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크레더블> 포스터.

<인크레더블> 포스터.ⓒ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전 세계 영화판을 뒤흔들며 전례 없는 전성기를 맞이한 '슈퍼히어로'. 1930년대 대공황 때 시대적 탈출구로서의 영웅으로 처음 만들어진 후 80년 동안 사랑받고 있다. 1970년대 후반의 슈퍼맨과 1980년대 후반의 배트맨이 크게 성공한 후 1990년대까지 슈퍼히어로는 DC가 책임졌다고 보면 되겠다.

2000년대 들어서 마블이 득세한다. 2000년대 초 엑스맨과 스파이더맨, 2000년대 후반 아이언맨, 2010년대 어벤져스로 이어지는 라인업은 매우 공고하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슈퍼히어로도 부침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다. 사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도 슈퍼히어로의 존재 이유는 크지 않았다.

주지했다시피 영웅은 혼란스러운 암흑기에 탄생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는 대체적으로 활황기였다. 위기가 와도 오래지 않아 자가재생이 가능했다. 영웅이 필요치 않았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후 거짓말처럼 아이언맨과 인크레더블 헐크를 위시해 수많은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던 건 우연이 아니다. 2004년에 나온 픽사의 6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은 슈퍼히어로가 필요치 않은 시대의 슈퍼히어로 이야기이다. 은퇴 후 일반인처럼 살아가야 하는 슈퍼히어로 가족이 주요 소재다.

슈퍼히어로 인크레더블과 평범한 직장인 밥

 <인크레더블>의 한 장면.

<인크레더블>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인크레더블은 세상 모든 이에게 존경받는 슈퍼히어로다. 사소한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부터 국가적인 도움이 필요한 곳까지 모든 곳에 나타나 해결해준다.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일이 연달아 생긴다. 그 날은 그가 엘라스티걸과 결혼하는 날이었는데, 자살하려는 사람을 구해주고 인크레디보이라는 꼬마팬을 살리려다가 밤 보이지를 놓친 것도 모자라 기차선로를 부셔먹는 바람에 기차를 억지로 세워야 했다.

근데 자살하려던 사람이 인크레더블을 고소한다. 살고 싶지 않았는데 살려놓았고 부상까지 당했다고 말이다. 또 기차 사고 부상자들도 그를 고소한다. 이를 시발점으로 슈퍼히어로를 상대로 한 소송이 쏟아지고 결국 정부는 그들에게 히어로 일을 그만둔다는 맹세를 받기에 이른다.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인크레더블은 밥이라는 본래 이름으로 보험일을 하고 엘라스티걸은 헬렌이라는 본래 이름으로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들은 세 아이를 기른다. 그중 두 아이는 그들처럼 초능력이 있다. 막내는 아직 알 수 없고. 밥은 하루하루가 고역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게 힘들 뿐 아니라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

어느 날, 정부기밀기관에서 일한다는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그 여인은 많은 돈을 주겠으니 슈퍼히어로의 힘으로 어떤 일은 처리해달라고 제안했다. 그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당장 그 일에 착수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15년 전 그에게 가차 없이 퇴짜를 받았던 인크레디보이가 슈퍼히어로를 척살하고 그 자리를 본인이 차지하려는 수작의 일환이었으니... 인크레더블의 앞날은?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슈퍼히어로를 향해

 <인크레더블>의 한 장면.

<인크레더블>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인크레더블>은 대체로 슈퍼히어로 영화의 범주에 속하진 않는 것 같다. 그저 픽사에서 만든, 그것도 아주 잘 만든 애니메이션 중 하나로 치부하는 인상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2000년대 초반 다시 시작된 슈퍼히어로 전성시대, 그 초창기에 큰 역할을 했거니와 지금까지 수없이 나온 슈퍼히어로 영화들 중 단연 으뜸으로 쳐야 마땅하다.

이 영화는 독특하다. 대다수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슈퍼히어로에 의한' 것인데 반해 이 영화는 '슈퍼히어로를 향한'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보다 그들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슈퍼히어로라는 '일'을 하지 않을 때 우리와 다름 없이 밥 먹고 싸고 씻고 자는 것 아닌가. 행동주체로서가 아닌 대상주체로서의 슈퍼히어로라고 해야 할까.

원작으론 '최고'라는 수식어가 영원히 따라다닐 것이지만 영화로선 혹평과 흥행실패를 면치 못했던 <왓치맨>이 어른 거린다. 반면 흔치 않은 소재와 주제를 코믹과 진중함의 탄탄한 조화로 내보인 이 영화는 호평과 흥행성공을 쟁취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슈퍼히어로를 들이대는 건 각종 위기에 봉착한 전 세계의 일원으로서 알게 모르게 탈출구를 찾고 있는 심리를 이용하려는 수작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우리가 슈퍼히어로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도 있을 텐데,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다름 아닌 내가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은 마음의 발로인 것이다. 평범한(?) 슈퍼히어로 가족이 주인공인 <인크레더블>은 그 지점까지도 나아갔다.

가족의 의미, 가족의 소중함, 가족과 함께 

 <인크레더블>의 한 장면.

<인크레더블>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정작 이 영화의 미덕은 다른 곳에 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2편이 나오길 학수고대하고 있는 팬들의 바람도 '슈퍼히어로'의 그것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을지 모른다. '가족'이다. 영화가 시종일관 내보이고 있는 '가족의 의미'. 밥이 다시금 슈퍼히어로라는 '꿈'이자 '지나간 영광'이자 '위험한 짓'을 꿈 꿀 때 헬렌이 말하는 '가족의 소중함'.

영화는 얼핏 헬렌을 두둔하고 있는 듯하지만 밥의 행동을 폄하하지 않는다. 그의 허황된 꿈은 남을 돕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꿈을 꾸지 말고 살아가라는 말 또한 일면 허황된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꿈은 옳고 그름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양자택일의 범주에 들어갈 테지만 그리 되면 너무 가혹하지 않는가...

'가족과 함께' 꿈을 꾸면 어떨까. 당연히, 다함께 망하자는 건가 하는 말이 나올 테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힘을 얕잡아보는 것이다. 헬렌이 말하는 가족의 소중함이 '돈 많이 벌어 오세요'가 아닌 '혼자 모든 걸 짊어지려 하지 마세요'로 들리는 건 나뿐일까. 가족이란 건 그런 게 아닐까.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가는 길, 강력한 적을 맞아 밥은 헬렌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홀로 가려 한다. 헬렌은 당신은 내 남편이니 죽으나 사나 같이 있을 거라 말한다. 밥은 자신이 강하지 않다고 얼버무리더니 "당신을 또 잃기 싫어. 다신... 절대! 난 그걸 견딜 만큼 강하지 못해"라고 고백한다. 이 대화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이다. 가족의 소중함,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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