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느 가족>의 한 장면.

영화 <어느 가족>의 한 장면. ⓒ 티캐스트


'물건 등을 슬쩍 훔치다'라는 뜻의 일본어 '만비키'는 말 그대로 좀도둑을 뜻한다. 여기에 가족이라는 단어를 붙인 영화 <만비키 가족>(한국 제목 <어느 가족>)은 제목 자체로 생경한 느낌을 준다. 대체 이 가족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제71회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는 수식어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이라는 사실이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을 듯싶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 온 특유의 가족주의가 한국과 일본 관객을 넘어 세계 관객들 마음에 깊게 각인돼 있기 때문.

해체된 가족

<어느 가족>의 구성원은 총 6명. 남편과 사별한 뒤 연금으로 연명하는 할머니 하츠에 시바타(키키 키린)와 건설 일용직을 전전하는 오사무 시바타(릴리 프랭키) 및 작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부요 시바타(안도 사쿠라), 그리고 유사 성매매 업소에서 돈을 버는 아키 시바타(마츠오카 마유)와 학교에 갈 돈이 없어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쇼타 시바타(죠 카이리), 그리고 언제부턴가 이들과 함께 살게 된 막내 딸 유리(사사키 미유)까지다.

영화 초반까지 5명이었다가 유리를 우연히 발견하고 이들이 유리를 키우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 본격적인 사건들이 진행된다. 사실 사건이라고 할 것까지 없다. 각 가족 구성원들의 일상을 묘사하면서 영화는 이들 각자에게 얽힌 비밀들을 조금씩 풀어낸다.

밥 먹고, 씻고, 대수롭지 않은 대화를 하는 이 가족들의 또 다른 직업은 '만비키'다. 대형마트, 구멍가게를 가리지 않는 이들은 '가게가 망하지 않을 정도로만 턴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오사무와 노부요는 일터에서 쫓겨났고, 돈을 버는 아키마저 가족을 위해 쓸 정도는 아니다.

크고 작은 다툼과 화해를 반복하며 생활하는 이들이 사실 진짜 가족이 아닌 일종의 유사가족이라는 게 영화의 전환점이 된다. '대체 왜 이 가족이 모여 살게 됐을까' 이 질문을 안고 영화를 보다 보면 결말 부분에 이들이 처한 현실을 두고 깊은 먹먹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깔끔하게 정돈된 소도시 틈에 이 가족이 사는 집을 주목하자. 말 그대로 판잣집이다. 허름하고 낡은 이 공간은 크고 작은 새 건물들에 가려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 자체로 우리 사회에서 쉽게 지나칠만한 작은 틈, 혹은 균열을 뜻한다.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유사 가족은 완벽해 보이는 현대 사회 구성원들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틈을 상징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주목한 건 바로 그 틈이었던 것.    

소외된 자들

 영화 <어느 가족>의 한 장면.

영화 <어느 가족>의 한 장면. ⓒ 티캐스트


비교적 최근작 <세 번째 살인>(2017)을 제외하고 감독은 우리 주변에 존재할 법한 여러 가족의 형태 혹은 일반적 가족 형태에서 떨어져 나간 개인의 연대를 영화에 담아 왔다. 할리우드 드라마가 '가족이란 응당 이래야 한다' 류의 당위성을 녹이며 주제 의식을 담아왔다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미 현대 사회 도처에 존재하는 여러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며 그 안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풀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어떤 갈등이 있어도 가족이기 때문에 화해하고 보듬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할리우드라면, 이미 조각나고 부서진 관계의 어떤 틈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해 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이라는 뜻이다.

<걸어도 걸어도>(2008)가 피가 섞인 가족에게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비밀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었다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은 그 시선을 아이들에게로 옮겨 편모, 편부 가정으로 떨어져 나간 이들이 진짜 행복을 찾아나간다는 이야기를 그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는 자식에 대한 어긋난 애착을 환기시키며 자격이 없어 보이던 한 남성이 진짜로 아버지가 되어 가는 과정을 담았다.

그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맺어지고 깨진 숱한 관계를 때론 수직적으로 때론 수평적으로 직조했던 감독이었다. 그렇다면 <어느 가족>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주고받다 못해 떨어져나가고 파편이 돼 버린 사람들을 재조합 해놓았다. '가족을 선택한 것이지. 피가 섞이지 않았으니 그만큼 큰 기대를 안 하게 되잖아'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노부요 시바타의 대사가 바로 이 유사 가족의 정체성이자 일종의 동력을 상징한다.

힘을 주지 않고 툭툭, 하지만 진심을 다해 던지는 이 가족 구성원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박힌다. 영화 말미가 그래서 더욱 애잔하게 다가온다. 가족이라는 주제를 다양하게 변주해왔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쩌면 가족에 상처 입고 깨진 파편들을 수집하는 수집가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영화 <어느 가족>의 한 장면.

영화 <어느 가족>의 한 장면. ⓒ 티캐스트


한 줄 평 :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발견한 가능성, 그래서 더욱 빛난다
평점 :★★★★☆(4.5/5)


영화 <어느 가족> 관련 정보
원제 : 만비키 가족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주연 : 릴리 프랭키, 안도 사쿠라, 마츠오카 마유, 키키 키린, 죠 카이리, 사사키 미유
수입 및 배급 : 티캐스트
러닝타임 : 121분
관람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 2018년 7월 26일


어느 가족 만비키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키키 키린 좀도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