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버비콘> 메인 포스터.

영화 <서버비콘> 메인 포스터. ⓒ 파라마운트픽쳐스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조지 클루니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가 직접 출연한 작품을 접하지 못한 이들에게도 조지 클루니라는 이름만큼은 그리 낯설지 않을 것 같다. 그는 할리우드의 상징과도 같다. 단순히 어떤 연기를 해왔는지, 그의 작품들 가운데 유명한 작품이 몇 편이나 있는지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코엔 형제가 연출한 <헤일, 시저!>(2016)에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할리우드 거대 스튜디오의 간판 스타 베어드 휘트록 역을 맡았던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그에게는 그만한 무게감이 있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직접 연출하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배우로서의 커리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대표작 <어느 멋진 날>(1996) <퍼펙트 스톰>(2000) <오션스 일레븐>(2001)과 같은 영화들은 이미 10년도 더 지난 작품들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그래비티>(2013) 정도가 있다. 확실히 배우로서의 삶에서 조금씩 빠져 나오고 있는 느낌을 준다. 그는 실제로 그림이 되는 것보다 화가가 되는 것이 더 흥미롭지 않냐(Directing is really exciting. In the end, it's more fun to be the painter than the paint)는 말로 자신의 현재 모습에 만족스러움을 드러낸 바 있다.

조지 클루니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장황하게 꺼낸 이유는, 이 작품 <서버비콘>이 그의 연출작이기 때문이다. 바로 직전에 그가 연출했던 <모뉴먼츠 맨: 세기의 작전>(2014)이 좋은 평가를 얻지도 못하고 흥행에도 실패했기에 더욱 많은 노력을 들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 영화의 각본은 앞서 언급했던 코엔 형제가 썼으며, 그들이 1982년에 썼던 시나리오 초고를 바탕으로 재구성 되었다고 한다.

02.

 영화 <서버비콘> 스틸 컷.

영화 <서버비콘> 스틸 컷. ⓒ 파라마운트픽쳐스


이 작품의 타이틀이기도 한 '서버비콘'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마을의 이름이다. 영화는 이 마을의 우수성과 편리함을 강조하는 한 편의 광고로부터 시작되는데, 그 광고에 따르면 소규모의 주택단지이지만 대도시만큼이나 편리하고 안락한 생활이 보장되는 곳이다. 편지를 돌리는 우체부가 마을 모든 가정의 일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고, 지나가는 아이들과 말장난을 주고 받는 그런 이상적인 마을. 모든 사람들이 안정감을 느낄 법한 장면 뒤로 흐르는 흥겹고 가벼운 배경음악은 관객들의 마음마저 놓게 만든다. 이 마을에 메이어스 부인(카리마 웨스트브룩 역)이 등장하기 직전까지.

그렇게 좋아 보이던 마을에 균열이 일기 시작한 건 흑인 가족인 메이어스 가(家)가 이사를 오면서부터다. 이들을 내쫓기 위해 탄원을 넣고 시위를 시작하는 서버비콘의 원주민인 백인들은 그 어떤 설득으로도 현재의 상황을 납득하기 힘들어 보인다. 어딘가 우스꽝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그들의 과장된 거부감은 이것이 영화적 표현이 아닌, 실제로 당시 미국의 전역에 걸쳐 일어났던 일이었음을 상기시킴으로써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불편함의 근원이 된다.

감독인 조지 클루니는 바로 위의 상황을 영화 속에 녹여내기 위해 이미 존재하고 있던 코엔 형제의 시나리오가 1980년대 배경이던 것을 1950년대로 가져오고자 했다고 한다. 이미 자신이 연출한 전작들, <시리아나>(2005), <킹메이커>(2011), <모뉴먼츠 맨: 세기의 작전>(2014) 등을 통해 실제의 이야기를 영화 속으로 가져오는 것에 관심이 많았기에 이번 작품 또한 그 연장선 상에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03.

영화는 두 가지 이야기를 기본 뼈대로 삼고 나아간다. 백인 가드너(맷 데이먼 분) 가족에 대한 이야기와 흑인 메이어스(레이스 M. 버크 분) 가족의 이야기. 포스터만 보면 이 영화의 내용은 가드너의 이야기로 보인다. 사실 이 영화는 두 가정의 이야기가 겹쳐질 때 가장 정확하게 해석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두 가정이 울타리 하나만을 경계로 하는 옆집 이웃으로 설정되어 있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먼저 가드너의 가정에는 치정과 살인, 거짓과 은닉이 가득하다. 어른들의 까만 속내가 3인칭 시점에서 한번, 아이 닉키(노아 주프 분)의 시선에서 또 한번 그려진다. 가드너는 청부 살인을 통해 아내 로즈(줄리안 무어 분)를 살해하고, 그 보험금으로 처제인 마가렛(줄리안 무어 분)과 도망쳐 행복한 삶을 계획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변수들로 인해 그 계획은 시시각각 틀어진다. 반면, 메이어스 가정의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봐왔던 모습과 그리 별다를 게 없다. 서버비콘이라는 마을에서 흑인 가정이 겪을 수밖에 없는 부당한 폭력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 러닝타임의 대부분이 전자에 할애되는 것 역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가드너 가족의 모습은 서버비콘 내의 다른 백인들과 다르다. 그들은 여러 면에서 품위가 떨어져 보인다. 죽기 전의 로즈는 아들을 옆집 흑인 아이와 어울리게 하고, 남편인 가드너는 청부살인을 공모한다. 사실 로즈와 가드너의 떨어지는 품위는 전혀 다른 지점이다.

메이어스 부인을 만날 때마다 백인들은 스스로 흑인보다 고결함과 품위, 예절과 같은 면에서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미치 삼촌(게리 바사라바 분)까지도 로즈의 장례식에서 그녀의 장례식이 품위가 떨어진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동일한 백인이라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이 가드너 가족에게 적의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 속은 다르다는 것.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품위란 '그들이 생각하는 평상시의 모습'이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위기의 순간'에는 그들 역시 똑같이 역겨운 모습을 보인다.

04.

 영화 <서버비콘> 스틸 컷.

영화 <서버비콘> 스틸 컷. ⓒ 파라마운트픽쳐스


이 영화에서 백인 가정인 가드너 가족과 흑인 가정인 메이어스 가족, 두 가정의 대비가 중요한 까닭은 결과적으로 두 가정 모두 망가진다는 것은 동일하나, 그 과정과 그 과정 속에 놓인 인물들의 심리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가정을 향한 폭력이 어디에서 촉발되는 것인지에 대한 부분도 이 지점과 긴밀히 연결된다. 외부로부터 가정을 지키려는 두 가장의 모습이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 또한 그렇다.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일상을 전복시키려던 자가 일상을 돌려받으려는 자들에 의해 무너지는 가드너와 일상을 지키려던 자가 일상을 무너뜨리려는 자들에 의해 무너지는 메이어스의 차이.

동일하게 무너진다는 표현을 쓰지만, 결과적으로 보여지는 두 가장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자신이 만든 폭력의 굴레 속에서 스스로 무너져버리는 가드너와 달리, 모든 폭력이 끝난 다음 누구보다 당당히 서 있는 메이어스는 불평등한 시류에 타협하지 않고 이겨낸 자의 모습과도 같기 때문이다. 이는 가드너의 가정에서 유일하게 내부적 폭력에 맞서 싸우던 미치 삼촌의 모습과도 유사하다. 닉키 또한 내부적 폭력에 심리적으로 저항하던 인물이지만, 어린 탓에 선택할 권한이 주어지지 않아 여기에서는 제외하기로 한다.

05.

각각의 상황에 놓인 두 아이의 모습 역시 흥미롭다. 외부로부터 안전하지만 내부로부터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닉키와 내부로부터 안전하지만 외부로부터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앤디(토니 애스피노사 분). 본격적인 폭력이 드러나는 시점에도 앤디는 부모님과 함께 고난을 이겨내는 모습이지만 닉키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고 오히려 사건을 은닉·조작하길 강요당한다. 마가렛 이모와 아빠의 불륜, 범죄를 깨닫고 자신의 방문을 걸어 잠그는 닉키의 행위는 그래서 중요하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으로 그들에게서 떨어지겠다는 의미보다는 동일한 폭력의 행위를 거부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러한 탓에 닉키 엄마인 로즈의 선택은 상당히 큰 의미를 가진다. 모든 백인이 메이어스 가족에 대해 반감을 갖고, 심지어 어린 닉키 역시 낯선 흑인 친구에게 거리감을 느끼던 상황에서 두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인물이 그녀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그녀가 사고로 인해 몸이 불편한 상황이 된 것이 그만큼 이해의 폭을 넓혀준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사회적 약자로서 사회의 낮은 곳에 대해 많은 어려움들을 직접 경험했을 것이기 때문에. 짧기는 하나, 그런 친분으로 인해 백인들의 다양한 괴롭힘에 창고에 함께 숨어 앤디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험은 이후에 닉키의 삶에 큰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06.

 영화 <서버비콘> 스틸 컷.

영화 <서버비콘> 스틸 컷. ⓒ 파라마운트픽쳐스


앞서 이야기 했던 백인들이 주장하는 그들만의 상식과 품위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만하다. 우아한 티타임, 사람 좋은 미소와 배려, 가정적인 아내와 안락한 가정 등. 흑인 가정과의 공생이라는 (자신들만의) 위기 앞에 그들은 스스로 내세웠던 품위를 순식간에 버리고 만다. 그리고 흑인 가정을 향한 폭력은 점차 크고 잔혹해진다. 심리적인 불안을 주던 것에서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것으로, 개인적의 불편함을 드러내던 것에서 집단적인 괴롭힘을 쏟아내는 것으로 나아간다. 실질적인 폭력이 시작되던 밤, 6명의 경찰이 출동해 위기에 몰린 메이어스 가정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그 역시 이후 공권력이 개입되었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것일 뿐, 적극적으로는 개입하지 않는 듯 보인다.

모든 상황이 비극적으로 끝나버린 뒤, 모든 잘못을 옆집 메이어스 가족에게로 돌리려는 가드너의 모습 또한 별로 다르지 않다. 아니, 그들의 집 주변으로 높은 울타리를 설치하려던 마을 사람들에 비해 더 악의적이다. 그 당시 인종차별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백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이러한 인종차별 심리가 남아있는 한, 그들은 결코 동등할 수 없었다.

07.

이런 무게 있는 내용을 극의 형태를 빌려 잘 전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 영화는 북미에서도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다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러닝 타임의 많은 부분이 가드너의 이야기에 할애돼 균형적인 시선이 모자라고, 두 가정이 연결되는 고리가 약하다는 점은 이 작품의 아쉬움이기도 하다. 다만, 민감하고 어려울 수 있는 문제를 잘 다루어냈고, 평등 문제에 대해 노골적으로 다가가지 않고서도 깊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구조적으로는 코헨 형제의 도움을 받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지점에서는 <파고>(1996)의 느낌마저 들 정도로 완벽히 복고적이기도 해서 더 매력적이다. 확실히 작품의 어느 쪽에 시선을 두느냐에 따라 평가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이다.

영화 무비 서버비콘 조지클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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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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