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2일 오전 3시(한국시간) 러시아 월드컵 준결승 크로아티아와 잉글랜드의 경기. 크로아티아의 마리오 만주키치가 결승골을 득점한 뒤 환호하고 있다.

2018년 7월 12일 오전 3시(한국시간) 러시아 월드컵 준결승 크로아티아와 잉글랜드의 경기. 크로아티아의 마리오 만주키치가 결승골을 득점한 뒤 환호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동유럽의 자존심' 크로아티아가 사상 최초로 월드컵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크로아티아는 12일 오전 3시(한국 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잉글랜드에 2-1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결승 티켓을 거머쥐었다.

크로아티아는 덴마크와 16강전, 러시아와 8강전에 이어 3연속 연장전까지 치르는 극적인 승부를 펼치며 끝까지 살아남았다. 1998 프랑스 대회에서 4강에 오른 것이 종전 최고 성적이었던 크로아티아는 20년 만에 자국 축구 역사에 또 다른 이정표를 수립했다.

'다크호스'로 자리매김한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축구의 뿌리는 유고슬라비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 동유럽을 대표하는 축구 강국이었던 유고슬라비아는 초창기 월드컵에서 두 번이나 4강(1930년, 1962)에 올랐고, 마지막 출전이었던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8강까지 올랐던 강팀이었다. 1990년대 이후 내전의 아픔을 딛고 유고 연방 국가들이 하나둘씩 분리독립하면서 크로아티아도 독립국가로 모습을 드러냈다.

크로아티아 축구가 국제무대에서 처음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 바로 1998 프랑스월드컵이다. 크로아티아라는 이름으로는 첫 출전이었지만 다보르 슈케르, 즈보니미르 보반, 로베르트 프로시네치키 등 주축 선수들은 이미 유고슬라비아 시절부터 연령대별 대표팀에서 활약하며 이름을 떨친 선수들이었고, 1987년 칠레 FIFA U-20 월드컵 우승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주축 멤버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 이름만 첫 출전국이지 실제로는 유럽에서도 이미 상위권의 전력을 갖춘 팀이었다.

1998년 프랑스 대회의 크로아티아는 1994년의 불가리아, 2002년의 한국 등과 월드컵 역사상 '이변의 팀'을 꼽을 때 항상 거론되는 팀이다. 크로아티아는 조별리그에서 자메이카-일본을 꺾었지만 아르헨티나에 이어 조 2위를 차지했고, 토너먼트에서 루마니아와 독일을 잇달아 제압하며 첫 출전에 준결승 무대까지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8강에서 강호 독일을 3-0으로 완파한 것은 세계 축구팬들에게 크로아티아의 이름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준결승에서 우승국 프랑스의 벽을 넘지 못하고 1-2로 역전패하며 '첫 출전=첫 우승'이라는 역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는 놓쳤다. 당시 크로아티아는 수케르의 선제골로 앞서나갔으나 프랑스의 릴리앙 튀랑에게 연속골을 얻어맞으며 뼈아픈 패배를 당했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튀랑이 수비수였고 무려 142경기나 되는 그의 A매치 경력을 통틀어 골을 넣은 경기가 이날 크로아티아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는 사실이다.

크로아티아는 3위 결정전에선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네덜란드를 2-1로 제압하고 3위로 대회를 마무리했으며 에이스 수케르는 6골로 대회 득점왕을 차지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수케르는 은퇴 이후 현재 크로아티아 축구협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이후 크로아티아는 1998년만큼의 돌풍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월드컵과 유럽선수권 등 메이저대회 본선의 단골손님으로 이름을 올리며 언제든 우승후보들을 위협할 수 있는 다크호스로 자리매김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 이전까지 최근 4번의 본선 무대에서는 3번이나 조별리그 무대를 통과하지 못했고 1번(2010 남아공월드컵)은 아예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며 본선무대조차 밟지 못하는 다소 아쉬운 성적을 기록한 바 있다.

월드컵까지 오는 과정 순탄하지 않았지만... 결승행 이뤘다

첫 4강신화의 영광에서 어느덧 20년이 흐른 2018년 현재의 크로아티아는 80년대 중후반생들이 주축이 된 '제 2의 황금세대'로 불린다. 루카 모드리치(레알 마드리드)와 이반 라키티치(FC바르셀로나)가 버틴 역대급 중앙 미드필더진을 중심으로, 마리오 만주키치(유벤투스)와 데얀 로브렌(리버풀), 시메 브르살리코(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 유럽 빅리그 상위권 클럽에서 실력과 경험을 인정받은 선수들이 풍부하다.

크로아티아가 이번 월드컵까지 올라오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지역예선 중간에 성적부진으로 안테 차치치 감독이 경질되고 즐라트코 다리치 현 감독이 부임한 이후 그리스와의 플레이오프까지 거치는 접전 끝에 힘겹게 본선 무대를 밟았다. 다리치 감독은 선수 시절 국가대표 경험도 전무하고 지도자로서도 자국과 중동에서 대부분의 경력을 보냈던 국제무대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지도자였지만 위기의 크로아티아에 구원투수로 부임한 지 1년도 안되어 본선에서 대반전을 일궈냈다.

크로아티아는 조별리그에서 슈퍼스타 리오넬 메시가 버틴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를 3-0으로 완파하는 이변을 연출하며 조별리그 전승으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토너먼트에서는 상대적으로 프랑스, 벨기에, 브라질, 포르투갈 등 강팀들을 몰린 블록을 피하는 대진운까지 따랐다. 크로아티아가 이번 월드컵에서 만난 상대팀 중 피파랭킹 10위권 이내의 강팀은 아르헨티나가 유일했다.

냉정히 말하면 크로아티아가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경기력이 우승후보 수준에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력상 강팀이라고 보기 어려운 덴마크와 러시아에 고전하다가 승부차기로 겨우 기사회생했고 잉글랜드를 상대로도 선제골을 내주고 고전하다가 간신히 역전승을 거뒀다. 에이스인 모드리치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수비에서도 골키퍼 수바시치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언제 무너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경기가 많았다. 전체적으로 상대팀을 압도한다기보다는 불안한 경기 내용에도 꾸역꾸역 승리를 챙기고 겨우 올라왔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프랑스에 패했던 크로아티아, '설욕 기회'

 2018년 7월 12일 오전 3시(한국시간) 러시아 월드컵 준결승 크로아티아와 잉글랜드의 경기. 크로아티아의 미드필더 루카 모드리치가 팀의 승리에 기뻐하고 있다.

2018년 7월 12일 오전 3시(한국시간) 러시아 월드컵 준결승 크로아티아와 잉글랜드의 경기. 크로아티아의 미드필더 루카 모드리치가 팀의 승리에 기뻐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크로아티아를 상대한 팀들도 제대로 된 경기력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만하다. 크로아티아는 모드리치와 라카티치외에도 마르셀로 브로조비치, 이반 페리시치, 안테 레비치 등 풍부한 미드필드 자원을 활용하여 매경기 다양한 전술적 유연성을 가져갈 수 있었고 이들은 각각 공격과 수비에서 팀동료들의 약점을 상호 보완하며 크로아티아의 중원 장악력을 극대화했다.

선수들의 강인한 정신력도 또 다른 변수였다. 모드리치는 덴마크와의 16강전에서 결정적인 PK를 실축했으나 승부차기에서 다시 키커로 나서서 보란 듯이 득점을 성공시켰다. 골키퍼 수바시치는 햄스트링 부상의 고통을 이겨내고 2경기 연속 승부차기에서 월드컵 최다 타이인 4번의 슈퍼세이브를 성공시키는 괴력을 선보였다. 잉글랜드와의 4강전에서는 이미 누적된 피로의 영향으로 크로아티아 선수들의 몸상태가 눈에 띄게 떨어진 상황이었지만 선제골 이후 방심한 잉글랜드의 자만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혼을 선보이며 기어이 또 한번의 역전승을 만들어냈다.

모드리치는 잉글랜드와의 준결승을 포함하여 이번 대회에서만 벌써 4번이나 경기 최우수선수(MOM)에 선정되며 사실상 유력한 '골든볼' 후보로 부상했다. 해리 케인(잉글랜드)과 에당 아자르(벨기에) 등 유력한 경쟁자들이 모두 탈락한 데다 킬리앙 음바페(프랑스)는 벨기에와의 준결승에서 보여준 비매너 논란으로 여론의 점수가 많이 깎였다. 조국 크로아티아를 결승까지 이끈 공로만으로도 이미 골든볼의 자격은 충분해 보인다. 또한 모드리치는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챔피언스리그 3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한 바 있으며 내친 김에 월드컵까지 품에 안는다면 메시-호날두를 제치고 내년 발롱도르의 유력한 후보로도 급부상할 전망이다.

결승 상대는 바로 프랑스다. 크로아티아는 1998 월드컵 준결승에서 바로 홈팀 프랑스에 패하여 결승 진출이 아쉽게 좌절된 바 있어서 이번 대결은 무려 20년 만에 찾아온 설욕의 기회다. 크로아티아는 에이스인 모드리치가 벌써 33세이고 만주키치(32세)와 라키티치(30세) 등도 모두 30대를 넘긴 베테랑들이다. 4년 뒤에도 지금의 전력을 유지한다는 보장이 없는 크로아티아가 이번 월드컵은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로 불린다. 크로아티아가 내친 김에 강력한 우승후보 프랑스까지 제치고 역대 월드컵 사상 9번째 우승국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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