계급 체계가 부모를 죽이고 자신을 버렸음을 각인한)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이다.

유진 초이의 '군인'이라는 신분이야말로 <미스터 션샤인>이 가리키는 '욕망'을 현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점점 더 큰 예산과 스펙터클을 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김은숙 작가의 최근 세 작품의 남자 주인공들이 모두 '군인'(<태양의 후예>의 유시진 대위)이거나 '장수'(<도깨비>의 '무신' 김신)였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시길. 

김은숙-이응복 콤비의 세 작품에는 필히 거대 전투 장면이나 '액션'이 들어있었다. 군인이나 장수가 전투를 벌이는 장면들은 극의 흥미 요소로 작용해왔다. 유진 초이라는 '미국 군인'(이면서 노비 출신인)의 정체성(이미 유진 초이가 미군 군복을 입고 벌이는 전투신이 등장했다)이 어떤 방향으로 작용하는지가 관건이다. 

러브! 로맨스!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 tvN


이병헌과 김태리라는 삼촌과 조카뻘의 나이차가 확연히 보이는 캐스팅을 두고 방영 전부터 논란이 일었던 것은 어찌 보면 '정당'하기가지 하다.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고애신이 암살 도중 적인지 동지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유진 초이를 맞닥뜨린다. 하필 미군이 왜 그 미국인의 암살 지시를 내렸는지는 사실 중요치 않다. 그저 '운명적인 만남'이면 충분하다. <미스터 션샤인>은 여전히 '러브'를 놓지 않는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다.

이완익의 딸이자 유진 초이를 바라볼 쿠도 히나(김민정)와 백정의 아들이자 친일파로서 고애신을 사랑하게 되는 구동매(유연석), 고애신의 정혼자이자 어릴 적 유진 초이의 부모를 죽인 양반집의 자제인 '룸펜' 김희성까지. 유진 초이와 고애신의 운명적 사랑에 엮일 인물들의 계급적, 가치관적 구성은 실로 다채롭다. '구한말'이란 배경과 부합하는 야심찬 설정이다.

<미스터 션샤인>은 이러한 배경과 설정을 풀어가는 멜로드라마식의 관계에서 모든 것이 결판날 드라마다. 기시감이나 고증이 둘째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러브'라는 표현 하나를 장면화하는 그 뻔뻔함이 돋보이는 것도 그래서다.

또 하나의 관건은 그 멜로드라마의 관습을 어떻게 변주하거나 깨뜨릴 것이냐다. 단 한 회만으로 양반집 규수이자 의병 스파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축한 고애신이 유진 초이의 관계를 통해 어떻게 변모하느냐, 거기에 '김은숙 드라마'의 진짜 진화 여부가 달려 있다. 전술한대로, 이미 <미스터 션샤인>은 그 설정만으로도 많은 것을 품고 있는 야심찬 블록버스터급 드라마이기에.

지상파 드라마의 위기설이 파다하다. 김은숙 작가 역시 <태양의 후예> 이후 tvN과 연이어 두 편째다. <미스터 션샤인>이 또 하나의 '김은숙 드라마'에 그칠지, 한국 드라마사의 이정표를 세우는 '작품'이 될지 궁금하다.

미스터 션샤인 김은숙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