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1일에 방영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3회 방송에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저자로서, 패널로 참여하게 되었다. 글로 쓰는 것은 익숙하지만 전문 방송인들 사이에서 또박또박 말을 섞는 게 쉽지 않아 어떻게 녹화를 끝마쳤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주변의 많은 며느리들도 마찬가지로 겪었던 여러 에피소드를 지켜보며,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며느리들의 현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

방송을 통해, 어쩐지 불편하게 느껴지는 모든 상황에 대하여 '정말 이게 맞는 걸까?', '꼭 이렇게 해야 하는 걸까?'를 온 가족이 다 같이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며느리는 요리를 잘해야 할까 

 지난 11일 방영된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한 장면

지난 11일 방영된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한 장면ⓒ MBC


11일 방송분에서 시댁에 간 민지영씨는 끊임없이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담당했다.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위해 함박 스테이크를 만들어 주겠다고 나섰지만 결국 실제로 요리를 주도하는 것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였다. 요리 중에 어느 새 시아버지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남편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장난을 치더니 한숨 자겠다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른이 부엌에서 일하는 것을 도와드리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아마 이 시점에서 요리가 서툰 초보 며느리의 마음은 슬슬 불편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 자신이 낯선 역할을 맡고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막연히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보기에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사이좋게 요리하는 모습이 가족처럼 편안하고 화목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새내기 며느리는 시댁에서 '잘 못하는 것을 잘하려고 애쓰고 무리하는 중'이다.

우리 세대의 젊은 며느리들 대부분이 요리에 능숙하지 않다. 예전에는 '신부 수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살림 능력은 여자들이 당연히 갖추어야 할 덕목처럼 여겨졌지만, 오늘날의 많은 여성들은 남성들과 마찬가지의 교육 과정을 거쳐 공부하고 일하느라 살림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자랐다. 요리는 남녀 모두에게 필요한 살림 능력이지, 여성들만 기본적으로 잘해야 하는 일이거나 잘하고 싶어야 하는 일이 아니다.

물론 요리를 스스로 즐기는 구성원이 있다면 가족의 식사 시간은 한결 즐거워질 것이다. 그러나 시댁에서 며느리라는 이유로 무리한 역할을 떠맡으려고 몸에 힘을 잔뜩 넣고 긴장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아마도 우리에게는 요리 실력 말고도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 많을 테니 말이다. 처음부터 당연한 역할 분담은 없다. 부족한 것은 남편과 함께 채워가고 같이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 우리는 결혼을 한 것이 아닌가.

그럼 나이든 시어머니 혼자 하라고요?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3회 캡처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3회 캡처ⓒ 박은지


'꼭 시댁에 가면 며느리가 음식을 하는 것이 당연할까'라는 의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박은지 작가님은 시댁에 가면 어떻게 하세요?"라는 질문이 나왔다.

"저는 남편이 하지 않으면 굳이 나서진 않는 편이에요."

이전부터 이렇게 말할 때마다 수없이 들었던 그 질문이 MC의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그럼 시어머니가 혼자 하시라고요?"

주변에서 시댁 명절이나 제사 등의 일로 동서지간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를 자주 봤다. 남편들의 집안 행사에 아내들이 역할을 분담하며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의 정도를 가늠하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이런 경우 갈등의 주체는 보통 시어머니를 포함한 여성들이 된다. 그런데 왜 아무도 그 부엌에서의 남자들의 역할에 대해 논하지 않는 것일까?

"더 어린 제가 시어머니를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시어머니 혼자 고생하시는 것을 더 안타까워해야 하는 건 제가 아니라 남편, 즉 아들일 거예요. 시댁 일을 돕는 주체는 제가 아니라 남편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통 사람이라면 모두 어른들 앞에서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싶을 것이다. 나 하나만 참고 하루쯤 노력하면 적어도 겉으로는 편안하고 화목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불합리한 상황을 견디면서 마음이 점점 불편해지고 시댁을 멀리하게 된다면 그게 가족을 위한 일일까? 차라리 며느리 도리를 멀리 하고, 시어머니 마음에 쏙 드는 며느리가 되는 것을 포기하더라도 내 마음이 납득할 수 있는 방향을 따라가는 것이 나를 지키는 일이 아닐까.

솔직해져야 가족이 된다 

 지난 11일 방송된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한 장면

지난 11일 방송된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한 장면ⓒ MBC


이번에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정규 편성에는 독특한 며느리, 자유분방한 며느리로 마리와 제이블랙 부부가 합류했다.

시어머니 눈치를 보지 않고 원하는 대로 손톱을 길게 꾸미고, '살림을 다 넘겨준다'는 시어머니의 뼈 있는 농담에 '그건 안 됩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마리 씨가 어쩌면 '이상한 며느리'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의사 표현에 자유로운 마리 씨가 조금 더 시어머니와 '가족'인 것처럼 보였다.

며느리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한다고 해서 환경이 바뀔지 그렇지 않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신혼 초에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아직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관계라고 봐야 한다.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싫어하는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알아가는 것이 진짜 가족이 되는 길일 것이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누군가 혼자 애쓰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시부모님, 남편, 아내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물론 시댁 아닌 처가댁에서도 마찬가지다.

굳이 좋은 며느리가 되기 위해서 불합리한 역할 부여를 참아내거나 나의 일부를 잃지 않아도 괜찮다.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우리는 솔직한 의사 표현을 통해 조금 더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덧붙이자면, <제가 알아서 할게요>가 출간된 이후 많은 분들이 시부모님의 반응이 어떤지 궁금해했다. 결혼 생활을 통해 느낀 가부장적인 전통에 대해 솔직하게 불편함을 털어놓은 책이기에 부모님 세대에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실은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이런 게 '딸 같은 며느리'가 아니겠느냐고 혼자 속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최근에 책을 읽으신 시아버지에게 메시지가 왔다.

"책 재밌더라. 우리 며느리랑 가끔 편의점 앞에서 맥주 한잔 해야겠다. 아빠 살아온 이야기도 하고 며느리 이야기도 듣고……."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세대 간 의견 차이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듣고자 하는 시아버지의 말씀이 '어른'으로서, 그리고 '가족'으로서 존경스럽고 감사했다. 우리는 어쩌면 '시부모님'이나 '며느리'라는 전통적인 역할이 아니라 각자 다른 세대를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서로를 궁금해하게 된 것 같다. 물론 나는 기쁜 마음으로 답했다.

"저도 맥주 좋아해요, 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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